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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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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19 16:58 조회6,3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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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2011년 11월 27일(주일예배)

본문 / 누가복음 15:11~24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이 안 계실 것 같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을 모르지만, 그래도 계실 것 같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떤 분이라고 자기가 아는 대로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길은

첫째,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묵상하고, 성경을 연구하다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습니다.

둘째, 복음 전하는 사람을 통해 복음을 들음으로 ‘아, 하나님이 이런 분이구나.’하고 알게 될 수도 있습니다.

셋째, 인도를 받아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예배시간마다 말씀을 듣다 보니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됩니다.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든지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은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아 알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고, 예수님을 올바르게 알게 되는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예수님을 주시라 할 자라 없습니다.

성령의 은혜로 하나님을 알게 된 사람,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고, 그분을 섬기게 된 사람들을 가리켜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해서 모두가 다 장성한 신자가 된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신앙이 젖먹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믿음이 생겨나고, 믿음이 생겨나면 성장하게 되고, 성장할수록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게 됩니다.

은혜 받으신 분들, 믿음이 좋은 분들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알게 됩니다.

 

은혜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살까’하는 마음이 생기고, ‘어떻게 하면 여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까’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이 큰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게 됩니다.

 

본문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인색한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기도해도 안 주시고 골탕 먹이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좋아하고 존경해도 행함이 없으면 그 사랑은 마음속에서 끝납니다. 주는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주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서울대 예수전도단 학생들은 전도를 많이 합니다. 한 여학생이 전도하면서 먹을 것도 사주며 사랑을 베풀었는데, 이 학생은 돈이 많아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삶은 힘겹지만,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먹을 것을 사주고 나면 돈이 없어서 두 끼를 굶는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 인간에게 모든 것을 다 주시면서 “정복하라, 다스려라, 취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우리 인간에게 다 맡겨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과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람에게 다 맡기셨습니다. 얼마나 사랑이 크신 하나님이십니까.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독생자까지도 아끼지 않으시고 내어주셨습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라면 아까워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십니다. 아들까지 아끼지 않으시고 내어주신 하나님이 뭐가 아까워서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에 보면,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가서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라고 말했더니, 아버지는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두 아들에게 각각 살림을 나누어주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주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아들이 달라고 하니 달라는 대로 다 주셨습니다.

이런 말을 설교로 듣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삶 가운데서 체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기를 얼마나 기뻐하는 분이신지를 체험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3장 22절에 보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으면서 산다고 고백했습니다. 한 번만 받은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다 받으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에 보면,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체험 없이는 이런 글을 쓸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구하는 것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까지도 넘치도록 이루어지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 말씀대로 체험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체험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저는 이 말씀을 100% 믿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부요하고 풍성하게 되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너무 잘 살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타락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부요하고 풍성하게 되면 대부분 교만해집니다. 너무 잘 되고 너무 부요해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한 마음이 생깁니다. 자기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웃시야 왕은 나라가 강성하고 부요해지고 너무 잘 되니까 교만한 마음이 생겨서 자기가 제사장도 아닌데 향단에 분향하는 일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80명의 젊은 제사장들이 “왕이여, 안 됩니다.”라고 하니 웃시야가 분향하다가 제사장들을 향해 인상을 쓰고 쳐다보며 노를 발했습니다. 그 순간, 웃시야의 이마에 나병이 생겨 죽을 때까지 별궁에서 혼자 살다가 죽었습니다.

 

축복받았을 때 교만한 사람의 특징은 남을 업신여기고, 비판하기 좋아합니다. 자기는 완벽한 줄 알고 다른 사람의 허물과 부족한 것을 밤낮 비판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건방진 행위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모든 것이 부요하고 풍성하게 되면 방탕하게 됩니다. 솔로몬을 보면, 너무나도 부요하고,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잘 됩니다. 그러니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향락을 누려볼까”라고 생각하고, 밤낮 이 세상의 것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성전은 지었지만 성전에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예배하지도 않았습니다. 밤낮 먹고 마시고 허랑방탕하게 살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주고 싶어 하시는데 많이 주어서 풍성해지면 이렇게 교만해지고 방탕하니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속상하시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셔서 축복하시지만, 많은 사람들이 잘못되기 때문에 징계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십니다. 내버려두면 멸망할 테니 징계하십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오면 깨달아야 합니다. 깨닫지 못하고 더욱 타락하게 되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녀들은 멸하지 않으시고 또 참으시고 또 참으십니다. 징계는 하시지만 멸하지는 않으시고 참고 또 참고 계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오래 참고 기다려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에 보면, 탕자의 아버지는 탕자가 깨닫고 돌아올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참고 기다리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날마다 문 밖에 서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좋으신 아버지의 모습으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멀리 떠난 죄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본문에 보면, 다행스럽게도 이 탕자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이대로 있다가는 굶어죽게 된다는 것을 깨닫고 아버지에게 돌아옵니다.

이 아들은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재산을 다 낭비한 다음에 흉년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남의 집에서 사는데 돼지를 치면서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조차 배불리 먹지 못하는, 돼지보다 못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니 ‘내가 이대로 살다가는 굶어죽겠구나. 아버지 집에는 품꾼이 많은데 나는 여기서 굶어죽겠구나’라고 생각하여 새로운 결심을 했습니다. ‘내가 이제라도 돌아가서 아버지의 품꾼이 되자. 나는 아들의 자격이 없으니 나를 그저 품꾼의 하나로 써달라고 하자’라고 결심했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받아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에 보면, 회개하고 돌아오고 있는 아들을 아버지가 보자마자 달려가서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맞아주셨습니다. 한 마디 책망도 없었습니다. 책임추궁도 없었습니다. 잘잘못을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과거를 묻지도 않았습니다. 무조건 용서하시고 받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를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아무리 죄를 많이 범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회개하고 하나님을 찾고, 예수님을 찾기만 하면 무조건 용서하시고 받아주시는 하나님, 받아주시는 예수님입니다.

아무리 큰 죄를 범했어도 괜찮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그 옆에 달려있던 강도는 평생 남의 것을 빼앗고 남을 죽이고 때린, 고약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것을 깨닫고, “주여, 나를 기억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 마음속에 회개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죄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를 향해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죄인이라도 회개하고 주님 앞에 나아오면 받아주십니다.

 

수가 성 여인은 과거에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남자도 자기의 남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여인을 받아주셨습니다. 이 여인을 전도자로 세워주셨습니다.

주님은 일곱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도 받아주셨습니다. 그녀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주실 뿐만 아니라 그녀를 하나님의 헌신된 일꾼으로 만드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회개하니 예수님은 그를 책망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무조건 받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회개하기만 하면 기뻐하십니다. 무조건 용서하십니다. 과거의 죄를 기억하시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과거의 모든 죄와 허물을 도말해주십니다. 완전히 없애버리십니다.

이사야 43장 25절에 보면, 하나님은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을 다 도말해버리시고 다시는 기억하시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 용서만 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죄가 다 도말되어버리고, 하나님이 기억하시지도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 자신의 과거를 용서하고, 죄를 도말해버리고, 기억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해주셨는데, 왜 그 죄에 매여서 삽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해주시면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주신다면 우리도 우리를 받아줘야 합니다.

 

넷째, 회복시켜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죄는 우리를 망하게 하고, 불행하게 합니다. 회개는 죄인을 의인되게 하고, 망했던 사람을 다시 일어나게 하고, 불행한 사람에게 다시 행복을 찾게 하고, 잃어버린 모든 것을 다시 찾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회개라는 것은 얼마나 수지맞는 것인지 모릅니다.

 

본문 누가복음 15장 18~24절에 보면,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니 얼마나 수지맞습니까.

제일 좋은 옷을 입혀줬습니다. 이것은 명예회복을 의미합니다. 옛날에는 옷 입은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신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일 좋은 옷을 입혔다고 했으니 이것은 아주 영광스럽고 명예로운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가락지를 끼워줬습니다. 가락지를 끼는 것은 권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신발을 신겼습니다. 신을 신었다는 것은 신분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노예가 주인으로, 노예가 자유인으로 신분이 바뀌었음을 의미합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뿐만 아니라 살진 송아지를 잡아서 잔치를 열었습니다.

 

누구든지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오면 죄 사함 받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저주를 속량 받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천국 백성이 됩니다.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교회에 왔다고 해서 누구나 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평생 교회 다니지만 죽어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을 봤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죄 사함 받고 의롭다 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했는데 세상에 나가면 또 넘어집니다. 하나님 앞에 눈물로 회개했는데, 죄를 또 범합니다. 자꾸 넘어질 뿐 아니라 회개를 하지만 죄책감이 남아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심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는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서 “내가 네 죄를 사했노라.”라는 사인은 우리가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을 때 주시는 선물인 성령으로 나타납니다.

사도행전 2장 38~39절을 보면,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해서 죄 사함 받으면 죄 사함을 받은 사인이 나타나는데, 성령의 선물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온전한 회개를 한 사람이라는 것은 회개하다가 성령을 받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선물을 받으면 새 사람이 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새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품의 변화, 생각의 변화, 말의 변화, 행동의 변화, 자세의 변화,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음속에는 기쁨과 평강이 넘쳐서 마음이 늘 행복합니다. 마음의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축복의 문이 열립니다. 예전에는 기도해도 잘 응답되지 않았는데, 기도하기만 하면 응답되고, 생각만 해도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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