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당하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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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1 16:26 조회3,650회 댓글0건본문
고난 당하신 예수님
고난 당하신 예수님
2016년 06월 12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27:27~36
마태복음 2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 받으신 것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 자세하게 구체적으로 기록한 까닭을 자세히 생각해보았습니다.
첫째, 죗값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알게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죄를 범하면 고통이 있고, 심판이 있고, 죽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죄를 범합니다. 그리고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담대하게 죄를 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먹고 마시고 즐기다가 죽으면 끝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성경이 기록되던 시기에도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고 즐기자”라고 하며 먹고 마시고 즐기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사야 22장 12~14절에 보면, “그 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통곡하며 애곡하며 머리 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죽이고 양을 잡아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는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내 귀에 들려 이르시되 진실로 이 죄악은 너희가 죽기까지 용서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내일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니까 오늘 우리가 먹고 마시고 즐기자’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 받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반드시 멸망합니다. 두렵고 떨리는 말씀입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얼마나 고난을 받으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성경 기자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끊어버리고 거룩하게 살게 하시려고 자세하게 기록했을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알게 하시려고 자세히 기록했을 것입니다.
사랑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현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크신 사랑을 알게 된 사람들은 누구든지 주님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늘 주님께 감사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 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고, 주님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위해 살다가 주님 앞에 서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27장에 보면, 재판석에 앉아있던 총독 빌라도가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도록 결정을 내렸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27장 27~31절에 보면,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한숨도 주무시지 못하셨습니다.
그런데 로마 군인들은 새벽부터 예수님을 끌고 다니며 괴롭혔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피곤하셨겠습니까.
그러나 잔인한 로마 군인들은 채찍으로 예수님을 내리쳤습니다. 아마 이때 예수님의 몸 전체가 피투성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한숨도 주무시지 못하시고,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신 채, 재판을 받으시느라 여러 시간 끌려 다니시고,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시고, 채찍에 맞으셔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어떻게 골고다 언덕으로 가실 수 있으셨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힘이 전혀 없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여러 번 쓰러지셨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로마 군병을 채찍으로 예수님을 사정없이 때리고 “일어나라”고 재촉하며 예수님을 괴롭혔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없어지지, 힘이 나겠습니까. 본문 마태복음 27장 32절에 보면,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마 구레네 시몬은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 ‘오늘은 재수 없는 날이구나.’라고 원망 불평했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구레네 시몬의 온 가족이 예수님을 잘 믿었습니다. 그리고 시몬의 아내는 두 아들을 믿음으로 잘 길렀습니다.
마가복음 15장 21절에 보면,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몬의 아들이 알렉산더와 루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교회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로마서 16장 13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라고 썼습니다. 사도 바울이 아무에게나 이렇게 말했을까요.
우리 교회에도 교역자들을 사랑하고 선교사들을 사랑하고 지극 정성으로 그들을 대접하고 돕는 분들이 계십니다.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마다 한 가족처럼 대하며 정성껏 섬기시는 분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루포의 자녀들과 루포의 아내로부터 그렇게 대접 받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루포의 어머니를 가리켜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라고 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구레네 시몬의 두 아들과 온 가족이 교회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구레네 시몬처럼 억지로 고난을 당하든지, 자원하여 기쁨으로 고난을 당하든지 장차 주님 앞에 설 때에는 큰 영광과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생활하다 보면, 큰 짐을 져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원망 불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기뻐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롬 8:18).
예수님께서는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오후 3시에 운명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여섯 시간 동안 고통당하시다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사형제도는 페르시아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페르시아 사람들은 오르무즈(Ormuz)라는 신을 섬겼는데, 그 신에게 땅을 다 바쳤습니다. 그래서 페르시아 사람들은 땅을 신성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신성한 땅이 더러운 죄수들로 인해 더러워지면 안 되니까 죄수의 몸이 땅에 닿지 못하게 하려고 십자가를 세워서 죄수를 매다는 사형제도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사형제도는 페르시아에서 시작되어 아프리카의 카르타고로 갔고, 이것이 다시 로마에 전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로마에서는 아무나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지 않았습니다. 반란자들, 도망갔다가 다시 붙잡혀온 노예들, 아주 악독한 죄수들만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고 합니다.
십자가 사형은 먼저 죄수를 십자가 위에 눕게 하고, 두 손과 두 발에 못을 박아 몸을 나무에 고정시키고 몸을 묶은 후에 나무를 일으켜 세워서 여러 시간 동안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게 만드는, 가장 잔인한 사형 제도였습니다.
아무리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잠시 고통당하고 죽는다면, 고통이 한 순간에 끝나니까 견디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잠시 고통당하면 됩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두 손과 두 발을 십자가에 못 박히고, 뜨거운 햇빛을 받았으니 얼마나 목마르겠습니까.
온몸에서 피가 계속 쏟아집니다. 땀이 흘러내립니다. 몸에 수분이 모자라게 되니 목이 타는 듯합니다.
그런 고통 속에서 어떤 사람은 며칠이 지나도 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매달리신 십자가 좌우편에 매달려있던 강도들도 죽지 않아 나중에 다리를 꺾어 죽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채찍에 많이 맞으셨고, 고통을 많이 당하셨기 때문에 빨리 돌아가셨습니다.
십자가 사형은 가장 잔인한 사형 제도였습니다. 유대인 저술가 클라우스노는 “십자가 처형은 인간이 복수의 수단으로 고안한 방법 중에 가장 지독하고도 가장 잔인한 사형 제도였다”라고 말합니다.
마태복음 27장 4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으신 후에 운명하셨습니다.
육신의 고통도 크지만,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고통이 너무 커서 예수님께서는 크게 소리치셨을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6~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지만, 금방 죽었습니까? 금방 죽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담은 930년을 살았습니다(창 5:5).
우리는 죽음에 대해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죽음에는 세 가지 죽음이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에서 영혼이 떠날 때, 육신이 죽습니다.
둘째,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떠나는 순간, 하나님 없이 사는 인간은 영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서 이런 저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로는 죽은 영혼입니다.
셋째, 영원한 죽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국에 계시지만,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영혼은 지옥 불에 가서 영원히 고통당하며 살게 됩니다. 이것이 영원한 죽음이요 영원한 멸망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범한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고 지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보다 큰 고통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모두 죄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고, 지옥에 들어가서 영원히 멸망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흘 만에 부활하셨지만, 얼마 동안이지만,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아 큰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무 고통스러우셔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고통 받으심으로 우리의 죗값이 모두 지불되었고, 죄를 모두 사함 받았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7장 54절에 보면,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시는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지켜본 백부장과 사람들이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반드시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못된 짓을 했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빌라도 총독의 명령에 따라 로마 군병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못 박아 죽이는 일을 책임진 사람인데, 오히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로 알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하나님을 알게 되고 구원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는 기록되어있지 않지만, 누가복음 2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을 때에 양편 십자가에 달려있던 두 강도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9~43절에 보면,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구원 받은 강도에 대해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강도는 회개한 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강도는 자신이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자신은 고통 속에 죽는 것이 당연하다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회개한 자의 마음입니다.
이 강도는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강도는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죽지만, 예수님께는 옳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죄를 지은 분이 아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이 강도는 예수님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이 강도는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신 것을 알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면 이 땅에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강도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비방한 강도를 꾸짖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에게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강도는 절망하지 않고, 예수님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겸손하게 간절하게 말했습니다. 이 모습을 통해 이 강도는 믿음 있는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범한 죄가 많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순간,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강도는 십자가에 매달려있던 몇 시간 동안 변화되어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강도에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진실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회개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그리스도이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아무리 죄가 많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 있다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주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증거입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아버지, 살려주세요.”라고 기도하세요. 가룟 유다처럼 죽지 마세요.
하나님께서는 이 강도처럼 “나를 기억해주옵소서.”라고 주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 강도는 믿음이 보잘것없었지만 구원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숨지신 후, 예수님을 지키던 백부장과 병사들은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마 27:54)”라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들은 어떻게 이런 상황 속에서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영접했을까요? 이것에 대한 해답은 마태복음 16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5~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것을 알게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베드로처럼 하나님께서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은 반드시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음으로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요한복음 1장 10~13절에 보면,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예수님을 믿지도 않고, 영접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처럼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것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믿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구원 받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임하시면, 성령의 감동을 받으면, 신령한 눈이 열립니다. 계시라는 말을 원어로 살펴보면, 비석을 덮어놓은 천을 벗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계시를 받는 것은 가려져있던 것이 벗겨지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알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영접하고 믿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요한복음 6장 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끌어주셨기 때문에 예수님께 나아온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것도 은혜요, 믿음으로 구원 받은 것도 은혜입니다. 만일 행위로 구원 받는다면, 구원 받을 자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완전히 대속 받았습니다. 과거의 죄, 현재의 죄, 그리고 앞으로 범하게 될 죄까지 대속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속죄의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지성소가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순간, 죄는 모두 해결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속죄의 제사를 드릴 필요 없습니다.
마태복음 27장 51절에 보면,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순간,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둘로 찢어졌습니다.
이 휘장은 죄인들로 하여금 성소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설치해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휘장이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죄가 아무리 많아도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구원 받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휘장이 없어졌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에는 속죄의 제사를 더 이상 드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린 양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의 죄가 대속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양을 잡아 제사 드리지 않습니다. 속죄의 제사가 없어졌습니다. 속죄의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므로 이제는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됩니다.
오늘날과 같이 죄악이 가득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성도들은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항상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본문의 말씀을 자주 읽고 묵상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 뿐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산다면, 택함 받은 사람은 모두 예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사랑을 전해 많은 사람들을 구원 받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때, 우리의 신앙은 더욱 건강해질 것입니다. 교회는 더욱 부흥될 것입니다.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장차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칭찬과 상급과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의 고난당하심을 묵상하며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주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시간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말씀을 자주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잠시도 잊어버리지 않게 하시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며 여생을 살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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