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 마태복음20장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마태복음20장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9:12 조회3,444회 댓글0건

본문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2015년 06월 28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20:29~34

 

본문에 보면, 길 가에 앉아있던 두 맹인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눈을 뜨게 되고, 구원의 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복 중의 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성경에 보면, 어떤 사람이든지 예수님을 만난 후에 큰 축복을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에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열심히 다녔습니다. 하루에 세 번 이상 기도하고, 성경도 많이 읽고, 예배에는 절대 빠지지 않고,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그런데 머리로만 믿었을 뿐입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예수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금식기도하다가 주님께서 제 방에 찾아오셔서 제게 말씀하시는 것을 생생하게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대학교 졸업식 후에 교회에 가서 기도하다가 주님께서 제게 말씀하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때 저는 제가 그동안 고생을 많이 하며 살아온 것이 제게 축복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순간, 괴로웠던 과거가 더 이상 괴롭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고난을 통해 주님께서 저를 주님의 종으로 만드시기 위해 저를 훈련시키셨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에도 주님과의 만남을 여러 번 체험했습니다. 목회하면서 중요한 일을 결정해야 할 때에는 주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을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저는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렇게 살아오는 동안 저는 많은 복을 받았습니다.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의 일입니다. 주일 저녁예배 시간에 여전도회헌신예배를 드렸습니다. 남자 전도사님께서 강사로 오셔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 전도사님은 예수님을 직접 만나보기 원했습니다. 그 바람이 매우 간절하여 삼각산 꼭대기에 있는 굴 속에서 금식하며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그 전도사님은 “주여, 한 번만 보기 원합니다. 제 앞에 나타나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났습니다. 얼마나 배고프고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 한밤중에 머리를 푼 여자 귀신이 눈앞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도사님은 예수님을 육안으로 보기 원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하늘나라로 올라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뼈와 살이 없습니다. 그래서 육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15~16절에 보면,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육안으로 볼 수 없을 뿐,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인격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형편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우리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왜 슬퍼하는지, 어디가 아픈지 주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모르시는 것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생각나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 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주님의 책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주님께서 책망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주님의 책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께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우리에게 장래 일을 알려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주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는 여러 번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두 맹인을 잘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주님께서 모르시는 것이 있겠습니까.

누가복음 18장 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맹인에게 믿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히 11:6).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진 사람, 믿음의 사람을 기뻐하시고, 믿음의 사람을 축복하시고, 믿음의 사람에게 찾아오십니다.

 

본문에 나오는 두 맹인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첫째,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임을 믿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온 이스라엘이 고대하고 있는 메시아라는 의미입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두 맹인이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소리쳤습니다. 두 맹인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똑바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바리새인이나 서기관, 제사장들은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인 것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이신 것을 그들이 알았다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거나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았다면,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신 것을 알았을 텐데, 이들은 예수님에 대해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예수님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마음이 그들 속에 가득하여 예수님을 죽이려고 생각하다가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두 맹인은 앞을 보지 못했지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고, 예수님께서 무슨 일을 행하셨는가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두 맹인은 예수님이야말로 메시아요, 다윗의 자손임을 확신했습니다.

 

구원 받을 수 있는 믿음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똑바로 아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까.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이라면, 예수님이 누구신지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두 맹인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똑바로 알고 있었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고 신뢰했습니다.

두 맹인은 예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고 신뢰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기를 갈망하고 사모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길 가에 나와서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길 가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예수님을 기다렸는가는 알 수 없지만, 이들은 예수님을 만날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뜨거운 햇볕 아래 목마름과 배고픔을 참아가며 오직 예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믿음이 없다면, 절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시편 107편 9절에 보면,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사모하며 간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좋은 것으로 반드시 채워주십니다.

 

셋째, 예수님을 만날 기회가 왔을 때에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있는 힘을 다해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소리쳤습니다.

이들의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옆에 있던 사람들이 “잠잠하라”라고 이들을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두 맹인은 무리의 말에 개의치 않고 더욱 크게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쳤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가시던 길을 멈추시고, 이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이 얼마나 인자하신 분이신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맹인의 소원을 다 아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맹인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질문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어떤 마음으로 맹인에게 이렇게 물어보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원하니? 말해라.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라는 의미로 맹인들에게 물어보셨을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주신 예수님께서 무엇이 아까워서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에게 복이 되는 것이라면,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든 우리에게 주시고 싶어 하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1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그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부산을 복음화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수영로교회를 개척한 후, 새벽예배를 마치고 수영로터리를 한 바퀴씩 돌며 기도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서 수영로터리만 차지하면 넉넉할 것이라 생각하고, 마치 여리고 성을 돌 듯이 매일 새벽예배 후에 수영로터리를 돌며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생각은 그렇게 작지 않았습니다. 10년 정도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하늘을 쳐다보니 새가 하늘 높이 날아올라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새가 얼마나 높이 올라가는지, 나중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제게 “저 새를 봐라. 저 새를 위해 내가 예비해놓은 공간을 봐라. 얼마나 넓고, 얼마나 크냐. 다만 새가 날개 치는 것만큼 쓰지 않느냐. 내가 너를 위해 준비해놓은 땅이 크고 넓고 많다. 네가 감당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주겠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난 후에는 수영로터리를 돌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 교회에게 수영로터리보다 열 배, 백 배 넒은 땅을 주셨습니다. 다 쓰지 못할 정도로 많은 땅을 우리 교회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행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생각한 것보다 더 크게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에 나오는 두 맹인은 자신들을 방해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두 맹인은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자신들을 방해하는 사람들을 신경 쓰다 보면, 예수님을 만날 기회를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맹인은 참으로 지혜로웠습니다. 그들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꾸짖으며 잠잠하라고 했지만, 두 맹인은 그것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더욱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잘한 것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께서는 가시던 길을 멈추시고, 그들을 부르시며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두 맹인은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그들의 눈을 만져주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곧 보게 되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성경에 보면, 두 맹인처럼 믿음으로 복을 받은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누가복음 18장 1~8절에 보면, 과부가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자신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불의한 재판장을 찾아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라고 하소연했습니다. 불의한 재판장이 과부의 소원을 들어주겠습니까.

그러나 과부가 계속해서 졸라대니 재판장은 귀찮았습니다. 과부가 결사적으로 부르짖으니 재판장은 과부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재판장과 과부의 이야기를 말씀하시며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8:7~8).

여러분, 물러서지 마세요. 기도하기를 중단하지 마세요. 포기하지 마세요.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끈질기게 간구하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중풍병자를 침상째 들고 예수님 앞에 나아왔는데, 사람이 많아 예수님께서 계신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지붕 위에 올라가서 지붕을 뜯어 중풍병자가 누운 침상을 내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시며 축복하셨습니다(마 9:2). 그러므로 일이 어렵다고 중단하면 안 됩니다. 포기하면 안 됩니다.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밤새도록 부르짖으며 기도하다가 천사와 씨름했습니다. 야곱은 천사에게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말하며 천사를 붙잡았습니다. 천사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쳐서 허벅지 관절이 어긋났음에도 야곱은 천사를 놓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바꾸어주시며 야곱을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런 믿음이 있습니까? 제게는 이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축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는 목숨 걸고 기도하는 고집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면 죽으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응답 받았습니다. 마지막 때에 이런 믿음을 가지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보면,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부터 요한계시록 22장까지 성경 전체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보여줍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남으로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엡 3:18). 우리가 주님의 사랑이 자신이 알고 있던 것보다 크다는 것을 깨달으면 ‘주님께서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는구나’라고 깜짝 놀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사랑이 자신이 지식적으로 알고 있던 것보다 백 배, 천 배, 만 배 더 크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에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아무리 크게 생각해도, 주님의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큽니다. 사도 바울이 이 세상의 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길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들어가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었지만, 항상 기뻐하며 살았습니다. 그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을 만남으로 주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사람마다 매우 행복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만나는 사람은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됩니다.

주님을 만나면, 우울증이 사라져버립니다. 주님을 만나면, 고민이 사라집니다. 근심 걱정이 사라집니다. 두려움도 사라집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예수님을 만남으로 이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 성도들에게 평생의 복이 될 줄 믿습니다. 예배당 마당만 밟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해주셔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하시고,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항상 주님을 바라보는 가운데, 늘 승리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17장

18장

19장

20장

21장

22장

23장

24장

25장

26장

27장

28장

 

 



Copyright © dalant.or.kr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PC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