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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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5-28 11:36 조회3,537회 댓글0건본문
이 세상에서의 삶
이 세상에서의 삶
2005년 06월 26일(주일예배)
본문 / 누가복음 16:1~8
세상에는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생활을 살펴보면 사람마다 각기 다릅니다. 신앙태도가 다르고, 삶의 자세가 다르며, 삶의 우선순위도 다르고, 삶의 목적과 가치관이 다릅니다.
똑같이 예수님을 믿는데, 왜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좋을 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부모에게 잉태되면, 그 순간부터 세 단계의 삶을 살게 됩니다. 모태에서 보내는 10개월, 이 세상에 태어나 사는 약 100년의 기간과 이 세상을 떠난 후 영원한 살게 되는 내세의 삶입니다.
사람은 어머니 뱃속에서 10개월을 보낸 후에야 비로소 이 세상에서의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10개월을 보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시간은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기간입니다.
태중에 있을 때에는 눈이나 귀를 비롯한 장기가 필요하지 않아도,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그때부터 준비됩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의 삶도 그 다음 단계인 영생을 위한 준비기간입니다. 그리고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은 영원한 내세의 삶의 시작입니다.
야고보서 4장 14절에 보면,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한시적인 삶은 영원한 내세의 삶에 비하면 매우 짧습니다. 한순간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가 떠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큰 애착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고린도후서 4장 18절에 보면,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17절에 보면,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것들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잠시 후면 사라지는 것으로, 한순간에 소멸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내세는 영원합니다. 루이스는 “영원하지 아니하는 것은 영원히 무용지물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잠시 있다가 없어질 이 세상의 것들에 애착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학생들이 상급학교로 진학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여 시험을 치르는 것과 같습니다. 시험 준비를 잘해서 시험을 잘 통과하면 합격의 영광이 있고 성적이 우수하면 장학금도 받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의 삶을 잘 통과하면 천국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 칭찬과 면류관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삶을 잘 통과하지 못하면 지옥에 들어가고 수치와 고통 속에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어떻게 사느냐는 이 시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의 삶 그 자체가 시험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만나는 시험을 잘 치러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시험을 잘 통과했습니다. 다윗은 시험에 실패할 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등장하는 요셉, 룻, 에스더, 다니엘 등은 어려운 시험을 잘 통과했습니다. 특히 요셉은 모든 시험을 모범적으로 잘 통과했습니다. 17세였을 때 형들에 의해 노예로 애굽에 팔려가는 시험이 있었습니다. 이때 얼마나 낙심하고 절망했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어느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맡은 일에 충성하므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모든 일이 형통했습니다. 그는 노예의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인 보디발의 집에 가정총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시험이 왔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날마다 윙크를 하며 잠자리를 같이하자고 유혹했습니다. 요셉은 이 유혹을 잘 물리쳤습니다.
그러나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인해 감옥에 들어가는 시험이 또 왔습니다. 참으로 억울한 일입니다.
요셉은 감옥에서도 불평하지 않고 맡은 일에 성실하며 믿음으로 살다 보니 감옥의 제반 사무를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요셉은 애굽의 총리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사실 사람이 남부럽지 않게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되면, 교만해지고 방종하며 타락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믿음을 잃지 않고 끝까지 절도 있게 살아서 시험을 이기고 승리했습니다. 그 후 애굽에 곡식을 구하러 온 형들을 만났지만, 그는 형들에게 보복하지 않았고, 도리어 형들의 잘못을 용서해주고, 그들의 자손까지 돌봐주었습니다. 요셉은 원수를 원수로 갚지 않고 선을 행함으로써 시험을 멋지게 통과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많은 시험과 어려움을 당할 때에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으실 때, 너무나 절박한 가운데 부르짖어도 해결해주시지 않으실 때, 하나님께서 내 곁을 떠나신 것 같고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 같고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것 같을 때,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때 우리가 어떻게 처신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욥을 보십시오. 신앙생활을 잘했던 그도 한순간에 재산과 자녀를 다 잃었습니다. 몸은 병들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 앞에 기도해도, 하나님께서는 아무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침묵하셨습니다. 세상에 이런 답답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갈 인생임을 알고,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렸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으로부터 갑절의 축복을 받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어려운 시험을 당할 때 끝까지 참고 견뎌 승리합시다. 시험은 힘들고 괴로운 것이나, 우리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우리의 인격을 온전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한 일을 하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많은 시험을 당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허락하시지 않으시고 반드시 피할 길을 열어주셔서 시험을 능히 감당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고전 10:13).
여러분 중에 특별히 큰 시험이 와서 어려움을 당하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이런 분들은 “아버지, 제 믿음이 그렇게도 좋습니까?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허락하시지 않으신다고 하셨으니 이 시험도 능히 감당하게 될 줄 믿습니다.”라고 하며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어려운 시험이 와도 하나님께서는 피할 길을 내어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시험을 잘 참고 통과하는 자들에게 주시려고 상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야고보서 1장 12절에 보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 가장 좋지 않은 것은 괴로운 나머지 화가 나고 낙심하여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교회에 나오지 않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시험을 잘 참고 견디며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생명의 면류관을 준비해놓고 계십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청지기와 같습니다. 청지기는 주인이 아닙니다. 다만 주인이 맡겨 준 것을 잘 관리할 의무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리는 시간과 물질과 지식 등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잠시 맡겨주신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것입니다.
시편 24편 1절에 보면,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의 몸과 생명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올 때 가지고 온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현재 내게 있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셔서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잠시 맡겨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라고 하시면 다 남겨두고 이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전도서 5장 15절에 보면, “그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가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자기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7절에 보면,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돈을 많이 번다한들 자신이 노력하여 번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돈이 들어왔다가도 없어집니다. 절대로 모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많이 맡기시면 많이 받고, 적게 맡기시면 적게 받습니다.
그러나 많이 받는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 많이 받은 사람에게는 많이 받은 만큼 책임도 크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청지기가 큰 재산을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재산을 허비한다는 소문을 들은 주인으로부터 모든 것을 정리하라는 통보를 받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이제 어떻게 먹고 살지 앞길이 막막했습니다.
그때 청지기가 꾀를 냈습니다.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불러 빚을 대폭적으로 탕감해주었습니다. 자신에게 아직 권한이 있을 때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심을 쓴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이 일을 그만둘 때 그들을 찾아가면 외면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사람의 행동을 지혜롭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가진 것이 내게 영원히 있을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사업을 크게 하는 분들도 부도가 나서 재산이 하루아침에 안개와 같이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놓으셨을 때, 다 없어지기 전에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찾아 부지런히 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2장 4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눅 19:13)”고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왕위를 받아서 돌아와 그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했는지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불렀습니다.
이에 첫째가 나아와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눅 19:16)”라고 보고했습니다. 이에 주인이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눅 19:17)”고 했습니다.
둘째가 와서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눅 19:18)”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그에게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눅 19:19)”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한 므나를 수건으로 싸 두었다가 가져왔습니다. 그는 주인으로부터 악한 종이라고 책망을 들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충성한 사람에게는 세 가지 축복이 있습니다. 첫째, 칭찬을 듣습니다. 둘째, 영원한 세계에서 더욱 많은 책임을 맡습니다. 셋째, 하나님과 기쁨의 자리에 함께합니다.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첫째,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셔서 받은 것으로, 하나님의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모르거나 믿지 않거나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신이 가지고 것이 많을수록 큰 시험이 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노력해서 번 것이라고 생각하여 자기의 뜻대로 자신의 향락을 위해 사용하면, 그 돈 때문에 타락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불행하게 살다가 영원히 지옥 불에 들어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영원히 살 집이 아닙니다. 잠시 머물다 가는 여관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언제라도 가야 합니다. 오늘 밤 우리를 불러 가시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기독교인조차도 이 세상에서 마치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이 세상에 빠져 사는 사람들을 향해 베드로 사도는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 2:11)”고 말했습니다.
신앙의 사람들은 오늘이 나의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마음을 가지고, 환난과 시험이 많은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고 애써야 합니다.
참 만족과 진정한 행복은 천국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마음을 두지 말고, 우리의 본향을 바라보며, 주님 만날 준비를 하며 살다가 영광 중에 주님을 만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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