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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22장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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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9:54 조회4,5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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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

2015년 09월 06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22:15~22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간교한 밤이 하와를 속여서 하와로 하여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게 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뱀은 사탄을 가리킵니다.

 

요한계시록 12장 9절에 보면,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큰 용’은 옛 뱀을 가리키고,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합니다(계 20:2). 사탄은 지금 이 시간에도 사람들의 속에 들어가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사탄이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의 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해서 죽이려는 악독한 마음을 가지고 간교한 짓을 했습니다.

본문 15~16절에 보면,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알게 모르게 실수를 많이 합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는 말의 실수를 많이 합니다.

야고보서 3장 2절에 보면,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구나 말 실수를 합니다. 그런데 절대 말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온 몸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혀를 통제하는 것이 가장 힘듭니다. 그런데 혀를 통제한다면, 그 사람은 대단히 훌륭한 사람입니다.

 

야고보서 1장 19절에 보면,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말 실수를 많이 하는데, 말 실수를 줄이려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귀는 두 개이고, 혀는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많이 듣고, 적게 말해야 합니다. 말하고 싶은 것을 다 말하려고 하지 말고, 절제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2장 36~3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말을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쓸데없는 말을 했든지 심판 날에 그것에 대해 심판을 받게 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0절에 보면, 베드로는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라고 말했습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한다면, 악한 말을 하지 말고, 거짓을 말하지 말고, 입을 잘 관리하라는 의미입니다.

 

잠언 17장 27~28절에 보면,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냉철한 자는 명철하니라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겨지고 그의 입술을 닫으면 슬기로운 자로 여겨지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말을 아끼는 사람은 지식이 있는 사람입니다. 미련한 사람은 말만 들어봐도 그 사람이 미련한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련한 사람이 잠잠히 있으면, 그 사람이 미련한 사람인 것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사람을 슬기로운 자라고 생각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문제가 있으면 입을 다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작은 문제가 생겨도 열을 내고 따지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미련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물론 문제가 생기면, 의논하고 토론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런데 제가 50년간 목회하면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의논하고 토론하여 일해서 문제가 해결된 경우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희생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다들 말만 할 뿐입니다.

 

문제를 해결하실 분은 오직 주님뿐이십니다. 기도하다 보면, 성령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십니다. 교회에 문제가 있을 경우에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에 들지 않고, 눈에 거슬리고, 문제가 되는 일이 있다 해도 함부로 입을 열면 안 됩니다. 입을 열면, 문제가 커집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도, 입을 꾹 다물고 있어보세요. 그 사람은 존경받습니다. 지혜로운 사람, 슬기로운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입이 사탄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우리의 입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사탄은 사람의 입을 사용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나라는 모든 면에서 뛰어나서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있지만, 정치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정치를 잘했으면 좋겠다고, 정치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치인들이 좋은 말, 건설적인 말을 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말을 해서 국민들을 살맛나게 해야 할 텐데,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서로 헐뜯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죽이려고 악담을 퍼붓습니다.

그렇다 보니 날마다 신문을 보고, TV 뉴스를 보는 국민들은 머리가 아픕니다.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사람의 입입니다. 사람들이 말을 잘못하게 때문에 불행합니다.

 

여러분, 입을 함부로 열지 마세요. 우리가 입을 함부로 열면, 사탄이 우리의 입을 사용합니다. 부부사이가 원수 같이 되게 만들고, 형제를 원수처럼 되게 합니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 골치 아픈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본문 15~17절에 보면,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인정해주고, 예수님을 존경하는 것처럼 예수님을 칭찬하고 아첨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참으로 예수님을 존경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해서 예수님을 죽이려는 악한 의도를 가지고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시편 55편 21절에 보면, “그의 입은 우유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그의 마음은 전쟁이요 그의 말은 기름보다 유하나 실상은 뽑힌 칼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참 무서운 사람입니다.

좋은 말을 하는데, 속으로는 ‘어떻게 하면 이 인간을 죽일까’라고 생각하고, 칼을 품고 있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사람입니까.

 

사탄은 우리에게도 이런 방법을 사용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높여주려고 우리를 칭찬하지만, 실상은 우리를 교만해지도록 하고, 실수하도록 하고, 죄짓게 만들어서 우리를 파멸하게 하려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비방할 때, 나를 비방하는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아버지, 제 허물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기도해보세요. 우리에게 유익하지, 손해되지 않습니다.

 

주변에서 찾아와서 칭찬하고 높여주는 사람이 많아져서 사기가 충천하여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난 것처럼 생각하게 되면, 이것은 굉장한 위기입니다. 이런 때에는 누구든지 교만해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교만한 생각이 들어와서 사람들의 말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내가 칭찬 들을 만하지. 내가 남들보다 잘하지. 내가 훌륭하지.’라고 생각하며 사람들의 말을 그대로 인정하게 됩니다. 사탄은 이러한 방법으로 믿음의 사람을 넘어뜨립니다.

 

은혜 많이 받은 사람들. 훌륭한 사람들을 넘어뜨리려면, 그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면 됩니다. 교만하면 하나님과 원수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사람들을 패망하게 하십니다.

사탄은 훌륭한 믿음의 사람을 어떻게 해서든지 교만하게 만들어서 그 사람을 망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람들로부터 칭찬 듣거나 인기가 높아질 때,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 어떻게 반응하는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잠언 27장 21절에 보면,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하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에게 책망하거나 비판할 때, 그 사람의 반응을 통해 그 사람의 믿음과 성품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참 모습을 알려면, 칭찬해보아야 합니다. 칭찬했을 때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믿음과 인격의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웃시야 왕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나라를 다스릴 때에 나라가 강성해지고 부강해졌습니다.

나라가 강성해지고 부강해지니 주위에서 웃시야 왕을 칭찬하며 그를 높였습니다. 그때 그의 마음에 교만이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그는 제사장을 대신하여 향로를 잡고 분향하다가 나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나라를 다스릴 때, 제2의 다윗 시대라고 할 만큼 전성기가 올 것이라고 기대할 만큼 나라가 부강해졌습니다.

앗수르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 히스기야 왕은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18만 5천 명을 쳐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어있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히스기야 왕이 죽을병에 걸렸는데,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 왕의 생명을 15년 연장해주셨습니다.

이 정도 되니 주변에서 “히스기야 왕의 믿음이 대단하다, 히스기야 왕은 기도의 사람이다.”라고 칭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열왕기하 20장 12~13절에 보면,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의 왕 브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그에게 보낸지라 히스기야가 사자들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들에게 보였는데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벨론의 왕이 히스기야 왕이 병들었다가 살아났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편지를 쓰고, 예물을 보냈습니다. 강대국에서 이렇게까지 대해주니 히스기야 왕이 흥분했습니다. 그 사이 그의 마음에 교만이 들어왔습니다.

교만한 마음이 생기면, 영적으로 어두워집니다. 그래서 히스기야 왕은 미련한 짓을 했습니다. 큰 실수를 했습니다. 바보 같은 짓을 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창고를 모두 열어 자기에게 금은보화가 얼마나 많은지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금은보화가 이렇게 많다는 것을 자랑했습니다. 보여주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귀한 것이 있다면, 감추어야 할 텐데, 오히려 그것을 자랑하고 돌아다녔습니다.

 

제가 아는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 목사님은 재산이 매우 많았습니다. 그래서 재산이 많다는 것을 제게도 자랑했습니다.

목사는 은혜 받은 것을 자랑하고, 주님의 특별한 은혜를 경험한 것을 자랑해야 할 텐데, 그 목사님은 재산이 많다는 것을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께서 부흥회를 인도하러 다니면서도 자신이 부자라는 것을 자랑하셨나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쁜 사람들이 목사님에게 접근하여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일로 인해 교회에서 쫓겨났습니다. 큰 충격을 받아 결국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재산을 자랑하니 나쁜 사람들이 접근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히스기야 왕은 주변에서 자기를 높여주니까 그의 마음에 교만이 들어갔습니다. 역대하 32장 24~26절에 보면,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분노하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앗수르 군사를 물리친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자신이 부요하진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죽을병에 걸렸으나 15년 더 살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높여야 합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은 교만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실수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바벨론에서 쳐들어와서 모든 것을 빼앗아갔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미리 말했습니다(사 39:6~7). 이사야 선지자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히스기야 왕의 실수로 말미암아 모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를 교만하게 만들어서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이것이 사탄의 공격 방법입니다.

쓴 것보다 달콤한 것이 더 많은 병을 유발한다고 합니다. 달콤한 것이 입에 들어가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쓴 것보다 달콤한 것이 병을 더 많이 유발한다고 합니다.

환난과 시험이 있고, 고난이 있으면 괴롭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잘 되고, 평안하고 세상적으로 잘 나갈 때보다 고난의 때가 우리가 믿음으로 살기에 좋습니다.

 

근심 걱정이 있습니까. 어려움이 있습니까. 감사하세요. 고난 때문에 겸손하고, 깨어 기도하고, 말씀대로 살게 된다면, 고난으로 인해 천 배, 만 배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잘 되고, 걱정할 것이 없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는다면, 그때는 정말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윗이 사울로부터 핍박을 받고 도망 다니며 고난 속에 있을 때에는 기도를 많이 하며 신령한 생활을 했습니다. 시편에 보면, 다윗이 깊은 영감으로 시를 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언제 넘어졌습니까? 나라가 강대해져서 왕이 직접 전쟁에 나갈 필요가 없게 되자, 다윗은 왕궁에서 편안히 낮잠을 자고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우리아 장군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언제 넘어지기 쉬운지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사탄이 우리를 공격할 때, 환난과 고통을 통해서는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환난과 고통이 있을 때에는 성도들의 믿음이 오히려 더 좋아집니다.

편안할 때, 모든 것이 잘 될 때, 우리는 교만해지지 않고,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 때일수록 감사하고, 충성해야 합니다.

편안하고 모든 것이 잘 되면, 하나님을 위해 살 기회라고 생각하고, 시간과 몸과 물질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 쓰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보통 사람과 같은 삶을 사셨다면, 사람들이 찾아와서 아첨했을 때, 그들의 올무에 걸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주님은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실수가 없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을 속일 수는 있어도, 예수님을 속일 수는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왜 예수님을 찾아왔는지, 왜 아첨하는 말을 하는지 다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계셨습니다.

본문 18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악독한 마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하려고 예수님을 시험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교활하게 질문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라고 말씀하신다면, 유대인들로부터 비방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세금을 내지 말라고 말씀하신다면, 가이사를 반역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대답해도, 저렇게 대답해도 올무에 걸리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대답하셨습니다. 본문 19~22절에 보면,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당시에 통용했던 돈에는 가이사 황제의 얼굴이 그러져있었습니다. 왕이 왕위에 오르면, 왕권을 상징하는 의미로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화폐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가이사의 것이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중요한 교훈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 정부가 어떠하든지 정부에서 징수하는 세금은 반드시 납부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부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정부를 반대하는 입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금은 정직하게 납부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세금을 정직하게 납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3장 1~7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라고 설명했습니다.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기 때문에 누가 정권을 잡는가, 누가 권세를 가지는가는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인간의 방법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시면,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하여 사신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배반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군대를 몽둥이로 삼으셔서 이스라엘을 멸하셨습니다.

이것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앗수르가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몽둥이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금을 바치는 일에 있어서 성실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11~17절에 보면, 사도 베드로는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라고 말했습니다.

이 당시의 왕은 이스라엘을 완전히 점령하여 식민지로 만든 가이사였습니다. 그리고 헤롯 왕은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그들은 악독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왕을 대적하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왕을 존대하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2장 1~4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내 교회, 내 가정만을 위해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로마의 임금들이 기독교를 박해하고,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들을 대적하여 싸우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12장 14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선한 마음을 가져서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복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는 원수들도 사랑해야 할 대상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악을 악으로 갚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을 저주하거나 악담해서는 안 됩니다.

어떠한 사람이라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이라도 우리는 그를 축복하며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산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권세 있는 자들과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안심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반역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면, 세상 사람들이 감동을 받을 것입니다. 복음이 전해질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게 될 것입니다.

 

둘째, 기독교인은 모범적인 국민이 되어야 할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도 모범적인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모범적인 백성입니까? 하나님의 것과 자신의 것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성경에 보면,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말라기 3장 8~12절에 보면,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올 때, 우리가 가지고 온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받은 것입니다.

역대상 29장에 보면, 다윗은 어마어마한 금은보화를 하나님께 바치면서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대상 29:14).

다윗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많은 물질을 하나님께 바친다 해도 그것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서 우리가 받은 것입니다.

 

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무엇 때문에 근심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을 괴로워하고, 그것 때문에 걱정하는 시간이 많은가, 돈 때문에, 사업 자금 때문에 밤낮 걱정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고, 우리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살아야 합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시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고 귀하고 복된 말씀인 줄 믿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잘 깨닫고, 이 말씀을 붙잡고, 말씀대로 살아감으로 복을 받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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