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는 종으로 오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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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17 21:53 조회3,408회 댓글0건본문
섬기는 종으로 오신 예수님
섬기는 종으로 오신 예수님
2010년 12월 26일(주일예배)
본문 / 마가복음 10:42~45
본문 마가복음 10장 42~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섬기는 자가 되라는 교훈을 주십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임의로 주관하려고 하고, 권세를 부리며 군림하려고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크고자 하려면, 오히려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으뜸이 되기를 원한다면, 모든 사람에게 종 노릇 하려고 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 우리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섬기는 자가 되라고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고, 예수님 자신이 섬기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님은 모든 인류를 섬기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내어주시기까지 섬기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을 대신해서 죽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첫째,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깨닫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기에 우리 대신 죽어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을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기에 하나님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셔서 죽게 하셨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죽어주시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확증시켜주셨습니다.
둘째, 우리가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얼마나 귀하기에 우리를 살리기 위해 독생자까지도 아끼지 않으시고 내어주셨을까요? 우리가 얼마나 귀하기에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을까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아무렇게나 살다가 아무렇게나 죽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야 하고, 자기 자신이 존귀한 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존귀한 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존귀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존귀하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아들을 죽는 자리에까지 내어주셨을까요?
로마서 8장 32절에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아들까지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이 무엇이 아까워서 우리에게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말씀을 그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어디를 가든지 잘 섬기는 자가 되어서 섬기며 살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소원이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우리가 섬기며 살아야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양과 염소의 비유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를 잘 살피고, 그 말씀이 주는 교훈을 기억해야 합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양은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 천국에 들어가서 살게 될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킵니다. 염소는 교회에 다닌다 해도 지옥에서 영원히 형벌을 받게 될 사람을 가리킵니다.
제가 이렇게 해석한 것이 아닙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의 마지막 구절인 마태복음 25장 4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 즉 염소와 같은 사람들은 영원한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고, 그러나 양과 같은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게 된다고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양은 어떤 사람을 가리킵니까?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보잘것없는 사람,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사람들이 어려울 때에 도와주고, 먹을 것이 없을 때에는 먹을 것을 갖다 주고, 옷이 없을 때에는 옷을 갖다 주고, 목말라하면 물을 주고, 병들었거나 갇혀있을 때에는 돌봐주는 사람이 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예수님께 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5:34).
그들이 예수님께 “우리는 주님께 그렇게 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5:40).
그러면 염소는 어떤 사람을 가리킵니까? 그들은 누가 굶어죽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추운데 옷이 없어 떠는 사람이 있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누가 감옥에 들어가도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만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염소와 같은 사람입니다.
양과 염소는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자세히 봐야 둘의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염소는 양에게는 없는 뿔을 가지고 있습니다. 염소는 뿔을 가지고 여기저기 받습니다. 양에게는 악독함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얌전한 것 같은데, 한번 화가 나면, 얼마나 사나운지, 죽으라고 덤비고, 뒤집어엎으려고 합니다. 염소가 그렇습니다.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큰일납니다.
양은 아무리 많이 있어도 목자가 쉽게 몰고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염소는 한 마리라도 끌고 가기 힘듭니다. 목에 줄을 매고, 줄을 잡아당기면, 염소는 다리를 쭉 뻗고 끌려가더라도 절대 순순히 따라가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사나운 짐승과 순한 짐승이 있습니다. 순한 짐승은 사나운 짐승에게 잡아먹힙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순한 짐승은 씨가 말라 없어졌을 것이고, 사나운 짐승만 세상에 가득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비밀이 있습니다.
사나운 짐승은 순한 짐승을 잡아먹으며 사는데도, 씨가 말라 멸종하게 되는 이유는 성질이 사납고 악해서 자기들끼리 죽이기 때문입니다.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독수리를 기를 때, 어미 독수리가 먹이를 가지러 간 동안, 새끼 중에서 센 녀석이 약한 녀석의 머리를 계속해서 쪼아 죽여 버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외부에서 다른 동물이 와서 독수리의 새끼를 죽인 것이 아닙니다. 자기들끼리 죽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독수리는 계속 씨가 말라갑니다.
사자가 얼마나 사나운지 아십니까. 누군가가 자기의 영역을 침범하면, 몰려가서 물어뜯어 죽여 버립니다. 자기들끼리 죽입니다.
북한 사람만큼 센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북한 사람은 세계적으로 센 사람입니다. 그래도 북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인구가 줄어듭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누가 북한에 쳐들어가서 사람들을 죽인 적이 없습니다. 누가 괴롭히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악독하다 보니 서로 죽이기도 하고, 정치수용소에 사람들을 가두어서 굶겨 죽이기도 하고, 많은 사람이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자기들끼리 그런 일을 벌이는 것이지, 외부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악독할수록 자멸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이 비밀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왜 축복받고 잘되는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 뿐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미워하는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43~4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원수까지 사랑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에게 보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위해 기도해주고, 그가 잘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그를 축복할 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 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예수님께서 섬기는 자의 본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3장 13~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며 섬기는 일을 하신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아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처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섬기려 하기보다 섬김을 받으려 할 때가 많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회 안에는 섬기려고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섬겨야 한다고 아무리 많이 설교해도 소용없습니다. 귀를 막고 섬기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둘째,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교회에 다녀도 거듭나지 못하면, 생각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의 사고방식대로 살게 됩니다.
그래서 언제나 자기중심적이고, 세상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대접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권력을 가지고 사람들 앞에서 군림하는 것을 좋아하고, 자기 마음대로 다스리고 주장하며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거듭나게 되면, 반드시 변화됩니다. 거듭난 사람에게는 변화가 있습니다. 성품의 변화가 있고, 생각하는 것이 달라지고, 말하는 것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자기중심적으로 살던 사람이 남을 생각하게 되고, 세상중심적으로 살던 사람이 하나님 중심으로 살게 되고, 이기적이던 사람이 남의 유익을 생각하게 되고, 대접 받으며 사는 것보다 대접하는 것을 더 좋아하고, 더 귀하게 여기고, 남을 대접하며 사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자기주장을 하고, 자기 생각대로만 행동하던 사람이 변화되어서 성도들에게 본을 보이고, 성도들을 섬기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변화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둘째, 새 사람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4장 22~24절에 보면,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새 사람’은 외모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속사람이 변화된 사람을 의미합니다.
새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진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닮은 사람입니다. 질적 변화가 일어난 사람입니다.
질적 변화가 있는 곳에는 감동이 있습니다. 성도들이 질적으로 변화되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감동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은
첫째, 질적 변화가 없고, 오히려 세속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세상이 똑같아졌습니다. 사고방식이 똑같습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어떻게 세상의 빛이 되겠습니까.
둘째,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희생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많은 생명을 살립니다. 사랑은 세상을 천국으로 만듭니다.
천국은 사랑하는 사람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천국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천국이 아닙니다. 오히려 점점 지옥이 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사람은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는 곳은 지옥이 됩니다.
가정이 지옥이 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행복해야 할 가정이 왜 지옥이 됩니까? 자기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잘해주기만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누가 그것을 다 맞춰줄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맞춰주지 않으니 화가 나서 성질을 부리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싸우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지옥이 되어버립니다.
저는 제 아내에게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밥을 해주지 않아도 괜찮고, 반찬이 없어도 괜찮고,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괜찮고, 와이셔츠를 빨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아내에게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밤낮 바쁜 아내가 밥을 해주면, 황송하고 감사해서 아내에게 “여보, 고마워. 맛있게 먹었어.”라고 감사의 표현을 합니다.
아내에게 바라는 것이 없으니까 아내에게 원망할 이유도 없고, 불평할 이유도 없고, 불만도 없습니다. 오히려 ‘내가 어떻게 하면 아내를 편하게 해줄까. 아내를 기쁘게 해줄까.’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배우자가 자기에게 잘해주기만을 바라니까 불평하게 되고, 화가 나는 것입니다. 바라는 대로 채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물질문명은 과거 어느 때보다 발달했습니다만, 사람의 질은 떨어질 대로 떨어져서 이제는 짐승보다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교회 안에 많기 때문에, 교회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남을 섬기기보다 섬김을 받는 사람이 영웅이고, 성공한 사람이고,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출세해야 한다. 성공해야 한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라고 생각하고, 아등바등 살다 보니, 세상이 점점 살벌해지고, 인정이 메말라 지옥이 되어버립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의 생각은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 다른 줄 믿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집권자가 되어서 임의로 주관하고, 고관의 자리에서 권세 부리는 것을 영광이라고 생각하지만, 성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도들은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과 성도들의 차이점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법과 세상의 법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교회에서는 섬기는 사람이 더 존경받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사람이 어른 대접을 받을 것입니다.
섬김은 성도들의 의무입니다.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섬겨도 되고, 섬기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섬기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잘 섬길까, 어떻게 하면 이웃을 잘 섬길까’라고 생각하고, 섬기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돈을 버는 목적도 돈을 벌어서 많은 사람을 잘 섬기는 데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성공하려는 이유가 다른 데 있지 않고, 많은 사람들을 섬기려는 데에 두어야 합니다.
공부하는 이유, 출세하려는 이유도 이 나라 국민들을 잘 섬기려는 데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 출세해야 합니다.
교회의 직분을 받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직분으로 인해 목에 힘을 주고, 사람들 앞에 군림하려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성도들을 잘 섬기기 위해 직분을 받아야 합니다.
섬기는 사람이 많은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고, 섬기는 사람이 많은 교회가 천국과 같은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수영로교회가 은혜롭고 푸근하고 행복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묵묵히 섬기는 성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를 방문하는 교역자들을 통해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다른 교회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는데, 수영로교회에는 교역자들보다 더 헌신된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교회를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시간을 들이고 물질을 들여 헌신하는 모습에 교역자들이 감동을 받아서 “어떻게 해서 이렇게 잘 훈련되어있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된 것은 섬기는 분들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교회 내에서도 잘 섬길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부산 시민 전체를 잘 섬겨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해마다 러브부산캠페인을 통해 부산을 섬겨왔습니다만, 이제는 보다 더 적극적으로 부산 시민을 감동시키는 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부산 전체를 대상으로 섬길 때, 이것이 최고의 전도법이고, 부산을 복음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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