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원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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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9:09 조회3,488회 댓글0건본문
무엇을 원하느냐
무엇을 원하느냐
2015년 06월 21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20:20~28
고린도전서에 보면, 고린도교회에 세 종류의 사람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한 마디로 말해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은 그 속에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성령이 없습니다(유 1:19).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성령이 하시는 일을 믿지 않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믿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교회에 나오지만, 구원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둘째, 육신에 속한 사람입니다(고전 3:1~3).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기는 믿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났지만, 믿음이 작습니다. 젖먹이 수준입니다. 그래서 밥을 먹지 못하고, 젖이나 먹습니다. 아이가 첫 돌이 지나면, 밥을 먹습니다. 그런데 젖먹이 수준이라 하면, 첫 돌도 되지 않은, 갓난아이와 같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은혜를 받으면, 은혜를 받을 때마다 믿음이 자랍니다. 믿음이 자랄 때마다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사람이 달라집니다. 성품이 달라집니다. 말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생각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육신에 속한 자, 젖먹이 신자들은 믿음이 작기 때문에 변한다 해도 아주 적게 변합니다. 그래서 어떤 때에는 불신자처럼 보이고, 어떤 때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고린도교회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아서 밤낮 서로 시기하고,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견고해질수록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의 말씀을 믿고, 말씀을 붙잡고 살고, 예수님 중심으로 살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사람을 따라 행했습니다(고전 3:3). 그러므로 이 사람들은 믿음이 형편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셋째, 신령한 자입니다(고전 3:1).
이 사람들은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은혜를 받아 성령으로 충만하여 믿음이 충만하고, 사랑이 충만하고, 아름다운 성도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똑같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다 해도 은혜를 받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들은 은혜를 받을수록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지를 깨닫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일수록 하나님이 좋으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좋으신 하나님으로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겁나고 두렵고 조금만 잘못해도 때리는, 세상의 아버지처럼 생각합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은혜를 충만히 받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아주 크게 생각했는데, 하나님의 사랑이 자신의 생각보다 더 크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큰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깨닫습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별로 깨닫지 못합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과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이런 차이가 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에게는 항상 기쁨이 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항상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아주 행복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항상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항상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을 감사하고,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생각한다면, 주님께서 보시고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두 그런 모습으로 교회에 나온다면, 주변에 있는 아파트와 동네 주민, 그리고 부산 시민들이 보고 ‘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기에 저렇게 행복해보이나. 교회 다니는 사람이구나. 나도 교회에 가야겠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가 저절로 부흥하고, 저절로 전도가 됩니다.
은혜를 받아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행복하게 살면, 자신에게도 복이 됩니다. 하루하루를 지겹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가 아주 행복하게 사니 얼마나 복 있는 사람입니까.
그러나 은혜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기쁨이 없습니다. 감사할 것이 많아도, 감사할 것이 보이지 않고, 걱정거리만 보입니다. 그래서 행복하지 않습니다. 항상 수심에 잠겨있습니다. 문제가 아주 많으니까 문제만 보입니다. 감사할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불행합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지를 깨닫습니다.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가 예수님을 그냥 찾아왔겠습니까. 할 말이 있어서 찾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왜 찾아왔느냐는 의미입니다. 주님의 이 말씀 속에는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무엇이든 주고 싶은 마음으로 “너, 뭐 필요한 것 없어?”라고 물어본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엎드려서 주님께 기도하면, 주님께서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물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주님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7:7~8). 우리에게 무엇이든 주고 싶어 하시는 예수님께서는 구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 2~3절에 보면,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아까워서 우리에게 주시지 않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독생자까지 내어주셨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아까워서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평소에 기도하지 않는 분들, 문제가 있어도 주님 앞에 내어놓지 않는 분들은 손해를 많이 보고 사는 것입니다.
제가 50년간 목회했는데, 목회 후반에 들어와서는 기도 시간을 점점 늘렸습니다. 제가 기도했을 때, 주님께서 구체적으로 응답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강단에서 기도하는데, 어느 권사님이 생각났습니다. 우리 교회 교인이 많다 보니 제가 교인들을 일일이 만나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권사님을 뵌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래서 ‘전화해서 권사님의 안부를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랫동안 기도한 후에 예배실에서 나가는데, 권사님이 문 앞에 와서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권사님께 전화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권사님을 대기시켜놓으셨습니다.
저는 이런 일을 한두 번 경험한 것이 아닙니다. 생각하기만 해도 응답해주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형편을 매우 잘 아십니다. 무엇 때문에 고민하는가도 아십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도 아십니다.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기도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손해를 많이 봅니다. 기도한다고 해도 마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처럼 기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망하는 길인지도 모르고, 정욕에 사로잡혀서 욕심에 따라 무조건 이루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런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독약을 달라고 하는데, 독약을 주는 부모가 좋은 부모입니까.
마태복음 20장 17~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시며 열두 제자에게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본문의 내용이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모든 사람이 들었을 것입니다.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왕이 되시면, 자신의 두 아들을 예수님의 좌우에 앉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는 어떤 마음으로 예수님께 이렇게 부탁했을까요? 세상적인 욕심을 가지고, 이렇게 요구했을까요? 자신의 아들들을 출세시키려는 생각으로 예수님께 미리 와서 부탁한 것일까요? 신령한 욕심을 가지고 주님을 위해 충성하여 장차 주님께서 만왕의 왕이 되실 때에 두 아들이 주님의 양쪽에 앉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부탁했을까요?
우리 안에 있는 두 가지 욕심이 늘 싸웁니다. 그런데 세상 욕심은 가지면 가질수록 타락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욕심 때문에 범죄하게 되고, 계속 범죄하다 보면, 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신령한 욕심, 좋은 욕심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합니다. 이로 인해 우리의 믿음이 강건해집니다. 이렇게 살다 보면, 복을 받게 되고, 장차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상급을 받게 됩니다.
만약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가 세상 욕심에 눈이 어두워서 주님께 이렇게 부탁한 것이라면,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는 철들지 않은 사람이거나 믿음이 아주 작은 젖먹이 신자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가 신령한 욕심으로 이렇게 부탁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머지않은 장래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에는 만주의 주, 만왕의 왕으로 오십니다. 그때는 이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왕으로서 다스리실 것입니다(계 11:15).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들 중에 이 세상을 떠난 성도들이 부활하여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때의 부활을 ‘첫째 부활’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5장 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부활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의 부활이고, 하나는 심판의 부활입니다.
생명의 부활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이 부활하는 것이고, 심판의 부활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영원히 지옥에 갈 사람들이 부활하는 것입니다. 심판의 부활은 나중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부활하는 것이 첫째 부활입니다. 첫째 부활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다시는 죽지 않고, 늙지 않고, 아프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생하는 몸으로 부활하여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됩니다.
그리고 난 후에 살아남아있던 성도들도 영생하는 몸으로 변화되어 주님을 맞이하게 됩니다.
예수님 앞에 가면, 각 사람이 일한 대로, 자기의 행위대로 상을 받습니다(고전 3:8, 계 22:12). 끝까지 신앙의 지조를 지키며 승리한 사람들, 끝까지 주의 일을 하면서 살았던 사람들, 고난을 받으면서도, 고생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겠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계 2:26).
요한계시록 20장 4절에 보면,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옆에 보좌가 있고, 거기에 사람이 앉아있는데, 거기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심판하는 권세를 받은 아주 특별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전하다가 순교한 사람, 말씀을 전하다가 순교한 사람, 박해를 받으면서도 끝까지 우상숭배하지 않고, 끝까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승리한 사람입니다. 이들이 예수님과 함께 천 년 동안 왕 노릇 할 것입니다.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는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는 장차 예수님이 왕이 되실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라고 부탁했을 것입니다.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가 자신의 두 아들을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부탁한 것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할 수 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 잔’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 잔’은 고난의 잔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받으시는 고난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6장 38~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일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천국에 들어가 살 사람입니다.
천국에 들어가서 살려면, 죄가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죗값을 다 지불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시면서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 16:15).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해서 구원 받게 하는 일을 하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부탁하셨을까요? 장차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받게 하시려고 이렇게 부탁하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7절에 보면,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준비해놓으신 새 하늘과 새 땅, 모든 좋은 것을 우리가 상속받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받을 자입니다. 우리가 영광을 누리려면, 주님께서 마신 잔을 우리도 마셔야 합니다. 주님께서 받으신 고난을 우리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른 일을 하다가 고난을 받아도 장차 천국에서 받을 영광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믿음이 적은 젖먹이 신자들은 밤낮 복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기만을 원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기복적인 신자’라고 합니다.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장성한 믿음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 죽도록 충성하며, 고난 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기쁨으로 감사하며,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삽니다.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습니까?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고, 장차 받을 영광이 얼마나 큰가 알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 2~3절에 보면,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신 이후에 이루어질 그리스도의 나라는 사탄을 천 년 동안 묶어놓았기 때문에 사탄이 활동하지 못하는 천 년 왕국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탄이 없어진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될까요? 각 사람의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넣어 죄 짓게 만들고, 미혹하는 사탄이 없어졌다고 생각해보세요. 이 세상이 달라질 것입니다.
천 년 왕국 시대에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들, 끝까지 주의 일을 한 사람들은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누리게 되고, 예수님과 함께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3절에 보면, 천 년이 찬 후에는 마지막 심판이 있는데,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이 둘째 부활, 심판의 부활입니다.
천 년 왕국이 지난 후에 부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은 사람들이 이때 부활해서 심판을 받고, 영원히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됩니다.
본문 24절에 보면,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부탁한 것을 제자들이 뒤늦게 알고 분을 내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제자들이 젖먹이 신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믿음이 작았으니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수밖에 없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에는 다 도망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은 후에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젖먹이 신자가 아니었습니다. 장성한 믿음의 사람, 신령한 주의 종이 되었습니다.
제자들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같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지 못하면, 젖먹이 신자 노릇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이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광 돌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 평생에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아버지, 우리에게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허락해주셔서 세상 욕심을 따라 살지 않게 해주시옵고, 신령한 욕심을 가지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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