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경고 > 마태복음23장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회원로그인

마태복음23장

예수님의 경고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1 12:58 조회3,403회 댓글0건

본문

예수님의 경고

 

예수님의 경고

2015년 11월 01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23:1~12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연대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지 얼마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든, 심지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고 핍박하는 나라에서도 이 연대를 사용합니다.

왜 전 세계에서 이 연대를 사용할까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이 세상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40일 만에 승천하셔서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머지않은 장래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는 만왕의 왕으로, 심판 주로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한 불 못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탄생하신 날을 중심으로 해서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 이전을 B.C.(Before Christ), 주전(主前)라고 하고,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이후를 A.D.(Anno Domini), 주후(主後)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주전, 즉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 2천 백여 년 전에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주전 1526년에 태어났습니다. 다윗은 주전 1010년에 태어났습니다.

 

사울 왕이 세워지기 전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을 지키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왕이 없었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다스리시는 시대였습니다. 모세와 같은,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렸습니다. 사무엘 선지자의 때까지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왕을 세워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쩔 수 없이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때가 주전 100여 년 전입니다.

사울 왕은 4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지만,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아들과 함께 죽었습니다.

그 후에 다윗이 왕이 되어 4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다윗은 나라를 번창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전 세계를 다스리는 강대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도 왕이 되어 4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솔로몬이 처음에는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그런데 잘 먹고 잘 살게 되니 교만해졌는지, 이방 여인들을 후처로 삼고 살다가 이방 여인들이 믿는 우상을 함께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았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을 때, 나라가 분단되고 말았습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어서 밤낮 서로 싸우는, 불행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모두 하나님을 버리고, 사신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멸망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주전 722년경 앗수르 군대의 침략을 받아서 멸망했습니다. 남유다는 그로부터 130년 후인 주전 586년에 바벨론 군대의 침략을 받아서 멸망했습니다. 이때 살아남은 사람들은 포로가 되어서 잡혀가서 바벨론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때에도 소수이지만,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된 지 70년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예언하신 말씀대로 해방되어 고국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예레미야 25장 11절에 보면,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0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너희들이 70년 만에 돌아올 것이다”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예언한 대로 되었습니다.

 

이 당시에 느헤미야와 에스라 등 훌륭한 영적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라기 선지자 이후부터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까지 약 4백 년 동안은 훌륭한 영적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서 희망을 주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하는, 영적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4백 년을 가리켜 ‘영적 암흑기’라고 말합니다.

신령한 하나님의 종이 한 명이라도 있는 것이 큰 축복입니다. 그런데 이 4백 년 동안에는 영적 지도자가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4백 년 후에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타락한 생활을 하면서도 자기들이 영적 지도자라고 생각하고, 영적 지도자 행세를 했습니다.

본문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타락한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주님의 경고를 듣고 회개하면, 모든 죄를 사함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억하지도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에스겔 18장 21~23절에 보면,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죄를 범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못된 짓을 많이 한 사람이라도, 돌이키고 바르게 살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과거를 묻지 않으십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많은 죄를 범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모든 죄를 사해주실 뿐 아니라, 한 가지의 죄도 기억하시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과거에 대해서는 전혀 묻지 않으시고,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좋은 분이신지, 아무리 악독한 악인이라 할지라도 그가 죄 가운데서 죽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이사야 43장 25절에 보면,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7절에 보면,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 가운데 살던 사람이 회개했다면, 그 사람이 과거에 많은 죄를 범하고, 불법을 행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용서하실 뿐 아니라, 그 사람이 지은 죄를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경고하시는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사람은 참으로 복 있는 사람입니다. 안타깝게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도리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죄를 범했습니다.

주후 70년경에는 예루살렘이 로마 군대의 침략을 받고, 모든 사람이 죽는 무서운 진노를 받았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서 유랑생활을 했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전 세계에 퍼져 있습니다.

70~80년 전에 독립하여 나라를 세웠지만,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서 나그네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어떻게 경고하셨습니까? 본문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당시의 종교지도자였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주 존귀한 직분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않았습니다. 언행이 일치되지 않았습니다. 말과 행동이 달랐습니다. 그들은 거짓 선지자, 거짓 교사와 같았습니다.

 

본문 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법을 많이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엄청난 의무를 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에도 없는 것을 법으로 만들어서 백성들에게 많은 짐을 지게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은 법대로 살지 않고,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6:1~2).

의를 행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한다면, 아무리 의를 행한다 해도 지가 상을 이미 받았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천국에 가서 받을 상이 하나도 없습니다.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길 가에서 두 손을 높이 들고 기도했습니다. 자신들이 늘 기도하는 사람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책망하시며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6:5~6).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기도할 때에 사람을 신경 쓰거나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금식할 때에도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금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금식을 많이 한다 해도, 그렇게 금식하는 것은 헛수고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금식할 때에 머리도 빗지 않고, 몸도 씻지 않고, 옷도 아무렇게나 입습니다. 당장 굶어죽을 사람인 것처럼, 금식기도를 오래 한 것처럼 행세합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5~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행동했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척, 신령한 척 행동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어디를 가든지 어른 행세를 하고, 대접 받으려고 했습니다. 잔칫집에 갔을 때에는 상좌(上座)에 앉으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와서 절을 하며 랍비라고 불러주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의 백성들은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함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아주 교만했습니다. 이들은 선생이라는 말을 듣기를 좋아했습니다.

야고보서 3장 1절에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지도자가 되고, 선생이 되고, 세상에서 어른 행세를 하는 것이 좋은 것 같지만, 이런 사람들은 더 큰 심판을 받게 됩니다.

성직(聖職)은 그것 자체가 아주 존귀합니다. 다만 성직자답게 살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본문 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선생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본문 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만이 우리의 진짜 아버지가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본문 10~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과 교회의 다른 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큰 자가 되려면, 열심히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점점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잘났다고 교회 안에서 큰소리 치고 어른 행세를 하면, 그 사람은 미움을 받고 배척당합니다. 아무도 대접하려 하지 않습니다. 아직 철들지 않은 사람이요,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믿음이 큰 사람이 어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는 사람은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경고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만 들어야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특히 교회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교역자와 직분자, 교회학교 교사들은 주님의 이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경고를 아멘으로 받고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축복도 주실 것입니다. 죄 사함을 받는 축복을 주셔서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도말해주시고, 기억하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죄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서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죄 가운데 있을 때에 잃어버린 모든 것이 회복되고, 주님을 모시고 사는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고, 그대로 살아서 은혜 가운데 축복을 받는 성도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마음이 옥토 같습니다. 말씀을 아주 잘 받아들입니다.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은혜 가운데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둘째,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았지만, 믿음이 너무 작아서 말씀대로 온전히 바르게 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에 보면, 이런 사람을 가리켜 ‘육신에 속한 자’,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라고 했습니다(고전 3:1,3). 이런 사람은 젖이나 먹고 밥은 먹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밤낮 남을 시기하고, 분쟁을 일으키고, 사람을 따라 행합니다. 무리를 지어 교회를 어지럽힙니다.

 

히브리서 5장 11~14절에 보면,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젖먹이 신자의 특징이 있습니다. 이들은 교회에 나온 지 오래되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합니다. 누가 가르쳐줘야 합니다.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남에게 가르쳐줘야 할 사람이 성장하지 않고 오히려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마치 병든 아이 같습니다. 그리고 단단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젖이나 먹습니다.

 

젖이나 먹는다는 의미는 설교 시간에 축복 받는다는 말을 듣기 좋아합니다.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는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 순종하라, 하나님 앞에 시간을 드려라, 하나님 앞에 물질을 드려라, 헌신해라는 말은 듣기 싫어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망한다고 책망하면 아주 기분 나빠합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진노를 받는다는 말씀을 들으면, 화를 냅니다.

이런 사람은 단단한 음식을 먹지 못합니다. 젖먹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단단한 음식을 소화시키지 못합니다. 이런 어린 신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히브리서 5장 13절에 보면,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기쁘고 행복한 일이요, 말씀대로 살았을 때에 축복 받는다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서 5장 14절에 보면,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장성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 교회에 나오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에 보면,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유다서 19절에 보면,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들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라야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요 3:3,5).

평생 교회 다녔지만, 성령을 모르고, 성령의 은혜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우리 가운데 함께하시는가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한 믿음을 가진, 신령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에게 복이 될 줄 믿습니다. 주님의 경고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알고, ‘아멘’으로 받고, 잘못된 것은 철저히 회개하므로 사함 받고, 죄를 하나도 범하지 않은 사람처럼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17장

18장

19장

20장

21장

22장

23장

24장

25장

26장

27장

28장

 

 


접속자집계

오늘
946
어제
1,471
최대
7,648
전체
1,343,862
회사소개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Copyright © dalant.or.kr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