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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다 구주 오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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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5-30 11:03 조회3,5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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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다 구주 오셨네

 

기쁘다 구주 오셨네

2005년 12월 25일(주일예배)

본문 / 누가복음 2:8~14

 

오늘은 구주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절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하나님의 성전에 나오신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위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넘치게 될 줄 믿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을 때에는 구주가 나셨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에는 헤롯 왕을 비롯하여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경건하게 산다고 자부하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을 비롯하여 많은 시민이 있었지만, 구주가 나신 사실을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한밤중에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나, 구주가 탄생한 사실을 전해주므로 목자들이 아기 예수님께 가서 경배하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2장에 보면,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마 2:2)”라고 말하자, 헤롯 왕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소동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마 이때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이 헤롯 왕일 것입니다. 자신이 왕인데, 또 다른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고 하니 얼마나 충격이 컸겠습니까.

 

마태복음 2장 7~8절에 보면,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헤롯은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며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에게 경배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후에 그는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때를 표준으로 하여 두 살 이하는 모두 죽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헤롯 왕이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는 악독한 생각을 품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장 9~12절에 보면,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헤롯이 큰 충격을 받고 예루살렘 사람들에게서 소동이 일어났지만, 어느 누구도 박사들을 따라 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무관심했던 이유는 구주의 탄생을 아무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 당시 예루살렘 사람들의 영적 상태를 예리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영적으로 깊은 어둠에 빠져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0~14절에 보면,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문제는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이 오늘날 이 세상에 너무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알게 해주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부지런히 전도해야 하겠습니다.

 

베들레헴 목자들에게 나타난 천사들이 전한 말은

첫째,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

누가복음 2장 10~11절에 보면,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복음을 말합니다. 즉 우리를 구원할 구주가 나셨다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보면, 동정녀 마리아가 아들을 낳기 전,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그들의 죄에서 구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많으나, 그 중에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는 먹고 살기 위한 빵의 문제가 아닙니다. 병 고침의 문제도 아닙니다.

가장 크고 중요한 문제는 죄의 문제입니다. 죄 때문에 우리가 저주를 받게 되었고, 고통과 죽음과 모든 불행이 왔으며, 지옥의 멸망을 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 세상에 죄가 없다면, 얼마나 살기 좋은 세상이 될까요. 우리가 고통을 당하고 불행하고 괴로운 근본적인 이유는 죄에 있습니다. 따라서 죄의 문제보다 더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자기 백성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죄 사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죄를 사하실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4장 18~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서를 인용하여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주가 나신 것은 가장 크고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복된 소식입니다.

 

둘째,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게 될 것이다.”

누가복음 2장 12절에 보면,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실 때에 사람의 육신을 입고 마구간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영광을 받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려고 오셨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2장 7~8절에 보면,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지극히 영광스러운 보좌를 내려놓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가장 낮고 미천한 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받게 된 저주를 속량하시기 위해 우리 대신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주받으실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받은 저주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게 사실 이유가 없습니다. 이 땅에 계실 때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시고도 열두 바구니를 남기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평생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 집이 있고, 여우도 굴이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땅 한 평, 방 한 칸 없이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우리를 만드실 때, 우리를 가난하게 만드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땀을 흘려 농사짓지 않아도 먹고사는 걱정이 없이 부요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고 죄를 범하고 저주를 받아 가난과 질병의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다 잃어버리고 가난에 허덕이며 사는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님께서 저주를 받아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실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의 값으로 죽어 마땅한 죄인인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셋째,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가 있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평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평화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예수님 없이는 절대로 평화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평화를 얻을 수 없습니다.

 

지나간 수천 년 동안 과학과 지식의 발달로 이 세상이 점점 평화롭게 잘 살게 될 줄 알았습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합리주의, 계몽주의, 낭만주의, 실존주의, 공산주의, 과학주의 등 예수님 없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1, 2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모든 꿈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서로 싸우고 죽이고 무너뜨리고 완전히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공산주의 이론을 기초한 칼 막스는 하나님 없이도 빵 문제를 해결하고 지상낙원을 만들 수 있다며 무신론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공산주의는 모든 백성을 노예로 만들고 굶어 죽게 만드는 비참한 실패를 가져왔습니다.

 

사실 나날이 발전하는 과학은 생활을 편리하게 해줍니다. 그러나 과학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무기경쟁을 불러일으키며, 이 세상은 점점 더 무서운 전쟁 속으로 휘말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테러의 시대입니다. 강력한 폭탄을 자신의 몸에 두르고 많은 사람 속에 뛰어들어 자폭하는 무서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안심할 곳이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인류 역사 이래 예수님 없이는 진정한 평화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마음의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며, 이 나라의 평화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 없이는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나라의 지도자들도 깨달았으면 합니다. 어떤 지도자가 앞에 나서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 땅에 평화가 이루어지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1870년 프랑스와 독일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그곳에도 어김없이 성탄절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낮에는 전투를 하다가도 밤이 되면 각자 진영으로 돌아가 내일의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성탄절 이브였습니다. 병사들이 밖으로 나와 하늘의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 성탄절의 낭만과 추억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프랑스군 참호에서 한 병사가 일어나 아름다운 목소리로 “오 거룩한 밤 별들 반짝일 때 거룩한 주 탄생한 밤일세”라고 찬양했습니다. 이에 질세라 독일군 참호에서도 한 군병이 찬양했습니다. 이렇게 양쪽에서 두 사람이 대표로 찬양하자, 양국의 온 군병들이 총칼을 내려놓고 함께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군병들은 전쟁터에서 눈물을 흘리며 찬양하면서 성탄절의 감격을 느꼈습니다. 그 찬양으로 전쟁은 휴전이 선포됐고, 지금도 양국은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희망이 없고 평화가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성탄절은 온 인류에게 가장 기쁜 날입니다. 가장 큰 복을 받게 된 날이기 때문입니다. 구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 죄에서 구원을 얻게 되었으며, 모든 저주를 속량 받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었으며, 이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구주 성탄일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구원의 기쁜 소식을 온 천하에 전파하여 이 땅에 참 평화가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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