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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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1 13:09 조회3,430회 댓글0건본문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2015년 11월 29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23:25~28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세리나 창녀, 죄인들을 아주 미워하고 비난하고 배척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 취급 받는 세리의 집에 초청 받으셨을 때에 세리의 집에 기꺼이 가셔서 세리들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그때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라고 말하며 비난했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유대인들은 음행 중에 잡힌 여인을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유대인들은 당장이라도 돌을 들어 여인을 칠 것처럼 기세등등하여 예수님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요 8:4~5).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8:7).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무언가를 쓰셨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양심에 가책을 느꼈습니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얼마나 많은 죄를 범했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 둘 그 자리에서 물러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에 맞아죽을 수밖에 없었던 여인을 구출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요 8:10).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8:11).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첫째, 예수님께서는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인은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범하는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들을 불쌍히 여겨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죄인들을 미워하지 않으셨습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고, 죄인을 회개시켜서 구원 받게 하려고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5장 31~3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 의사가 필요하겠습니까.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합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의인을 찾으려고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셋째,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보면,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세리나 죄인들보다 더 문제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이 죄인인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은 죄 없는 자라고 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죄를 깨달을 때에 회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크고 많은가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거룩하고 경건하고 깨끗하게 사는 사람인 것처럼 행세하며 교만하게 행동했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비방하고 판단하고 정죄했습니다.
야고보서 4장 11~12절에 보면,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인간은 모두 죄인이기 때문에 남을 비방하거나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이 악한 짓을 하고 죄를 범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비방하거나 판단하기 전에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자신에게는 죄가 없는지, 자신은 의로운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마치 자신은 특별한 것처럼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함부로 비난하고 욕하는 이 사회를 볼 때, 한심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모두 위선자였습니다. 위선자들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21장 3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리들과 창녀들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보다 먼저 회개한다는 의미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좀처럼 회개하기 힘든 사람입니다. 매우 완악하고 외식합니다. 자신이 의로운 것처럼 생각하고 행세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회개하기 힘듭니다. 그러므로 세리나 창녀들이 이들보다 회개하기 쉽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23장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마지막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직전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면, 가장 중요한 것을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저는 해외에 나가서 말씀을 전할 때마다 ‘오늘 이 설교가 나의 마지막 설교가 될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고 말씀을 전합니다.
그래서 제가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이 말씀만은 꼭 전해야겠다.’라고 생각하며 가장 소중한 말씀을 골라서 말씀을 전합니다. 그렇다 보니 말씀을 전하면서 제게도 은혜가 되지만, 성령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는 사람들도 은혜 받는 것을 봅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여러 번 주셨지만, 그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므로 모든 일의 결과를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이 회개하지 않을 것을 알고 계시면서도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들이 죄 가운데서 죽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18장 23절에 보면,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랑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아무리 죄가 많은 사람이라도,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죄 가운데서 멸망하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 그들로 하여금 죄 가운데서 망하게 하지 않으시고 살리시기 위해 본문의 내용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죄를 범했습니다.
누구든지 회개하지 않으면 더 큰 죄를 범하게 됩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사람을 미워해도, 살인한 것과 같습니다. 마음으로 사람을 미워해도, 이미 죄를 범한 것입니다.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고, 계속 사람을 미워하는 미움이 쌓이면, 살인사건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작은 죄를 범했을 때에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고 머뭇거리다 보면, 나중에는 더 큰 죄를 범하게 됩니다.
잠언 16장 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습니다. 악한 사람은 악한 날에 쓰임 받기에 적당하게 만드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려면, 누군가가 예수님을 죽여야 합니다. 누군가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실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기고, 가장 경건하게 산다고 자부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 일을 했습니다. 왜 그들이 이런 짓을 했을까요? 그들의 마음이 그만큼 악하고, 완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해서는 안 되는, 악한 짓을 했습니다.
사무엘상 22장 7~19절에 보면, 다윗이 도망 다닐 때에 대제사장 아히멜렉을 찾아가서 먹을 것을 달라고 했습니다. 아히멜렉은 다윗에게 먹을 것을 주고, 골리앗의 칼도 주었습니다.
그때 사울의 목자장인 에돔 사람 도엑이 그것을 보았습니다. 다윗이 와서 음식을 얻어먹고 골리앗의 칼을 받는 것을 도엑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사울에게 보고했습니다.
사울 왕이 화가 나서 아히멜렉을 불러 야단을 치고, 아히멜렉이 살고 있는 제사장의 마을 놉에 있는 모든 제사장 85명을 다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신하들은 아무도 왕의 명령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사울 왕은 도엑에게 “네가 죽여라”라고 명령했습니다.
도엑은 에봇을 입은 제사장 85명을 죽였을 뿐 아니라, 그곳에 사는 남녀와 아이들, 젖 먹는 자들, 그리고 소와 나귀와 양까지 모두 칼로 쳐서 죽였습니다.
도엑은 그런 악독한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도엑은 악한 일에 쓰임 받았습니다. 악한 일에 아무나 쓰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악인을 악한 날에 적당하도록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아버지, 저를 악한 도구가 되지 말게 하옵소서. 선한 도구가 되게 해주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많은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많은 사람을 죽이는 악한 도구가 되지 말게 하시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 망할 사람을 일으키고, 슬퍼하는 사람을 위로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선한 도구가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도 악한 도구가 되었던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동참한 모든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좋은 말씀만 전하시고, 좋은 일을 많이 행하셨습니다. 병자들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먹이시는 등 예수님께서는 의롭지 않은 일을 행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동참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악한 도구가 된 사람입니다.
선한 도구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50~51절에 보면,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19장 38절에 보면,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용기가 부족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에는 빌라도에게 찾아가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해서 예수님의 시체를 마포에 싸서 자기를 위해 준비해둔 새 무덤에 장례식을 잘 지냈습니다.
요한복음 19장 39~40절에 보면,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얼마나 복된 사람들입니까. 우리가 천국에 가면, 아마 이분들은 면류관을 쓰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계실 것입니다.
제가 50년 동안 목회해보니, 교회 안에서 문제가 생기면 사람이 두 개의 부류로 갈라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평소에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고, 덕을 세우지 못하다가 마치 자신이 의인인 것처럼 행세하며 악의 도구가 되어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선한 일에 도구가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문제가 생겼을 때에 묵묵히 기도하면서 교회를 돌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선한 일에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일평생 잠시라도 어디서든 어떤 일로서든 악의 도구가 되지 마시고, 선한 일에 앞장서는, 선한 도구가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 마태복음 23장 25~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릇을 깨끗이 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릇은 깨끗이 했는데, 이들의 마음에는 탐욕과 방탕이 가득했습니다. 이들은 마음이 더러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잘못을 지적하시며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속부터 깨끗이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가리켜 눈 먼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눈 먼 자는 육체적인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영적으로 분별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양심이 화인 맞았다는 의미입니다. 영적으로 어두워져 있는 어리석은 인간을 가리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항상 성령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영안이 밝아야 합니다. 그래서 작은 허물까지도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여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합니다.
본문 마태복음 23장 27~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가리켜 회칠한 무덤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의 장례법에 의하면, 자기가 사는 동네, 자기 집 가까이에 시신을 안장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좋게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 사랑하는 부모나 사랑하는 가족이 죽고 나면, 사랑하는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무덤이 가까이에 있으면, 자주 찾아가서 무덤을 아름답게 돌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항상 함께 사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무덤을 보며 ‘나도 언젠가는 죽는다.’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존경하던 여전도사님께서 어제 오전에 통화를 했습니다. 전도사님께서는 제게 건강을 챙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주 건강한 목소리로 힘 있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제 밤에 여전도사님의 며느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전도사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말했습니다.
평소에 건강하다 해도, 하나님께서 갑자기 우리의 심장을 멈추게 하시면, 이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무덤 가까이에 살면, 항상 무덤을 보며, ‘나도 언젠가는 무덤 속에 들어간다’라고 생각하고 정신 차리게 되고, 신앙생활도 되돌아보게 되고, 방탕하게 살다가도 되돌아오게 되니 좋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에 가보니 길에도 무덤이 있었습니다. 유럽에서 유대인의 법에 따라 그렇게 했는지 모르지만, 유럽의 도시에서도 무덤이 길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무덤에 회칠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민수기 19장 16절에 보면, “누구든지 들에서 칼에 죽은 자나 시체나 사람의 뼈나 무덤을 만졌으면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무덤을 만지기만 해도, 이레 동안 부정하다고 했습니다.
민수기 19장 20절에 보면, “사람이 부정하고도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힘이니 그러므로 회중 가운데에서 끊어질 것이니라 그는 정결하게 하는 물로 뿌림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부정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신을 만졌거나 무덤을 만져서 부정한 몸이 되었는데, 그런 몸으로 하나님의 전에 들어왔다가는 하나님께서 걷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까.
그런데 유대인들의 절기가 되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오기 때문에 숙소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들에서도 자고, 산에서도 자다 보니 무덤 곁에서 자다가 몸이 부정하게 되어 다음 날에 성전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이런 일을 예방하기 위해 무덤에 회칠하여 무덤 가까이에 오지 못하게 하고, 몸이 무덤에 닿지 않도록 했습니다.
무덤에 회칠했으니 겉을 보면 아주 깨끗하게 보입니다. 성지순례 중에 예루살렘에 가면, 회칠한 무덤을 볼 수 있습니다.
하얗게 칠해놓았으니 아주 깨끗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무덤 속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더러운 것이 가득합니다. 겉은 깨끗한데, 속에서는 시체가 썩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가리켜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살아있을 때 뿐 아니라, 이 세상을 떠난 후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는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을 가장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죄가 모두 드러나고, 심판을 받아 지옥 불에 들어가 영원히 고통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도 모르고 사람들에게 옳게 보이려고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마태복음 23장 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본문 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눈으로 보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자가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속일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잠언 2장 7절에 보면,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열왕기상 15장 5절에 보면,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없습니다. 다윗은 가장 지혜롭게 살았던 사람입니다. 물론 다윗도 범죄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회개하여 용서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우리아를 죽이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은 사건을 제외하고는 평생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일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솔로몬도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세상적인 지혜가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솔로몬은 실패자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살아갈수록 은혜로워지고, 믿음이 더욱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하며 살았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솔로몬이 남긴 공헌보다 다윗이 남긴 공헌이 더 큽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정직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완전한 지혜를 주셨습니다.
외식하는 자가 되지 맙시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자가 가장 지혜롭다는 것을 언제나 마음에 새기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작은 죄라도 철저히 회개합시다. 회개하지 않으면, 더 큰 죄를 범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속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철저하게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의 평생에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자가 되게 해주옵소서. 사람에게 인정받기보다는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자가 되게 해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는, 선한 도구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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