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십자가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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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15 13:07 조회3,374회 댓글0건본문
예수님의 십자가의 교훈
예수님의 십자가의 교훈
2010년 03월 28일(주일예배)
본문 / 마가복음 15:33~39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33년 동안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에 대해 기록한 4복음서를 보면, 전체의 3분의 1이 예수님의 생애 중에서 마지막 한 주간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이나 부활에 관해서는 짧게 기록했고, 참 놀랍게도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일과 그때에 예수님이 당한 고난과 죽음에 대해서 기록한 것은 그 양이 많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여 온갖 거짓말을 동원하여 죄를 고소했지만, 그 어느 하나도 증명하지 못했습니다. 당시에 재판장이었던 빌라도 총독은 죄를 찾을 수 없고, 특히 예수님을 죽일 만한 죄는 더욱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대제사장들과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니까 빌라도는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라고 말했습니다(요 19:6).
그리고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하니까 유대인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요 19:12)라고 하자, 이 말을 듣고 빌라도는 겁이 났는지,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27~31절에 보면,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들은 침을 뱉고, 갈대로 예수님의 머리를 치며 끌고 갔고, 예수님에게 십자가를 지워서 골고다 언덕으로 끌고 가서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요 19:18).
예수님의 두 손과 발이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그 당시의 못은 길이가 18cm에, 지름이 1cm나 되는 대못입니다. 그 못이 손목에 박히면 그 고통은 펜치로 신경을 잡고 비틀어 뭉개는 고통과 비슷해서 사람이 그 고통을 이겨내기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발은 겹쳐진 채 십자가의 기둥에 고정되어 못이 발 중앙의 둘째 뼈와 셋째 뼈 사이에 꽂혔습니다. 그렇게 못 박아서 나무에 매달은 것입니다. 양손과 발이 잘리는 듯한 고통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나라 시간으로 금요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혀서 6시간 동안 십자가에 매달려 계시다가 오후 3시에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전, 약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사 53:5).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생생하게 보는 것처럼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2~24절에 보면,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보면 예수님이 받으신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 때문에 우리가 받은 축복이 얼마나 큰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대신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인은 죽어 마땅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어주심으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 사랑을 확증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32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고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무엇이 아까워서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시겠습니까.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형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 형벌은 반드시 고난을 수반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범한 죗값으로 형벌을 피할 수 없고, 무서운 지옥의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의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지옥의 고통을 우리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난 2000년 동안 기독교 역사를 보면, 십자가가 기독교를 상징하는 표시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현장을 실제로 목격했던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십자가가 너무나 소름끼치는 것이었기 때문에 십자가를 기독교의 상징으로 사용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후 4세기경에 로마의 콘스탄틴 대제가 환상 중에 십자가를 본 다음부터 십자가가 기독교를 상징하는 상징물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그 크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하나님 앞에 영광 돌려야 될 줄 믿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모든 저주에서 속량 받게 해주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구든지 율법대로 살지 않으면 그 범한 죄로 말미암아 이루 말할 수 없는 저주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죄 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대신 우리의 저주를 받으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죄를 속량해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인간 사회에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모든 저주를 받게 되었는데, 죽음, 질병 가난, 재난이 찾아와서 인간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가장 큰 저주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벽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를 원수가 되게 만듭니다. 죄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게 만듭니다. 이것이 가장 큰 비극이요, 고통이요, 저주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우리 대신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그 고통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막 15:34).
마가복음 15장 3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둘로 나뉘어 찢어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성소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있는 휘장을 말합니다. 성전 안에 있는 지성소는 지극히 거룩한 장소이기 때문에 아무나 들어갈 수 없고,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즉사했습니다.
다만,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씩 피를 가득 담아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이라도 피 없이 들어가면 죽었습니다. 그래서 전설에 의하면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갈 때는 몸에 끈을 매고 들어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대제사장이 그 안에서 죽으면 그 시체를 끌어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의 예복의 아랫단에는 은방울들이 달려있어서 움직일 때마다 종소리가 났습니다. 그 소리가 나지 않으면 죽은 것이기 때문에 끈을 잡아당겨서 그 시체를 끌어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신 지성소에 죄 많은 인간들은 아무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고,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갔다가는 다 죽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 쳐져 있는 이 성소 휘장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범죄한 인간 사이를 갈라놓는 죄의 벽을 상징하는 것이고, 또한 이것은 심판 주 하나님과 죄인 사이를 갈라놓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순간, 이 성소 휘장이 완전히 찢어지면서 둘로 나누어졌습니다. 갈라놓은 휘장이 통로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제 담대하게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3~16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어,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받게 되고, 따라서 모든 저주를 속량함을 받게 됩니다.
셋째, 예수님의 십자가는 믿는 자로 하여금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4절에 보면,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의 저주를 속량해주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복 중에서도 최고의 복,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약속해주셨습니다. 그것은 네 씨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 씨는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모든 인류가 죄를 대속받게 되고, 저주를 속량 받게 되어서 아브라함이 받은 그 복을 다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그를 믿기만 하면 그 복을 다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해서 예수님과 연합된 사람, 이제는 예수님께 속해서 예수님의 것이 된 사람은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복을 유업으로 받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3장 29절에 보면,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넷째, 예수님의 십자가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에게 본이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본을 보여주시면서 내가 십자가를 지는 것처럼, 너희들도 나를 따르려면 너희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전서 2장 20~21절에 보면,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바르게 살지 않으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사랑의 매, 징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바르게 살아도, 특별히 신앙을 지키면서 살고 예수를 잘 믿으려고 하면, 세상에서 손해를 많이 보고 박해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이 왜 이렇게 고난을 당하도록 허락하실까요? 믿는 사람들이 고난을 당하게 두시는 것은 이것이 우리에게 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4장 13~16절에 보면,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 때문에 욕을 먹고 고난을 당할 때 부끄러워하거나 괴로워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복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10절에 보면,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특별히 우리를 온전하고 강하게 만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예수님 때문에 고난당하는 것을 오히려 기뻐하며 즐거워할 줄 믿습니다. 오히려 영광으로 생각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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