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도망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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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1 14:26 조회5,729회 댓글0건본문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2016년 01월 10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24:15~22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세상의 종말과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음을 보여주는 징조에 대해, 종말을 맞이하는 성도들이 종말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심으로 이 세상의 종말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은 이 세상의 마지막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을 기회가 더 이상 없습니다. 구원의 기회가 끝나고, 모두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비극적인 날이요, 절망적인 날입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처럼,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이 이 세상의 모든 수고가 끝나고, 환난이나 재난이나 핍박 등의 어떤 고난도 받지 않게 되는 복된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부터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대한 기쁨이 큽니다. 마치 외양간에서 풀어놓은 송아지가 펄떡펄떡 뛰듯이 기뻐할 것입니다.
종말에 대해 생각해볼 때, 우리 개인이 종말을 어떻게 맞이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장수해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살아있다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이 개인의 종말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밤이 종말의 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청년 시절이었을 때에 다녔던 교회의 청년회장이 미남이었고, 신앙도 좋았고, 성품도 좋았습니다. 그래서 청년회에서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 청년과 결혼하고 싶어 하는 여자 청년들이 많았습니다.
청년회장의 집이 부자였습니다. 청년회 임원과 청년회원들이 청년회장의 집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밤늦게까지 그 집에 있다가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새벽녘에 청년회장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모였던 그날 밤이 그 사람에게는 종말의 날이 되었습니다.
40대의 젊은 의사가 운동하다가 죽은 경우도 있고, 40대 중반의 대학 교수는 강의하다가 죽은 경우도 있습니다.
서울의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며칠 만에 구출된 사람도 있습니다.
이처럼 언제 개인의 종말이 올지 모릅니다. 이 세상의 종말도 종말입니다. 그러나 나의 종말이 어떠할 것인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들의 종말의 날은 천국에 가서 눈 뜨는 날입니다. 낙원에 가서 주님을 만나는 날입니다.
평소에 믿음으로 살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은 어디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죽는 날이 오히려 축복의 날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교회에 다니지만, 회개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살면서 자신이 구원 받은 줄 착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교회에 나온다고 해서 모두 구원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안에는 성령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3:3,5).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 하나님의 성령을 모시고 있는 사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만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야 합니다.
우리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이것을 거듭남, 중생(重生)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들은 언제 종말이 와도 상관없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은 주님을 만나는 날이요, 낙원에 가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세상을 떠나는 날이 심판의 날이요, 지옥에 가는 날이요, 절망의 날입니다.
누가복음 13장 1~5절에 보면,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갑자기 죽는 것은 심판을 받아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옥에 갑니다.
지금도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지만, 그 사람들이 죄가 많아서 심판 받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회개함으로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갑자기 종말을 맞이하는 경우도 있지만, 병에 걸려 오랫동안 고생하다가 종말을 맞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권사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남편으로부터 핍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럼에도 변함없이 신앙의 지조를 지키며, 자녀를 믿음으로 키우셨습니다.
권사님의 남편은 돈이 많고, 세상의 명예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당당했습니다. 제가 심방하러 가면, 제 앞에 얼굴도 내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권사님의 남편이 병에 걸렸습니다. 이분이 병원에 있는 동안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거듭나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착해지고 겸손해졌습니다.
재산이 많은 분인데,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건물의 일부를 교회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봉사하셨습니다.
그분이 병에 걸렸을 때, 제가 그분을 만났습니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몸은 병들었지만, 아주 행복해보였습니다. 주 안에서 하나 되었고, 믿음으로 살고,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자신의 재산을 주님을 위해 사용하며 살다가 천국에 가셨습니다.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절망에 빠지지 않고, 6개월이나 살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며 ‘주의 일을 하다가 죽겠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전도하고, 열심히 봉사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병원에서는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으나, 6개월이 지나도 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다시 진찰 받았더니 다 나았다고 했습니다.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이 사람은 ‘나는 앓다가 죽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몸 상태가 좋지 않고, 병원에서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고 진단했지만, 죽는 날까지 충성하겠다고 결심하고, 열심히 봉사했더니 6개월이 지나도 죽지 않고, 1년이 지나도 죽지 않고,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40년 후에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에 성도들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예루살렘이 로마 장군 디도에 의해 포위되었습니다. 오랫동안 포위되어있으니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을 잡아먹을 만큼 기근으로 고생했습니다.
무서운 전염병이 퍼져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군대와 싸울 기력도 없었습니다. 아무 저항을 하지 못하고 정복당했습니다.
그리고 로마 군대는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였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가 기록한 책에 보면, 그때 죽은 자가 2백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유대인들, 특히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해서 결국 다른 나라로 흩어졌습니다.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나쁘게 굴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했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의 책에 보면,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에 와서 전멸시켰을 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피해서 모두 살아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큰 복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40년 후에 일어날 일을 마치 눈으로 보는 것처럼 매우 구체적으로 알고 계셨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24장 16~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 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 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물건보다 옷보다 목숨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것은 신경 쓰지 말고, 무조건 산으로 도망하라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피난오신 분들 중에는 좋은 집도 버리고, 땅도 버리고 오신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집이 좋고, 땅을 많이 가지고 있으니 ‘이것을 두고 어디로 가겠나’라고 생각하여 북한에 계속 머물러 있다가 고생하고 죽은 사람이 많습니다.
가족 중에 몇 사람만 피난 오면서 잠깐 헤어져있을 줄 알았는데, 60여 년이 지나도 만나지 못하고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나 영원히 다시 보지 못하게 된 경우도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빨리 피하라”고 말씀하셨으면, 어떠한 것에도 미련을 두지 마세요. 그냥 피해야 합니다.
본문 마태복음 24장 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 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6ㆍ25전쟁이 일어났을 때의 일입니다. 그 당시에는 산아제한을 하지 않아서 집집마다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났으니, 남편들은 빨리 도망가야 했습니다. 도망가지 않으면 붙잡혀 죽으니, 남편들은 처자식을 두고 도망갔습니다. 그래서 동네마다 아버지가 없는 집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청년들은 군대로 끌려가서 없었습니다.
젊은 여자들이 많은 아이들과 함께 피난을 가야 했습니다. 젖먹이도 있고, 어린 아이 여러 명을 데리고 피난을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젊은 여자들이 남편도 없이 그 아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나중에 돌아온 후에 보니, 어린 아이들 몇 명은 죽었습니다.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날에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 자식이 없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그 날이 어려운 날이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특히 겨울에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겠습니까. 1ㆍ4후퇴 때, 제 나이 열 살이었습니다. 열 살짜리 어린 아이가 가족과 함께 서울에서부터 걸어서 충남 온양까지 갔습니다. 살아야 하니까 기찻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그런데 겨울이라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겨울에는 굶어 죽을 수도 있고, 얼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4:20).
6ㆍ25전쟁은 일어난 때가 주일이었습니다. 군인들이 외출하고 없을 때, 기습하여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남쪽에서 북침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100% 거짓말입니다. 남쪽에서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하고 편안하게 있을 때에 갑자기 밀어닥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4:20).
본문 마태복음 24장 21~2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백성들은 심판의 대상이 아닙니다. 지금은 예수님을 믿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들은 반드시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을 절대로 잊지 않으시고, 버리시지 않으시고, 환난의 날에 눈동자같이 지켜주십니다.
말세에 아무리 큰 환난이 온다 해도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을 지켜주십니다.
그래서 환난의 날에 성도들에게 기적이 많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보호하시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때 깨어 기도하면,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24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1장 20~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 군대가 온다고 해서 예루살렘을 포위하기 시작하면,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산으로 빨리 도망가라는 것입니다. 그냥 도망갔다가는 붙잡혀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산으로 도망가면, 좋은 점이 있습니다. 숨기 좋습니다. 기도하기 좋습니다.
이사야 26장 20절에 보면,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산으로 도망가면, 숲속이나 굴속에 금방 숨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작은 사람들도 위기 속에서 기도하는데, 믿음이 좋은 분들은 얼마나 많이 기도하겠습니까.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 열심히 기도하다 보니 은혜를 받습니다. 은혜를 받으니 믿음으로 단단히 무장하게 됩니다.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죽어도 좋고, 살아도 좋습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무장되면, 신앙의 지조를 지키게 되고, 승리하게 됩니다. 복음을 전하며 살 수 있습니다. 순교하게 되면, 더 큰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의 생사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절대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마 10:29).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세십니다(눅 12:7). 이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해 그만큼 구체적으로 알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사명이 끝났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가실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이 남아있다면, 우리가 죽을병에 걸려도 죽지 않습니다. 어떤 위기를 당해도, 우리는 구원 받습니다.
북한에서 피난 오신 분들 중에는 간증거리가 있는 분이 많습니다. 온 가족이 짐을 지고 3ㆍ8선을 넘어오려는데, 북한군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3ㆍ8선을 넘어가는 것을 보면, 멀리서도 북한군이 총을 쏘아서 죽이고 잡아가니까 3ㆍ8선을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온 가족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하고 나니 안개가 끼기 시작했습니다. 안개가 얼마나 짙은지, 몇 걸음 앞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온 가족이 줄을 지어 서로 붙잡고 천천히 걸어서 3ㆍ8선을 넘었습니다. 옆에서 북한군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안개가 짙어 북한군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우연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가족을 살려주시려고 안개가 끼게 하신 것입니다.
어느 여전도사님의 간증입니다. 6ㆍ25전쟁이 일어나 북한군이 밀어닥쳐서 피난을 갔습니다. 한참 가다가 쉴 때마다 온 가족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드린 후에 떠나고, 가다가 쉴 때에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이 가족이 예배를 드린 후에 떠나고 나면, 그곳에 폭탄이 떨어졌습니다. 위험한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지켜주셨습니다.
환난의 날, 어려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함께해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많은 기적이 일어납니다. 간증거리가 많습니다.
어느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북한에서 내려오다가 북한군에게 붙잡혀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살려주시면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어 주님을 위해 살겠습니다.”라고 결사적으로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도망갈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셔서 간신히 살아남아 목사가 되었습니다.
6ㆍ25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고,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이때 헌신한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자가 된 사람이 많습니다.
이분들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하나님 앞에 결사적으로 기도하다가 은혜를 받은 분들입니다. 이분들로 인해 한국의 교회가 크게 부흥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나라든지 전쟁이나 환난이 없고, 나라가 부요해져서 잘 살게 되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모든 것이 잘 되고 평안하면, 이상하게도 신앙이 잠자기 시작합니다.
돈이 많으니 주일을 이용해 여행 다닙니다. 금요일 오후에 떠나서 주일 밤에 돌아옵니다. 그래서 교회가 비기 시작합니다.
돈 있고 잘 살게 되니 사람들이 딴짓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보면, 신앙이 점점 약해집니다. 교회도 점점 약해집니다.
유럽의 교회만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한국의 교회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요즘 한국의 청년들이 취업이 되지 않아 많이 고생합니다. 그러나 저는 확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청년들이 물질적으로는 고생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것이 오히려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고생할 때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 지금 고생하는 것이 평생 축복이 될 것입니다.
한국이 세계무역국가 중 6위입니다.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고, 부요해진 나라에 살면서 젊은이들이 취업이 잘 되고, 돈을 잘 벌고, 잘 산다면,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 얼마나 많은 죄를 범하겠습니까.
청년들이 고생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제가 젊었을 때, 고생해봐서 압니다. 젊었을 때에 고생하므로 겸손해지고 정신 차리고 하나님 앞에 돌아와 큰 꿈을 가지고 노력하면, 평생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물질적으로 잘 살게 된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잘 사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그때까지는 한국 교회가 놀랍게 부흥했습니다. 북한군이 도발을 일으켰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날 것 같다고 생각되면, 새벽예배 때마다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왔습니다. 철야 기도하는 사람, 금식 기도하는 사람, 산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선교사가 되겠다고 헌신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없습니다. 신학생들 중에도 선교사가 되겠다고 헌신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만큼 이 나라가 배불렀습니다. 고생하기 싫어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앙이 침체되고 말았습니다.
요즘은 오히려 연세 드신 분들 중에 1년이라도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헌신하고 선교지로 가십니다. 젊은이들은 헌신하지 않습니다.
성도들에게 찾아오는 환난이나 위기는 신앙을 무장하는 기회가 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기회가 될 줄 믿습니다.
누가복음 12장 11~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평소에도 성령의 은혜를 받고, 성령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환난의 때에 ‘죽는다고 할지라도 전도하다가 죽자’라고 생각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마땅히 할 말을 성령께서 가르쳐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증거가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끌려가거나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 오히려 전도의 기회가 됩니다. 죽게 된다면, 순교자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보다 아름다운 종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장차 받을 영광이 클 것입니다.
순교할 기회는 아무에게나 오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선택된 사람에게만 순교할 기회가 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순교하게 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스데반 집사를 보세요.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죽을 때, 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행 6:15). 스데반이 돌에 맞아죽을 때, 주님께서 보좌에서 벌떡 일어나셔서 스데반을 보셨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죽으면서도 ‘내가 이제 죽으면 주님을 만나겠구나.’라고 생각하니 기쁘고 좋아서 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우리에게 환난이 오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사명을 다하고, 사명에 충성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두 가지 사명이 있습니다.
첫째, 이사야 43장 7절에 보면,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첫 번째 사명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고전 10:31).
우리가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아 변화되어 주님의 성품을 가지고, 주님의 계명을 따라 이웃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원수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줄 믿습니다.
둘째, 이사야 43장 10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증인, 하나님의 종으로 택함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종의 사명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으면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증인의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해야 합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사람, 주의 일에 끝까지 충성하는 사람, 주의 일로 인해 고난 당하는 사람은 받을 영광이 매우 큽니다.
요한계시록 2장 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4절에 보면,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이 어린 사람과 믿음이 장성한 사람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믿음이 어린 사람은 기복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저 복 받는 것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밤낮 세상만 바라보고 삽니다. 그리고 삶이 세속적입니다. 세상에서 하는 대로 따라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장성한 사람은 잘 살든지 못 살든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상관없습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사명에 충성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까, 어떻게 하면 한 영혼이라도 구원할 것인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사시다가 종말을 맞이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고, 하나님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다가 종말을 맞이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평생의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이 말씀대로 살아서 우리에게 언제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기쁨으로 주 앞에 설 수 있는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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