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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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13 11:34 조회3,354회 댓글0건본문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2009년 08월 16일(주일예배)
본문 / 누가복음 10:25~28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말만 들어도 행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축복 받은 땅, 살기 좋은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땅이 살기 좋은 축복의 땅이 되느냐, 저주 받아 살기 힘든 땅이 되느냐는,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에덴동산처럼 아름다운 땅이었습니다. 맑은 물과 우거진 숲, 기름진 땅.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곳에서 사신우상을 섬기고, 짐승보다도 더러운 짓을 하며 타락의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생명이 살 수 없는 사해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가 그만큼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만들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율법은 ‘하라’는 말씀과 ‘하지 말라’는 말씀, 두 가지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율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될 것과 해서는 안 될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원하시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신명기 10장 12~13절에 보면,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 “~해라”, “~하지 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행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율법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사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신명기 4장 39~40절에 보면, “그런즉 너는 오늘 위로 하늘에나 아래로 땅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다른 신이 없는 줄을 알아 명심하고 오늘 내가 네게 명령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 없이 오래 살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대로 살면, 하나님 앞에 복을 받아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오래 장수하며 잘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는 세계 민족 가운데 뛰어난 민족이 되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들에 가도 복 받게 하시고, 성읍에 가도 복 받게 하시고,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을 복 받게 하십니다.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자손들이 복을 받고 소와 양떼들까지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보고를 여셔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주십니다. 모든 일이 잘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나누어줄지언정 꾸러 가게 하지 않으십니다. 남의 머리가 되게 하시지, 꼬리가 되게 하지 않으십니다. 이처럼 모든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복 받을 수 있는가, 복 받는 법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후에는 우리가 믿기만 하면 구원받으니까, ‘율법은 더 이상 필요가 없다, 율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절대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마태복음 5장 17~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다고 율법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계명 중에 작은 계명 하나라도 지키지 않으면, 천국에서는 작은 자가 됩니다. 그러나 그 계명을 지키며 가르치는 사람은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겉과 속이 다른 외식주의자였습니다. 말씀과 율법을 잘 알지만, 그대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의가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보다 나아야 합니다. 그것은 행함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본문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눅 10:25)”라고 질문했습니다. 그가 율법교사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눅 10:26)”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이에 율법교사는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고 하였나이다(눅 10:27)”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눅 10:28)”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을 아무리 잘 알아도, 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한 율법교사에게 예수님께서는 “율법대로 행하면 산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을 알고 믿을 뿐 아니라 율법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9장에 보면,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마 19:16)”라고 질문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마 19:17)”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부자 청년은 어느 계명을 지켜야 하는가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마 19:18~19)”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부자 청년은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마 19: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마 19:21)”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 청년에게 얼마나 이웃을 사랑했는지 실천해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부자 청년은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그는 율법을 알고, 율법을 지킨다고 큰소리는 쳤지만, 실제로 율법을 행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모든 계명은 한 마디로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로마서 13장 8~10절에 보면,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은 율법을 다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그 이유는 율법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사랑하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계명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우리의 믿음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의 믿음만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믿음만 있다면, 사랑의 열매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4절에 보면,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바로 믿음의 증거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를 보면 믿음의 유무를 알 수 있습니다.
둘째, 말과 혀로만 사랑해서는 안 되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2장 14~17절에 보면,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6~19절에 보면,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는 이유는, 그들이 행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3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똑같은 말씀이 누가복음 11장 42절에도 나옵니다. 누가복음 11장 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버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버렸다는 것은 믿음을 버렸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외식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왜 책망을 들을 수밖에 없었을까요? 그들이 십일조는 철저히 했지만,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버리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믿음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로는 모두 예수님을 잘 믿는 것 같은데, 행함이 없는 사람은 절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율법을 알고 계명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평소에 말씀도 많이 듣고, 성경공부도 많이 해서 잘 알고 있어도, 중요한 것은 ‘행함이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마태복음 7장 24~2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믿음의 힘이 없기 때문에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습니다. 홍수가 나면 떠내려갑니다.
겉으로 볼 때, 우리는 다 신자입니다. 그러나 평소에 우리가 믿음을 행하는 사람이냐, 행하지 않는 사람이냐에 따라 ‘산 믿음, 죽은 믿음’으로 갈라집니다. 죽은 믿음은 시험과 어려움이 오면, 홍수에 밀려가듯 없어져 버립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을 보면,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은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율법을 행함으로 나타납니다. 율법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곧 사랑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예수님께서도 그를 사랑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는 사람들은
첫째, 열매가 없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를 보면, 길가에 뿌려진 씨, 가시밭에 뿌려진 씨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러나 좋은 밭에 뿌려진 씨는 백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누가복음 8장 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 행하는 사람에게는 결실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행함이 없는 사람에게는 열매가 없습니다.
둘째, 축복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는 사람에게는 축복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 가운데 살면, 무엇을 원하든지 다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라’는 것은 ‘사랑을 행하라’와 같은 뜻입니다. 많이 주든지 적게 주든지, 주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세계 제일의 부자 빌게이츠는 5백억 불이라는 재산이 있습니다. 그 중에 3백억 불을 선한 일에 쓰라고 사회에 기부했습니다. 자기 재산의 95%를 죽기 전에 다 나누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5%만 자손에게 물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사랑을 실천하게 된 이유는, 빌 게이츠가 어렸을 때부터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산상수훈을 다 암기하게 했습니다. 특별히 누가복음 6장 38절 말씀을 외우게 했습니다.
그는 평생 이 말씀을 묵상하고, 이 말씀을 실천하고 살았습니다. 이 말씀을 붙잡고, 이 말씀대로 행하면서 사니 하나님께서 차고 넘치도록 안겨주셔서 세계 제일의 부자, 세계 제일의 자선사업가가 되었습니다.
셋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세상의 빛과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며 살아야 합니다. 착한 행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행하지 않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합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다른 사람이 알게 모르게 사랑을 베풉니다. 참으로 은혜 받은 성도들입니다. 믿음이 좋은 성도들입니다. 평소에 세상에서 사랑을 베풀기에 감동을 받고 예수 믿어 교회로 나오시는 분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 교회는 1년에 7천 명의 새신자가 등록합니다. 그 중에 70%가 교회에 처음 나오는 분들입니다. 어떻게 이들이 예수를 믿을까요? 성도들이 평소에 사랑을 베풀고, 섬기면서 감동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형편이 어렵지만 사랑을 베푸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을 구원받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부흥되는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에게 관심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교회에 나오는 새터민의 수가 수백 명이 넘습니다. 외국인 또한 수백 명이 나옵니다. 이런 나그네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진다면, 그들은 더욱 감동을 받고, 예수님을 더 잘 믿을 것입니다.
우리가 없는 것만 생각하고 움츠려 있으면 안 됩니다. 우리에게 있는 작은 것 하나라도 있다면 나눔을 실천해야 합니다. 작은 사랑의 실천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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