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견디는 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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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8-16 15:09 조회5,747회 댓글0건본문
끝까지 견디는 자가 되라
끝까지 견디는 자가 되라
2006년 09월 08일(금요철야)
본문 / 마태복음 24:13
무슨 일이든지 시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시작하기 전에 잘 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멋지게 시작하면, 반은 성공하는 것입니다.
저는 국내ㆍ외에서 세미나를 참 많이 인도합니다. 며칠 동안 세미나를 인도하기 전에 반드시 이야기하는 것이 있습니다.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강사로부터 똑같은 강의를 듣지만 마음준비가 어떻게 되어있는가에 따라가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같은 말씀을 들어도, 한쪽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은혜를 받고 역사가 일어나는데, 다른 한 쪽에서는 딴청피우는 것을 봅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마음의 상태에 따라 이렇게 차이가 납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마음과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은혜를 받을 수도 그냥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제가 가정교사를 많이 했습니다. 1학년 때부터 아니면 졸업반 3학년 때부터 가르치는 방법도 있지만, 가장 좋은 것은 입학하기 전, 준비를 다하는 것입니다.
어떤 아이는 중학교 1학년 아이인데, 이미 1학년 과정을 다 공부해놓습니다. 그렇게 먼저 준비한 아이는 실수도 없이 좋은 점수를 받습니다.
그렇게 시작이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끝맺느냐입니다. 사람은 모두 처음에는 잘 하려고 하지만, 끝을 잘 맺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사울 왕은 처음에는 얼마나 겸손한지 모르나, 나중에는 고약해지고 형편없는 인간이 되어 망했습니다. 솔로몬 역시 시작은 굉장한 것 같지만, 말년에는 형편없이 밤낮 술에 취해 우상 숭배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사가 왕이 된 후 35년까지는 나라가 평안했습니다. 이유는 항상 하나님을 찾고 믿음으로 살아 나라가 축복을 받아 전쟁을 모르고 35년을 삽니다.
그런데 36년이 되는 째부터 망령이 들어 북이스라엘이 쳐들어오니까 싸우지도 않고, 그 전에는 더 큰 전쟁에서 잘 이기던 왕이 아람 왕 벤하닷에게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청했습니다.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는 오히려 그 선지자를 핍박하고 감옥에 넣었습니다. 발에 중병이 들어도 기도하려고 하지 않고, 의원만 찾다가 죽었습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용두사미’라고 합니다. 시작은 용같이 굉장했지만, 나중에는 뱀꼬리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지도자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성공자가 적습니다. 끝까지 밀고 나가고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든 여생의 끝을 잘 맺어서 성공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특히 신앙생활에서 성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을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그러나 과거는 지나갔으므로 얼마나 잘했든지 이제부터 시작해서 신앙생활을 잘 하시고 여생을 마지막을 멋지게 보내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에 일등 하는 사람이 일등입니다. 사람의 일생은 마라톤과 같습니다. 마지막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시작과 중간에 일등을 하는 것은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그렇습니다. 아무리 형편없는 인생을 살았더라도 잊어버리시고, 이제 시작하셔서 생의 마지막을 멋지게 보내면 다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가룟 유다보다 예수님의 우편 강도가 더 성공한 사람입니다. 가룟 유다는 처음에는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나중에는 나쁜 짓하고 자살했습니다.
그러나 강도는 예수님과 십자가에 매달려있는 동안 예수님을 믿고 나를 기억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과거보다 현재가, 현재보다 마지막이 더 중요합니다.
성경에서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사람은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녀는 일곱 귀신 들린 여자입니다. 성경학자들은 간음하다 걸린 여인이 막달라 마리아였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과거는 생각하기 싫은 여자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 그녀는 성경에서 부각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부활을 제일 먼저 목도했습니다. 끝을 얼마나 아름답게 끝내는지 모릅니다.
특히 끝까지 잘 견디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고 기도생활을 잘 하는 사람은 끝까지 잘 견디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기적은 맨 끝에 나타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바닥에 있거나 가장 큰 고통에 있을 때 하나님의 구원과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끝까지 견디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간에 포기하지 마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떠나올 때 홍해 앞에 섰습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바다 앞에 섰습니다. 뒤에서는 애굽 군대가 오는 진퇴양난의 상황입니다.
그때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절벽 끝에 서 있을 때에 절망하지 마십시오. 그때가 기적의 순간입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사자 굴에 들어갈 때까지 하나님께서 놔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보여주시지 않으시고, 사자가 우글거리는 완전 끝인 상황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사자들이 다니엘을 물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줍니다. 믿음이 강하면 죽음의 자리에 가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크게 하셔서 크게 영광 받으실 때에는 쉽게 응답하시지 않으시고 마지막에 응답하십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보십시오. 7배나 풀무불을 뜨겁게 해도 하나님께서는 가만히 보고 계셨습니다. 그들이 그 불에 던져졌을 때, 인간적으로 완전히 끝나는 상황에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분명히 3명을 넣었는데 4명이 춤을 추고 있었습입니다. 빨리 나오라고 했을 때 그들의 옷 하나도 그을린 것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지식으로는 믿을 수 없으나, 하나님의 지식으로는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하나님이신가 아는 사람은 지금도 그런 일이 능히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에스더는 바사 왕 아하수에로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이때 아각 사람이라는 하만은 아말렉의 후예요,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원수였습니다. 이 신하가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문지기 모르드개는 원수인 아말렉에게 절하지 않았습니다.
하만은 너무 화가 나서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아까워서 유다 전 민족을 12월 13일에 죽이고 그 재산을 모두 탈취하라고 왕의 명령이 있는 공문을 전 세계에 붙였습니다.
이제 전멸될 상황입니다. 인간적으로 완전히 끝난 상황입니다. 그때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사흘간 금식하고 왕에게 나아가 고했습니다. 그래서 아각 사람 하만이 대신 죽었습니다.
에스더 5장 14절에 보면, 50규빗, 즉 22.5m의 나무를 구해서 세워놓았습니다. 거기 꼭대기에 바퀴를 달아 시체를 달아놓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에 하만이 달려죽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극적으로 도우시는지, 성경에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역사는 지금도 일어납니다. 저희 교회에 주차장이 없어 제가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시온관을 믿음으로 계약하려고 했지만, 성도들에게 아무도 작정 헌금시키지 않아서 아무도 헌금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람을 보고 계획하지 않았고 하나님께 응답을 받고 했습니다. 중도금을 주지 않으면 계약금, 약 7억 원되는 돈이 날아가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저는 금식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월요일까지 중도금을 줘야 하는데, 주일 새벽예배 후 성도들이 다 간 후에 계속 혼자 앉아 기도했습니다.
그 때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45장 2~3절 말씀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감추어져 있는 것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때 다됐다고 혼자 감사했습니다.
그 때 다섯 번 설교하면서 간증했는데도 아무도 헌금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월요일 12시까지도 아무도 헌금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은행에서 사무장을 불러서 가봤더니 은행 문을 닫을 막판에 수십억 원의 돈이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기분이 좋으시면 더 주십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막판에 역사하시므로 중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저는 그런 체험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목사가 되기 전, 기도원에서 기도하는데 제가 꼭 목사가 되어야 하냐고 기도했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식하면서 목요일까지 기도했습니다.
목요일 오후에 비가 내려 우산을 쓰고 바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하는데, 제가 금식하는데 고작 비 맞는 것이 힘들어서 우산 쓰는 제 모습이 참 한심해서 우산을 던지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저같이 부족한 사람도 목사가 되라고 하셔서 감사하며 내려와 강도사 시험을 치고 합격했습니다.
불광동 뒷산에서 기도할 때에는 월요일에 기도하러 갔는데, 아무런 은혜도 받지 못하고 응답도 없었지만, 화요일, 수요일 새벽녘에 하나님께서 비속에서 불을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막판에 역사하시므로 끝까지 잘 견디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가도, 기도의 사람은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요셉은 영감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지만, 노예가 되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어떻게 보면 경건하게 살아도 쓸데없는 것 같습니다. 감옥에 들어가면 언제 사형 당할지 모릅니다. 기도의 사람은 이상하게 자꾸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제가 아는 분이 국정원에 계시는데, 언제나 동기생 중에 늘 꼴찌였다고 합니다. 동기들은 늘 진급되었지만, 이분은 늘 꼴찌였습니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후, 꼴찌가 1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상황을 바꾸시니까 거꾸로 되었습니다.
기도의 사람은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실패하고 안 된다고 해도, 처지는 것이 아닙니다. 전화위복이 되게 하십니다.
수영로터리에 1만 석이 들어가는 큰 성전을 지으려고 했는데, 자꾸 실패하고 안 됐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면서 백산에 성전을 지으려고 했더니 공무원들이 자꾸 법을 바꿔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중에 나는 새 한 마리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안 되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줄 알고 그냥 순복했습니다.
공무원들이 하는 짓은 저주받을 짓이지만, 그것은 그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줄 알고 가만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IMF가 와서 좋은 땅을 가진 주인들이 와서 땅을 자꾸 사라고 하는데, 돈이 없다고 하니까 자꾸 깎아서 1/3 가격이 돼서 이 땅을 사주었습니다.
그 동안 만약 잘 진행됐다면 어쩔 뻔 했습니까! 하나도 진행되지 않고, 기회가 왔을 때 백배나 더 좋은 땅을 샀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니까 여러분들이 자발적으로 헌금하고 넘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상황에 있든지 낙심하지 마십시오. 막판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오는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더 축복이 됩니다.
다윗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에게도 계속 고난이 왔습니다. 사무엘상 27장 1절에 보면,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으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기도해도 해결되지 않고 사울이 따라다니며 죽이려고 하니 다윗도 낙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도의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결국 사울이 망하고 다윗이 세워집니다.
어렸을 때 가정환경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기도를 많이 해도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아무리 어려워져도 때가 오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갈 때에는 저도 모르게 장학생이 되서 입학금 등을 지원받게 하셨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에도 장학금을 받게 하셨습니다.
고3 때는 대학교에 가는 것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더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공부라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시험을 치기도 전에 장학생이 되어서 장학금을 미리 받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증거입니다. 다만 제게 그런 고난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런 고난이 아니면, 제가 다른 짓을 하고 기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종으로 쓰시기 위해 저를 붙잡아 매셨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지금 돈 문제나 다른 문제가 풀리면 타락할 가능성이 있어 하나님께서 연단하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연단이 오면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모두 축복이 됩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끝날이 오면 어떻게 환난과 어려움이 오는지 말씀하셨습니다. 난리나 전쟁, 기근, 지진 등의 어려움을 많이 겪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특별히 성도들의 핍박이 강합니다. 그러나 환난 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 39~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 7~8절에 보면,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짐승’은 기독교를 핍박하는 권세자를 말합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 말씀을 바꿔 말하면 생명책에 이름이 쓰여있는 사람은 다 승리한다는 의미입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4절에 보면,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린 양 예수님의 생명책에 이름이 쓰인 사람은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함께 이긴다는 것입니다.
큰 환난 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우리 성도들은 다 올라갑니다. 죽은 자는 부활하고, 산 자는 변해서 올라갑니다. 그래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영원히 함께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18절에 보면,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4절에 보면,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 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은 두 종류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성도들이 부활합니다. 그러나 천년 왕국 후 부활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기 위해 부활합니다.
요한계시록 15장 2~3절에 보면,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짐승에게 굴복하지 않고 승리한 성도들이 찬양할 것입니다. 찬양하는 동안 지상에서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진행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심판으로 멸망할 것입니다. 지옥에 간 사람은 영원히 고통 속에서 살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0절에 보면,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지옥은 죽어서 의식을 잃는 곳이 아닙니다. 지옥은 죽어 영원히 괴로움을 받는 곳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2~15절에 보면,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승리합니다. 끝까지 견딥니다. 내 힘으로 견디는 것이 아니라, 만주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붙드셔서 승리합니다. 그러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사람은 영원히 괴로움을 당합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5절에 보면,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도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게 됩니다. 우리가 영원히 사는 곳은 이곳이 아니고,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천국에 가면, 아픈 것도 없고, 사망도 없습니다. 영생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21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이기는 자’는 끝까지 견디는 자를 가리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1~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21~2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을 승리로 장식하는 우리가 되기 바랍니다. 과거를 돌아보지 마십시오.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과거에 매이게 합니다. 지금이 중요합니다. 지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지막, 끝을 어떻게 보내느냐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승리합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자는 짐승을 섬기지 않고 이깁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우리도 이깁니다. 끝까지 이기고 견디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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