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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24장

큰 환난의 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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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10 09:23 조회5,6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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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환난의 유익

 

큰 환난의 유익

2011년 04월 01일(금요철야)

본문 / 마태복음 24:29~31

 

전도서 7장 8절에 보면,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은 무엇을 하든지 시작보다 마지막이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무엇인가 시작할 때에는 잘해보려는 마음으로 열심을 다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달라집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끝을 어떻게 맺느냐, 마지막을 어떻게 보내느냐입니다.

마라톤 경주의 경우, 조금 늦게 출발해도 골인 지점에 제일 먼저 통과하는 사람이 1등입니다. 모든 평가는 마지막을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의 신앙생활을 보면,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합니다. 천사가 되었다가, 마귀가 되기도 합니다. 이것이 정상입니다. 어떤 때에는 굉장히 은혜롭다가도, 은혜가 식으면 끝없이 처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마지막을 어떻게 보내느냐, 어떤 모습으로 떠나느냐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실패했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성공과 실패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합니다.

 

우리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는데, 성공의 얼굴과 실패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실패도 성공을 위한 한 단계입니다. 그러므로 실패했다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실패를 통해 그 다음에는 성공할 수 있습니다. 실패한 경험으로 말미암아 더 크게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죽지 않았다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살아있다면 아직 진행 중입니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므로 낙심하지 마십시오. 오늘 실패했다고 해서 낙심하지 마십시오. 살아있는 한 기회는 또 있습니다. 일어날 기회가 있습니다.

 

평생 평범하게 살았는데, 나이 70세쯤 취미로 시작한 그림에서 뛰어난 소질을 발견하여 그림을 그리기만 하면 잘 팔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전에는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는데, 인생 말년에 화가로서 빛을 발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이 순간부터라도 우리가 일어설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순간부터라도 우리는 성공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살아있다면 기회는 있습니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절망하지 마십시오. 실패했다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마지막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어떤 모습으로 맞이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24장 37~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 시대에는 그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하면서 평소와 같이 살았습니다. 그런 중에 비가 내렸습니다. 그 시대에도 비는 내렸으니까 사람들이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비가 많이 내려 홍수가 나도 그때까지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마지막 심판인 줄 아무도 몰랐습니다. 비로 말미암아 홍수 심판을 받게 될 줄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결국 노아의 여덟 식구 외에는 모두 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환난이 많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환난이 있다고 했는데, 환난은 오늘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도 많이 있었습니다. 지진이 오늘날에만 있습니까? 과거에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무디어져 있습니다. 그냥 지나가는, 또 한 번의 환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데, 주님이 오십니다.

마태복음 24장 40~4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평소처럼 하던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주님이 오십니다. 준비된 사람은 주님을 맞이하고, 준비되지 못한 사람은 주님을 맞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4:42). 그러므로 평소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우리가 맞이하느냐 맞이하지 못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평소에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4장 45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다가 주님을 맞이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재미있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마 24:45~51)

충성스럽고 지혜 있는 종이 있는가 하면, 밤낮 술이나 마시고 행패나 부리는 어리석은 사람도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마지막에 성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 때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멋진 모습으로 주님을 맞이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최근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닙니다. 21세기 과학 문명이 극에 달했다고 하지만, 대재난 앞에서는 인간의 힘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속수무책입니다. 특히 세월이 갈수록 환난이 더 커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4장 20~2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라고 2천 년 전에 미리 말씀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얼마나 더 큰 환난이 올지 우리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창세 이후로 없었던 환난,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환난의 수준이 아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환난이 너무 커서 하나님께서 그 기간을 감하여 주시지 않으면 살아남을 자가 하나도 없지만, 택한 자들을 위해서 그 날을 감하여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심판 주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택하신 백성을 위해 그 날들을 감하여 주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절대 주권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가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아무리 큰 환난이 오고, 지진이 일어난다고 해도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면, 우리를 비켜갈 것입니다.

큰 환난이 온다고 하면 당연히 걱정되지만, 그런 때일수록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을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평안할 때에는 그런 체험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환난 때에는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와 함께하시고, 어떻게 우리를 지키시고, 먹이시는지 아주 생생하게 체험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택함 받은 백성은 오히려 기대해도 됩니다. 하나님이 환난 때에 나를 어떻게 지키실까? 어떻게 함께하실까? 어떻게 인도하실까? 상상하기만 해도 기대가 됩니다.

 

성경에 보면, 성도가 얼마나 복 있는 자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는 성도들은 어떤 환난이 와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줄 믿습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도 항상 기쁨이 충만하여 빌립보교회에 보내는 편지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라고 썼습니다(빌 4:4). 사도 바울은 항상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죽으면 예수님을 만날 것이고, 더 좋은 천국에 갈 것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감옥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큰 환난이 일어나고 있을 때, 성도들은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자체가 믿음이 부족한 증거입니다.

여러분은 절대로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창세 전에 택함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천국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과 택함 받은 성도들과의 차이점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환난이 환난으로 끝나지만, 저와 여러분처럼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무엇이든지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밤낮 염려하고 근심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마음이 매우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광야를 볼 때마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이런 곳으로 인도하시느냐’라는 생각에 몹시 화가 났습니다. 이런 생각으로 사는 사람들은 하루하루가 지옥 생활입니다. 환난이 일어나는 이 세상만 보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불안에 떨 것이 아니라, 항상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 세상 바라보고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말씀대로 된다는 것을 알고, 주님의 말씀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24장 3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의 말씀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고, 살아서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없어질 세상만 보고 불안해하지 마시고, 주님의 말씀대로 된다는 사실을 믿고, 말씀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말씀을 통해서 평안을 얻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주님의 말씀대로 됩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성도들은 아무런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마태복음 10장 28~31절에 보면, 예수님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이 말씀을 붙잡고 사십시오. 공중에 나는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우연히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머리털까지도 다 세고 계십니다. 그것은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고, 하나님이 절대 주권을 가지고 계시고, 모든 것을 주장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거두어 가시려면 거두어 가실 것이고, 우리를 지켜주시면 아무리 위험한 일을 당해도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 주권이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세상을 바라보며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세상은 우리를 함부로 손댈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누가복음 21장 10~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 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 가려니와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궁리하지 않도록 명심하라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 주어 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몇 사람은 죽으리라고 했는데, 이것은 순교자의 반열에 서있는 하나님이 작정하신 몇 사람을 말하는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은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누가 주장하십니까? 주님이 주장하십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꼭 믿으십시오.

 

말세에 우리를 높은 사람 앞에 끌고 가는 것은 우리에게 전도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왜 사도 바울을 가이사 앞에 세우셨습니까? 그래야 로마 황제에게도 전도할 기회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건을 전도할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순교자의 반열에 세우신다면 죽게 하실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머리털 하나도 상하게 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 외에 그 누구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말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할 생각만 하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가 가까울수록 왜 큰 환난이 있게 하시는지 의아해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 재림하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데 이것이 유익하기 때문에 큰 환난이 있게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큰 환난이 있게 하시는 이유는 택하신 백성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몽땅 예수님을 믿게 하고 구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큰 환난이 거기에 아주 유익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환난을 허락하십니다.

 

첫째, 회개하게 하는 데 유익합니다.

아무리 완악한 사람이라도 큰 환난을 당하게 되면 마음이 약해집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하는 것처럼, 큰 환난을 당하게 되면 자존심이나 고집은 다 팽개치고 회개하고 주님 앞으로 나오는 사람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택하신 백성을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는 데 큰 환난을 방패로 삼아서 완악한 인간, 돌덩어리 같은 인간도 꺼꾸러지게 하시고 항복하게 하십니다. 회개시키는 데 있어서 환난이 얼마나 유익한지 모릅니다.

 

요한계시록 2장 20~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환난에 던져버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사람은 그냥 내버려두면 절대로 회개하지 않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큰 환난의 목적 중에 가장 중요한 목적은 완악한 사람, 돌덩어리 같은 사람을 회개시키기 위함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 9~14절에 보면,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디에서 나온 자들이라고 하셨습니까. 큰 환난에서 나온 자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큰 환난 때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마치 옷을 씻어 희게 하는 것처럼, 큰 환난 때에 회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많은 사람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나오게 됩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가장 왕성하게 성장한 때는 6ㆍ25전쟁이 일어났을 때입니다. 6ㆍ25전쟁 때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북한에 있는 동포 천만 명 정도가 피난 내려왔습니다. 그 이후에 한국 교회 대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6ㆍ25전쟁 이전에는 부산에 교회가 몇 개 밖에 없었습니다. 초량교회, 부산진교회, 부전교회, 중앙교회 등 몇 개 교회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1,500여 개의 교회가 있습니다.

큰 환난의 목적은 우리를 괴롭히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 환난을 통해서 많은 사람 회개하게 하고, 많은 사람이 주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요즘 태국에는 대기업 회장 같은 분들이 예수님을 믿고 간증하기 시작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불교국가인 태국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대기업 회장님들이 예수님을 믿고 간증하는 날이 곧 오게 될 줄로 믿습니다.

제가 간증을 들어보니까 회사가 아주 잘되고 모든 것이 좋았는데, 하루아침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회사는 어려워진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건강도 나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을 믿는 분을 통해 전도를 받았는데, 예전 같으면 예수님을 믿는 것을 상상하지도 못했겠지만, 모든 것이 나빠지니까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결국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수십 년 동안 예수님을 믿은 사람보다 나아 보였습니다. 이처럼 환난을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되고, 회개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일본은 지진으로 큰 어려움을 당했는데, 사실 일본처럼 지진을 잘 대비한 나라가 지구상에 없습니다. 일본은 건축해도 지진을 대비해서 내진 설계를 얼마나 잘하는지 모릅니다. 평소에도 지진을 대비한 훈련을 철저히 하는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큰 지진이 일어나니까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10m 이상 되는 쓰나미가 몰려오니까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러나 환난을 통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사람이 많을 줄로 믿습니다. 도저히 예수님을 믿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환난 중에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돌아올 사람이 많이 생겨날 줄 믿습니다. 일본 교회도 부흥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중동에서는 자꾸 혁명이 일어나고 전쟁이 일어나니까 불안해서 살 수 없다고 합니다. 중동의 많은 나라가 아우성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그 나라에서 탈출해서 피난민 생활을 합니다. 피난민 생활을 하니까 우상 앞에 절할 겨를이 없습니다.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많은 선교사가 그들을 도우며 복음을 전해 한쪽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생겨나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고,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워오니까 하나님께서 큰 환난을 통해 주님 앞에 돌아오게 하십니다.

환난은 전도의 기회입니다. 환난의 때에는 전도하기 정말 좋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큰 환난이 오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도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 그렇게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항상 깨어 기도하기 때문에 경건한 삶을 살게 되므로 환난은 유익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평소에도 기도생활을 하지만, 편안할 때에는 깊은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평안함에 대한 감사의 기도 정도입니다.

그러나 큰 환난을 당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간절함이 다릅니다. 깊이 있게 기도합니다. 큰 환난을 통해서 성도들은 깨어 기도하고, 간절하게 기도하다가 보니 성령의 불을 받습니다. 능력을 받습니다. 마귀와 싸워 이기는 영력이 생깁니다. 그래서 아주 경건한 삶을 살게 됩니다. 큰 환난이 이렇게 우리에게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우리가 솔로몬처럼 세상의 모든 것을 누리고, 전쟁도 환난도 없는 복을 받게 되면 좋을 것 같지만, 그렇게 살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믿음이 식게 되고, 나중에는 아예 없어지게 됩니다. 기도 생활을 하지 않으니까 은혜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은혜 생활을 못하게 됩니다.

솔로몬은 세상 향락을 따라가다 보니 1천명이나 되는 이방 여자를 첩으로 삼는 삶을 살다가 결국 망했습니다.

여러분, 꼭 명심하세요.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어서 재벌이 되어볼까’라고 생각하는데, 단지 돈만 많이 번다면, 솔로몬처럼 결국에는 방탕한 삶으로 인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윗을 보십시오. 사울 왕에게 쫓겨서 밤낮 도망 다니고 어렵고 환난 가운데 사니까 시편에 나와 있는 것처럼, 피맺힌 기도를 얼마나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다윗은 기도하는 가운데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환난을 당하는 가운데 늘 깨어 기도하게 되고, 경건하게 살게 되니까 더 거룩해지고 믿음이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다.

 

저는 과거에 많은 어려움 가운데 고생하면서 산 것이 그 당시에는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죽고 싶었지만, 지나고 나서 돌이켜 보니, 날마다 하루 세 번 교회 가서 기도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철야기도하고,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고, 어떤 때에는 금식하면서 기도하다 보니까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되고, 성령의 불을 받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환난 중에 기도하게 하시고, 환난 중에 체험하게 하시고, 환난 중에 주님이 어떻게 응답하시는지, 인도하시는지 구체적으로 체험하다 보니 얼마나 믿음이 좋아졌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살다가 보니까 저도 모르는 사이에 경건한 삶이 이루어지고, 영적으로 부유해졌습니다. 지나고 보니까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축복이었습니다.

 

앞으로 큰 환난이 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환난을 통해서 우리는 더 많이 기도하게 되고, 기도하다가 더 큰 은혜를 받고,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되고, 기도하다가 주님의 음성을 듣기도 하고, 하나님이 다 준비해놓으신 것을 눈으로 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줄 믿습니다.

 

기도를 얼마나 길게 오래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얼마나 믿음으로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제가 중3 때쯤 중1이었던 여동생이 학교에 낼 학비가 없었습니다. 그 다음 날 꼭 가지고 가야 하는데, 돈이 없으니까 동생은 울고 난리가 났습니다. 저는 날마다 학비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학비를 내야 할 마지막 날, 제가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다른 아이들은 신나서 집에 가는데, 저는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면서 집에 갔습니다. 하늘을 보면서 “아버지! 주실 때가 됐는데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또 교회 가서 기도하고 집으로 갔습니다.

집에 도착해 보니, 동네에서 부자인 아주머니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 아들의 가정교사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 길로 바로 그분의 집에 가서 아들 과외 공부를 하고, 저녁을 먹고 나오는데, 한 달 사례비라고 하시며 봉투를 주셨습니다. 집에 와서 봉투를 보니까 학비를 세 번 낼 수 있는 돈이 들어있었습니다.

“아버지, 주실 때가 됐는데요.” 믿음의 말이 중요합니다. 언제나 믿음으로 믿음의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아시지요.”, “아버지, 다 준비해놓으셨지요.”라고 믿음의 말을 하십시오. 믿음의 말을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성공입니까.

첫째,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같이 되는 것이 성공입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신랑 예수님이 오실 때 맞이하게 되는 사람이 성공입니다.

 

둘째, 끝까지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성공입니다.

마태복음 24장 12~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환난이 일어나고, 불법이 성행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도 타락하는 사람이 생기고, 배신자, 사기꾼이 생깁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은 쓰러지고 넘어집니다. 그래서 사람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옛날과 같이 서로 사랑하고 믿어주고 돕던 관계가 끊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잘못 생각하면 예수 믿는 사람도 믿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을 잃어버리기가 쉽습니다.

 

사랑을 잃어버리면 하나님을 잃어버립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사랑을 잃어버리면, 다 사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 저버린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한마디로 말하면, 사랑하라는 것인데,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은 말씀 전체를 저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환난이 오고 어려움이 와도 우리가 끝까지 붙잡아야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원수들이 괴롭혀도 “아버지, 저는 그를 사랑할 의무밖에 없습니다. 저는 그를 끝까지 사랑하겠습니다. 저 원수를 하나님이 맡아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끝까지 사랑만 해야 합니다. 끝까지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으면, 그 사람은 성공한 것입니다.

 

셋째, 끝까지 주의 일에 충성하다가 재림하시는 주님을 맞이하는 것이 성공입니다.

마태복음 24장 4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서 주님이 맡겨주신 양 무리를 잘 돌보는 것이 성공입니다. 자기 신앙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겨주신 많은 사람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심방하고 기도하고 사랑방 모임 등을 통해 나 때문에 많은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돌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다가 주님을 맞이하게 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26~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끝까지 주님의 일에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교회학교 교사를 맡으신 분들, 끝까지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마세요. 끝까지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주의 일을 지키는 그 사람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끝까지 주의 일에 충성하면 성공자가 됩니다. 이 마지막 때, 환난의 때에 우리 모두 성공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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