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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25장

양과 염소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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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1 14:43 조회3,6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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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과 염소의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

2016년 02월 21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25:31~46

 

2천 년 전,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만왕의 왕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고, 이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요한복음 5장 2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 심판을 맡기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10~11절에 보면,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반드시 이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본문 마태복음 25장 31~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천국에 갈 사람과 지옥에 갈 사람으로 나누어질 것입니다.

 

본문 마태복음 25장 34절에 보면,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나라입니다.

 

본문 마태복음 25장 35~4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축복하시는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5~3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잘 대접 받으셨습니다. 주님께 사랑을 많이 쏟았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 37~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의인’은 참 진실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직접 대접한 적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대접하고 싶어도 대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우리는 주님께 한 일이 없습니다.”라고 아주 진실하게 고백했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25장 4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는 사도 바울처럼 복음을 전하다가 헐벗고 굶주리고 목마르고 병들고 감옥에 갇혀 매를 맞는 등 어려움을 많이 당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에게 사랑을 베푼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께 사랑을 베푼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 참으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복음 전하는 사람을 존경하고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그들을 도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에 나오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한 사람은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사는 하나님의 종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업신여기고 무시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마태복음 10장 4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위해 사는 사도들, 주님의 제자들을 영접하는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 13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이 잘 곳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데, 그들을 영접해서 잘 곳과 먹을 것을 제공하는 사람은 예수님께 한 것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18장 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영접하는 마음으로 어린 아이를 영접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하물며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영접하는 마음으로 주의 종들을 영접했다면, 주님을 영접한 것과 같지 않겠습니까.

 

골로새서 3장 23절에 보면,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해서 주님께 하듯 해야 합니다.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주님께 하듯 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하듯이 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 마태복음 25장 41~4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장 11~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전도하러 제자들을 보내시며 제자들에게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집에 왔는데, 그들을 영접하지 않고,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있는 형제 중 한 사람을 사랑하는가 사랑하지 않는가를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사랑하지 않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에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우리가 의로운 일을 많이 했다고 해서 구원 받는 것은 아닙니다. 행위가 완전해서, 죄를 범하지 않고 깨끗하게 살았기 때문에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이유로 구원 받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가 없는 의인이라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오직 산 믿음으로 구원 받지, 죽은 믿음으로는 구원 받지 못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산 믿음인지, 죽은 믿음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행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이 산 믿음인지 죽은 믿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인가 아닌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가 믿음이 있는 사람인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믿음은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참으로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구원 받은 자녀라면,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믿음과 사랑은 정비례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사랑이 있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일수록 사랑이 많습니다.

 

누가복음 11장 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작은 것까지 십일조를 철저히 드렸지만,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렸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버렸다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23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작은 것까지 십일조를 철저히 드렸지만, 믿음을 버렸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종교적 행위를 보면, 그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형제를 사랑하는가 사랑하지 않는가를 보면, 하나님의 자녀인지 마귀의 자녀인지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보면, 자신이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마디로 ‘사랑하라’입니다. 로마서 13장 8~10절에 보면,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살아있는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대로 100% 완전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려고 합니다. 주님의 계명대로 살려고 합니다. 주님의 계명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3장 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계명입니다.

 

살아있는 믿음의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주님의 말씀대로, 주님의 계명대로 따르려고 합니다. 그런데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할 때가 많습니다(롬 7:19).

살아있는 믿음의 사람은 회개합니다. 주님 앞에 회개합니다. 매우 괴로워합니다. 주님께 죄송한 마음으로 회개합니다.

 

우리가 철저히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죄를 용서해주실 뿐 아니라, 성령의 선물을 우리에게 주십니다(행 2:38). 철저히 회개하는 사람, 죄 지은 것으로 인해 마음 아파하고, 주님 앞에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선물을 주십니다.

성령의 선물을 받으면, 권능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됩니다.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성령의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말하는 것이 다릅니다. 생각하는 것이 다릅니다. 행동하는 것이 다릅니다.

성령의 선물을 받으면, 성품이 달라집니다. 이기적이었던 사람이 달라집니다. 주님의 성품을 닮아갑니다.

 

에베소서 5장 8~9절에 보면,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전에는 어둠에 속해있었지만, 이제는 빛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빛의 자녀들처럼 살아야 합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습니다. 열매를 보면, 이 사람이 빛에 속한 사람인지 어둠에 속한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선물을 받으면, 그 사람에게서 성령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 보면,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 첫 번째 열매는 ‘사랑’입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 ‘사랑’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랑이 많아진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참으로 은혜 받은 사람이요, 성령을 받은 사람인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확실한 증거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 구원 받은 사람,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할 때, 믿음이 충만하고, 사랑도 충만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성령께서 함께하십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6~17, 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살게 하시고, 마귀와 싸워 이기게 하십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우리를 승리하게 해주십니다.

 

에스겔 36장 26~31절에 보면,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희를 모든 더러운 데에서 구원하고 곡식이 풍성하게 하여 기근이 너희에게 닥치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또 나무의 열매와 밭의 소산을 풍성하게 하여 너희가 다시는 기근의 욕을 여러 나라에게 당하지 아니하게 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너희 악한 길과 너희 좋지 못한 행위를 기억하고 너희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스스로 밉게 보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새 영’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면, 우리의 성품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살게 됩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진심으로 회개한 자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과거에 자신이 범한 죄를 생각하면 자신이 밉습니다.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면 ‘내가 나쁜 짓을 왜 그렇게 많이 했나.’ 마음이 아픕니다.

 

어떻게 원수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는 원수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하면, 원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보복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우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하면, 우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 축복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사랑의 영이 우리 안에 충만하면, 우리를 박해하는 자를 저주하지 않고, 오히려 축복해줄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에 보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모든 사람’에는 원수, 우리를 괴롭히는 박해자, 우리의 신세를 망쳐놓은 못된 인간도 포함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과 화평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도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과 어떻게 화평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하면, 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그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사랑하게 되기 때문에 그들과 화평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성품과 행실을 보면, 누가 양인지 염소인지, 누가 하나님의 자녀인지 마귀의 자녀인지, 누가 알곡인지 가라지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은 믿음으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영광의 날이요 기쁨의 날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거나 죽은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심판의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모든 민족을 모으고,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듯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사람과 영원한 불에 들어갈 자를 구분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복 받을 자들과 저주 받을 자를 구분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를 구분하십니다.

 

요한복음 1장 12~13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3~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가셨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는 그들 중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다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질문하셨습니다. 그때 시몬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베드로의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된 것은 사람이 가르쳐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알게 해주셨다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믿으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이들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죽은 사람은 하나님과 주님을 사랑하지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습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에 보면,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믿음이 죽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우리의 선행과 공로로 구원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습니다(엡 2:5).

예수님이 누구신지 똑바로 알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변하여 새 사람이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자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가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만이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우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 우리가 기도하거나 축복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도 은혜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것도 은혜입니다. 만약 행위로 구원 받는다면, 구원 받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의 노력이나 공로로 구원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 말은 우리의 행위가 올바르다고 해서 우리가 은혜 받고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고 행위를 무시하는 의미는 아닙니다. 성경을 오해하지 마세요.

 

구원 받은 자와 구원 받지 못한 자, 예수님을 믿는 자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행동하는 것이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의 행위가 올바르기 때문에 구원 받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의롭게 산다고 해도, 우리의 의를 하나님 앞에 내놓으면,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습니다.

아무리 바르게 산다고 해도 사람의 힘으로는 완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올바른 행위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행위가 아무리 올바르다고 해도 행위로 구원 받을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말씀대로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계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변화됩니다. 우리의 생각과, 말하는 것, 행동과 가치관, 성품이 달라집니다.

우리를 변화시키셔서 새 사람 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구원 받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 받았으므로 우리는 아무것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리시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이 말씀이 우리에게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행동이 완전하기 때문에 구원 받을 자는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알고 범한 죄, 모르고 범한 죄가 얼마나 많은지요.

그러나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변화되게 하셔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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