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주님은 큰 환난 후에 재림하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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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3-10-07 11:16 조회1,936회 댓글0건본문
왜 주님은 큰 환난 후에 재림하시는가
2022년 01월 02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24:29~30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다 보면, 큰 환난을 당하는 때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 21~2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창세 이후로 없었던 큰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매우 큰 환난이어서 하나님께서 환난의 날을 감하시지 않으시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살아남을 자가 없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위해 환난의 날을 감하실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24장 29~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큰 환난이 끝난 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땅의 모든 족속이 통곡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구름을 타시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실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에 보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 즉 예수님을 믿고 죽어 천국에 간 사람들이 먼저 부활할 것입니다. 이것이 첫째 부활, 생명의 부활입니다.
살아남은 자들은 첫째 부활을 한 사람과 함께 공중에서 예수님을 영접할 것입니다. 그 후로는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큰 환난 후에 재림하십니까?
첫째, 예수님께서는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 중에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100% 구원하시기 위해 큰 환난 후에 재림하십니다.
둘째,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지만, 믿음이 작아 제멋대로 사는 사람들을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시려고 예수님께서는 큰 환난 후에 재림하십니다.
셋째, 성도들로 하여금 환난 중에 깨어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 예수님과 함께 영광 받는 자가 되게 하시려고 예수님께서는 큰 환난 후에 재림하십니다.
환난 중에도 깨어 기도하여 환난을 이겨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 복음을 전하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장차 큰 상급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에게 상 받을 만한 일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려고 큰 환난 후에 재림하십니다.
요한복음 6장 38~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날까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까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을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반드시 다 구원하십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보면,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 문제가 다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보면,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사람은 다 예수님을 믿습니다. 전도했을 때,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과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입니다. 천국에서 영원히 살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영생을 얻습니다. 구원 받습니다. 심판에 이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집니다. 그러므로 멸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은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납니다. 거듭난 사람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 뜻, 내 생각, 내 의지, 내 결단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는 것은 성령으로 거듭났다는 의미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예수님을 ‘주’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고백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가리켜 ‘주’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누군가가 가르쳐줘서 예수님을 ‘주’라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택하셨기 때문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사람입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사람에게 예수님을 주로 알게 하시고 예수님을 주로 믿게 하시고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10장 9~13절에 보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을 가리켜 ‘주’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을 가리켜 그리스도, 메시아라고 하니 유대인들이 사도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박해를 많이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5장 40~42절에 보면,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로부터 박해를 받았습니다. 로마가 전 세계를 지배할 당시에는 각 나라마다 종교가 달랐습니다.
당시 로마의 정치인들은 각 나라의 종교를 다 수용했습니다. 그런데 로마의 황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만 박해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가리켜 ‘주’라고 합니다. ‘주’는 헬라어로 ‘κύριος(큐리오스)’라고 합니다.
당시 로마에서는 황제의 이름 앞에 ‘큐리오스’를 붙여서 불렀습니다. 이것은 황제에게 충성하겠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주’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주가 되신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러자 로마 황제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황제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을 다 잡아 죽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면서도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사도 요한의 제자 폴리갑(Polýkarpos)은 서머나교회의 감독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주’로 믿는다는 이유로 체포되었습니다.
로마 총독은 폴리갑에게 “이제라도 가이사를 주라고 고백하라. 그렇게 하면 살려주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폴리갑은 “저는 86년 동안 예수님을 주로 섬겼고, 주님은 한 번도 저를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주님을 부인하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폴리갑은 화형(火刑) 당했습니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 성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감옥에 들어가 죽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 편히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며 기도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도 핍박 받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겁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주인 되시고, 우리는 예수님의 종이라는 의미입니다.
만일 우리가 로마 황제와 같은 지도자가 있는 나라에 산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할 수 있을까요.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은 노예 해방을 이루었습니다. 링컨 대통령 이전에는 미국에서 흑인은 노예였습니다.
미국에서는 흑인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흑인은 노예, 즉 주인의 재산으로 여기고 사고팔았습니다. 튼튼하여 일을 잘 할 것 같은 노예는 비싼 가격에 팔고, 늙고 병들고 약해보이는 노예는 사가지도 않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요셉은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요셉은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 보디발의 집에서 일했습니다.
종에게는 자신의 것이 없습니다. 종이 입은 옷을 비롯하여 모든 것이 주인의 것입니다. 종이 결혼하여 자식을 낳으면, 종의 자식도 주인의 것이 되었습니다.
욥은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욥기 1장 20~22절에 보면,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욥은 자신에게 있던 것이 본래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서 받은 것이요, 지금은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셔서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모태에서 알몸으로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셔서 받은 것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우리의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북한에서 김일성은 지주들의 땅을 모두 빼앗았습니다. 모두 나라의 땅이 되게 했습니다. 공동으로 작업하여 배급 받은 것으로 먹고 살게 했습니다.
여러분의 재산이 항상 여러분의 손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재산은 언제 없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내가 가졌다고 해서 내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서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다고 내 것은 아닙니다.
다윗은 자신이 가진 것을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역대상 29장 10~14절에 보면, 다윗은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많은 금, 은, 보화를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신의 것을 바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요, 자신이 가진 것도 하나님께서 주셔서 받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믿음입니다.
오래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저는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으면, 아내가 그것을 받도록 했습니다. 교회에서 책 사보라고 주는 돈, 다른 교회에 가서 설교하고 받는 사례비는 제가 썼습니다. 그래서 제 지갑은 항상 두둑했습니다.
그런데 사례비를 받은 지 2주 지났는데, 아내가 한 달 사례비를 다 쓰고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제 지갑이 두둑한 것을 아내가 어떻게 알았는지, 아내가 제게 “왜 당신의 지갑만 두둑하죠?”라고 하며 돈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내에게 “내 지갑 탐내지 마. 목사는 지갑이 항상 두둑해야 해. 그래야 누구를 만나든 섬길 수 있어. 내가 그렇게 해야 우리 교회가 복을 받아.”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 후, 하나님께서 제게 “네 지갑이 네 것이냐? 네 지갑도 내 거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 아내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하나님께서 내 지갑도 내 것이 아니고, 내 돈도 내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어.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어. 그러니 필요하면 언제든지 꺼내 가.”라고 말했습니다.
이 일이 있기 전에는 제가 아내와 쇼핑하러 가면, 아내의 물건을 살 때에는 아내가 돈을 내고, 제 물건을 살 때에는 제가 돈을 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 지갑에 있는 돈이 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신 이후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돈을 내든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말하기만 해도 이루어졌습니다. 생각하기만 해도 이루어졌습니다.
제게 돈이 생기면, 저는 ‘이 돈이 필요한 사람이 있겠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사용합니다. 제가 그렇게 사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맡아 하나님의 뜻대로 관리하고 사용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6장 1~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빼앗기고 쫓겨난 후에 후회한들 소용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을 때에 우리가 가진 것으로 좋은 일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청지기가 지혜로운 청지기입니다.
마가복음 10장 17~22절에 보면,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한 사람’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마가복음 10장 24~2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나갈 수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부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마가복음 10장 26~30절에 보면, “제자들이 매우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은 백 배의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입으로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주님의 일을 위해 바치는 것에 인색한 것은 좋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2~15절에 보면,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믿음의 집을 짓고 삽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 믿음의 집을 짓고 삽니다.
그런데 공적이 어떠한가를 불로 시험합니다. 불같은 시험이 와서 공적을 다 태워버립니다. 공적이 불에 타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적이 불에 타면, 해를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인색한 사람은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지은 것과 같습니다. 불같은 시험이 오면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지은 집은 다 타버립니다. 전혀 남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었으므로 구원은 받지만, 부끄러운 구원을 받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할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었지만 믿음이 작았습니다. 그들은 젖먹이 신자였습니다.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부끄러운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3절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는 젖먹이 신자가 매우 많습니다. 분쟁하는 교회가 매우 많습니다. 시기합니다. 질투합니다.
젖먹이 신자가 교회에 많기 때문입니다. 젖먹이 신자는 장차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할 것입니다.
로마서 6장 12~13절에 보면,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의 몸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교회에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죄의 종 노릇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로마서 6장 16절에 보면,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의 종 노릇 하는 사람은 죄의 종이 되어 사망에 이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사는 사람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릅니다.
로마교회의 성도들이 은혜를 받아 변화되었습니다. 로마서 6장 17~18절에 보면,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교회의 성도들이 변화되기 전에는 죄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로마교회의 성도들은 사도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습니다.
종은 자기 마음대로 행할 수 없습니다. 종은 주인의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종이 주인의 뜻대로 행하지 않으면, 매를 맞습니다. 때로는 죽습니다. 종은 주인의 재산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동포들은 최고 권력자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최고 권력자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동포들은 모두 최고 권력자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공산주의입니다.
마태복음 7장 21~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영원한 지옥 불에 던져질 것입니다.
오늘날 주여 주여 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사람,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생각하기에 좋은 대로 행동합니다.
좋은 일을 행할 때에는 자기가 생각한 대로 해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는 자기 생각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물어봐야 합니다.
로마서 14장 8절에 보면,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보면,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큰 환난이 있을 것입니다.
큰 환난이 닥치면,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기도를 많이 합니다.
철저히 회개합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의 특징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환난이 닥쳐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이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은혜를 받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거룩한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크게 쓰임 받습니다.
욥기 23장 10절에 보면, 욥은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유익한 것입니다.
시편 119편 71절에 보면,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제가 중ㆍ고등학생이었을 때, 살아가는 것이 힘들고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루에 세 번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그래도 염려거리가 있으면 밤을 새며 기도했습니다.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삼각산기도원까지 가서 기도한 적도 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는 기도하다가 죽으려는 마음으로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만약 제게 고난이 없었다면, 제가 기도했겠습니까. 제가 하나님을 만났겠습니까. 돌이켜 보면 제게 고난이 있었던 것이 감사합니다.
제가 공군 군목으로 일월산에서 복무할 때의 일입니다. 첫 번째 주일에 한 명도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강단에서 날마다 울며 기도했습니다. 전 장병을 예수 믿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날마다 울며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빨리 응답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내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세상에 와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에야 너를 구원할 수 있었는데, 네가 전 장병을 예수 믿게 하려면 얼마나 희생해야 하는 줄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죽어도 좋습니다. 저는 죽어도 좋으니 전 장병을 예수 믿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후, 제 월급을 전도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한밤중에 커피 끓이고 과자봉지 만들어서 보초 서는 장병들을 찾아다니며 커피와 과자봉지를 나눠주고 기도해주었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제가 제대하기 전에 전 장병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울부짖으며 기도했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수영로교회를 개척한 후, 교회가 급속도로 부흥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를 괴롭히는 사람이 교회에 많았습니다. 그런 일을 겪으면, 저는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강단에서 기도합니다.
저는 날마다 강단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제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제게 능력을 주셨습니다. 믿음이 강해졌습니다. 그렇게 되니 교회가 폭발적으로 부흥되었습니다. 문제는 사라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큰 환난이 있을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울부짖으며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최고의 무기입니다.
우리가 울부짖으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행하셔서 우리를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환난의 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인 줄 믿습니다. 이 말씀을 붙잡고 승리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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