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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사랑하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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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11 19:01 조회5,5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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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사랑하는 믿음

 

예수님을 사랑하는 믿음

2009년 01월 04일(주일예배)

본문 / 누가복음 7:44~50

 

하나님은 좋은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위해 좋은 것을 예비해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모두 축복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축복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의 그릇을 준비하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축복 받기를 원하지만, 자기가 원하는 대로 받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축복받는 비결을 똑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4장 2~3절에 보면,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축복은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믿음으로 천국시민이 됩니다. 믿음으로 영생복락을 누립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믿음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는 축복을 받습니다. 믿음으로 날마다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는 축복을 받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만큼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가 내 믿음의 분량을 보여줍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압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본문에 보면, 과거에 범한 죄로 말미암아 온 동네 사람들에게 죄를 지은 여자로 소문난 여인이 나옵니다. 그녀는 죄를 지은 여자라고 소문났지만,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구원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알고 죄 사함을 받은 뒤, 얼마나 기쁨이 넘쳤는지 모릅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가셨을 때, 그녀는 예수님의 곁으로 가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자신의 머리털로 닦고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초청한 바리새인은 이 여자의 행동을 보고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눅 7:39)”고 말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눅 7:41~42)”라고 물으셨습니다. 시몬은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눅 7:43)”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네 판단이 옳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 7:44~4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여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눅 7:48)”,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눅 7:50)”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인의 행위는 여인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그녀의 믿음은 예수님께 대한 사랑으로 나타났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께 대한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의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만큼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14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큰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첫째,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습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을 때, 어떤 저주를 받는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저주 가운데 가장 큰 저주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끝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고 회개하지 않고 지옥 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받는 고통이 아무리 크다고 할지라도 잠시입니다. 그러나 지옥에 들어가면 영원히 고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저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시고, 모든 저주를 속량해주셨습니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저주가 없습니다. 어려움이나 환난이 온 것을 저주 받은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저주가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저주를 예수님이 짊어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시련은 있어도 저주는 없습니다.

 

둘째,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은 큰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엄청난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복을 받았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9절에 보면,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복을 받았는데, 믿음의 사람도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복을 받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29절을 보면,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 속한 그리스도인은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엄청난 축복을 우리가 유업으로 이어받습니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런데 우리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믿음이 온전하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복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믿음이 온전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온전하지 못합니다. 믿음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부족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지 않습니다.

세상 지식은 많은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부족합니다. 돈이나 권력을 신뢰하지만, 하나님은 온전히 신뢰하지 못합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세상의 명예와 권세를 더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편한 대로 신앙생활 합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마디로 ‘사랑하라’는 것인데, 사랑하지 않습니다.

 

요한일서 3장 16~18절에 보면,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행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축복을 구하지만 응답받지 못하고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입술로는 믿는다고 하지만, 행함이 없는 것, 죽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문제입니다.

 

마태복음 19장 16~22절에 보면,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청년은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았습니까? 이 청년은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까? 이 청년은 행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죽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이 청년은 사랑을 베풀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는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 청년이 천국에 들어갔겠습니까? 이 청년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 19:24)”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부족해도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는다면 구원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온전하지 못하면 많은 시련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왜 시련과 환난이 많습니까? 왜 고통이 많고 문제가 많습니까? 그것은 우리를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야고보서 1장 2~4절에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은 환난과 시험이 오면 낙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하나님을 떠납니다. 그래서 결국 지옥에 갑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환난이 오고, 시험이 오고, 고난이 오면, 이것이 믿음의 시련임을 압니다. 그래서 자신의 믿음이 부족한 줄 알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회개하는 가운데 은혜를 받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영안이 밝아져서 깨닫습니다. 자기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습니다. ‘내가 바르게 살지 못했구나.’,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못했구나.’, ‘감사생활을 하지 않았구나.’라고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회개합니다. 그러면 죄 사함을 받고 거룩해질 뿐만 아니라 겸손한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깨달아 감사가 넘칩니다. 기쁨과 평강이 넘칩니다. 주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사명이 깨달아 충성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됩니다. 이것이 은혜를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변화됩니다. 성품이 변화되고, 가치관이 변화되고, 인생관과 말과 행실이 변화됩니다. 남을 미워하던 사람이 사랑이 많은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뿐만 아니라 은혜를 받으면 능력이 생깁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권능이 생깁니다. 세상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시험을 이기는 능력이 생깁니다. 기도의 능력, 사랑의 능력, 경건의 능력이 생겨 승리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은혜가 충만하면, 믿음이 충만해집니다. 은혜 받은 만큼 믿음이 온전해집니다. 사도행전 6장 3절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5절에 보면,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이 충만한 사람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충만할 때, 믿음이 충만해집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아 믿음이 충만한 자가 되어야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시련을 허락하십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대적 마귀는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과거의 어느 때보다도 죄악이 가득합니다. 신앙이 없으면, 바르게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더 큰 시련과 환난을 주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큰 환난을 준비하고 계실까요?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을 한사람도 빠짐없이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 믿음의 시련을 통과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려움을 잘 참고 믿음을 지키고 말씀대로 사는 사람에게 환난을 면하게 해주시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들은 이미 합격자이기 때문에 시련을 겪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환난이나 어려움이 와도 믿음을 굳건하게 지키십시오. 그래서 온전한 믿음으로 사십시오. 그리하여 믿음의 시련을 당하지 않고 통과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환난과 시험이 올 때,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4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7~10절에 보면,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마지막이 될수록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사랑을 잃어버리므로 대접을 잘해야 합니다. 대접하는 것만으로 기뻐하고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떤 은사를 주셨든 선한 청지기같이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환난이 점점 더 심해지면, 사랑이 메마른 사람이 생길 것입니다. 원망 불평을 하고 형제에게 불의를 행하는 사람도 많이 생길 것입니다. 그런데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요, 마귀의 자녀입니다.

일시적으로는 사랑이 식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미워할 수도 있습니다. 불평 원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환난이 와도 사랑을 잃지 않습니다. 형제에게 불의한 일을 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의 특징은 반드시 회개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10, 14~15절을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가 구분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형제를 사랑하고 절대로 불의한 짓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자녀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불의한 짓, 못된 짓, 악한 짓만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요, 구원받은 증거입니다.

살인의 시작은 미움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결국 살인자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구원받은 자녀가 아닙니다.

 

환난의 때일수록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믿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형제를 사랑합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에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잘 대접하십니까? 형제를 잘 대접하는 사람이 곧 예수님을 잘 대접하는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양과 염소의 비유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면,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로 나누어집니다.

양과 같은 성도는 예수님을 잘 대접한 성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칭찬하시고 축복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제를 잘 대접하는 것이 예수님을 잘 대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염소와 같은 성도들에게는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마 25:41)”고 말씀하셨습니다. 지옥 불에 들어가라는 의미입니다.

염소와 같은 성도는 형제를 대접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대접할 줄 모르는 사람이요,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지금은 환난의 때입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더욱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렙다 과부는 아주 가난한 여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진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으로 엘리야 선지자를 대접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에게 한 끼를 대접했을 뿐인데, 3년 반 동안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체험하고, 축복을 체험하고, 기적을 체험하시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주님을 사랑하시고, 주님을 잘 대접하시기 바랍니다.

이언 때일수록 형제들을 사랑하고, 주의 종을 사랑하고, 대접하기를 즐거워하며, 사랑을 행동으로 옮기십시오. 사렙다 과부가 받은 축복을 우리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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