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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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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8 13:02 조회6,4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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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좋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2010년 10월 22일(금요철야)

본문 / 누가복음 15:24

 

여러분은 어떤 자녀가 효도하는 자녀라고 생각하십니까? 일반적으로는 부모 말씀 잘 듣고 순종하면 효도하는 자녀라고 합니다. 또 부모님께 용돈 많이 드리는 자녀가 효도하는 자녀라고 합니다.

사람마다 여러 가지 대답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 마디로 말하면 부모님의 마음을 잘 알고 부모님을 기쁘고 즐겁게 해드리는 자녀가 참으로 효도하는 자녀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두 아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두 아들의 모습이 오늘날 은혜를 받지 못하고 제멋대로 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과 같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 두 아들의 아버지는 참으로 좋으신 아버지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아버지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는 대로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누가복음 15장 11절 이하에 보면, 두 아들 중 작은 아들이 아버지를 향해 자기에게 돌아올 유산의 분깃을 미리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이 구하는 그대로 다 주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는 대로 다 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려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 7~1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이 악하지만, 자식은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못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시기 때문에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십니다. 이 말씀을 그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으로 받고 이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십시오.

 

수영로교회를 개척한 후, 날마다 새벽예배를 마치고 수영로터리를 한 바퀴 돌며 수영로터리를 다 우리 교회에게 달라고 기도하고 집으로 갔습니다.

여리고 성 주위를 돌았을 때, 여리고 성이 무너져서 여리고성 을 차지한 것처럼, 저는 그런 마음으로 수영로터리를 돌았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면서 돌다가 해운대쪽 하늘을 보았습니다. 새 한 마리가 얼마나 높이 올라가는지, 나중에는 새가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이 올라갔습니다.

그것을 보고 있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 새를 보아라. 저 새를 위해 내가 예비해놓은 하늘의 공간을 보아라. 얼마나 넓고 높으냐. 다만 새가 날개 치며 나는 만큼의 공간만 차지하지 않느냐. 내가 너를 위해서 준비해놓은 것이 그렇게 크고 넓고 많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감당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그래서 저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제가 감당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충성스런 종이 되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후로는 수영로터리를 돌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준비해놓으셨다고 말씀하셨으니 수영로터리를 더 이상 돌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 일이 있었을 때만 해도 우리 교회는 작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교회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이 주셨습니까. 저는 수영로터리만 달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제가 구하지도 않은 해운대까지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다 합하면 어마어마합니다.

여러분, 성경 말씀을 그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는 것만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기만 해도 우리에게 주십니다.

에베소서 3장 18-20절에 보면.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알고, 평소에 잘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좋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인색한 하나님으로 생각해서 “중고품이라도 좋사오니 자전거 한 대만 주세요.”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제가 그렇게 생각하고 기도했다가 얼마나 손해 보았는지 모릅니다. 돈이 없어 안달하시는 하나님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잘 생각해야 합니다. 제일 잘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제일 좋은 것을 주시고 제일 잘 되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한 것을 하나님께서는 생각하십니다. 우리에게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제일 잘되는 것이 어떤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잘 아십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그대로 믿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십니다.

10년 후에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20년 후에는 무엇이 필요한지 하나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우리에게 무엇이 급한지 하나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항상 미리미리 준비해놓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시기 전에 천지와 만물을 다 만드셨습니다. 인류 역사가 끝날 때까지 쓰고도 남는 땅과 물질 및 모든 것을 준비해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후에 사람을 만드시고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고 말씀하셨습니다. 미리 준비해놓으시고 우리에게 사용하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언제나 믿음의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아기가 셋이 있는데, 또 아이가 생겼습니다. 그때 이렇게 어려운데 어떻게 키울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다 준비해놓으셨다고 말하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이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들 이삭이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창 22:7)”라고 물었을 때, 아브라함은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 22:8)”고 대답했습니다. 결국 그 말대로 되었습니다.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런 일이 있을 때에는 기록을 남겨서 항상 간증하시기 바랍니다. 간증할 때마다 믿음이 살아납니다.

 

마태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1~3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가지고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내가 구하는 대로 얼마나 받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적게 받았든 많이 받았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가지고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고 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축복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것도 행복하게 하지 못합니다.

 

재산이 현금으로만 300억 원 정도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죽을 때까지 편안하게 살까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돈을 잘 쓰지 않습니다.

그 집에 가보니 찌그러진 양철냄비에 찌개를 담아주었습니다. 아파트도 크기는 큰데 지저분했습니다. 죽으면 자식들에게 물려주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자식에게 복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재산이나 권세나 명예가 자기에게 축복이 되지 않습니다.

 

솔로몬이 얼마나 부요했습니까. 명예가 대단했고, 권세가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고 생각하지 않고 쓸데없는 짓을 했습니다. 밤낮 술을 마시고, 수많은 여자들과 즐기며 허송세월하고 세상낙만 누렸습니다.

나중에는 후회하며 자기가 쓸데없는 일을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렇게 사니 마음이 기쁠 리 없었습니다.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왕이라도 소용없습니다.

물질이 있고, 명예가 있고, 권세가 있어도, 그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않는다면. 그것은 모두 우리를 교만하게 만들고 타락하게 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멀리 떠나게 만들고 결국 멸망하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만 가지면, 많이 배우든 적게 배우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이기 때문에 얼마나 복이 되는지 모릅니다.

 

본문에 보면,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주신 재산을 가지고 아버지의 곁을 떠났습니다. 둘째 아들은 ‘이 재산만 있으면 아버지가 없어도 된다.’라고 생각하고 멀리 떠났습니다. 이때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아버지를 멀리하고 아버지의 곁을 떠나는 것이 곧 망하는 길이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절대 교회를 떠나지 마십시오. 교회를 멀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멀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떠나면 망합니다.

시편 73편 27~28절에 보면,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할수록 은혜 받을 기회가 많고 말씀을 들을 기회가 많고 주를 위해 살 시간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얼마나 축복인지 모릅니다.

 

저는 이것을 일찌감치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24시간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일만 하고 살고 싶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시간만 있으면 교회에 갔습니다. 방학 때에는 교회 지하실에서 공부하다가 교회에서 자고 기도하고 청소도 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복 받는다는 것을 아니까 얼마나 교회생활을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히브리서 10장 25절에 보면,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모이는 것을 귀찮게 생각하고 주일에 한 번 예배드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따라 하면 안 됩니다. 날마다 교회에 나오고 시간이 있으면 주 앞에 나아와 기도하고 은혜 받고 봉사하고 가르치고 전도하다가 예수님을 맞이하는 사람이 제일 복 있는 자입니다.

 

둘째 아들은 허랑방탕한 결과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재산도 없어졌습니다. 돈이 없으니 친구들도 다 떠났습니다. 신분이 아주 천해졌습니다.

일거리가 없어서 돼지우리에 들어가 돼지를 치게 되었습니다.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루고자 했지만, 그것마저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돼지만도 못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죄의 결과입니다. 죄의 결과는 고통이요 불행입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난 후, 인간의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불행의 원인은 죄에 있습니다.

인간이 불행해지고 불행한 세상이 된 것은 죄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죄가 없어진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행복한 세상이 되겠습니까. 죄 때문에 가정이 파괴되고 사회가 어지러워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나서 죄 가운데서 사는 사람에게는 고난이 오히려 축복입니다. 고난 때문에 죄를 그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술, 담배를 좋아하던 사람이 간암에 걸리니까 술, 담배를 멀리합니다. 고난이 죄를 그치게 만든 것입니다.

고난 때문에 정신을 차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사는 사람들에게는 고난이 오히려 축복이 됩니다.

 

우리 교회의 어느 권사님의 남편은 큰 회사의 사장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을 믿는 부인을 괴롭혔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병을 고칠 수 없었습니다. 병이 점점 깊어져 얼마나 겸손해졌는지, 마치 아기처럼 되었습니다.

병에 걸린 후에야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 겸손하고 온유해졌습니다. 착해졌습니다. 주의 종을 귀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분은 고난을 통해서 변화되었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분에게는 고난이 축복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아버지는 날마다 문을 열어놓고 대문 앞에 나와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이 아버지의 마음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십니다.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도 멸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베드로후서 3장 8~9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악독한 죄인이라도 그가 그냥 멸망당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요한복음 6장 38~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두를 구원하고 살리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에스겔 18장 21~23절에 보면,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 3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 4~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산에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전체의 90%나 됩니다. 그들 중에 우리가 한 사람이라도 전도해서 그 사람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온다면,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았을 때에 목자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처럼 하늘에서 잔치가 벌어질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이 마음을 안다면 어떻게 전도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셋째, 회개하고 돌아오면 무조건 용서하시고 잃어버린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누가복음 15장 18절 이하에 보면, 둘째 아들이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라고 말하리라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을 보고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제일 좋은 옷을 아들에게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신발을 가져와서 신겼습니다. 살진 송아지를 잡아 우리가 먹고 즐기자고 했습니다.

둘째 아들이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돌아오니 구할 것도 없이 모든 것이 회복되었습니다. 아들의 자리도 회복되었고, 허랑방탕하게 사느라 잃어버렸던 옷, 가락지, 신발이 회복되었습니다.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까지 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 하나가 돌아오는 것을 이렇게 기뻐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큰 아들입니다. 그는 아주 불효자식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마음을 전혀 생각할 줄 몰랐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사랑하는 마음을 몰랐습니다.

우리가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을 읽는 가운데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도 크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성경을 제대로 보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보면 창세기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지어주신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귀하게 생각하고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기에 엄청난 지구와 우주를 만드셨는가를 생각하면 하나님의 큰 사랑이 느껴집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타락할 것을 아시고, 메시아 곧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구약을 보면, 장차 오실 메시아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신약을 보면,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우리를 저주 가운데서 속량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5장 10절에 보면,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독생자까지 내어주실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우리에게 무엇이 아까워서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기도할 때에 말씀을 꼭 붙잡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이 많으신가를 알고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마다 깜짝 놀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무리 크게 생각해도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크게 놀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는 자가 효자 신자가 됩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큰 아들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가 자기 동생이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오기를 얼마나 원했는가를 몰랐습니다. 다시 말하면 영혼 구원에 대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만약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더라면, 그는 동생을 찾아다녔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다면 형님이 가만히 있었을 리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큰 아들은 동생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어가는 영혼을 보면서도 무관심한 사람이 바로 큰 아들과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지 않고 지옥 가려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이 아버지께 돌아오도록 나가서 전도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동생이 돌아왔다고 기뻐하고 즐거워했지만, 큰 아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하기는커녕 오히려 화를 냈습니다.

누가복음 15장 29~30절에 보면, 큰 아들은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버린 이 이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라고 말하며 하면서 성질을 냈습니다.

그 때 아버지는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되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눅 15:31~32)”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이 없는 큰 아들을 보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큰 아들은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동생이 아버지로부터 매를 맞거나 쫓겨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은 그리스도인의 마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가 어떻게 구별됩니까? 요한일서 3장 10~12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우리는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믿음의 형제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감격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알면, 다른 사람을 사랑할 힘이 생깁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힘이 생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면,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요한일서 3장 16-18절에 보면,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은 우리가 그 사랑을 안다면 어떻게 형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형제를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습니다.

 

요한일서 3장 21~23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한마디로 말하면 ‘사랑하라’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큰 아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동생을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생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을 보는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교만한 마음을 가지면, 남을 자꾸 비판하고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영안이 어두워서 자기 분수를 모릅니다. 자기가 얼마나 못된 죄인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자신은 생각하지 못하고 남을 비판하고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성경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세리와 죄인들을 항상 비판하고 정죄했습니다.

누가복음 18장 10~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은 자기 죄나 회개할 것이지, 남을 비판하며 자기의 공로만 내세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세리는 겸손하게 회개했습니다. 세리의 기도가 의로운 기도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기도입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바리새인이 세리나 죄인보다는 의로울지 모르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둘 다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죄 없는 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큰 죄나 작은 죄나 죄 값은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남보다 낫다, 남보다 훌륭하다, 의롭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사도 바울처럼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21장 3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리와 창녀들은 사람들도 그들을 죄인 취급하기 때문에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압니다. 그러니까 확실하게 죄 사함을 받고 천국에 갑니다. 그러나 자신이 남보다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교만 때문에 제대로 회개하지 못합니다.

 

누가복음 7장에 보면, 세례 요한이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자 바리새인들과 율법교사들은 세례를 받지 않고 그냥 갔습니다.

이때 그들이 엎드려 회개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바리새인들은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원망불평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큰 아들은 불효자식입니다.

누가복음 15장 29~30절에 보면, 큰 아들은 아버지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이 아들이 돌아오니 살찐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라고 말하며 아버지를 원망하고 비판하고 불평했습니다.

그 동안 아버지의 집에서 아버지의 재산으로 아버지께서 길러주시고 함께 산 것을 감사할 줄 모르고 오히려 원망불평만 했습니다.

 

천지 만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다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태양도 주시고 때를 따라 비도 주시고 공기도 주시고 생명도 주시고 예수님까지 보내주셨습니다.

우리는 적신으로 왔다가 적신으로 돌아갈 사람입니다. 세상에 올 때에 가지고 온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있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아버지께 얼마나 감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똑바로 알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고 즐겁게 해드리면서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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