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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체험과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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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8-17 23:00 조회3,4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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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체험과 열매

 

3대 체험과 열매

2007년 03월 02일(금요철야)

본문 / 누가복음 19:1~10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우리의 육안으로 볼 수 없습니다. 영은 뼈와 살이 없습니다.

그런데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우리가 믿는 것은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것을 알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알고 믿는 것은 보통 기적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에 보면,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육에 속한 자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우리가 믿는 것을 아주 미련하게 생각하고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것이 믿어집니다. 그분의 인격과 능력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믿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것이 믿어지는 것은 기적입니다.

공부를 많이 한 박사라도 하나님을 볼 수 없어서 믿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것은 보통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우리가 미친 사람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미친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보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특별히 선택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확신이 없어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못하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구원받았다면서 왜 그리 나약합니까. 그 이유는 체험적인 믿음이 없기 때문입다.

이론적으로 지식적으로만 믿는 사람은 믿음이 약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능력과 인격이 있으십니다. 말씀하시고 우리의 말도 들으십니다. 모든 것을 보고 계시며, 역사하고 계십니다.

 

저는 기도할 때에 주님과 대화를 많이 합니다. 지혜와 지식과 능력을 가지고 인격을 가지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고 저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저는 여러 목사님들 앞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 사랑하시지만, 저를 특별히 더 많이 사랑하시는 증거와 확신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저의 고백입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왜 우리에게 능력이 없고 확신이 없습니까?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상을 만들고 섬기는 종교라면 몰라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적어도 세 가지를 체험해야 합니다.

 

첫째, 거듭나는 체험입니다.

우리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남, 중생을 반드시 경험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니고데모라는 바리새인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유대인의 관원입니다. 요즘 말로는 국회의원 정도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요 3:2)”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이 거듭난 신자인지 잘 모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거듭난 신자인 것을 알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어 거듭난 자라고 할 수 있는 증거가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에게는 거듭난 증거와 열매가 있습니다.

첫째, 회개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 누가 회개합니까? 회개한다는 것은 거듭났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베드로와 가룟 유다 둘 다 예수님을 배신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완전히 돌아서서 자살했습니다.

회개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진실로 회개하면, 내 안에 성령께서 계십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 받았습니다.

회개하는 것 자체가 거듭난 증거입니다. 기뻐할 일이요, 큰 축복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베드로가 설교했을 때,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행 2:37)”라고 하며 회개했습니다. 회개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들은 거듭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삭개오가 등장합니다. 삭개오는 분명 회개한 사람입니다. 본문 누가복음 19장 8절에 보면, 삭개오가 예수님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부당이익을 다 갚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철저히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거듭난 자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어느 집사님의 간증을 듣고 참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 집사님은 매우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그래서 저같이 가난하게 자란 사람을 이해한다고 하셨습니다.

등록금이 없어서 고등학교를 중퇴하셨습니다. 그러다가 28세에 대학교에 입학하셨습니다. 대학교 기숙사에서 자려고 하는데, 예전에 동네에서 빵을 하나 훔쳤던 것이 생각나서 용서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전에는 자기 죄를 고백할 때마다 성경적인 깨달음이 있고 하나님의 따뜻한 음성도 들렸는데, 이 날은 이전과 달랐습니다. 이 날은 하나님께서 그 빵 값을 갚을 수 있으면 갚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오래된 이야기인데다가 빵 하나를 갚는 것이 얼마나 부끄럽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이야기를 넘겨버렸는데, 그 다음날에도 하나님께서 같은 이야기를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한 달간 계속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빵 하나 훔친 것을 갚으러 대구에서 부산까지 내려왔는데, 너무 오래 전의 일이라 가게가 없어졌습니다. 여기저기 알아보니 다른 곳에서 양복점을 하고 있었습니다.

찻집에서 만나서 자신을 소개하니 알아보셨습니다. 왜 찾아왔는지 이유를 설명하고 빵 값을 받으라고 천원을 드렸습니다.

어렸을 때 그런 경험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하면서 빵 값을 안 받겠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 집사님은 너무 고민 끝에 찾아왔으니까 받아달라고 해서 결국 그 분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분과 한 시간 정도 교회 및 대학교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찻집을 나오는 순간, 그 찻집을 들어왔을 때의 세상과는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기쁨과 평강이 넘쳐서 다른 세상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았을 때 얼마나 기쁜지 체험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기도하기만 하면 다 응답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이 사라지니까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생각만 해도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부끄럽지만 삭개오처럼 철저히 회개하십시오. 예수님의 우편 강도가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눅 23:42)”라고 주님을 찾았을 때, 예수님께서는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회개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 강도 역시 회개한 사람입니다. 회개가 있는 사람은 거듭나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회개했다고 하면서 왜 계속 죄를 짓습니까? 철저하게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방적으로 회개하고, 용서해달라고만 하고 끝냈기 때문입니다.

죄 사함 받은 확신을 가지고, 회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서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그렇게 될 때까지 계속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의 불이 일어나고 기쁨이 넘칩니다.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에 회개하려고 철야하다가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얼마나 기쁘고 좋은지, 아침에 집으로 돌아가는데 하늘이 웃는 것 같았습니다. 이것은 회개하다가 은혜 받은 사람만 알 수 있습니다.

 

둘째, 믿음입니다.

로마서 10장 9~10절에 보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음에 있는 믿음을 사람들 앞에서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베드로의 고백처럼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홍해 사건, 애굽의 열 가지 재앙 사건 등 허황된 이야기처럼 들리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그 일을 능히 하실 수 있음을 믿습니까? 성경의 기록이 거짓이 아니요 참 진리임을 믿습니까? 이것이 믿어지면 거듭난 것입니다. 부족해서 죄를 범하고 실수하지만 회개하는 마음이 있다면 거듭난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절대주권자이십니다. 신실하십니다. 사랑이십니다. 완전하십니다. 만복의 근원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삭개오를 아셨고, 삭개오를 만나주셨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아무리 찾아도,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모른 척 하시고 지나가시면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삭개오를 아셨고, 사람들 앞에서 삭개오의 이름을 불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눅 19:5)”라고 말씀하셨을 때, 삭개오는 나무에서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변했습니다.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자신이 지금껏 알고 있던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완전히 변해서 오히려 예수님을 증거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주님과 멋진 만남을 가졌습니다. 요한복음 21장 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런 체험을 하면, 예수님을 믿는 기쁨이 생깁니다.

 

저는 여러분께 간증을 많이 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죽으려고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사흘째 되는 저녁에 하나님께서 제게 “너는 이제 죽었느니라.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음은 이 세상의 소리처럼 들리는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20장 22절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 오셔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120명의 성도들이 성령 충만을 받는 모습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 보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행전 19장 6절에 보면,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물세례만 받은 사람들이라 성령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안수하는 순간,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저는 안수를 잘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집회를 가니까 몸이 아프다는 목사님, 성도들께서 제 앞에서 줄을 섰습니다. 특히 미국 장로교의 목사님 한 분이 저랑 이야기하다가 제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댔습니다. 그래서 그냥 안아주며 기도했습니다.

저는 안수기도해주고 싶지만 ‘역사가 일어났다. 누가 기도해줬다.’고 교만해지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고 싶습니다. 제일 문제가 그것입니다. 기도해주는 것은 좋지만 역사가 일어나면 특별한 사람으로 보고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표적과 기사는 성령의 역사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사탄도 행한다는 사실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미혹할 때에도 표적과 기사를 많이 사용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9~10절에 보면,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악한 자’는 적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24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표적이 아니라 큰 표적을 보입니다.

어느 집회를 인도할 때 그런 표적이 일어나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 표적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진리를 믿어 구원받는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사탄도 표적을 행합니다. 그러므로 표적을 무조건 따라가면 위험합니다.

 

예전에 박태선 장로라는 사람이 있었고, 전도관을 통해 돌아온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권사님 중에 배가 많이 아파서 수술을 하러 갔는데, 수술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어서 그냥 배를 덮었는데, 그분이 박태선한테 안수를 받았다고 저한테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안수기도를 할 때 배에 손을 직접 놓지도 않았는데, 깨끗이 나았고 권사님은 장수하셨습니다.

 

내 사업, 내 자식 공부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무당에게 가는 것과 동일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으로, 같이 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 행위는 하나님을 분노하게 합니다.

요한계시록 19장 20~21절에 보면,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둘째, 표적보다 중요한 것은 열매입니다.

마태복음 7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장 21~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법은 죄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척하지만, 뒷구멍으로는 죄를 얼마나 짓는지 모릅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일 3:10)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를 구별하는 방법이 나옵니다. 사랑하는가를 통해, 불의한 짓을 하는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나에게 불의를 행하더라도 우리는 선을 행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8~9절에 보면,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른 목사님들이 우리 교회에 오는 성도들에 대해 제게 일러줍니다. 그 성도가 자신의 교회에 계셨을 때 고생을 많이 했다고 알려줍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수영로교회에 오면 얌전해진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에 새신자들이 오면 다들 많이 웁니다. 왜 우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우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착하고 의롭고 단순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겉과 속이 다르고 상황에 따라 요령을 부리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처럼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야 합니다.

성령 충만 받는 사람에게는 성령의 열매가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4절에 보면,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제일 큰 열매로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빌립보서 1장에 보면, 복음을 전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빌립보서 1장 15~18절에 보면,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3절에 보면,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육신에 속한 자는 밤낮 시기, 분쟁이 있는데 그 이유는 사람을 따라 행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따라가면, 사람의 수 만큼 분쟁이 생깁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세 가지 체험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사탄도 표적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표적이 일어날 때 정신을 차리고 진리의 말씀인지를 들으십시오.

표적보다 중요한 것은 열매입니다. 주신 말씀이 마지막 때에 저와 여러분에게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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