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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15장

참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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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5-25 12:01 조회5,5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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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행복

 

참 행복

2003년 11월 02일(주일예배)

본문 / 누가복음 15:11~24

 

이라크 북동쪽에 위치한 이란의 북부 지방에서 농사를 지으며 아주 행복하게 사는 농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수도승이 농부에게 찾아와서 다이아몬드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다이아몬드는 산 사이로 물이 흐르고, 백사장이 있는 곳에 가면 찾을 수 있는데, 값이 대단히 비싸기 때문에 다이아몬드 하나만 찾아도 큰 부자가 되어 평생 잘 살 수 있다네.”

이 이야기를 들은 농부는 몹시 흥분되어 그때부터 자나 깨나 다이아몬드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이아몬드를 찾기만 하면 큰 부자가 될 텐데…, 다이아몬드만 찾으면 힘들게 농사를 지을 필요도 없고, 자녀교육 문제도 걱정할 필요 없고, 평생 잘 살 텐데….’

그러다보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이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농부는 어느 날 결단을 내렸습니다. 집과 농사짓던 땅을 다 팔았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믿을 만한 친구에게 맡기고, 오직 다이아몬드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많은 돈을 여비로 삼아 멀리 떠났습니다. 어디든지 다이아몬드가 나올 만한 곳이라면 가서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흘러갔고, 찾겠다는 다이아몬드는 찾지 못하고, 돈은 다 떨어졌습니다. 지칠 대로 지치고, 절망에 빠져 그는 결국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후, 이 농부의 땅을 산 사람이 어느 날 밭을 갈다가 반짝반짝 빛나는 돌을 하나 발견하여, 그것을 집에 가져가서 보니 그게 바로 다이아몬드였습니다. 전문가에게 물어봤더니, 그 땅이 아프리카 다음으로 가장 많은 다이아몬드를 저장하고 있는 광산이라는 것이 밝혀졌고, 그는 아주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먼저 그 땅에 살았던 농부는 자기의 땅이 바로 다이아몬드가 묻혀 있는 광산인데, 그것도 모르고 ‘어디에 가면 다이아몬드가 있을까’ 생각하여 집도 팔고 땅도 팔고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가 결국에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만일 이 농부가 욕심을 버리고, 성실하게 농사를 지었더라면 언젠가 그 다이아몬드를 발견했을 것이고, 그 땅이 다이아몬드 광산이라는 것도 발견했을 텐데, 욕심에 눈이 어두워서 다른 곳에서 다이아몬드를 찾다가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도 이와 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탕자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탕자가 사는 아버지 집은 아주 행복하고, 굉장히 잘 사는 부요한 집입니다. 그러나 이 집 둘째 아들은 아버지 집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좋고, 얼마나 복되고, 얼마나 행복한가를 모르고, 자기 집에서 사는 것에 대한 만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에게 재산 중에서 자기에게 돌아올 분깃을 달라고 하여 그것을 가지고 집을 떠나 먼 나라에 가서 살았습니다. 아버지 집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것보다 아버지 없는 곳에 가서 그저 마음대로 먹고 마시며 사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하리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는 허랑방탕하게 살았고, 얼마 후에는 재산도 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나중에는 나가서 노동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아들은 이리저리 일거리를 찾아다니다가 결국 돼지 치는 집에서 하루 종일 돼지 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너무 배가 고프니까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라도 실컷 먹어봤으면…’하고 생각해봤지만, 쥐엄 열매조차도 배부르게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굶어 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 그는 비로소 정신을 차렸습니다. ‘아버지 집에는 하인들도 배부르게 먹을 만큼 양식이 풍족한데, 나는 이제 여기서 굶어 죽게 되었구나. 생각해 보니 내가 하나님과 아버지 앞에 죄를 너무 많이 범했구나.’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 탕자처럼 실수할 수 있습니다. 생각을 잘못하고, 판단을 잘못해서 잘못된 길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깨닫기만 하면 살 길이 열리는 줄 믿습니다. 깨닫는 것이 정말로 중요합니다.

 

탕자는 ‘이제라도 돌아가서 용서를 빌고, 품꾼의 하나로 써달라고 해야 되겠다.’라고 생각하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한편 아들이 돌아오기를 날마다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는 그 날도 문 밖에 나와 ‘혹시 오늘밤에 아들이 돌아오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서 허름한 옷을 입고 힘없이 터덜터덜 걸어오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혹시 아들이 아닐까’라고 생각하여 달려가 보니, 아버지가 애타게 기다리던 아들이었습니다. 너무나 반가워 아버지는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기뻐했습니다.

그때 아들은 땅바닥에 엎드려 아버지에게 큰 절을 하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과 아버지 앞에 큰 죄를 범했습니다. 지금부터는 나를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나를 품꾼의 하나로만 써주세요.”

아버지는 아들의 말은 듣지 않고, 종들을 시켜서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게 하고, 좋은 신을 가져다가 신게 해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였습니다. 많은 손님들을 모아놓고, “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난 아들이요, 이 아들은 잃어버렸다가 다시 얻은 아들이라”고 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아버지의 집은 참으로 행복한 집입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집이 가장 행복한 집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가장 행복한 집에서 살면서도 아버지의 집이 행복한 집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이 이 아들의 문제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무리 행복의 조건을 다 갖추고 있어도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행복한 집에서 살아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입맛을 잃어버린 사람에게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줘도 소용없습니다. 뭐가 문제입니까? 음식이 문제가 아니라, 그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가장 행복한 집에서 살면서도,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둘째 아들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집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아들은 오직 아버지의 집에서만 참 행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 아버지의 집이 저와 여러분에게는 어디인 줄 아십니까?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 교회가 바로 아버지의 집입니다.

 

디모데전서 3장 15절에 보면, 교회를 가리켜 ‘하나님의 집’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가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열두 살 때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가 부모님이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며칠 동안 찾아도 못 찾으니까, 다시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예수님이 그곳에 계신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2:49). 성전에 계신 예수님은 성전을 가리켜서 ‘내 아버지 집’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100% 만족할 수 있는 행복을 누리면서 살 수 있는 곳은 장차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사는 천국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도 천국을 맛보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주셨는데, 그곳이 곧 하나님의 성전이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교회에서 참 행복을 찾아야 하고, 행복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그냥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아보려고 아우성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7:20~21).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그 천국이 우리 안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먼저 우리의 마음속에 행복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행복한 곳에 가서 살아도 행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마음속에 행복이 가득하게 이루어져 있는 사람은 어디에 가서 살아도 행복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러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전도하다가 붙잡혀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감옥에 갇혀 자유롭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졌고, 마음속에 행복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항상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래서 감옥 바깥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할 때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라고 말했습니다(빌 4:4).

 

우리 마음속에 참 행복을 이룰 수 있는 곳은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참된 행복을 얻은 사람이 가정에 돌아가서도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고, 직장에 가서도 행복하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고, 이 세상 어느 곳에서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가리켜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골 1:18). 그러므로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곧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떠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떠나는 것은 곧 주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은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6:18). 과연 ‘내 교회를 세우리라’라고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은 이 땅에 예수님의 교회를 세워놓으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세워주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고, 몸 된 교회를 떠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멀리하면 주님을 멀리하는 것이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떠나면 주님을 떠나는 것과 같습니다.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5:5). 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지게 되면 열매를 맺기는커녕, 오히려 말라죽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마른 가지를 가져다가 아궁이 불 속에 넣어 땔감으로 씁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떠나면 결국에는 지옥 불에서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주님을 떠나지 말고, 항상 주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마치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듯이, 우리는 항상 주님 안에 붙어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님을 멀리하고 주님을 떠나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언제나 명심해야 합니다. 주님을 떠난 사람은 이 세상 어디를 가도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멀리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떠나는 사람은 우리를 떠난 양과 같습니다. 우리를 떠난 양은 반드시 이리의 밥이 되듯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멀리하는 사람, 주님의 몸된 교회를 떠나는 사람은 이리와 같은 마귀의 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가장 큰 불행은 죄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죄의 종이 되면 평강이 없습니다. 오직 고통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이리와 같은 사단의 종 노릇 하면서 죄 가운데 살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야만 참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스위스 철학자 칼 힐티는 ‘행복론’에서 “인생의 최대 행복은 하나님 가까이에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많은 책을 썼습니다. 그가 쓴 모든 책에서 그는 “인생의 최대 행복은 하나님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참으로 행복할 수 있다. 하나님만이 가장 행복한 분이시며, 인간은 불완전하고, 불안하고,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여서 인간 스스로는 절대 행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행복자이신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는 사람만이 행복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멀리 떠나셨던 분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진정한 복이 됩니다.

 

어떤 가정주부가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불안하고 두려워서 점쟁이를 찾아다녔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꼭 점쟁이를 찾아갔는데 점치러 갈 때마다 ‘불길한 점괘가 나오면 어쩌나.’하고 걱정이 되어, 점쟁이에게 가려는 날의 전날에는 잠이 안 왔습니다.

그리고 점을 친 후에 불길한 점괘가 나오면, 걱정하며 불안한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혹시 이 점쟁이가 엉터리일지도 모르니까 다른 점쟁이를 찾아가보자.’라고 생각하여 다른 점쟁이를 찾아다니다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점괘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주부가 전도를 받아 교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교회에 나간 이후부터는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가보니 무엇이 가장 좋더냐?”라고 물어보니, “점을 안 쳐서 좋다. 그전에는 점쟁이에게 갈 때도 불안하고, 갔다 올 때도 불안했는데, 지금은 교회에 다니니까 갈 때도 기쁘고, 올 때도 기쁘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참 행복을 교회에서 얻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교회에 나오는 것이 기쁩니까? 교회에 나오면 마음이 기쁘고, 마음이 편안해야 합니다. 교회에 나오면 참 행복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기독교인들이 교회에 나오지만 왜 행복하지 못합니까? 교회에 나오면서도 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합니까? 왜 만족하지 못합니까? 교회는 다니지만 은혜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이 부어주시는 신령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아 회개하게 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은혜를 받으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줄 알고,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 지신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감사와 영광을 돌리게 되고, 마음속에 기쁨과 평강이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같이 뜨거워지고, 성도들을 사랑하게 되고, 이웃을 사랑하게 되고, 나중에는 원수까지라도 사랑으로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마음속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참 행복자가 됩니다. 이런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은 은혜를 받기 위해 열심을 다해 기도하고, 오직 은혜로만 사는 삶을 통해 다 행복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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