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도의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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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1 16:22 조회3,360회 댓글0건본문
빌라도의 재판
빌라도의 재판
2016년 05월 29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27:11~26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피부색에 따라 백인도 있고, 흑인도 있고, 황인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별별 사람들이 있지만, 이 세상 사람들은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와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고 구원 받지 못한 마귀의 자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볼 때, 이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인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우리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일 것이다.’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주일을 잘 지키고, 십일조 생활을 철저히 하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틀림없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사람일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교사로 봉사하거나 집사, 안수집사, 권사, 장로 등의 직분을 가진 사람을 보면, ‘저 분은 틀림없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일 것이다.’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마태복음 7장 22절 이하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권능을 많이 행한 사람을 보면, 사람들은 ‘저 사람은 틀림없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아 천국에 가서 면류관을 받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것을 보고서는 사람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을 보면, 안식일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작은 것까지 십일조 생활을 철저히 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들은 1주일에 두 번씩 날짜를 정해놓고 금식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들이여(눅 11:42, 4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외식하는 너희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누가복음 11장 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가리켜 믿음을 버린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겉으로 보면,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들은 믿음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믿음을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마태복음 7장 22~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주님과 상관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겉모습만 보아서는 참으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이라고 쉽게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확실히 알 수 있을까요? 참으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요?
다른 것을 보지 마세요. 하나만 보면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가, 하나님께 대한 사랑, 주님에 대한 사랑이 없는 사람인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고 확실한 증거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얼마나 있습니까?
그것이 여러분의 믿음의 분량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클수록 믿음이 큰 사람입니다.
자신의 믿음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려면, 내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있는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는 설교를 듣다가 “목사님, 죄송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작아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겨자씨는 씨 중에서 가장 작습니다. 돋보기로 봐야 보일 정도로 작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겨자씨만큼만 있어도 못할 것이 없습니다.
믿음이 산 같은 사람만 구원 받는다는 성경구절은 없습니다. 믿음이 완전해야 구원 받는다는 성경구절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못할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겨자씨만큼 밖에 없어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확실하다면, 여러분은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마귀가 뭐라고 하든지,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주변 사람들이 나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 부족함이 나에게 있어도, 주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그래도 나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다’라고 믿으세요.
사마리아의 수가 성의 여인을 보세요. 과거에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함께 사는 자도 자신의 남편이 아니고 동거인에 불과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이런 여자는 정상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수가 성의 여인은 메시아와 하나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록 자신은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형편이지만, 수가 성의 사람들에게 가서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요 4:29)”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했더니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았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께 좀 더 머물러 주기를 원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 이틀을 더 머무셨습니다.
죄악의 수렁에 빠져있어서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절망적이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절대 버림 받지 않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끝까지 붙잡으세요. 사탄은 여러분을 지옥으로 보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과 세리들을 가까이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과 세리들이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보다 천국에 먼저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1:31).
서기관, 제사장,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믿으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들에게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리와 죄인들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형편없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을 따르고, 주님을 대접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가리켜 “세리와 죄인의 친구(마 11:19)”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형편없다 할지라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하늘나라의 백성입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주님을 사랑하세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 마세요.
그리고 하나님을 찾으세요. 주님을 찾으세요. 주님을 부르세요. 주님께 부르짖으세요. 염치불구하고 부르짖으세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을 때에 양쪽에 있는 십자가에 매달린 강도를 보세요. 두 강도 모두 처음에는 똑같이 예수님을 비난했지만, 그 중에 한 명은 십자가에 매달려있던 몇 시간 동안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 예수님을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비난하는, 다른 편 강도에게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눅 23:41)”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너와 나는 죄를 많이 범했기 때문에,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이 당연하지만, 예수님은 의로우신 분이다. 의롭지 않으신 것이 없다. 죄가 없는 분이시다.”라고 예수님을 변호했습니다. 이것은 주님에 대한 사랑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께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눅 23:42)”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주님을 찾았습니다. 주님께 부탁했습니다.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살 길이 열립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죄가 많아도,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빠졌다 할지라도 “주여, 저를 살려주옵소서. 주여, 저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라고 부르짖으며 주님을 찾는다면, 여러분은 절대 버림 받지 않고, 구원 받습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그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속죄제를 드릴 때에 자신의 죄를 사함 받기 위해 속죄의 양을 대신 바쳐 제물로 죽게 함으로 자신의 죄를 사함 받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가는 어린 양, 즉 속죄의 양이 되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려면, 누군가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잠언 16장 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지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평생 잊지 말고 기도해야 할 기도제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 저는 절대 악의 도구가 되지 않게 해주세요. 제가 다른 사람을 죽이거나 멸하지 않게 해주시고, 오히려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내고, 복을 나누어주는 일만 하게 하여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잊지 말고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히틀러는 6백만 명의 유대인을 죽였고, 전쟁으로 인해 수천만 명이 죽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전 세계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스탈린 한 사람으로 인해 수백만, 수천만 명이 죽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더 나았을 것입니다.
가정에서든 교회에서든 직장에서든 사회에서든 어디에서든 악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악한 일에 쓰임 받는, 어리석은 일꾼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것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동참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첫째, 대제사장 가야바와 그와 함께한 백성들의 장로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은
⑴ 예수님을 시기하는 마음이 이들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유대교의 종교지도자로,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타나시니 예수님께 모든 것을 빼앗겼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시기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죽이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성직자가 되면, 저절로 믿음이 좋아지고, 거룩하게 살게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은 오해입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거룩하게 살게 됩니다. 성직자가 되었어도, 성령의 은혜를 받지 못하면, 믿음이 자라지 않을 뿐 아니라, 외식하며 사는, 위선자가 되기 쉽습니다.
마태복음 2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마 23:13,15,23,25,27,29)”라고 말씀하시며 계속 책망하셨습니다.
전도사로서 일하기 전에는 믿음이 굉장히 좋고 훌륭했는데, 전도사가 된 후에는 완전히 달라진 사람이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예전에는 은혜만 받으면 충분했습니다. 예배에 참석하여 은혜 받고 봉사하고 충성하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전도사가 되고 나니 왜 그렇게 바쁩니까. 기도할 시간이 없습니다. 성경 볼 시간도 없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시달리다 보니 심령이 고갈되었습니다. 전도사가 되기 전에 은혜 받을 때가 그리워집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평신도였을 때보다 더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이전보다 몇 배로 더 부지런해야 합니다. 정말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저는 50년 이상 목회했습니다만, 목회하면서 기도시간을 점점 더 늘렸습니다. 성경 보는 시간을 더 많이 가졌습니다. 더 많이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거룩하게 살 수 없고, 믿음으로 살 수 없습니다.
⑵ 그들이 어둠 속에 있을 때에는 그들의 죄가 드러나지 않았는데, 빛 되신 예수님께서 오시니 그들의 죄와 허물이 다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칫하면 백성들로부터 버림받거나 매장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예수님을 죽여 없애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회개하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이렇게 악한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그들 속에 하나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마귀의 자녀였습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악한 생각을 하고, 악한 행동을 했습니다.
둘째, 대제사장과 그 장로를 추종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대제사장과 장로가 시키는 대로 바라바를 놓아주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습니다.
수백, 수천 명이 그렇게 떠드니까 빌라도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들의 말에 따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주었습니다.
셋째, 빌라도 총독입니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빌라도는 아주 잔인한 사람이고, 너무 포악해서 많은 사람을 학살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로마 황제에게 고발되어서 잡혀 가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그 당시 로마 황제였던 티베리우스가 죽어서 재판이 무기한 연기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살함으로 생을 마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후에 그의 아내는 크리스천이 되었다고 합니다.
본문에 보면, 심판을 받아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이 예수님을 재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심판 받을 죄인이 대심판주 되시는 예수님을 재판한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죽을 만큼 죄를 범하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빌라도는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시기하여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바라바와 같은 강도도 아니고, 살인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악을 행하지도 않으셨고 착한 일만 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꿈을 통해 깨달은 아내로부터 “의인에게 해롭게 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무시해버렸습니다.
빌라도는 총독으로서 “예수님은 무죄하므로 석방한다”고 선고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그에게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보다 사람을 기쁘게 하려 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주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큰 죄를 범했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27장 21~25절에 보면, “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백성의 대답은 아주 무서운 말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죗값을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려달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무서운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도 모르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해서는 안 될 말을 함부로 말했습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말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다 듣고 계시는데, 하나님께서 맹세하셨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말하는 대로 되게 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이것도 모르고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을 함부로 합니다. 저주 받을 소리를 함부로 합니다.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과거에 몰라서 실수한 것이 있다면, “주님, 제가 몰라서 그랬습니다. 용서해주세요.”라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용서해주시고, 기억하지도 않으시고, 도말해주실 것입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말한 대로 되었습니다.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이들은 그 죄를 짊어지고 있습니다.
6백만 명이 죽을 때에도 얼마나 비참하게 죽었습니까. 남녀가 벌거벗은 몸으로 가스실에 들어가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시체를 가지고 별 짓을 다 했다고 합니다.
지옥에 가기 전, 세상에서 지옥을 톡톡히 맛보고 멸망했습니다. 그래도 유대인들은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사는 길은 이제라도 예수 믿고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아직도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모르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배척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날이 너무나 가까웠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을 주님께서 직접 찾아오셔서 예수 믿게 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회교국가인 중동의 나라에서는 전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 사람들은 복음을 들어보지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 있습니다. 선교사들이 전도할 수 없으니까 그들은 복음을 들을 길이 없습니다. 주님을 알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직접 그들을 찾아가십니다. 꿈을 통해 찾아오시고, 직접 찾아오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비롯한 중동의 여러 나라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제가 러시아에 가서 보니 러시아에도 성령 충만하여 주님을 위해 사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조폭 출신이요, 이전에 마약 환자였고, 감옥에서 생활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직접 그들에게 찾아오셔서 예수님께서 메시아시요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해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들이 목숨 걸고 전도하고, 주님을 위해 사는 것을 제가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웠습니다.
이제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님을 알게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죄를 회개하게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잠시도 살 수 없음을 알게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은 특별히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항상 감사하면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붙잡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평생에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끝까지 붙잡게 하여주옵소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버림받지 않을 줄 믿사오니 끝까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과 동행하며 살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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