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탄생과 그 시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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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07 17:00 조회3,273회 댓글0건본문
예수님의 탄생과 그 시대상
예수님의 탄생과 그 시대상
2007년 12월 23일(주일예배)
본문 / 누가복음 2:1~7
12월 25일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탄생하신 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셔서 우리를 구원해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구약시대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가 쓴 글에 보면, 그 시대의 시대상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나 사는 세상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라기 1장 6절 이하에 보면, 누구보다도 거룩하게 살아야 할 성직자인 제사장들이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6절에서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라고 기록되어있고, 7절에서는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라고 기록되어있으며, 8절에서는 “눈먼 희생제물을 바치는”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10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라고 탄식하셨습니다.
또 12절에 보면,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라고 기록되어있고, 13절에 보면,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속상하게 해드린 그들을 향해 하나님은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라 보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너희가 내 길을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치우치게 하였으므로 나도 너희로 하여금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말 2:2~3, 9).
또 2장 17절에 보면,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3장 8절에 보면,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말로 하나님을 괴롭히고, 하나님의 몫인 십일조와 헌물을 가로챈 결과, 하나님께서는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말 4:1).
솔제니친의 자서전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내가 돈강 연안의 로스토프시에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 콤소몰(소비에트 연방 공산주의 청년동맹) 단원들의 사주를 받은 동네 아이들이 내가 어머니를 따라 그 고장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늘 나를 놀려댔고, 목에 건 십자가를 떼어버리기까지 했다.
몇 년 후 나는 몇몇 연로한 분들이 러시아에 밀어닥친 그 크나큰 재앙에 대해서 ‘인간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렸어. 그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난거지.”라고 한탄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 이후로 솔제니친은 러시아 혁명사 연구에 근 50년을 바쳐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수백 명의 사람들을 면담했고, 수백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이미 8권의 책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만약 누가 자기에게 약 6천만 명의 러시아 사람들의 생명을 삼켜버린 그 무서운 혁명이라는 것이 왜 일어났는지 그 주된 원인을 가장 간명하게 정의해보라고 한다면, 자기는 주저함이 없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답을 되풀이하는 것 외에 더 명확한 답변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 시대에 저질러진 그 모든 죄악은 모조리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인간들의 정신적 파탄에서 유래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400여 년 동안은 선지자가 없는 시대, 그야말로 영적으로 암흑시대였습니다. 자연히 예수님이 탄생하였을 때에는 나라가 망한 지 이미 오래 되었고, 로마의 식민지가 되어 로마의 황제인 가이사 아구스도가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가이사 아구스도의 본명은 Caius Octavius(BC 30~AD 14)입니다. 그는 줄리어스 시저의 조카로 황제숭배를 강요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소아시아 지역은 새해를 그의 생일인 9월 23일로 바꾸고, 자신을 구세주와 신으로 선포했습니다. 그는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호적조사를 실시했고, 호적에 이름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고향에 가서 호적에 이름을 올리도록 명령했습니다.
이에 요셉과 마리아도 그들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가게 되었고, 거기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심으로 주전 650년경에 미가 선지자에 의해 예언된 미가 5장 2절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가짜 구세주가 통치하고 있을 때 진짜 구세주인 예수님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지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2장 7절에 보면,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방을 내어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 시대 사람들의 고약한 민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만삭이 된 여인에게 아기를 낳을 방 하나도 내주지 않아 할 수 없이 마구간에 들어가 구유에 아기를 낳게 되었으니 얼마나 몰인정한 사람들입니까. 더구나 성령의 감동에 순종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수 있었을까요.
누가복음 4장 24~26절에 보면,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위하여,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는 한 여인을 준비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엘리야를 대접하는 축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가족이 3년 반 동안의 기근이 끝날 때까지 굶지 않고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예수님에게는 이런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혹 여러분 중에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은 감동이 일어나는 분은 안 계십니까? 이런 감동은 아무에게나 오지 않습니다. 또 여러 사람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때는 단 한 사람에게만 하나님께서 특별히 감동을 주십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사렙다 과부처럼 특별한 택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것은 축복이요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실 때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마음이 완악해지고 기회는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 어느 집사님은 영이 아주 밝고 맑은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시면 그대로 순종하는 아름다운 분입니다.
오래 전에 집사님은 좋은 시계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시계도 제법 쓸만해서 선물로 받은 이 시계를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주기를 원했습니다.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던 중 마침 한자매가 떠올라 그 자매에게 그 시계를 전해주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자매가 어느 집회에 참석했다가 헌금할 돈이 없어 대신 자신의 시계를 헌금으로 드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정확하게 그 자매가 새 시계를 받도록 그 집사님에게 감동을 주셨습니다.
한번은 사랑방 식구들을 위해 기도하던 중에 혼자 아이를 키우며 어렵게 사는 집사님이 자꾸 떠오르며 감동이 왔습니다. 그리고 ‘혹시 쌀이 떨어져 밥을 굶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 집사님은 급히 쌀집에 연락하여 그 가정에 쌀을 몰래 배달시켰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가정에 쌀독이 비어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전지전능하십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인격을 가지신 분입니다. 우리를 보고 계시고, 우리의 말을 듣고 계시며,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를 만지십니다. 그러므로 성령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감동을 주시면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영이 맑아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게 될 줄 믿습니다.
마태복음 2장 1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에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라고 말했을 때,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이 소식을 듣고 일제히 소동했습니다.
헤롯은 폭군으로 악명이 높은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로마제국으로부터 유대인의 왕으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방인인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그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나중에 예수님이 헤롯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기도 하셨습니다.
헤롯과 온 예루살렘이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고 소동한 이유는?
1.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타락하면 영적으로 어두워지고 무지해집니다. 이들은 정작 고대하던 메시야가 오셨지만 모르고 있다가 동방박사들의 말을 듣고 비로소 알게 되었기 때문에 소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2. 메시아를 맞이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타락하면 죄 가운데 빠져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 등을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예수님을 맞이할 생각을 하지 못했기에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본문에 보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고 그에게 찾아가 경배하겠다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것을 보면, 그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동방박사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 마태복음 2장 8절에 보면, 헤롯 왕이 동방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라고 말했으나 실제로는 한 명의 군사도 박사들 편에 붙여 보내지 않았습니다. 헤롯 역시 동방박사들의 말을 처음부터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참 후에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면 자기의 위치가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예수님이 태어나신 그 때를 기준으로 하여 두 살 이하의 모든 아이들을 다 죽이는 악랄한 짓을 서슴없이 저질렀습니다.
만일 오늘밤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가 해산하려고 우리에게 찾아왔다면, 그분을 영접해 줄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우리도 그 당시 사람들과 달리 그분을 영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 소련이 공산화 되기 전까지는 기독교 국가였습니다. 그때 시베리아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 중에는 예수님이 오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파티할 때마다 가장 좋은 자리에 예수님의 자리를 상징하는 가장 좋은 빈 의자를 두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성탄절,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즐기는 파티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문을 열고 밖에 나가 보니 눈보라가 치는 추운 겨울에 거지 차림의 남루한 옷을 입은 한 나그네가 추위에 떨며 서있었습니다.
이때 방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를 보고 “예수님이 오셨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나그네를 따뜻하게 영접하고 예수님의 빈 의자에 그를 앉혔습니다. 그리고 기뻐하며 파티를 즐겼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25장 31~46절에 나오는 양과 염소의 비유처럼, 우리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바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에게 사랑을 베푸는 사람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 마음속에 감동이 오는 이웃이 있다면 외면하지 마시고 사랑을 베푸시기 바랍니다. 헐벗고 굶주리는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 곧 예수님께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오듯이 죄악이 가득한 이 세상이 점점 어두워질수록 예수님이 오실 날이 가까이 왔음을 알고, 우리는 재림하실 예수님을 영접할 준비를 해놓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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