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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조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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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18 16:25 조회3,4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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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조심하라

 

스스로 조심하라

2003년 01월 31일(금요철야)

본문 / 누가복음 21:34~36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나며 살고 있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나쁜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만났을 때에 유익한 사람도 있지만, 유익하지 못하고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렵고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계속해서 함께 지내려고 할 때에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알기 위해 그 사람의 과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났는지, 어떻게 성장했는지,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왔는지 등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것이 많습니다.

왜 사람의 과거를 알아보려고 할까요? 사람은 누구나 과거의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재와 과거는 모두 우리의 미래에 영향을 줍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가 미래에 영향을 줍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고,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예외가 있기는 합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과거에 고약한 깡패였습니다. 어느 날, 선교사를 통해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 새사람 되어 부흥사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아무리 고약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예수님만 만나면 상상하지 못할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김일성은 이와 반대입니다. 어머니는 권사였고, 외삼촌 강양욱은 목사였습니다. 그런데 김일성은 공산주의자가 되어 세계적으로 가장 악질적인 공산주의 독재정치를 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교회에 다녔지만, 주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다녔기 때문에 교회나 기독교에 대해 지식적으로 대강 알 뿐,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난 체험이 없습니다.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길에 빠지다 보니까 공산주의자가 되었고, 가장 악독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교회에 다니고 있다고 해도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 사람은 그 안에 성령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0타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일성처럼 나쁜 사람이 되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을 믿는 가정에서 자란 사람 중에 세상 사람들처럼 살고 있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본문 누가복음 21장 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현재 교회에 나오지만, 아직 주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과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아주 위험한 사람입니다. 언제 어디서 마귀의 공격을 받을지 모릅니다. 마치 절벽 위에 서있는 사람처럼 언제 떨어져 죽을지 모릅니다. 저는 그런 사람을 보면 매우 안타깝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언제 주님께서 재림하실지 모르는 마지막 때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그 날은 성도들에게는 영광의 날입니다. 모든 고생이 끝나고 빛나는 세마포 옷을 입고 주님을 만나는 날입니다. 기쁜 날, 축복의 날입니다.

그 날 너무 감격해서 눈물 흘릴 것이고, 춤을 추며 좋아할 것입니다. 상상하기만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예수님을 믿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날은 심판의 날입니다. 그 날에 당할 고통과 슬픔과 비참함은 형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려면,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눅 21:36).

 

주님이 갑자기 오실 때에 주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 거듭나지 못한 사람, 회개하지 않은 사람, 방탕함과 술 취함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가슴을 치고 통곡하며 이를 갈 것입니다. 생각을 잘못하여 잘못된 삶을 살다가 주님을 맞이하게 되면 얼마나 원통하겠습니까.

그 동안 교회에 다닌 것도 헛수고이고 헌금한 것이나 교회에서 봉사한 것도 헛수고이니 억울해서 이를 악물고 거품을 물고 몸부림칠 것입니다.

 

사람들을 보면 네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사람, 처음부터 끝까지 나쁜 사람, 처음에는 좋았는데 나중에는 나빠지는. 처음에는 좋지 않았는데 나중에 좋아진 사람이 있습니다.

이 네 종류의 사람 가운데 제일 안타까운 사람은 세 번째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잘 섬겼는데. 중간에 타락하여 예수님을 믿지 않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사람은 참 안타깝습니다.

솔로몬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솔로몬은 처음에는 신앙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점점 타락하여 나중에는 우상숭배하고 죄를 많이 범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습니다.

 

 

솔로몬이 처음에는 좋았으나 나중에는 좋지 않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 기도생활을 등한히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타락하지 않으려면,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도 솔로몬과 같이 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솔로몬같이 되지 않으려면, 항상 기도하면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다니엘처럼 늘 기도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출세해도,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니엘은 어떤 일이 벌어져도, 하루에 세 번 무릎을 꿇고 고국을 향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만일 솔로몬도 다니엘처럼 기도생활을 했더라면, 절대로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도하면 유익한 점이 참으로 많습니다. 엎드려 기도하다 보면 상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회복시켜주십니다.

저는 마음에 근심과 고민이 있을 때에는 철야기도를 합니다. 놀라운 것은 새벽 한두 시쯤 되면 졸리기도 하고 피곤한데, 어떤 때에는 그 시간에 성령께서 임하시는 것을 체험합니다. 그래서 회개하러 왔다가 은혜 받고 돌아갑니다.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한다고 해서 늘 은혜 충만하고 늘 응답 받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죄를 지었든지 안 지었든지, 신앙생활을 잘 하든지 못 하든지 변함없이 하나님 앞에 규칙적으로 기도하다 보면, 넘어졌다가도 일어나고 죄를 지었다가도 회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늘 기도하는 자체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많은 기독교인들은 철저한 기도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특별한 경우, 즉 부흥회, 특별새벽기도회, 수련회 때에만 열심히 기도합니다. 또 위기가 와서 어려움이 생겼을 때에만 기도하지, 평소에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문제가 많습니다. 이런 사람이 항상 깨어 기도하려면 항상 어려움이나 위기가 계속 와야 하니 얼마나 문제가 큽니까. 이런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앞으로는 계속해서 위기가 몰려올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워졌으므로 우리는 항상 기도하면서 깨어 있어야 됩니다. 주님께서 오셨을 때,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하려면, 평소에는 다니엘처럼 기도생활을 하고, 위기가 왔을 때에는 에스더처럼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6)”라고 각오하고 금식하고 간절히 기도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것이 필요합니다.

 

습관적으로 기도의 시간만 채우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항상 은혜 받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항상 은혜 가운데 기도해야 승리할 수 있고, 신앙생활에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은혜가 없는 기도생활은 형식적인 기도가 되기 쉽습니다. 하루에 몇 번씩 기도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도생활을 통해 얼마나 은혜를 받고 있는가, 은혜 가운데 기도생활을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은혜가 넘치는 기도생활을 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가운데 많은 깨달음을 얻습니다. 죄를 깨닫기도 하고, 자신의 교만을 깨닫기도 합니다. 한순간에 깨닫는 것이 삶을 변화시킵니다. 완전히 딴 사람을 만들기도 합니다. 기도하다가 그런 체험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될 때는 얼마나 행복하고 좋은지 모릅니다. 기도하다가 주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고, 주님을 위해 할 일을 깨닫고, 기도하다가 영감을 받고 감동을 받아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은혜 가운데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은혜 가운데 기도생활을 하는 사람은 점점 변화되어 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그 뿐 아니라 기도하다가 믿음의 능력이 더해지고, 기도의 능력과 경건의 능력이 더해집니다. 그래서 목숨 걸고 신앙을 지키며 거룩하게 살게 됩니다.

주님을 위해 살고 은혜가 넘치는 기도생활을 하는 사람은 신앙생활에 기쁨이 있고 좋은 열매가 많고 간증거리가 참 많습니다. 은혜 가운데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응답 받은 간증이 많습니다.

그런데 간증거리가 없는 사람은 은혜 가운데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생활에 성공해야 신앙생활에 성공합니다.

 

기도생활을 게을리 하고 기도생활을 안 하면 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저도 너무 피곤하거나 일이 생기면 기도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기도하지 않으면, 약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믿음도 영력도 영감도 얼마나 약해지는지, 나 자신이 너무너무 허약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저처럼 주의 일만 하고 항상 주의 전에 사는 사람도 기도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약해지는 것이 느껴지는데, 세상에서 사업을 해야 되고 직장생활을 해야 되고 학교에 가야 하는 여러분들이 기도생활을 등한히 하면 오죽하겠습니까.

기도생활은 영적으로 보면 호흡하는 것과 같습니다. 숨을 잘 쉬어야 살 수 있는 것처럼, 기도생활을 잘 해야 영적으로 잘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힘들어도 철저하게 기도생활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성경을 상고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는 모세오경밖에 없었는데, 솔로몬이 모세오경을 읽고 묵상했더라면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편 1편 1~3절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의 은혜 가운데 사는 사람은 타락하지 않고 은혜 가운데 삽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은 은혜 가운데 살고 영적으로 건강하면 다른 복이 그냥 따라옵니다.

육안으로 보면 걱정거리가 많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며 깨어 기도하면, 모든 복을 받을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죄 가운데 사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들은 심판 받을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깨어 기도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고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을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었느냐만 살피면 됩니다.

 

신명기 4장 1~10절에 보면,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여호와께서 바알브올의 일로 말미암아 행하신 바를 너희가 눈으로 보았거니와 바알브올을 따른 모든 사람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에서 멸망시키셨으되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가 들어가서 기업으로 차지할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그리하여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 네가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 네가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에게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주어 그들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를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리라 하시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신명기 5장 1~10절에 보면,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아 오늘 내가 너희의 귀에 말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나니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날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여호와께서 산 위 불 가운데에서 너희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매 그 때에 너희가 불을 두려워하여 산에 오르지 못하므로 내가 여호와와 너희 중간에 서서 여호와의 말씀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밑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신명기 6장 4~9절에 보면,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신명기 7장 3~5절에 보면,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오직 너희가 그들에게 행할 것은 이러하니 그들의 제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조각한 우상들을 불사를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솔로몬이 날마다 성경을 읽었다면 밤낮 죄를 짓거나 우상숭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애굽 왕의 딸을 비롯하여 이방여자를 천 명이나 데리고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말씀을 읽지 않으면 말씀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타락합니다. 여러분도 성경을 열심히 읽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깊이 읽으면서 은혜를 받으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셋째, 예배를 등한히 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번제를 드린 적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

솔로몬이 계속 이렇게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일천번제는 드리지 않더라도, 날마다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리고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예배를 등한히 하면서 은혜생활을 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신앙이 타락하기 쉽습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믿음을 아예 잃어버립니다.

우리가 부족해도 교회에 열심히 나오고 열심히 예배드리면, 믿음을 살립니다. 그러나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불신자가 되어 버립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잘 드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주님 오실 날이 가까울수록 열심히 모이고 찬양하고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것이 타락하지 않고 승리하는 비결인 줄 믿습니다.

히브리서 10장 25절에 보면,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도는 교회생활에 성공해야 신앙생활에 성공합니다. 천국에 갈 사람들이 천국에 갈 때까지 교회에 모여 천국생활을 훈련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생활을 잘 하는 사람이 모인 교회는 천국 같지만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하는 교회는 지옥 같습니다. 모이기만 하면 싸우고 서로 미워하고 이간질하고 상처를 줍니다. 그래서 교회생활을 하는 재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오늘날 그런 교회가 너무 많습니다. 교회에 나오면 하나님 앞에 정성껏 예배드리고 은혜를 받아 마음에 천국이 이뤄지고 기쁨이 넘치는 가운데 돌아가야 합니다.

 

 

넷째, 하나님을 위한 비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위한 비전, 꿈, 하나님을 위한 계획, 소원 없이 살았습니다. 자기의 삶의 목표는 다 이뤄졌기 때문에, 자기가 이룰 목표가 더 이상 없었습니다. 먹고 마시고 노는 것 외에 삶의 목적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주님을 위해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요 목표입니다.

로마서 14장 8절에 보면,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보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인간의 꿈은 두 가지로 나눠집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가지는 세속적인 꿈으로 부자 되고 출세하고 건강하게 장수하고 세상에서 명예를 얻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신령한 꿈, 신령한 계획, 신령한 소원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까’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소원들이 신령한 꿈, 신령한 소원입니다.

 

다윗은 성전을 지어 바치기를 소원했습니다. 이런 꿈과 소원은 믿음에 유익합니다. 이런 소원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소원을 가진 사람은 그만큼 믿음이 좋아집니다. 이런 신령한 소원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삶의 자세가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소원을 가진 사람을 기뻐하시고 그에게 축복하십니다. 이런 꿈과 목표는 우리의 삶을 기쁘게 해주고 즐겁게 해줍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기뻐하신다는 증거가 나타나고, 내 마음속에 기쁨이 넘치면 삶이 행복해집니다. 자기만 축복 받는 것이 아니라 축복을 물려주고 나눠주며 살게 됩니다.

 

만일 솔로몬이 신령한 꿈과 소원을 가지고 있었다면, 밤낮 술을 마시지 않았을 것이고, 많은 여자들과 함께 쾌락을 누리며 세월을 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평생의 소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넘치도록 축복해주시니 저 자신에 대해서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신령한 꿈과 소원을 이루며 살까’ 이것만 생각하며 삽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행한 인생이 되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위한 구체적인 소원, 목표,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본문 누가복음 21장 34~3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오시더라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항상 깨어 있으라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성도들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입니다.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과거에 기도를 많이 했어도, 지금 기도하지 아니하면 쓸 데 없습니다. 과거에 성경을 많이 읽었어도, 지금 성경을 읽지 않으면 아무 쓸 데 없습니다. 과거에 충성 봉사했어도 지금 자신만을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한 꿈과 소원이 없다면 아무 쓸 데 없습니다.

지금 내가 얼마나 깨어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충성 봉사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현재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오신다면 어떤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설 수 있을까 생각해보시고, 현재의 내 모습을 위해 스스로 조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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