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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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3-10-07 11:31 조회1,919회 댓글0건본문
나는 누구인가
2022년 01월 23일(주일예배)
본문 / 누가복음 15:25~32
사람의 눈으로 보면, 훌륭한 사람도 있고, 훌륭하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이 다 다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모든 사람이 죄인입니다.
야고보서 2장 10~11절에 보면,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율법 중에 하나라도 지키지 않는 것은 모든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자신이 깨끗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이후에 태어난 사람은 모두 죄인입니다. 죄성, 타락의 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은혜를 받고 거룩하게 살려고 하지만,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그런데 에베소서 1장 4절에 보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지만, 그 중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국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 사람으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첫째 아들은 이스마엘이요, 둘째 아들은 이삭입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은 모두 아브라함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택하시고, 이스마엘은 택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은 이방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삭은 리브가와 결혼한 후에 에서와 야곱을 낳았습니다.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택하시고, 에서는 택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에서는 에돔 족속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에돔 족속은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히다가 멸망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아버지와 두 아들이 등장합니다. 두 아들 중 작은 아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한 부모가 낳은 자식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 하나님께서 택하시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 11~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신데,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 중에서 자신에게 돌아올 분깃을 아버지께 요구했습니다. 이에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습니다.
사람은 많은 것을 가지고 싶어 합니다. 조금 가지고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많은 것을 가지고 살기 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물질의 복을 받기 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도 성도들을 위해 기도할 때, 백 배의 복을 달라고 기도하기도 합니다.
물질의 복을 받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조상들을 살펴보면, 부자가 많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거부(巨富)였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였으니 재산이 어마어마했을 것입니다. 이들 외에도 믿음의 조상 중에 부자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물질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물질의 복을 구하는 사람에게 응답하셔서 재산을 많이 가지고 살게 하십니다. 그래서 많은 재산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이 복이 될 수도 있고, 화(禍)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물질을 지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 합니다.
누가복음 15장 12~13절에 보면,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둘째 아들은 자신에게 돌아올 분깃을 아버지로부터 받고 며칠이 안 되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갔습니다. 둘째 아들은 많은 재산을 가지고 멀리 떠나 그곳에서 허랑방탕하게 살며 재산을 낭비했습니다.
누가복음 15장 14절에 보면,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나라에 큰 흉년이 들어 먹고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남의 집에서 돼지를 치며 살게 되었습니다.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했으나, 그것마저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얼마나 절망적입니까. 이때 둘째 아들은 정신을 차렸습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 죄 가운데 사는 사람은 가난한 것이 오히려 복입니다. 흉년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것이 복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첫째, 어려움으로 인해 회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난 것을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 죄 가운데 산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합니다.
둘째, 어려움으로 인해 하나님께 부르짖기 때문입니다.
사방이 막혔어도, 하늘은 열려있습니다. 사방이 가로막혀 살 길이 보이지 않아도, 하늘을 쳐다보면, 살 길이 열립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본문에 등장하는 둘째 아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경제대국이 되어 잘 살게 되니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멀리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나라가 잘 살게 되자 사람들 안에 믿음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주일에 아이들을 교회로 보내지 않고 학원으로 보냅니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에게 신앙이 없습니다. 이것은 망하는 길입니다.
교회에 아이들이 없으면, 교회의 미래가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 아이가 없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타락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큰 재난을 허락하셨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큰 고통 속에서 아우성치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살 길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깨닫고 회개해야 합니다. 아무리 잘못했다 하더라도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누가복음 15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을 매우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한국 교회는 회개운동을 해야 합니다. 목회자부터 시작해서 모든 성도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범한 죄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우리가 범한 죄를 기억하시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본문에 보면, 둘째 아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서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고 결심하고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갔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기를 얼마나 기다렸겠습니까.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눅 15:21)”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눅 15:22~23)”라고 말했습니다.
재산을 모두 탕진한 아들이 돌아온 것만으로도 아버지는 기뻐했습니다. 아들은 자신이 잘못했다고 말했지만, 아버지는 들은 척하지도 않았습니다.
회개할 때 이렇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회개하면 역전됩니다. 죄를 범하여 망할 것 같고, 죽을 것 같지만, 회개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본문 누가복음 15장 25~30절에 보면,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죽은 줄 알았는데 아들이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아들을 잃은 줄 알았는데, 아들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는 작은 아들이 돌아온 것을 매우 기뻐했는데, 맏아들은 동생이 돌아온 것을 전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맏아들은 동생이 돌아온 것으로 인해 아버지가 잔치를 베푸는 것을 보고 화를 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맏아들을 보는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 중에 원망하고 불평한 사람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명심하세요.
신앙생활하면서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감사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원망하고 불평하기보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맏아들은 아우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맏아들은 마귀의 자녀입니다.
맏아들은 아우를 사랑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아우를 미워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5절에 보면,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미워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살인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영생이 없습니다.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미워하는 마음이 없어질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 백성입니다.
맏아들은 아우를 판단하고 정죄했습니다. 이것은 교만입니다. 율법 하나를 어긴 것은 율법을 모두 어긴 것과 같습니다.
큰 아들은 자신이 아버지의 명을 어긴 적 없다고 생각했지만, 큰 아들의 행동을 보면, 그는 아버지의 모든 명령을 어긴 것과 같습니다.
야고보서 4장 11~12절에 보면,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을 쉽게 비방하거나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모두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하거나 비방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비방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려는 것입니다. 이보다 큰 교만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죄를 범하기 쉽습니다. 사람이 잘못한 것을 보면, 사람을 판단하려고 합니다. 정죄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기뻐하시겠습니까.
우리는 판단하기보다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정죄하기보다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살리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람을 판단하고 비방하는 것을 미워하십니다. 망할 짓을 하는 사람이지만, 저주 받을 사람이지만, 우리 안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몸에 밴 습관이 있습니다. 사람을 쉽게 판단하려고 합니다. 비방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판단하고 비방할 자격이 없습니다.
맏아들은 아우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형제는 서로 불쌍히 여겨야 하는데, 본문에 등장하는 맏아들에게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야고보서 2장 13절에 보면,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맏아들은 바리새인처럼 행동했습니다. 누가복음 18장 10~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은 죄가 많은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23장 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 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 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리새인의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면, 회개할 수 없습니다.
바리새인은 자신의 죄를 지적하는 선지자들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책망하시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마태복음 23장 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에게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은 사탄입니다. 바리새인은 100%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본문에 등장하는 두 아들 중 누구를 닮았습니까?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반드시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타락했다 할지라도 반드시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을 절대 버리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돌아와 죄를 용서 받고 구원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시지 않은 사람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멸망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쉽게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매우 큰 교만입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 같은데, 마음에 교만이 가득하여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교만한 사람은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말씀을 듣고 설교자를 평가합니다. 그러니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어린 아이를 통해서도 배울 것이 있습니다. 깨닫는 것이 많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어린 아이를 통해서도 배우려고 합니다. 인격이 훌륭합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교만으로 인해 눈이 어두워져서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합니다. 깨달아야 할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교만하면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은혜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믿음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은혜를 받아야 믿음이 자랍니다. 은혜를 받은 만큼 믿음이 좋아집니다.
사도 바울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겸손해졌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9절에 보면,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때는 55년경입니다.
에베소서 3장 8절에 보면,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때는 61~62년경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는 자신을 가리켜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서에서는 자신을 가리켜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5절에 보면,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때는 66년경입니다.
사도 바울은 시간이 지날수록 겸손해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죄인 중에 괴수’라고 했습니다. 자신과 같은 죄인은 없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중에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사도 바울처럼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참으로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영안이 밝아집니다. 영안이 밝아지면 다른 사람이 깨닫지 못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습니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습니다.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을 본받아야 합니다.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이동규 교수는 칼럼에서 “겸손은 머리의 각도가 아니라 마음의 각도다.”라고 썼습니다.
머리를 얼마나 숙이느냐가 아니라 마음이 얼마나 낮아졌느냐를 통해 얼마나 겸손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택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철저히 회개하셔서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겸손해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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