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와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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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01 17:15 조회3,330회 댓글0건본문
자비와 용서
자비와 용서
2007년 01월 21일(주일예배)
본문 / 누가복음 6:35~38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똑바로 알려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잘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신실하시며 절대주권을 가지신 완전한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4장 16절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했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는 우주만물을 사랑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6일에 걸쳐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빛을 만드시고, 우주 만물을 만드셨으며, 마지막으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가장 마지막으로 창조하신 것은 사람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먼저 준비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성경과 하나님께서 만드신 우주 만물을 통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깨닫습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을 닮은 피조물로 만드셨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기 전까지는 오직 사랑만 가득한 세상에서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후, 점점 타락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과 달리 마귀는 증오의 영입니다. 마귀의 종노릇을 하는 사람들은 마귀를 닮아 악하고 거짓되고 미움이 가득합니다. 미움이 있는 곳에는 모든 것이 깨어지고 모든 것이 파괴됩니다.
미움은 모든 것을 망칩니다. 사랑이 없는 정치, 경제, 교육, 윤리, 도덕, 사회, 가정은 질서가 파괴되고 행복이 달아납니다.
마귀의 목표는 이 세상을 미움이 가득한 지옥 같은 세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미움이 가득한 곳에는 시기와 분쟁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미움이 있는 곳에는 늘 전쟁이 있고 모든 것이 파괴되며 멸망합니다. 따라서 미움이 가득한 사람은 그냥 내버려둬도 마음이 저절로 지옥이 됩니다.
그러나 사랑이신 하나님께서는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이 세상을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셔서 십자가를 지게 하심으로 모든 죄를 사함 받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구원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반드시 변화됩니다. 사람이 달라집니다.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회복됩니다.
에베소서 5장 1~2절에 보면,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사랑이신 하나님을 닮게 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닮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에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저들의 죄를 사해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원수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으면서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0)”라고 기도했습니다. 초대 교회의 첫 순교자가 된 스데반 집사에게서 우리는 주님을 닮은 아름다운 모습을 봅니다.
본문 누가복음 6장 3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식은 부모를 닮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비하신 아버지 같이 자비하신 하나님을 닮으라는 의미입니다.
믿음의 성장은 우리가 얼마나 변화되고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랑이신 하나님을 얼마나 닮아 가는가, 자비하신 하나님을 얼마나 닮아 가는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얼마나 닮아 가는가에 따라 믿음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의 성장은 사랑의 크기와 정비례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7~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13장 8~10절에 보면,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이웃을 사랑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나를 미워할 뿐 아니라 나를 핍박하고 죽이려고 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이는 성령으로 충만한 믿음의 사람이 아니면 도무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위대한 사랑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는 가장 위대한 사랑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로마서 5장 10절에 보면,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가리켜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행 13:22)”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이 예수님의 위대한 사랑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끝까지 괴롭힌 원수 사울 왕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의 자식들과 손자에게까지 큰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오늘날 원수였던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구원 받게 해주신 예수님께서는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눅 6:35)”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할 때 아무것도 바라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대가나 보상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되 어떤 대가나 보상을 기대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첫째, 섭섭한 마음을 갖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축의금이나 선물 또는 대접을 잘했을 때, 남에게 좋은 일을 하고도 마음이 섭섭하다면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기대하는 마음이 클수록 우리의 실망은 커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대가나 보상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기대가 없어야 더 큰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4장 13~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높은 사람, 부자들, 힘 있는 사람을 대접하면, 예외 없이 돌려받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받았으므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장애인들을 잘 대접하면, 그들은 갚을 것이 없으므로 이 세상에서의 보상 받는 것이 아니라, 장차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보상 받을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주시는 상은 영원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더 좋은지, 지혜로운 사람은 잘 선택해야 합니다.
본문 누가복음 6장 3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처럼 우리가 자비한 자가 되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예수님께서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누가복음 6장 3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남을 비판하지 않을 때, 우리도 비판받지 않는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비판받을 것이 없는 완벽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죄가 있고, 허물이 있습니다. 누구나 실수합니다.
그러므로 비판하려고 하면, 끝이 없습니다. 서로 비판하면, 이 세상에는 분노와 미움이 가득 하게 됩니다. 서로 보복하기 시작하면 어디를 가든 지옥 같은 세상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은혜롭고 좋은 교회가 되고, 날로 부흥 성장하는 것도 남의 말을 함부로 하거나 비판하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허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자연히 칭찬이 앞서게 되고, 격려하고 축복하게 됩니다. 이런 곳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둘째, ‘정죄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남을 정죄하지 않아야 우리도 정죄 받지 않습니다. 남을 판단하거나 정죄할 자격이 우리에게 없습니다. 우리는 판단 받을 수밖에 없고, 정죄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서로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를 판단하고 정죄할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셋째,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누가복음 6장 3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용서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잠언 19장 11절에 보면,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진실로 아름다운 사랑은 용서하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용서하는 곳에 화해가 이루어지고 평강과 기쁨이 넘칩니다.
미움이 있는 곳에는 벽이 생기고 틈이 생기며 갈라지고 나눠집니다. 그러나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는 곳에는 벽이 없어지고 틈이 없어지며 하나가 됩니다.
미움은 친구를 원수로 만들지만, 용서는 원수를 친구로 만듭니다. 미움은 사람을 묶어버리지만, 용서는 사람은 풀어줍니다. 그러므로 용서가 있는 곳에 자유가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신명기 15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쳐주신 면제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7년마다 모든 것을 탕감해주는 것입니다.
이때는 그동안 빚이 있던 사람은 빚을 면제받고, 종노릇하던 사람은 해방되며, 노예로 살던 사람을 자유인이 됩니다. 그냥 돌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필요와 형편에 따라 후히 주어 보냈습니다. 이 말씀을 따르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큰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넷째, 주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누가복음 6장 3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는 것은 곧 사랑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믿고 주는 자가 되되, 기쁨으로 즐겁게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면서 사는 자는 백 배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세계적인 갑부인 록펠러는 55세가 되었을 때까지는 오직 성공과 사업만 몰두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몸도 쇠약해졌고 우울증까지 겹쳐 식욕이 사라지고 비스킷 몇 조각으로 하루를 버텼습니다. 의사들은 5~10년을 넘기기 힘들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그에게 “그동안 돈을 버느라고 잠도 못 자고 피곤하여 숱한 스트레스에 정신과 육체가 쇠약해졌으니, 이제부터는 남에게 베풀며 섬기는 사람이 되십시오. 얼마나 많은 돈을 가졌느냐보다 얼마나 가치 있게 사용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록펠러는 보육원과 양로원을 세우고 교회와 대학과 병원을 설립하는 등 많은 자선단체를 설립하면서 참된 행복을 맛보았으며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그는 98세까지 장수했습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습니다. 미국 메릴랜드의 한 마을에 남루한 복장의 아르바이트 학생이 나타났습니다. 서적 외판원인 이 청년은 더위와 굶주림에 지쳐 있었습니다.
그는 마을 입구에 있는 허름한 집을 방문했습니다. 한 소녀가 학생을 맞았습니다. 그녀는 “미안해요. 우리는 너무 가난해서 책을 살 수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우유 한 잔을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소녀는 얼른 주방으로 달려가 시원한 우유 두 잔을 내왔습니다. 단숨에 우유를 다 마신 그는 소녀의 친절에 감동을 느끼고 수첩에 그녀의 이름을 적어두었습니다.
20여 년 후, 메릴랜드 병원에 여성 중환자가 실려 왔습니다. 병원장 하워드 켈리 박사는 의사들을 총동원하여 환자를 살려냈습니다.
그러나 퇴원할 때 이 여인은 1만 달러가 넘는 치료비 청구서를 받아들고 한숨을 토했습니다. 그런데 청구서 뒤에는 병원장의 짤막한 메모가 한 장 붙어 있었습니다. “20년 전에 저에게 대접한 우유 두 잔이 치료비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주면서 살면 반드시 보상을 받습니다. 이 땅에서 받지 못한 보상은 하늘에서 밝히 드러날 것입니다. 선행은 감추어진 것일수록 더욱 아름답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이 왜 지옥과 같이 됩니까? 사랑이 메말랐기 때문입니다. 서로 용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움이 가득 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은 이 세상을 천국 같은 세상으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그 비결은 오늘 주신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사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비판하지 않고 정죄하지 않으며 서로 서로 용서하며 사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남에게 아낌없이 주면서 자비의 사랑을 실천할 때, 밝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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