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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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12-31 13:27 조회3,410회 댓글0건본문
어리석은 자
어리석은 자
2018년 12월 30일(주일예배)
본문 / 누가복음 12:16~21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에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에 이 세상을 떠납니다.
우리의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불러 가시면, 이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청년이었을 때의 일입니다. 제가 다니던 교회의 청년회장은 인기가 많았습니다. 얼굴도 잘 생겼고, 운동도 잘 하고, 여러 가지 면에서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루는 청년회장의 집에서 밤늦게까지 이야기하다가 헤어졌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전화를 받았습니다. 청년회장이 그 날 밤에 자다가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했습니다.
평소 몸이 아팠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불러 가시면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절대주권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13~16절에 보면,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침에 안개가 잔뜩 끼었다가도 햇빛이 나면 안개는 금방 사라집니다. 우리의 생명이 그렇습니다.
어떤 도시에 가서 1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고 생각했지만, 돈을 벌 수 있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가능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돈을 버는 것도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자기가 돈을 벌겠다 결심했다고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1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고 생각했지만, 이 사람이 1년 동안 살 수 있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살게 해주시면 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오늘 불러 가시면 오늘이 마지막이 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천년만년 살 것처럼 생각하며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삶의 자세가 다릅니다.
저는 집회를 인도하러 갈 때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를 통해 은혜 받을 사람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은혜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저를 그곳에 보내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설령 은혜 받을 사람이 한 사람밖에 없다 할지라도 저는 그 한 사람을 생각하며 그 사람이 은혜 받을 수 있도록 말씀을 열심히 전합니다.
그러므로 집회에 사람이 많이 모이느냐 적게 모이느냐는 제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은혜 받을 자가 많으면,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을 집회에 오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 받을 자가 적으면,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이 적을 것입니다.
집회를 인도할 때마다 저는 ‘이번 집회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며 집회를 인도합니다. 제가 집회를 또 인도할 수 있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우리는 내일 일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내가 마지막으로 말씀을 전한다면, 어떤 말씀을 전할 것인가.’라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말씀을 전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은혜를 많이 주십니다.
둘째,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것저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기도해야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계획을 세우는 것은 헛수고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큰 일을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는 사람은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서울에 있는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하면서 경험한 일입니다. 저와 늘 함께 심방 다니고 함께 사역하신 전도사님이 계셨습니다. 아주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이 심방하고 집에 가서 청소했습니다. 구석구석까지 다 정리했습니다. 빨래도 했습니다. 깨끗이 목욕한 후, 옷을 단정하게 입고 자리에 앉아 기도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 날 자신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을 분명히 아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죽은 후에 부끄럽지 않으려고 정리할 것 다 정리하시고, 청소도 하시고, 빨래도 하신 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수영로교회 개척 초기에 연세가 많은 할머니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권사님은 ‘오늘 밤에 예수님께서 오실지 모른다.’라고 생각하셔서 언제나 단정하게 옷을 입고 주무셨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수첩을 들고 다니시며 기도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이런 분들은 참으로 지혜롭게 살다가 가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렇게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사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인가를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의미로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누가복음 12장 16~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자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농사가 잘 되어 소출이 많습니다. 지금 있는 곳간에는 더 이상 쌓아둘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자는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자는 이제 먹고살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떻게 보면, 부자는 복 받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이 부자처럼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부자는 물질의 축복은 받았지만 믿음이 없었습니다.
첫째, 부자는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자신이 거둔 곡식과 자신이 가진 물건은 하나님께서 주셔서 받은 것임을 부자는 몰랐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릅니다.
다윗이 왜 위대합니까? 다윗의 믿음은 대단했습니다. 역대상 29장 14절에 보면, 다윗은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어마어마한 금은보화를 하나님께 바치면서 다윗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욥기 1장 21절에 보면, 욥은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욥의 신앙은 위대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날 때 아무것도 없이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입고 있는 것,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본문에 나오는 부자처럼 감사할 줄 모릅니다. 믿음이 있다면, 달라야 합니다.
축복을 받아 성공하는 것도 좋고, 부자가 되는 것도 좋지만, 우리는 교만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교만한 사람에게는 두 가지가 없습니다.
1. 기도가 없습니다.
사람이 교만해지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려 하지 않습니다.
히스기야는 죽을병에 걸렸다가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에게 15년을 더 살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 일 후에 히스기야가 기도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참 속상한 일입니다. 나라가 부유하고 평안하고 모든 것이 잘 되니 히스기야는 교만해져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2. 감사가 없습니다.
역대하 32장 24~26절에 보면,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스기야가 교만해지니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할 줄 몰랐습니다.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이것이 교만의 증거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셔서 받은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건강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날마다 매 순간 감사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물을 마실 때에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고, 눈깔사탕 하나를 먹을 때에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 나라에 걱정거리가 많을 때, 히스기야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축복을 받아 나라가 평안해지고 부요해지고 자신의 몸이 건강해지자, 히스기야는 교만해졌습니다. 기도가 없어졌습니다. 감사가 없어졌습니다.
죽을병에 걸렸는데 하나님께서 낫게 해주셨으니 감사할 줄 알아야 할 텐데,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할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히스기야는 바벨론 왕이 보낸 사람들을 데리고 다니며 나라에 있는 보물을 자랑했습니다. 얼마나 잘 살고 부요한가를 보여줬습니다. 이것이 교만해진 증거입니다. 히스기야는 교만해져서 어리석은 짓을 했습니다.
이사야 39장 6~8절에 보면,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또 네게서 태어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이른 바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 하고 또 이르되 내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제정신이 아닌 듯 합니다. 히스기야의 마음 상태가 병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죽은 후 그의 아들 므낫세가 왕위를 이어받았습니다. 므낫세는 왕이 되자마자 성전에 우상을 갖다놓고 섬겼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히스기야가 예전처럼 기도 많이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아들을 가르쳤다면,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그렇게 나쁜 짓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므낫세는 왕이 되자마자 마치 하나님과 원수가 된 것처럼 못된 짓을 했습니다. 자식이 그렇게 된 것을 보면, 아비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15년 전에 죽는 것이 나았을 것입니다.
죽을병에 걸려 얼마 살지 못한다는 말을 들으면, 이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제가 더 사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면 저를 살려주시고, 제가 더 살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면 차라리 지금 저를 불러가 주세요.”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히스기야는 이렇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의 욕심을 따라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죽을 사람을 하나님께서 살려주시고 생명을 15년 연장해주셨으니 하나님께서 연장해주신 시간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하는 시간으로 생각해야 할 텐데, 히스기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참으로 어리석게 살았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이 세상 끝 날에 큰 환난과 시험이 있을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가 가까울수록 환난과 시험이 많은 이유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깨어 기도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깨어 기도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날마다 죽음을 준비하고 재림하실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끝 날에 큰 환난과 시험이 있는 것은 우리에게 축복이 됩니다. 환난과 시험 자체는 우리에게 고통이지만, 환난과 시험으로 인해 깨어 기도하면, 그것이 오히려 축복이 됩니다.
야고보서 5장 13절에 보면,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야고보 사도가 왜 이렇게 말했는지 아십니까?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고난이 축복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있을 때, 기도하는 사람은 더욱 간절히 기도합니다. 더욱 겸손히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기도하다 보면, 은혜를 받습니다. 기도하다 보면 깨닫습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합니다. 사명을 깨닫고 하나님을 위해 살아갑니다.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이 세상이 평안할 때에는 교회가 부흥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잠잡니다. 그러나 6ㆍ25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밤마다 기도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산에서도 기도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때 한국 교회는 폭발적으로 부흥했습니다.
수영로교회를 개척한 후, 시험거리가 생기면, 저는 반가웠습니다. 교회에 문제가 생겨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으며 매달리다 보니 은혜를 받았습니다. 더욱 강하게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이 강해졌습니다. 말씀을 더 잘 전할 수 있었습니다.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부흥되었습니다.
그 후로는 교회에 문제가 생기면, ‘교회가 또 부흥하려나보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축복하시려나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에게 고난은 은혜 받을 기회입니다. 축복 받을 기회입니다. 고난의 때에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더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어리석은 부자는 먹을 것만 있으면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먹을 것만 있다고 잘 살 수 있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먹을 것이 있어도, 환난이 올 수 있습니다. 시험이 올 수 있습니다. 재난이 닥칠 수 있습니다. 질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불의의 사고를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먹을 것만 있으면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눅 12:19)’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걱정 없다, 이제 평안히 쉬어야겠다, 잘 먹고 마시고 즐기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가 이렇게 살았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9~2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자는 죄만 짓다가 죽었습니다. 부자는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다가 지옥에 갔습니다. 반면 거지 나사로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믿음으로 살다가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부자가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눅 12:19)’라고 생각한 것은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처럼 살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6절에 보면,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너희는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으나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셨다고 해서 사치하고 방종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타락합니다. 믿음을 잃어버립니다.
솔로몬을 보세요. 솔로몬의 믿음이 얼마나 좋았습니까. 그러나 솔로몬은 무엇이 쾌락이 될까 생각하며 쾌락이 될 만한 것은 다 해봤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솔로몬은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는 우상숭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들었습니다.
솔로몬이 어리석게 살지 않고, 자신을 찾아오는 왕과 귀족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면, 우상숭배 하면 망한다는 것을 가르쳐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만약 솔로몬이 자신을 찾아온 왕을 전도했다면, 그 나라의 백성들도 다 하나님을 믿었을 것입니다. 만약 솔로몬이 자신을 찾아온 왕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생각했다면, 솔로몬은 더 많이 기도했을 것입니다. 성경을 열심히 연구했을 것입니다. 그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좋은 뜻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내가 어떻게 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기만 해도 복을 받을 것입니다.
둘째, 부자는 자신의 사명을 몰랐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명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이사야 43장 7절에 보면,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합니다(고전 10:31).
이사야 43장 10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증인, 하나님의 종으로 택함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우리로 인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어 구원 받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이사야 43장 21절에 보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부자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의 복을 주신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물질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보물을 하늘에 쌓는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6장 19~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물질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물질을 사용하는 것은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달란트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는 열 달란트를 남겼고,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네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받은 것을 땅에 감추어 뒀다가 주인에게 내놓았습니다. 주인은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을 향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 25:26~29)”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이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 우리의 재산이 얼마나 되는가는 보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늘에 쌓아둔 보물이 얼마나 되는가를 보십니다. 예수님께서 달란트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려는 것이 그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쌓아둔 보물이 얼마나 되는가를 보십니다. 돈 많이 번 것, 재산이 많은 것은 예수님께서 보지 않으십니다.
잠언 19장 17절에 보면,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는 것은 하나님께 꾸어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행에 저축하면, 이자가 1백 배, 1천 배, 1만 배로 늘어납니다. 그러므로 하늘은행에 저축하는 것이 가장 값진 투자입니다.
마가복음 10장 28~30절에 보면,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본문 누가복음 12장 20~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어리석은 부자에게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셔서 받은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셔서 우리가 오늘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재산을 거둬 가시면, 우리는 재산을 모두 잃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면,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에 우리가 이 세상에 쌓아둔 것은 이 세상에 두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유산을 많이 남긴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가면 후회를 많이 할 것입니다. 많은 재산을 쌓아놓기만 하고 주님께 인색했던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가면 얼마나 후회하겠습니까.
본문 누가복음 12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재물을 쌓아두기만 하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는 본문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와 같습니다.
우리는 어리석은 부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재물보다 건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건강보다 믿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해서 지혜롭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교훈을 마음에 새기고, 지금까지 어리석게 살았다면, 철저히 회개하고 새롭게 출발하도록 도와주시기 원합니다.
지혜로운 자가 되게 하옵소서.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게 하여주옵소서. 날마다 오늘이 마지막인 줄 알고 정신을 차려 전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게 도와주옵소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아름답게 사용하다가 백 배의 복을 받으며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칭찬 듣고 면류관 상급을 받는 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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