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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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26 10:26 조회5,688회 댓글0건본문
가장 큰 환난
가장 큰 환난
2004년 07월 09일(금요철야)
본문 / 마태복음 24:15~22
우리는 환난과 시험이 많은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보면, 환난과 어려움은 언제나 있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세월이 갈수록 환난과 시험이 심해진다는 것입니다.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마태복음 24장 21~2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각만 해도 떨리지 않습니까. 얼마나 큰 환난이기에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환난을 주장하시는 분이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하시고 전지전능하셔서 실수하시지 않으므로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 환난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말씀하십니다. 예를 들면 엘리 제사장과 같은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특별한 경우입니다. 이스라엘 왕들, 우상 숭배하는 왕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미리 경고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수난에 대해 개인에게는 미리 말씀하시지 않으시지만, 이 세상에 올 환난에 대해서는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유익이 더 큽니다. 이것을 앎으로써 우리에게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환난을 주는 이유는
첫째,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구원 얻기를 하나님께서 원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9절에 보면,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쁜 목적으로 큰 환난을 준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은 그 목적이 다 선합니다. 좋으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환난을 당하면 환난 가운데 고생하면서 겸손해지기도 합니다. 고생 중에 인심이 좋아지고, 웬만한 고생은 넘어가는 끈기가 생깁니다. 그리고 환난 가운데서 회개하며 좋은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점점 악해지고 완악해져서 못된 짓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도 아주 큰 환난을 당하게 되면 하나님 앞에 무릎 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환난을 통해 완악한 사람들을 주님 앞에 돌아오게 하시려는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므낫세처럼 우상 숭배를 심하게 하고 죄를 많이 지은 왕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몇 번의 경고 후에 앗수르가 쳐들어와서 그를 쇠사슬로 끌고 갈 때, 그는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인정했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이 이렇게 엎드리면 용서해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아무리 악하고 죄가 많아도,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회개하고 부르짖으면 살 길을 열어주십니다.
둘째, 하나님의 백성들을 정결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들에게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택함 받은 사람들은 환난이 오면 하나님을 찾고 기도합니다. 너무 큰 환난이 오면, 더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그러다가 정결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만이 유대인들을 다 죽이려고 결심했을 때, 에스더는 죽을 각오로 기도했습니다. 옷을 찢고 금식하고 애통하며 기도했습니다. 전국의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만이 대신 죽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찾게 되면 민족 전체가 정결해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6ㆍ25 한국전쟁 때의 일입니다. 부산만 조금 남게 됐을 때 이승만 대통령이 목사님들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초량교회에서 목회자와 성도들이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예배당이어서 그렇게 많은 숫자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도를 통해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극적으로 우리나라가 적화되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기회로 하나님의 백성을 정결하게 하십니다.
성도들을 더럽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욕심입니다.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사망을 낳습니다(약 1:15). 그러므로 우리 마음속에 탐심과 탐욕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돈을 많이 벌어 잘 살자’는 생각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먹는 순간 사탄과 손잡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됩니다(딤전 6:10).
솔로몬은 왕이 되고 잘 살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하면 내 육신이 쾌락을 누리며 살꼬?’라고 생각했습니다. 욕심을 가졌습니다.
이것은 아주 더러운 욕심입니다. 이런 욕심을 가지면 사탄이 질질 끌고 다닙니다. 결국 솔로몬은 육신의 정욕에 사로잡혀 비참한 종말을 맞이했습니다. 우리는 욕심, 육신의 정욕을 늘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힘든 것은 자신을 이기는 것입니다. 욕심, 야망 등으로 마음이 더러워지고 신앙이 자리 잡지 못하게 됩니다.
디모데전서 5장 9절에 보면,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가 육십이 덜 되지 아니하고 한 남편의 아내였던 자로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디모데전서 5장 11~12절에 보면, “젊은 과부는 올리지 말지니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 가고자 함이니 처음 믿음을 저버렸음으로 정죄를 받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젊은 과부들이 정욕을 이기지 못하여 예수님을 믿지 않는 집에 시집 가서 교회와 멀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너무 편하게 살면, 더러워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힘들 때에는 하나님을 찾고 세상쾌락과 멀어집니다.
그 뿐 아니라 환난이 올 때에는 밤새 기도하고 부르짖으면서 반드시 은혜를 받습니다. 그리고 은혜 속에 깊이 들어가면, 정결한 성도가 됩니다.
셋째, 우리의 믿음을 더욱 온전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그들을 광야에 40년 동안 머물게 하셨습니다. 광야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왜 광야가 필요했는가 하면, 이들에게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광야는 믿음의 학교입니다. 살아가는 동안 광야 길과 같은 어려움을 겪으시는 분은 믿음의 학교를 다니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알고 믿음이 온전해지면 그 학교를 빨리 졸업합니다.
환난이 클수록 하나님 앞에 크게 부르짖습니다. 그러면 큰 은혜를 받고 믿음이 커집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이 온전해지도록 우리에게 환난을 주십니다. 는 것입니다.
환난을 이기면 큰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편안할 때에는 우리의 믿음을 현상유지하기도 힘듭니다.
저는 지금도 잘 사는 목사 중의 하나인데, 되도록 없이 살려고 합니다. 세상에서 잘 살기를 바라지 마세요.
유럽이나 미국과 같이 잘 사는 나라에는 교회 건물만 있을 뿐, 교회에 사람들 모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잘 사는 것은 복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어떻습니까. 큰 환난을 당하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살려달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교회는 기도 많이 하는 교회가 됐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깨어 기도하면, 지금의 상황도 유익이 될 줄 믿습니다.
넷째,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보고 살면, 하나님을 잊기 쉽습니다. 세상 재미에 빠지면 신앙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너무 잘 되고 바빠지면, 주일도 지키지 않고,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나사가 하나씩 풀려있는 것 같습니다. 기도생활도 하지 않고, 교회도 한 달에 몇 번 나올까 말까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환난이 필요합니다. 큰 환난을 당하면 피할 길이 없고, 해결할 길이 없어서 하나님만 전적으로 바라고 찾게 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내세를 믿지 않으므로 큰 환난을 당하면 자살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반대로 ‘어서 주님께서 오시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주님께서 재림하시기만을 기대하기 때문에 자연히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잘하고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주님 앞에서 흠이 없기 위해 준비를 잘 합니다.
우리 교회를 개척했을 때, 기도를 많이 하시는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권사님은 항상 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기도가 필요한 사람의 이름을 적고 늘 기도하셨습니다.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실 때에는 아이들을 업어주시고, 새벽예배 나와서 설교자가 나오지 않으면, 전화하셔서 깨우셨습니다.
권사님께서는 힘든 일이 있을 때에는 예수님을 기다리며 옷을 입고 주무셨다고 합니다.
다섯째, 장차 하나님 앞에 설 때에 큰 영광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로마서 8장 14~15절에 보면,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8장 17~18절에 보면,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양자로서 똑같이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것을 상속받습니다. 그런데 영광을 받기 위해서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
첫 번째 고난은 환난 중에 낙심하지 않고 굴복하지 않고 신앙의 지조를 지킨 고난입니다. 순교를 각오하고 믿음의 산 사람에게는 반드시 상급이 있고 영광이 있습니다.
두 번째 고난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신 것처럼 우리도 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수고할 때에 고난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피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옛날 우리나라에 오셨던 토마스 선교사님은 성경을 나누어주시다가 참수 당하셨습니다. 또 목회자 중에는 시골에서 고생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복음을 전하다가 사도 바울처럼 고난 받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특히 큰 환난 때에 헌신하는 분들이 많아집니다. 우리나라에 목회자가 늘어난 때가 6ㆍ25한국전쟁 때였습니다.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하나님께 헌신기도하고 피난 오신 분들이 신학교에 많이 가셨습니다. 이 분들은 죽음에서 살아나셔서 6ㆍ25한국전쟁 이후에 교회가 많아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눅 17:33)”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위해 죽으려는 하는 사람은 큰 능력, 믿음으로 목회합니다. 선교를 해도 크게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망하고 죽습니다.
제가 지금껏 목회의 축복을 받는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어떻게 하면 24시간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주의 일을 하면 살게 하시고 그렇지 않으면 저를 데려가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병들어 죽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순교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생각한 것이 제가 축복 받는 이유인 줄 믿습니다.
저는 목회하다가 고생해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3개월 동안 사례비를 주지 않았지만, 저는 그냥 봉사하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봉사했습니다. 저는 기쁨으로 충성했습니다.
이런 환난의 때에는 오직 믿음과 성령으로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큰 믿음과 능력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환난은 앞으로 점점 더 심해질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그 때를 대비해서 지금부터 큰 믿음을 가지고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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