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한 피를 판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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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5-17 20:54 조회3,387회 댓글0건본문
무죄한 피를 판 자
무죄한 피를 판 자
2016년 05월 15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27:1~10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다가 세상을 떠나는가가 참 중요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삶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유익을 주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가 천국에 가서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칭찬을 듣고 상급을 받는 삶입니다. 이렇게 사는 삶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요, 복된 삶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욕심 때문에 평생 도둑질을 하며 살다가 은 30냥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 넘겨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는 큰 죄를 범했습니다.
후에 가룟 유다는 자신의 죄를 스스로 뉘우치고 목매어 죽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어리석게 살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이보다 불행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가룟 유다에 대해 기록된 것이 많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두 명씩 짝지어 전도하러 보내셨을 때에는 가룟 유다도 전도하러 갔습니다. 가룟 유다는 다른 제자들과 똑같이 행동했습니다.
요한복음 6장 64절에 보면,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평소 교회에 열심히 나오고, 직분자로서 열심히 봉사하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 믿지 않는 사람인지 주님께서는 다 알고 계십니다.
지금은 괜찮은 것처럼 보이지만, 가룟 유다처럼 마지막에는 배신하고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것 같은 행동을 할 자가 누구인지 주님께서는 처음부터 다 알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12장 6절에 보면,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렸을 때, 가룟 유다는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라고 말하며 화냈습니다. 가룟 유다는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해서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의 속셈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평소에도 가룟 유다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사용하는 돈궤를 맡아서 관리하면서 그 돈을 훔쳐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부어드린 향유를 3백 데나리온을 받고 팔아서 관리했다면, 아마 가룟 유다는 기름 값의 반 정도를 손댔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의 속셈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잘못된 사람이었지만, 양심이 전혀 없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 총독 앞에서 재판 받으실 때, 만약 가룟 유다가 예수님의 증인이었다면,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 아주 불리하고 예수님께 큰 타격이 되는 증언을 했을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모두 들었고, 행하신 것을 모두 보았습니다.
만약 가룟 유다가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빌라도 앞에 나아가 증언했다면, 가룟 유다의 증언은 굉장한 효력을 발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증인으로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의 양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는 돈에 눈이 어두워서 은 30냥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넘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거룩하시고 악의가 없으시고 순수하시고 결백하시고 진실하신 분인 것을 가룟 유다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룟 유다는 거짓 증거를 할 수 없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된 것을 보고 양심이 괴로웠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27장 3~5절에 보면,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가룟 유다가 말한 대로, 예수님은 죄와 허물이 전혀 없는 분이십니다. 가룟 유다가 보기에도 예수님에게서는 허물을 찾으래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죄인 된 우리를 위해 우리 대신 죽어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확증시켜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 대신 죽어주셨습니다.
로마서 5장 10절에 보면,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14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려 죽는 사람을 가리켜 저주 받은 사람이라 말하는데, 예수님께서 저주 받은 사람처럼 십자가를 지신 것은 저와 여러분이 저주 받을 짓을 많이 했기 때문에 우리가 저주를 받아야 하는데, 우리가 받아야 저주를 속량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에게는 저주가 없습니다. 어려움을 당하고, 되는 일이 없고, 병이 들고, 고생을 많이 해도, 죽게 된다고 해도 ‘저주 받은 건 아닌가’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순간, 우리는 모든 저주를 속량 받았습니다. 그 뿐 아니라,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성령을 약속해주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가 가룟 유다를 통해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회개는 빨리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에게 여러 번 경고하셨습니다. 그리고 회개할 기회를 여러 번 주셨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자살해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다 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평소 가룟 유다가 돈궤에 있는 돈을 훔치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겉을 보면, 가룟 유다가 다른 사도들과 같아 보이지만, 그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알고 계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7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를 가리켜 ‘마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겉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인 것 같은데,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를 가리켜 ‘마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를 가리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맡기신 열두 제자를 예수님께서는 잘 돌보셨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명은 ‘멸망의 자식’이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유월절 성찬 때에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길 것을 아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 21~24절에 보면,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근심하며 예수님께 “주여 나는 아니지요”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가룟 유다가 예수님과 함께 그릇에 손을 넣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확실히 아시고 가룟 유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가룟 유다는 떡 조각을 받은 후에 나갔습니다.
요한복음 13장 27절에 보면,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언제 가룟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지만, 가룟 유다가 회개하지 않았을 때, 가룟 유다가 완악한 마음을 가졌을 때,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만들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있었지만, 돈궤에 있는 돈을 훔치고, 나중에는 은 30냥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넘겼습니다.
그가 이렇게 된 것은 그가 어리석은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가룟 유다라면 평생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돈궤에서 돈을 훔친다고 해도 몇 푼이나 되겠습니까. 그러나 가룟 유다는 어리석은 짓을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돈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넘기려고 생각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가룟 유다는 왜 이렇게 어리석게 생각했을까요? 요한복음 13장 2절에 보면,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은 30냥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넘기려는 생각을 사탄이 가룟 유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는 평소에 잘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평소에 생각하는 대로 우리의 모습이 달라집니다.
좋은 생각을 하면서 살면, 마음도 좋아지고, 좋은 말을 하게 되고, 좋은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나쁜 생각을 하면서 살면, 고약한 마음을 갖게 되고, 고약하게 말하게 되고, 고약하게 행동하게 되고, 고약한 사람이 됩니다.
지혜로운 생각을 하는 사람은 지혜로워집니다. 반면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됩니다. 생각한 대로 됩니다.
평소 우리의 생각 중에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생각, 성령으로 말미암은 생각이 있는가 하면, 마귀가 주는 생각도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마귀가 주는 생각대로 살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마귀가 주는 생각이 있습니다.
마귀가 주는 생각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하며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마귀가 주는 생각을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마귀가 주는 생각을 마음에 품으면 안 됩니다. 마귀가 주는 생각은 우리에게 엄청난 불행을 가져다줍니다.
잠언 4장 23절에 보면,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언제나 좋은 생각을 하시고, 좋은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좋은 꿈, 좋은 소원, 좋은 비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좋은 것을 담으시기 바랍니다.
작은 죄라도 회개하지 않고 반복해서 짓다 보면, 습관이 됩니다. 그리고 마음이 완악해져서 죄인 줄 알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뻔뻔하게 살아갑니다. 양심이 마비되어 영원히 회개하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빨리 회개할수록 좋습니다. 늦었다고 해도 뒤늦게라도 깨달았다면, 깨닫는 순간 회개하면 됩니다.
그러나 죄를 깨닫고, 죄를 알면서도 ‘나중에 회개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며 회개하기를 미루다보면, 회개하지 못하게 됩니다. 회개하기를 미룰수록 회개할 가능성이 점점 없어집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오늘 갑자기 세상을 떠날지도 모르기 때문에 죄를 깨닫는 즉시, 죄를 뉘우치는 즉시 회개하는 것이 좋습니다.
분쟁이 있는 교회를 보면, 서로 미워하고 싸웁니다. 그러다 보면, 죄를 많이 범하게 됩니다. 성도들이 나뉘어서 떼를 지어 싸우기 때문에, 집사든 장로든 모두 분쟁에 휘말려있기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큰 죄를 범하고 있는가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은 채 살아가기 쉽습니다.
제 설교를 듣는 성도들은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는 그런 사람이 없으니까 걱정되지 않습니다만, 분쟁하는 교회가 아주 많습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가 드러나는데, 마귀의 자녀들은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불의한 짓을 행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요한일서 3장 15절에 보면,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음으로 미워하는 사람은 살인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영생을 보지 못합니다. 즉 구원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얼마나 미워합니까. 그리고 나쁜 말을 얼마나 많이 합니까.
마태복음 5장 44~4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표적이 나타납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제는 원수까지도 사랑합니다.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을 축복하며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이런 변화가 일어난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마태복음 6장 14~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제가 잘못한 것을 우리가 용서해야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형제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용서하지 않고 계속 문제 삼으면, 우리가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우리는 죄 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죄 사함을 받지 않으면,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죄가 있으면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에 보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모든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원수와도 화목해야 합니다. 불교를 믿는 사람과도 화평해야 합니다. 싸우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이슬람교도들과도 화평해야 합니다. 그들과 싸우면 안 됩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도 주님을 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천국에 못 간다는 의미입니다.
로마서 12장 18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원수와도 화목해야 합니다. 나를 괴롭히는 못된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와 싸우려고 하지 말고 화목해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9~21절에 보면,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주님께서 원수를 갚아주시겠다고 말씀하셨으니 갚아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원수 갚으려고 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원수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고, 원수가 목말라할 때에 마실 것을 주며 끝까지 사랑을 베풀면 됩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다녔던 교회에 분쟁이 참 많았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교회였는데, 갑자기 분쟁에 휘말렸습니다. 그래서 정신이 없었습니다.
저는 교회의 어른들을 존경했고 사랑했는데, 그분들이 갑자기 변해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 분쟁이 일어나니 그분들이 더 이상 은혜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가정과 직장, 사업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자녀들이 낙심하여 교회를 떠났습니다. 신학교에 다니던 학생들까지 공부를 그만둬버렸습니다. 존경스러웠던 형님들 중에 신학교에 간 분들이 많았는데, 다 공부를 그만두는 것을 보았습니다. 술 마시고 방탕하게 살면서 타락해버렸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죽는 사람이 생겨났습니다. 건강하시던 장로님께서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열심히 싸우시더니 회개할 기회도 없이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교회가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면 촛대를 옮기시겠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계 2:5). 에베소교회가 회개하지 않으니까 촛대를 옮기셨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에 가면 교회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교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사랑이 없는 교회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인 곳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교회도 아닙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를 보면, 교회 노릇을 못하는 교회가 많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교회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니 어찌해야 할지 의논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권사님 중에 한 분은 분쟁에 휘말리지 않고 말없이 덕을 세우셨습니다. 너무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권사님을 찾아갔습니다. “권사님, 어떻게 하면 좋아요. 교회가 왜 이렇게 됐을까요.”라고 어찌해야 할지 의논했습니다. 권사님께서는 제게 “정 선생, 왜 돌아다녀. 교회가 어려울 때에는 아무도 찾아가지 마. 입을 꾹 다물고 기도하기만 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권사님께서는 예배 시간이 되면 교회에 오셔서 예배드리고, 예배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가셨습니다. 아무도 만나지 않으셨습니다. 권사님께서는 입을 다물고 기도하셨습니다. 권사님께서는 기도대장이셨습니다. 교회를 위해 가슴을 치고 울며 기도하셨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돌이켜보니 다 부끄러움을 당하지만, 권사님께서는 천사처럼 존경받으셨습니다.
수영로교회를 개척한 후, 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입을 다물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에 주님께서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문제가 문제되지 않고, 오히려 좋은 일만 생긴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이렇게 좋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작은 죄든 큰 죄든 끊어버리지 않고, 끊어버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죄의 맛이 좋아서 죄를 버리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죄가 좋고, 죄가 주는 기쁨이 있어서 죄를 끊어버리지 못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죄가 주는 기쁨은 잠시 뿐입니다. 죄로 인해 찾아오는 고통과 고민, 부끄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깨달았을 때에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질질 끌면 안 됩니다. 잠언 29장 1절에 보면,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음대로 회개할 수 없습니다. 회개할 마음이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회개할 기회가 주어진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회개하고 싶고, 죄를 끊어버리고 싶지만, 원하지 않는 죄를 범하게 되어 괴로울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때에는 특별히 금식기도하며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세요. 그렇게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죄를 끊어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죄를 끊어버릴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했습니다. 그러나 통곡하고 회개함으로 용서받고, 훌륭한 사도로 살다가 순교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좀도둑 노릇을 하다가 은 30냥에 예수님을 팔아넘겼습니다. 나중에 다시 돌려줬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고 자살했습니다. 그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우리 성도들 중에는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이 한 분도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가룟 유다도 회개하면 되는데, 회개하지 않고 자살해버렸습니다.
아무리 큰 죄를 범했다 할지라도 베드로처럼 통곡하고 회개하면 용서받는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 우리의 죄를 도말해주십니다. 지체하지 말고 회개하세요.
이 말씀이 평생에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 성도들의 마음에 잘 새겨져서 한 사람도 가룟 유다처럼 망하는 자가 되지 않고 베드로처럼 회개함으로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다가 순교하는 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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