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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1장

가장 큰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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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7 16:06 조회3,3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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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복


가장 큰 복
2010년 10월 01일(금요철야)
본문 / 누가복음 1:8~16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아주 기뻐하십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마지막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해놓으시고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이 창조되었을 때는 하늘과 땅을 비롯한 만물이 모두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온 세상이 낙원과 같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창조되어 있었습니다.

이 세상과 만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으니까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것은 내 것이니 손대지 말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사람에게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나,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내가 너희에게 이것을 다 맡길 테니 힘껏 사용하고 누리면서 살아라, 마음 놓고 자유롭게 사용하고 다스리면서 살아라.”는 의미입니다.

태초에는 사람이 아담 하나 밖에 없으니까 천지 만물이 모두 아담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은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아담이 받은 복을 상상해 십시오. 아담을 위해 하나님께서 만들어놓으신 온 우주와 만물을 보면 하나님의 손이 얼마나 크신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색한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달라고 할 때, 아까워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아담은 하나님께 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위해 일방적으로 모든 것을 예비해주셨습니다.
아담에게 필요한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미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역대하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에게 세상 사람들이 받고 싶어 하는 모든 복을 주셨습니다. 솔로몬은 그 복을 달라고 구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나라가 너무 크고 백성이 많으니까 자기가 도저히 옳고 그름을 일일이 분별하여 올바른 재판과 판단으로 올바르게 다스릴 능력이 없었습니다.
솔로몬은 기브온 산당에 가서 하나님 앞에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그 날 밤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주랴 너는 구하라(대상 1: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솔로몬은 하나님께 세상의 복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주는 이제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이 백성 앞에서 출입하게 하옵소서(대하 1:10)”라고 하나님께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영광도 주리니 네 전의 왕들도 이런 일이 없었거니와 네 후에도 이런 일이 없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그에게 주셨습니다. 부귀영화와 모든 축복을 다 주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이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도 엄청나게 주신 하나님, 솔로몬이 달라고 하지 않았는데 솔로몬에게 넘치게 복을 주신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복을 주시면 복을 받은 사람에게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덮어놓고 복을 달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복을 받은 만큼 책임도 그만큼 큽니다. 세상 복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받은 세상 복이 복이 아니라 화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권세와 재물과 부귀영화를 주시고 모든 것을 주셨다면, 하나하나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면, 타락하고 죄 짓게 되어 잘못된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제가 기도하다가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다윗과 같은 왕이 되지 않게 해주신 것이 감사하고, 솔로몬과 같은 권세를 주시지 않으신 것이 감사합니다.
다윗이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목욕하는 여인을 보고 데려오라고 명령하여 죄를 지었겠습니까. 평범한 사람은 마음속으로는 별 생각을 다 하겠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합니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굉장한 권세가 있었기 때문에 마음속에 있는 잘못된 생각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솔로몬이 왕이 되지 않았다면, 여자를 천 명이나 얻었을까요. 그러니까 권세나 명예나 재산이 많을수록 책임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지 않는 한 그것은 자기에게 오히려 죄만 짓게 하고 타락하게 만들뿐입니다.

수영로교회를 개척한 후 날마다 수영로터리를 돌면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저를 위해서 준비한 것이 얼마든지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었습니다. 제가 감당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감당할 수도 없는데 솔로몬처럼 엄청나게 받기만 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그 후로는 달라고 기도는 하지 않고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지금도 받은 축복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주고 싶어 하시는데, 제가 감당하지 못합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해서 복을 더 주시기 원하십니다. 여러분을 위해 준비해놓으신 것이 많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도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느냐 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않는다면, 세상 복을 아무리 받아도 쓸데없습니다. 세상 복을 받을수록 교만해지기만 하고 죄만 지을 뿐입니다.

이 세상의 복을 받는 것보다 더 큰 복은 바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는 복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입니다. 천국 백성이 되는 복입니다. 영생복락을 누리는 복입니다. 이 복은 솔로몬이 받은 세상 복보다 더 귀한 복입니다. 재벌이 되는 복보다 더 귀합니다.
에베소서 1장에 보면,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성도들이 받은 복을 가리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라고 했습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은
첫째,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택해주신 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 사람으로 택해주셨습니다.
둘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모든 죄를 대속해주신 복입니다.
셋째, 성령을 보내주셔서 성령을 모시고 살게 된 복입니다.
성령을 받는 복은 창세 전에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만 받는 복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3장 48절에 보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사람들에게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예수님을 믿게 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에게 성령께서 찾아가셔서 그 사람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게 하시고, 그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천국 백성이 되게 하십니다.

전도하다보면 복음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예수를 믿고 영접하는 순간은 솔로몬이 받은 복보다 더 큰 복을 받는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전도할 때,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겠다고 따라왔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에게 솔로몬보다 더 큰 복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사람에게 엄청난 복을 나누어 주는 자가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것은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택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에게 성령께서 오셔서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 반드시 예수님을 믿게 되어있고, 반드시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는 복은 세상의 복보다 귀하고 큰 복이지만, 우리가 반드시 받아야 할 더 큰 복이 있습니다. 바로 은혜 충만한 성도가 되는 복입니다.
믿음이 크든지 작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았다고 해서 누구나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어떤 믿음으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하나님 앞에 섰을 때의 모습이 다릅니다.
영광 중에 구원의 복을 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구덩이에서 끄집어낸 것과 같은 비참한 모습으로 겨우 구원 받아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한편에 있던 강도가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여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눅 23:42)”라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구원받았으나, 평생 나쁜 짓만 했습니다. 죽기 전에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았을 뿐입니다. 그런 사람과 사도 바울이 어떻게 똑같을 수 있겠습니까. 천국에 가서 복락을 누려도 차이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 1~3절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를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 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린도교회에는 교인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보니 은혜 충만해서 신령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대다수가 은혜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신령한 자를 대함과 같이 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육신에 사로잡혀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 즉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 젖먹이 신자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밤낮 시기하고 분쟁하는 등 문제투성이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 중심으로 살지 않고 사람을 따라갔습니다. 사람을 따라 줄을 섰습니다. 사람을 따라 줄을 서면, 교회는 항상 시끄럽습니다.
교회에서 어떤 일이 생겨도 사람을 따라가지 마시고 예수님만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만 따라가면 저절로 하나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신령한 자가 있고 육신에 속한 자가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 즉 육신에 속한 젖먹이 신자들, 사람 따라 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저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 질투하고 분쟁하다보니 교회가 편안할 날이 없습니다.
지구상에 모든 교회가 그렇습니다. 은혜 받은 신령한 자는 소수이고, 대다수가 젖먹이 신자입니다. 그러니 항상 문제가 있습니다.

젖먹이 신자는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자기중심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기복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복을 받기 위해 일을 행하는 것은 기복신앙입니다.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 복은 따라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복은 따라옵니다.
젖먹이 신자는 자기 기분에 따라 예수님을 믿습니다. 기분이 좋으면 헌금하고, 기분이 나쁘면 헌금하지 않습니다. 기분이 좋으면 교회에 나오고, 기분이 나쁘면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사사기 21장 25절에 보면,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말씀의 법을 따라야지,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하면 안 됩니다.

젖먹이 신자는 믿음이 작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작습니다. 그래서 감사생활에 아주 인색합니다. 수고하기를 싫어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은혜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왜 은혜를 받지 못합니까? 기도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생활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는 사람은 반드시 은혜를 받습니다. 은혜 받은 만큼 믿음이 자랍니다. 믿음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주님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위해 수고하기를 즐거워하고, 주를 위해 충성하는 일꾼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되 큰 은혜를 받아 신령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즐거움이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즐거운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일 성수하는 것이 즐거운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생활이 즐거운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헌금하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배 때마다 예배를 즐거워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양할 때마다 찬양을 즐거워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복 중에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는 복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세례 요한이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세례 요한은 세상의 복은 별로 받지 못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가난했습니다. 가죽옷을 지어 입었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30년 밖에 살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순교했습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 정말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은 사람입니다.

본문 누가복음 1장 14~17절에 보면,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에 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 1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태어나서 순교할 때까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는 깨끗하게 살았습니다. 오직 주님만을 위해 쓰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더 위대한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장 2~3절에 보면,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세례 요한이 그 일을 할 것을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습니다.

마가복음 1장 6~8절에 보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고 가록되어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예수님을 알려서 예수님께서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세례 요한은 주의 길을 준비하는 일을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복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요셉과 같은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근으로 죽을 뻔할 때 애굽 고센 땅으로 데리고 와서 얼마나 잘 먹고 잘살게 했는지 번창해서 나중에는 수백만 명으로 늘어서 애굽 사람들이 위협을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통하여 그 일을 하셨습니다.
흉년으로 굶어 죽을 수밖에 없을 때, 애굽 사람은 물론이요 가나안 땅과 모든 세계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엄청난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 하신 것입니다.

모세를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끄집어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중요한 일에 쓰임받았습니다. 광야 40년 동안에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도 가르쳐주고 하나님께 섬기고 제사하고 살아야 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모세와 같이 큰 일을 한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아무나 이렇게 쓰임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 시대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다 점령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지어 바칠 마음을 주셔서 성전을 짓기 위해서 준비를 했습니다. 설계도와 필요한 모든 금은보화와 돌과 나무와 모든 것을 준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쓰임 받았습니다.
성경을 연구해 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은 사람은 적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는 것은 특별한 복입니다.

사도 바울은 처음에는 예수님을 몰랐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바울은 모든 것을 배설물과 같이 버리고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고 복음만 전하다가 순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웠습니다. 많은 영혼을 구원 받게 했습니다. 자신이 세운 교회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것을 오늘날 우리가 읽습니다.
사도 바울이 기독교에 세운 공로는 어마어마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아주 특별히 쓰신 사람입니다.

이 복을 받는 비결을 말씀드릴까요? 이 복은 전도하는 사람들이 받습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이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하고 구원받게 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두 손 놓고 있어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꿈을 통해 찾아가시던지 어떤 방법으로든 예수님을 믿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행하실 때,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게 하는 일 자체는 하나님께서 하시지만, 우리가 열심히 전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그 일을 이루십니다.
하나님께서 다 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전도한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는 그가 일한 대로 상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구원 받게 하는 귀한 일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요,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통해 이 일을 이루십니다. 그리고 전도하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십니다.

무디는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했지만,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그는 전도를 열심히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의 능력을 주셔서 그로 하여금 집회를 잘 인도하게 하셨습니다.
무디를 통해 구원받은 사람들이 적어도 백만 명은 된다고 합니다. 무디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인데, 무디의 입을 통해서 전하는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상은 무디가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에 쓰임 받는 복,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는 복보다 더 큰 복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고린도전서 3장 5~9절에 보면,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과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상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이 구원 받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고 하나님이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오시는 그 날까지는 완성될 것입니다. 한사람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구원 받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합니다.

복음을 전하기도 하고 목회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고, 믿음이 자랄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셔야 심은 것이 자라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에 동역한 사람들은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 일’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을 모두 구원하는 일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영혼 구원하는 일을 끝까지 하는 사람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에 가서 영광을 얻고 큰 자가 된다면, 영원히 영광을 받고 영원히 큰 자가 됩니다. 세상 영광은 잠시 뿐이지만, 천국에서 받는 영광은 영원히 계속됩니다.
그러므로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충성하는 그 사람이 받을 상급과 영광은 매우 큽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 택한 백성을 구원하는 이 일을 우리에게도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2절에 보면,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왜 이렇게 명령하셨을까요?
첫째, 우리의 영적 건강에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도에 관심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고 열심히 하려고 하면,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지만, 그 일을 위해 헌신하는 자는 영적으로 건강한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시시한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아주 건강해집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통해서 많은 영혼이 구원받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쓰임 받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에게 상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상을 준비해놓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일하고 충성한 대로, 주를 위해서 산대로 상을 주시려고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마가복음 10장 29~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 여러 가지를 희생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백 배의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일시적으로 고난과 박해를 받을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 가면 면류관을 받을 뿐 아니라 땅 위에서도 복을 받습니다.

우리나라에 어려움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나라를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일어나게 하셔서 세계적으로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게 하신 것은 이 나라의 국민들이 마음이 착하고 올바르게 살아서가 아닙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나라가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게 해달라고, 영혼 구원하는 일에 쓰임 받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믿지 않는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어떻게 하면 예수 믿게 할까’라고 생각하고 기도하고, 시간을 내어 투자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쓰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임 받는 복은 귀한 복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사는 것이 힘들고 고생스럽지만, 사도 바울과 같이 우리가 충성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때문이요, 우리의 상급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고 고난이 많다 할지라도 기쁨으로 충성해야 합니다.

“아버지, 제가 여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제 자신을 위해 살고 싶지 않습니다. 세상의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다만 큰 은혜를 받게 하여주옵소서. 신령한 자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쓰임 받게 하여주시고, 성령의 도구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저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자가 많게 하시고, 나로 말미암아 교회가 부흥되게 하시고, 많은 사람들이 복 받게 해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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