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으신 아버지 하나님(2006년 09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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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8-16 15:05 조회6,576회 댓글0건본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2006년 09월 01일(금요철야)
본문 / 누가복음 15:11~24
여러분들이 성경을 볼 때 항상 제일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본문 말씀이 보여주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를 찾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본문 말씀을 흔히 ‘탕자의 비유’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제일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말씀에서 보여주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뭘 말씀하시는지, 어떤 교훈을 주시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항상 관심을 두어야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은혜를 받을 때 믿음이 큽니다.
1.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고 좋은 아버지가 되십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 하나님인지 생각해보면서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좋은 예수님의 비유 말씀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 분인지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본문의 아버지는 굉장히 부자입니다. 많은 하인이 있고, 집도 대궐 같았을 것이고, 모든 것이 풍성하고, 부족함이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도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드신 완전하신 아버지인줄 믿습니다. 이런 아버지를 섬기는 아들은 얼마나 복이 있습니까!
저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친구들의 아버지를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릅니다. 친구들이 아버지에게 혼날 때, 그런 아버지라도 있다는 것이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저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난 이후로는 세상 아버지에 대한 부러운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지 알고 난 후에는 세상에 부러운 것이 하나도 없어졌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얼마나 좋은지 하루 종일 “아버지”하면서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제가 깊은 은혜의 시간을 가지면서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고 품어주시는지, 그리고 가면 갈수록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지, 저는 아무 불만도 없고 오히려 과분합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좋은 아버지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너무 큰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놀랄 정도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하나님과 좋은 관계 속에 살면 아무 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고 좋은 아버지가 되십니다.
2. 하나님은 모든 것을 허락해주시는 아버지입니다.
12절에 보면,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철없는 아들이 돌아가시지도 않은 아버지의 재산을 미리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이 그런 요구를 하는데도 그냥 허락해서 아들들에게 재산을 주십니다.
우리가 밤낮 하나님께 기도할 때 욕심에 눈이 멀어서 얼마나 철없는 기도를 하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기도를 하는지 모르는데, 마치 철없는 둘째 아들처럼 요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믿음이 적은 사람, 성경도 잘 모르고 어린 애같은 사람들에게 응답을 잘 해주십니다. 믿음이 작은 데도 모처럼 어린 아이가 하나님 앞에 달라고 할 때 귀여워서 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무 자비하셔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 허락해주시려고 하는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이 맹인에게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막 10:51, 눅 18:41). 맹인에게 그렇게 당연한 것을 왜 물으셨겠습니까? 그리고 맹인이 눈뜨고 싶다고 말할 것이라고 모르셨겠습니까!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소원을 다 이루어주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들이 재산을 모아서 먼 나라에 갔을 때도 그냥 가게 해주셨습니다. 웬만하면 우리 소원대로 다 허락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3절에 아들이 먼 나라에 간 것을 보면 아버지로부터 독립해서 간섭도 받기 싫고 눈치도 받기 싫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것을 다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인간 스스로 선악과를 먹을 수도 있고, 먹지 않을 수 있는 선택권을 처음부터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을 친구 대하듯이 우리의 인격과 모든 것을 존중해서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 나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인간에게 자유를 주셨으며, 인간은 자유를 잘 누릴 때 행복합니다. 자유를 박탈하지 말고 존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문제는 선악과를 따먹을 수 있는 자유는 있으나 먹으면 정녕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와는 따먹고, 자신의 남편에게도 주어서 먹게 합니다. 이것은 곧 죄의 시작이 됩니다.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도 있고, 교회에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길은 축복의 길, 어떤 길은 지옥으로 가는 길이 됩니다. 자신이 선택하지만 결과는 차이가 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얼마나 좋으십니까. 과거 현재 미래를 다 아시는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순종은 축복받는 비결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살 때 어떻게 되는지 자세하게 나옵니다. 신명기 1장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받는 축복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살지 않을 때 벌이 얼마나 많은지 자세하게 설명하십니다. 성경에 나타난 인류 역사를 보면 말씀대로 다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대로 살 때 복 받지만 말씀을 저버릴 때 어떻게 되는지 다 나타납니다.
성경은 정확 무오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혹시 예외가 있겠지’라고 생각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삽니다. 결과는 주님의 말씀대로 됩니다. 믿음이 없고 확신이 없어서 탕자와 같은 행동을 합니다.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눅 15:13~18)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생명을 떠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멀리 하는 것은 축복을 멀리 하는 것이고, 저주받는 길입니다. 요행을 바라지 말고, 하나님을 시험해보려고 합니다.
성경 말씀은 정확 무오합니다. 심는 대로 거둡니다. 그런데도 믿음이 연약한 젖먹이 신자들은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세상을 보고 하나님을 저버리는 행동을 수없이 많이 합니다. 그래서 노름이나 마약같이 죄에 중독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쁜 것을 알면서도 자꾸 죄를 짓게 됩니다. 자신도 모르게 중독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망할 때까지 갑니다.
3. 하나님은 기다려주시는 아버지입니다.
누가복음 15장 20절에 보면,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버지는 ‘오늘이나 내일이나 아들이 올까’하고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돌아오는 아들을 보자 달려가서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모릅니다.
어느 분은 6ㆍ25때 아들이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길거리에서 고등학생도 강제로 군대에 데려갔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문을 잠그지 않고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방탕한 아들과 같은 우리가 죄 가운데 빠져서 허덕일 때 기다리고 계십니다.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죄 가운데 있는 죄인들이 돌아오기를 바라고 기다리십니다. 더 이상 고생하지 말고 돌아오라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4. 하나님은 절대로 버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아버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눅 15:4~10)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로 버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3:5) 하나님은 창세전에 택한 백성은 절대로 버리지 않으시고 떠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누구나 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다 신령하고 장성한 신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기독인들은 육신에 속한 자들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의 말씀처럼 단단한 것은 먹지 못하고 젖을 먹는 신자입니다(고전 3:2). 그래서 교회에서도 시기와 분쟁이 있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고, 때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못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일이 네게 임하여 환난을 당하다가 끝날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그의 말씀을 청종하리니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신 4:30~31)
하나님을 저버렸을 때 징계하시지만, 절대로 버리지 않으시고 멸하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십니다.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할 것이라 너를 흩었던 그 모든 이방을 내가 멸망시키리라 그럴지라도 너만은 멸망시키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법에 따라 너를 징계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만 여기지는 아니하리라”(렘 30:11)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타락하니까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포로로 다 잡아갔습니다. 그리고 120년 후에 남유다도 바벨론에서 쳐부수고 잡아갔습니다. 그래도 결국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구원하셨습니다. “너를 흩었던 나라를 진멸하셔도 너는 진멸하지 않으신다.”라는 것입니다. 이방인도 이스라엘도 우상숭배를 하더라도 택함 받은 백성은 멸하지 않으십니다.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이신지 모릅니다.
5.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면 다 받아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눅 15:20~21)
이렇게 말해도 아버지는 들은 척도 안 하시고 너무 좋아서 얼마나 잘 해주시는지 모릅니다.
저와 여러분이 죄를 범할 때는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지만, 회개하고 돌아올 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날마다 회개해야 합니다. 죄를 짓는 순간마다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것이, 교회로 돌아오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다녔던 교회에서 경험한 이야기입니다.
북한에 살 때에는 예수 잘 믿던 분이 남한 전쟁터에 끌려와서 타락했습니다. 친구도 좋아하고, 술을 좋아해서 술에서 깰 날이 없었습니다. 늘 술에 취해 있어서 교회에 갈 수는 없었지만, 마음에는 하나님을 향한 뿌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낮에는 교회에 들어오지 못하고, 저녁에 사람들이 교회에서 나갈 때 살짝 들어와서 잠깐 기도하고 갔습니다.
제가 앞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을 때, 그분이 왔다 가셔서 저는 도둑인 줄 알고 쫓아갔더니 그 아저씨였습니다. 어떻게 오셨는지 물어보니까 아버지께 인사하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결심하고 술을 끊고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부터는 교회 앞을 지나갈 때마다 꼭 들어와서 기도하고 가셨습니다. 나중에는 그 교회에서 장로가 되어 목사님을 잘 돕는 분이 되셨습니다.
과거를 묻지 마십시오. 혹 과거가 좋지 않은 사람이 교회에 왔으면 더 존중하고 칭찬하십시오. 어거스틴이 얼마나 타락했습니까!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로 삼십대에 돌아와서 그 시대에 성자가 되었습니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되어도 돌아오십시오.
예수님의 우편에 있던 강도는 얼마나 늦었습니까.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하며 회개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돌아왔을 때, 주님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23:42~43). 회개하고 돌아온 순간 삽니다.
오래 전 십여명을 죽인 살인 강도가 죽기 전에 전도 받고 “나도 예수 믿으면 되냐”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 마음이 있다는 것 자체가 회개하는 마음이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마음입니다. 자신을 품꾼으로 써달라는 마음이 회개한 마음입니다. 그 후로 그 사람은 변해서 옥안에 있는 사람들을 변화시키며 살았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살인 강도짓을 하고 방탕한 짓을 하다가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수십 년간 옥살이를 하는 도중 가족과는 남남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감옥에서 예수님을 믿고 변했습니다. 이 사람이 생각해보니 부모와 자식들에게 못할 짓을 했다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모범수로 형기가 단축이 되어 나오기 전에 집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나를 용서하고 받아준다면 집으로 가겠다. 나를 받아준다면 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달라”라고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기차를 타고 가면서 자신의 사는 집 근처에 갔을 때 마음이 두근거렸습니다. 창 밖에 보이는 자신의 집 나무에 노란손수건이 수백 개가 매달려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회개하기만 하면 다 받아주시는 아버지입니다. 이 믿음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돌아오고, 마귀에게 속지 않습니다.
6. 하나님은 진심으로 회개하면 은혜와 축복을 주시는 아버지입니다.
20절 이하에 보면, 아버지가 아주 좋아서 목을 끌어안고 제일 좋은 옷을 주고 가락지를 주고 잔치를 벌여줍니다.
우리가 회개를 어정쩡하게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진심으로 철저히 회개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모릅니다. 제일 먼저 성령을 받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이 없으면 회개를 덜한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보면,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회개하다가 불 받은 적이 있습니다. 중학교 때 안 좋은 일이 생길 때 “주님 어찌 하오리까”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성령이 역사하셔서 그 순간에 눈물을 쏟고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철저히 회개할 때 하나님의 가슴이 중심이 너무 뜨거워서 축복을 부어주십니다. 것입니다. 요엘 2장에 보면, 비를 내려주시고, 잃어버린 것을 다 갚아주시고, 채워주신다고 하십니다. 다시는 원수들에게 수치를 당하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욜 2:23~27).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사 43:25)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들은 컴퓨터에 입력되어있던 모든 죄들이 완전히 도말되어서 없어집니다. 마치 이 세상에서 한 번도 죄를 범하지 않은 것처럼 해주십니다.
우리는 회개를 바르게 해야 합니다. 회개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을 말씀드립니다.
첫째, 회개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회개하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둘째, 회개하지 않고 완악한 것은 진노를 쌓을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롬 2:5)
당장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않았다고 해서 마음 놓지 마십시오. 나중에는 무서운 진노를 받습니다.
셋째, 회개는 빨리 할수록 좋고, 늦을수록 상처가 깊고 고난이 많습니다.
넷째, 멸망한 사람은 마음이 완악해지게 되어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출 14:8)
마음을 완악하게 만드신 것은 완전히 멸하기 위해서입니다. 강퍅한 마음을 가지지 마십시오.
다섯째, 하나님이 택한 백성은 반드시 회개합니다.
여섯째, 택함 받은 백성의 확실한 증거는 반드시 회개가 있습니다.
우리는 탕자의 이야기나 솔로몬의 이야기를 통해 결론을 얻습니다. 깨닫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을 자세히 하신 이유는 결과를 보여줌으로 우리에게 고생하지 않고 복을 받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너무 타락해서 그래서 괴로워서 사는 것을 탓하다가 죽은 사람이 솔로몬입니다. 마귀가 유혹할 때 넘어가지 마십시오.
말씀의 교훈을 내 것으로 삼아 탕자같이 되면 안 됩니다. 돌아온 사람은 축복의 길, 살 길이 있고 회복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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