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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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8-30 11:38 조회5,485회 댓글0건본문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지혜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지혜
2008년 07월 18일(금요철야)
본문 / 누가복음 15:25~32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탕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탕자와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많습니다. 기회가 있으면 탕자처럼 살고 싶은 충동을 누구나 느끼기 때문입니다.
제가 자랄 때에는 부잣집의 외아들이나 막내아들들이 사고를 많이 일으켰습니다. 지금은 집집마다 자녀가 한 명 정도 밖에 없으니 그때와 다르지만, 제가 어렸을 때에는 아들이 하나도 없던 집에 아들이 생기면 그 아들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다가 버릇없게 자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사랑을 받으면서 자란 막내아들이나 외아들이 사고를 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한 사람은 집문서를 전당포에 잡히고 돈을 빌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돈이 떨어지니 돌아왔는데, 그동안 빌린 돈의 이자에 이자, 또 이자에 이자가 붙어 큰 집을 다 팔아 허름한 집으로 이사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어느 가정에서는 막내아들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수금한 돈을 가지고 도망갔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공장은 문을 닫았고, 그때부터 집안이 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비극적인 일입니까.
명심하십시오. 탕자의 마지막은 다 똑같습니다. 반드시 망합니다. 거지가 되어 돌아옵니다. 병들어 다 죽게 되니 집으로 돌아옵니다.
솔로몬도 탕자처럼 살았습니다. 솔로몬은 돈과 권력이 있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향락에 빠져 살다보니 나중에는 모든 것이 귀찮아졌습니다.
그리고 다 헛된 것임을 깨닫고,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고 탄식했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한스럽게 여기고, 오히려 빨리 죽기를 원했습니다.
탕자의 마지막은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탕자가 되고 싶은 충동을 아예 뿌리 뽑아야 합니다. 그런 충동이 올 때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아 물러가라”고 외치며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탕자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거지가 되어 집에 돌아왔습니다. 인자하신 아버지는 무조건 받아주셨습니다.
아버지는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마치 귀한 일을 하고 돌아오는 아들인 것처럼 아들을 환영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주었습니다.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해주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지금까지 범한 죄를 완전히 무시하고, 아들을 무조건 용서해주고, 아들을 받아주었습니다.
누가복음 15장 24절에 보면, 아버지는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탕자를 가리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아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버지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이 곧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탕자와 같은 이들이 다 예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8장 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 5~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 12~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5장 3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무엇일까요?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열심히 전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부산과 민족을 복음화하고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탕자의 형은 아버지의 마음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본문 누가복음 15장 28~30절에 보면,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탕자의 형의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그는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몰랐습니다. 그에게는 아버지의 마음과 같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탕자의 형의 문제입니다.
참으로 마음 아픈 것은 교회에서 탕자의 형과 같은 사람들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탕자의 형과 같은 그리스도인은 탕자와 같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들을 구원하려는 열정도 없습니다. 탕자와 같은 사람들을 비판하고 비난할 뿐입니다.
물론 탕자와 같은 사람들은 비난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들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닙니다.
만약 그들을 비판하고 비난하기만 한다면, 그들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타락하여 결국 멸망할 것입니다. 이것은 사탄이 제일 좋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탕자와 같은 사람들이 죄 가운데에 있다가 망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탕자의 형과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에 다니면서도 세상과 짝하여 사는 사람들을 보면 비판하고 비난합니다.
마태복음 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 7:1~5)”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을 비판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죄와 허물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자신은 마치 의인인척 행세하는 교만한 자요, 외식하는 자입니다.
우리는 남을 비판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겸손히 회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남을 비판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이런 자세를 가진다면 탕자와 같은 사람을 보고 비판하고 비난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탕자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감동을 줄 것입니다.
제가 군목으로 복무할 때의 일입니다. 군부대 근처에 시장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도매상끼리 경쟁이 붙었습니다.
부대에서 사용할 물건을 구입하는 사람들에게 봉투를 줘서 자기 집에서만 구입하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뇌물을 써서 자기 가게의 물건을 팔려고 한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부대에 부임한 후, 장병들에게 줄 선물을 도매로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시장에 갔습니다. 트럭에 가득 싣고 돌아가려고 하는데, 도매상 주인이 두툼한 봉투를 제게 건네며 그냥 받아두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뇌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가게 주인에게 그 봉투에 든 돈 만큼 물건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트럭에 싣고 부대로 돌아왔습니다.
개척 초기에 우리 교회의 장로님 중 사업하시는 분이 제게 “목사님, 돈 버는 길이 환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가난하게 살기로 결심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장로님은 사업을 하시다보니 돈 버는 길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이 아니기 때문에 포기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가난하게 살기로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십일조, 감사헌금은 하나님을 감동시킬 것입니다. 액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죄 많은 세상에서 죄 많은 인간들의 방법으로 돈을 벌지 않고, 정직하게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분들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서 반드시 축복하실 것을 믿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기쁘시게 하면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역사가 일어날 것입다. 그러므로 절대로 절망하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왕따를 당하고 어려움을 당해도, 세상 사람들의 방법을 취하지 마시고,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고 감동시키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키십시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기뻐하시는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서 하나님을 감동시키시기 바랍니다.
저는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라고 고민했습니다. 전도를 많이 하는 것, 복음을 전하는 것을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겠다고 생각하여 열심히 전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복음화하는 훌륭한 목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공부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중학교에 갈 때에는 입학해서부터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을 받고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감동받으셨습니다.
이 나라와 민족을 모두 예수님 믿게 하는 목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더니 그 마음이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저는 24시간 내내 주의 일만 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것이 제 소원이었습니다. 그리고 군목으로 복무할 때에는 “저는 죽어도 좋사오니 전 장병을 예수 믿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앞서 행하셔서 1년 만에 전 장병이 세례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만이 제 소원입니다. 말씀해주시면 무조건 순종하고 어디든지 가겠습니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는 제게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길은 가장 복되고 축복받는 길이었습니다.
수영로교회 개척 초기에 있었던 일입니다. 로터리에 아름다운 예배당이 있으니 성도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성도들 중에 말썽꾸러기가 많았습니다. 이간질을 잘 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욕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을 생각하면 미워하는 마음이 생겨 설교하다가 악담과 저주을 쏟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미운 사람들을 놓고 특별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아무개 집사를 사랑하게 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저는 목회할 수 없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사람을 사랑할 마음이 생길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하나님께서는 제 기도를 들으시고, 제게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성도를 아름답게 변화시켜주셨습니다. 저를 욕하고 다니던 사람이 저를 칭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부흥되게 해주셨습니다.
탕자의 형이 아버지를 감동시키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아버지는 탕자가 돌아오기를 얼마나 기다렸습니까?
탕자의 형이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자신의 동생을 찾는 시늉이라도 했다면, 아버지께서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동생이 돌아왔을 때에 아버지와 함께 기뻐하고 좋아했다면, 아버지께서 감동받지 않으셨을까요.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탕자의 형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안타깝습니다. 탕자의 형은 아버지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눅 15:29~30)”라고 말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탕자의 형과 같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든 남을 판단하거나 비판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을 비판하고 판단할 권리가 우리에게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을 위해 울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축복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한다면 하나님께서 감동 받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바르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마십시오. 그들을 불쌍히 여기십시오.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 하십시오. 그들을 위해서 울고 그들을 위해 부르짖으십시오.
이것 이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길이요,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길입니다. 모든 것이 잘되는 비결이요 성공의 비결입니다.
악을 악으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선을 악으로 이겨야 합니다. 미워하는 마음은 마귀가 주는 마음입니다.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들을 축복하십시오. 절대로 미워하지 마십시오.
원수를 갚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악한 짓을 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목말라 할 때에는 그들에게 마실 것을 주고, 그들이 배고파할 때에는 그들에게 먹을 것을 줘야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오직 사랑을 베푸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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