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신앙과 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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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17 21:43 조회5,611회 댓글0건본문
성숙한 신앙과 인격
성숙한 신앙과 인격
2002년 10월 04일(금요철야)
본문 / 누가복음 15:25~32
예수님을 믿으면, 교회생활을 시작하고, 나름대로의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타고난 성품에 따라 신앙생활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얌전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면, 얌전하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적극적인 성품의 사람은 신앙생활을 적극적으로 합니다.
이렇게 타고난 성품에 따라서 신앙생활이 다르기도 하지만, 은혜를 받고 신앙이 성숙해지면 성품 자체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성숙한 인격을 갖게 됩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은혜를 받아서 신앙이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성품 자체가 주님의 아름답고 훌륭한 성품을 닮습니다. 이것은 신앙인의 가장 아름다운 열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봉사도 많이 하고 헌금도 많이 하고 직분을 맡아 충성하는 것도 좋지만,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열매는 성품 자체가 변화되어 예수님의 모습으로 닮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시고 높이 들어 쓰십니다. 이런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십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성도들의 성품이 변하는 것을 봅니다. 처음 교회에 나왔을 때에는 성질이 아주 고약했던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서 거의 다 변했습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 소망이 없는 인간이라도 예수님을 믿으면 달라집니다. 변하는 속도의 차이가 있지만, 모두 아름답게 변합니다.
제가 보기에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주님께서 보시기에 얼마나 좋을까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영광을 받으신 줄 믿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성숙한 신앙과 인격을 가진 사람입니까?
첫째,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입니다.
신앙과 인격이 미숙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똑바로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못난 사람이 잘난 척하고,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고, 없으면서도 있는 척하고, 할 수 없으면서도 할 수 있는 척하고, 죄인이면서도 의인인 척하고, 부족하면서도 완전한 척하면서 착각 속에서 삽니다.
본문에 나오는 탕자의 형은 자기 자신을 똑바로 알지 못하는, 신앙과 인격이 미숙한 사람입니다.
자기는 의로운 줄 알고 부모 앞에서 모든 것을 잘 하는 효자인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도 아프게 하는 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과 인격이 성숙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잘 압니다. 자기 자신이 죄가 얼마나 많고 죽어 마땅한 죄인, 얼굴을 들 수 없는 죄인, 심판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압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아니면, 자신은 구원의 소망이 없는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와 은혜로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것을 알고, 항상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회개하고 감사하며 늘 십자가를 의지하고 삽니다.
신앙과 인격이 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연약함을 압니다. 자기 자신이 얼마나 약한가를 압니다. 하나님의 도와주시는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항상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저는 오늘도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라고 기도합니다.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기 때문에 이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사랑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이런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둘째,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신앙과 인격이 미숙한 사람은 자기만 생각할 뿐, 남을 생각할 줄 모릅니다. 남에게는 관심도 없고 동정할 줄도 모릅니다. 오직 자기 생각만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탕자의 형은 동생에 대한 사랑도 없고 동생의 입장을 생각할 줄도 모릅니다. 물론 동생이 방탕하고 재산을 탕진한 것은 잘못이지만, 그동안 고생했고 지금 후회하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돌아왔는데, 동생의 불쌍한 처지를 형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정도 없이 ‘저런 놈은 때려서 내쫓아야 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날마다 문밖에 서서 기다렸던 그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큰아들을 볼 때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이 바로 신앙과 인격이 미숙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신앙과 인격이 성숙한 사람은 남을 생각해서 배려할 줄 알고 남의 입장을 생각할 줄 압니다.
자기가 남편보다 키가 크기 때문에 항상 납작한 신발만을 신고 일부러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히고 다니는 아내가 있습니다. 남편의 체면을 세워주려고 신경 쓴 것입니다.
키 큰 여자가 남편이 놀림을 받든 말든 하이힐을 신고 남편 앞에서 큰 키를 과시하고 다닌다면, 그 사람은 신앙과 인격이 미숙한 사람입니다.
성도들이 예배드리러 나왔을 때에 보면, 어떤 사람은 자리의 가운데는 비워놓고 끝에만 앉습니다. 물론 끝에 앉는 이유가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서 안쪽부터 앉아야 합니다.
주차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옆 차의 사람들이 문을 열고 나오는 것을 생각해서 잘 주차해야 합니다.
예배드릴 때에 아이를 데리고 오시는 분들 역시 아이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어서 다른 사람들이 예배드리는 데에 방해되는 것을 주의하셔야 합니다.
자기 입장만 생각하지 말고, 언제나 상대편 입장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내가 희생함으로써 전체가 은혜 받는 것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저는 외부에서 설교하러 오신 분들이 강단에 올라와서 앉으실 때에 무릎을 꿇고 앉으시면 저도 그렇게 앉습니다. 그냥 앉으시면 저도 그렇게 앉습니다.
저 혼자 경건한 척하고 무릎 꿇고 기도하면, 제 자신은 경건하게 보이니까 좋을지 모르지만, 상대편의 입장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언젠가부터 외부에서 오신 분이 마음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그분에게 맞추려 합니다.
특별히 큰딸을 사랑했던 아버지가 자기 재산의 반을 큰딸에게 주고, 나머지 반을 가지고 다른 자녀들이 나누게 했습니다. 누구나 자기가 재산을 많이 받기를 원하겠지만, 큰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큰딸은 아버지께 “아버지, 왜 우리 형제들을 싸움 붙이려 하십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제일 어렵게 사는 막내에게 차라리 50%를 주세요.”라고 하며 재산을 받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런 집안이 잘 되는 집안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내 신앙이 남보다 낫다는 것을 무엇으로 보여줄 수 있습니까?
바로 이 큰딸과 같은 모습에서 신앙과 인격의 성숙함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그렇게 처신한다면, 분명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줄 믿습니다.
남편은 산에 올라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아내는 바다에 가는 것을 좋아해서 밤낮 싸운다면 둘 다 미숙한 사람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상대편을 위해서 싫어도 자신이 양보합니다. 이런 자세가 아름다운 자세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아름다운 신앙과 인격의 소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 당장만 생각하지 않고 나중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신앙과 인격이 미숙한 사람은 당장만 생각하고 나중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결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자녀들을 키울 때에도 그들의 장래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당장만 생각하며 키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당장만 생각하는 사람은 말과 행동에 조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과 인격이 성숙한 사람들은 나중을 생각하고 결과를 생각해서 말이나 행동도 조심합니다. 내가 말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느냐를 항상 생각하며 함부로 말하지 않고 조심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답습니다.
땅에만 재물을 쌓아두는 사람과 하늘에 쌓아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재물을 어디에 쌓아두는가를 보면, 신앙이 얼마나 성숙되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사업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만 생각하는 사람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급하면 사기 치고 거짓말합니다. 그 사람은 아무리 교회에서 충성하고 기도를 많이 해도, 신앙과 인격이 미숙한 사람입니다.
신앙과 인격이 성숙한 사람은 사업을 할 때에도 생각을 많이 합니다.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업합니다. 그런 사람은 가면 갈수록 신용을 얻고 존경받고 더 잘 됩니다.
누가 더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불의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으는 사람은 자기가 품고 있는 재산이 자기 것이 아닙니다.
예레미야 17장 11절에 보면,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자고새가 품은 알에서 나온 새끼들은 자라서 어미인 줄 알았던 새가 자기 어미가 아니니까 다 떠납니다. 이처럼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후회만 남게 됩니다.
공부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만 생각하고 학점만 많이 받으려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롭고 인격이 훌륭한 사람은 평생 자기가 할 일이 무엇인가 정해졌으면 그 일을 위해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 외에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열심히 연구하고 더 폭넓게 공부해서 자기가 공부한 것이 자기에게 평생 유익하도록 공부합니다. 얼마나 지혜롭습니까!
저 역시 대학 다닐 때에 그렇게 공부했습니다. 졸업을 위한 학점이 있었는데, 전공은 반쯤 공부하고, 나머지는 제가 평생 목회할 때에 도움이 될 것을 생각하며 여러 가지 과목을 공부했습니다.
어떤 교인들과 만나도 대화할 수 있도록 미리 공부한 것입니다. 그렇게 한 것이 평생에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베짱이는 당장만 생각하고 먹고 놀고 춤추고 살았지만, 개미는 나중을 생각하며 열심히 땀 흘려 일하면서 먹이를 모았습니다.
여러분, 신앙과 인격이 성숙한 사람은 베짱이처럼 당장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개미처럼 나중의 결과를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갑니다. 이러한 성도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넷째,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신앙과 인격이 성숙한 사람은 자기의 마음을 잘 다스리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잠언 16장 32절에 보면,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9장 11절에 보면,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노할 일이 있어도 자기 마음을 잘 억제하고 다스려서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아주 지혜로운 자입니다. 화가 나고 속상해도 용서하는 사람은 용서하는 것이 자기에게 영광이 됩니다.
그러나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마치 성벽이 무너져 없는 것과 같습니다. 잠언 25장 28절에 보면,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29장 11절에 보면,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화가 났을 때에 화를 더 내면, 그것은 불붙은 데 휘발유를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화가 화를 부르고, 나중에는 자기가 견디지 못해 정신을 잃습니다. 악신이 들기도 합니다. 병에 걸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노를 다 나타내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고. 노를 억제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웃시야 왕은 화를 내는 순간 나병환자가 되었습니다. 역대하 26장 19절에 보면,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에게 화를 낼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긴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화를 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마태복음 5장 2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베소서 4장 31절에 보면,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역대하 16장에 보면, 아사왕이 늙어서 노망이 들었습니다. 믿음이 약해져서 선지자에게 책망을 듣고 노하여 선지자를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후 아사 왕의 발에 병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사 왕은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의원들에게 구하다가 2년 만에 죽었습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항상 노가 있습니다. 잠언 14장 17절에 보면,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4장 29절에 보면,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22장 24~25절에 보면,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그의 행위를 본받아 네 영혼을 올무에 빠질까 두려움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울분이 전염된다는 의미입니다.
전도서 7장 9절에 보면,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28장 26절에 보면,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음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릅니다. 그렇게 잘 변하는 마음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다스려야 하고 억제해야 하고 길들여야 하고 지켜야 합니다. 마음을 어떻게 믿습니까.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자기 마음도, 상대편의 마음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억제하고 다스리고 지켜줘야 합니다. 자기의 마음을 무슨 절대적인 힘이 있는 것처럼 믿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25~27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자기 자신을 쳐 복종시켰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성질 나오기 쉽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엉뚱한 생각을 하기 쉽기 때문에 그렇게 애썼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우리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 노력해야 되는 줄 믿습니다.
신앙과 인격이 성숙한 사람은 환난이 와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고난이 와도 원망 불평하지 않습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에 처신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신앙과 인격의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성숙한 신앙과 인격을 가진 사람들은 환난이 왔을 때에 더 빛나고 더 훌륭합니다. 고난이 왔을 때에 묵묵히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을 보면 얼마나 은혜스럽고 존경스러운지 모릅니다.
한두 번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억울하다고 보복하지 않고, 싸우면서 일하지 않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어도 화목하면서 일을 잘합니다.
일할 때에 화평하지 못하고 패가 갈리는 교회들은 신앙과 인격이 미숙한 사람들이 모여서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는 별별 사람이 있습니다. 얼굴이 다른 것처럼 성격도 다릅니다.
신앙과 인격이 성숙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과 함께 일해도 절대로 부딪치지 않습니다. 다툼이 있고 갈라지는 것은 아직 신앙이 미숙하기 때문입니다.
신앙과 인격이 성숙한 사람은 누가 보든지 보지 않든지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고, 자기 유익만 구하지 않습니다. 결과를 생각하고, 나중을 생각합니다.
신앙과 인격이 성숙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자신이 과연 칭찬 들을 사람인가 책망 받을 사람인가를 생각합니다. 자신이 장차 이 세상을 떠나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어떤 모습으로 서게 될 것인가를 늘 생각합니다.
신앙과 인격이 성숙된 사람은 자기의 마음을 잘 다스리고 겸손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신앙과 인격이 성숙된 사람은 사랑이 많고, 그 열매가 아름답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신앙과 인격이 날마다 성숙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목표를 분명히 정해야 합니다. 그것처럼 아름다운 열매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살기 원한다면, 날마다 우리의 신앙과 인격이 성장하고 성장해서 성숙된 신앙과 인격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신앙과 인격이 성숙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사랑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이런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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