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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20장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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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8:53 조회3,3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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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2015년 05월 31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20:1~16

 

마태복음 19장 16절 이하에 보면, 한 부자 청년은 예수님을 찾아와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부자 청년은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 청년에게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자 청년은 재물이 매우 많았기 때문에 재물을 포기하지 못하고,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9:23~24). 한 마디로 말해,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19장 27절에 보면,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가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고 말했습니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행동하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얼마나 진실한 마음으로 그렇게 하는가, 얼마나 변함없이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19장 28~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질문에 대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라고 말씀하시고, 이어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주 중요한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신앙생활은 100m 경주가 아닙니다. 한 번 전심전력으로 달리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평생 계속하는 것인데, 마라톤과 같습니다. 평생 달려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시작도 중요하고, 중간도 중요하지만, 마지막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무리 1등으로 출발했다 해도 중간에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하여 골인지점에 들어오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처음에는 1등으로 달렸으나, 골인지점에는 꼴등으로 들어온다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마지막이 제일 중요합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열두 사도 중 한 사람으로서 굉장히 영광스러운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팔아먹었습니다. 그리고 최후에는 목매달아 죽어버렸습니다. 가룟 유다는 실패자입니다.

 

제가 전도사였을 때의 일입니다. 제가 섬기던 교회의 담임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느 장로님께서 임종하실 때에 임종예배를 드리면서 장로님께 “장로님, 이제 천국에 가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장로님께서 “가봐야 알지”라고 말씀하시더랍니다.

평생 교회생활하고, 더구나 장로까지 되었는데, 막상 임종할 때에는 구원의 확신도 없고, 천국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죽어봐야 안다고 말씀하시더랍니다.

이분은 주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북한의 강양욱 목사님은 김일성과 친척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기독교 초기에 몇 분 되지 않는 목사 중의 한 분이었습니다.

이 목사님의 집안에는 대부분이 목사, 권사, 장로였습니다. 지금 남한에서 목회하시는 분 중에 이 목사님의 친척이 있습니다. 제가 그 분을 잘 압니다.

이 목사님은 친구 중에 목사도 많고, 그 목사 친구가 어디에 사는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 목사들을 찾아가 잡아다가 죽게 만들었습니다.

아무리 훌륭하게 보이는 목사라고 해도 그런 나쁜 짓을 하다가 지금은 지옥에서 고통당하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충성한다고 해도 교만하면 안 됩니다. 방심하면 안 됩니다.

다윗을 보세요.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평소에 기도 많이 하고, 은혜롭게 살던 사람이었지만, 그는 우리아 장군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 장군을 죽이고, 밧세바를 빼앗았습니다.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을까요.

 

고린도전서 10장 12절에 보면,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제일 위험한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요즘은 내가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 같다. 요즘은 내가 모범적이고, 충성스러운 일꾼이 되었다.’라고 생각하게 될 때입니다. 이때 교만이 들어오기 쉽고, 넘어지기 쉽습니다. 바로 이때가 위험한 때입니다.

 

신앙생활을 얼마나 일찍 시작했느냐보다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살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믿은 지 1년밖에 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서 신앙생활 했는가가 중요합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교회에 나아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포도원에 들어가 일하는 것에 비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 보면, 어떤 사람은 이른 아침부터 포도원에서 일했습니다. 3절에 보면, 어떤 사람은 제삼시, 즉 우리나라 시간으로 오전 9시에 포도원에 들어와 일했습니다. 5절에 보면, 제육시와 제구시, 즉 낮 12시와 오후 3시에 포도원에 들어와 일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6절에 보면, 제십일시, 즉 오후 5시에 포도원에 들어와서 일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일꾼들은 오후 6시까지 일하고 품삯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오후 5시에 포도원에 들어온 사람은 1시간밖에 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일꾼들이 몇 시에 포도원에 들어와서 일하기 시작했는가는 따지지 않았습니다. 모든 일꾼들에게 똑같이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주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포도원에서 일한 일꾼은 얼마나 수고했습니까. 그렇다면 품삯을 줄 때에 아침부터 일한 사람부터 줘야 할 텐데, 주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제일 나중에 들어온 사람부터 한 사람씩 불러서 품삯을 한 데나리온씩 주었습니다.

아침 일찍 포도원에 들어온 사람들은 ‘1시간 일한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니 우리에게는 10데나리온은 주겠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포도원 주인은 아침 일찍 포도원에 들어온 일꾼에게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아침부터 일한 일꾼들이 얼마나 섭섭했겠습니까.

그래서 일꾼들은 주인을 원망하며 주인에게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라고 항의했습니다.

 

그때 주인은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언제부터 예수님을 믿었든지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예수님을 믿었든지, 한 달 전부터 예수님을 믿었든지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상관없습니다. 바리새인, 세리, 심지어 창기라 할지라도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무조건 구원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3:16).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의 신분이 어떠하든지, 과거에 무슨 짓을 했든지, 나이가 많든지, 나이가 적든지, 예수님을 믿은 지 수십 년이 되었든지, 예수님을 믿은 지 1시간 밖에 되지 않았든지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는 약속의 말씀을 반드시 그대로 지키십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면, 교회에 나오게 됩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성경도 읽고, 여러 가지 봉사를 하게 됩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교회 생활을 하게 됩니다.

마치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듯이, 예수님을 믿은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주님을 믿기 때문에 교회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평생 교회에 다니고, 교회생활을 했다고 해서 모두가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마음속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신 6:5). 이 말씀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작다 할지라도 정말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합니다.

 

정말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 증거가 나타납니다. 예전에는 제멋대로 살았는데,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하고, 주일에는 반드시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고, 십일조 헌금을 드리려고 하고, 감사헌금도 드립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거짓말하지 않으려고 하고, 도둑질하지 않으려고 하고, 뭔가 달라지려고 애쓰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자기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하기가 얼마나 힘듭니까. 그리고 우리가 변한다 해도 갑자기 성자가 될 수 있습니까? 옛날의 버릇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해도 잘되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말씀대로 살 수 없으니까 얼마나 괴롭습니까. 그래서 회개합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에 회개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정말 믿음이 있는 사람인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정말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회개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아버지, 지난 주간에도 말씀대로 살지 못했습니다.”라고 간단히 형식적으로 회개하는 것이 있습니다. 죄는 세게 범하고, 적당히 회개하는 것이 있습니다. 복잡하게 죄를 범했는데, 간단히 회개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회개하면, 또 다시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러나 작은 죄 하나를 가지고도 밤새도록 울부짖으며 “주님은 제 죄 때문에 십자가를 지셨는데, 제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짓을 또 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라고 진실하게 간절하게 회개하는 사람은 회개하다가 성령의 불이 임하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선물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자기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성령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빛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성령 충만한 믿음의 사람만 구원 받는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복음입니다.

성령 충만한 믿음의 사람만 구원 받는다고 하면, 과연 몇 사람이나 구원 받겠습니까.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구원 받는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복음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믿음이 작다 할지라도 구원 받는다는 것은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양쪽에 있는 십자가에 강도가 매달려있었습니다. 누가복음 23장에 보면, 한쪽에 있는 강도는 예수님을 향해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라고 예수님을 비방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편 강도는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라고 그 강도를 꾸짖었습니다. 두 사람 다 강도이지만, 여기서 우리는 회개한 자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회개하는 사람이 아니면, 이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은 회개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예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강도는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만왕의 왕으로 오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강도는 이 놀라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강도는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말하며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강도는 평생 강도짓을 하다가 십자가에 몇 시간 매달려있는 동안 이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임종할 때에라도 전도하세요. 부모님이 임종하실 때에라도 전도하세요. 임종할 때에라도 예수님을 영접하면, 구원 받습니다. 그러므로 포기하지 마세요.

어느 권사님이 혼수상태에 있었습니다. 깨어나지 못하면,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울고 난리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비밀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혼수상태라 해도 귀는 들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권사님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권사님, 정필도 목사 왔어요.”라고 말하며 권사님의 이마를 쓰다듬었습니다.

그 순간, 권사님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습니다. 제가 왼손으로는 권사님의 손을 잡고 있었고, 오른손으로는 권사님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이야기했습니다. 순간 권사님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습니다. 권사님은 제 손을 꽉 잡으시더니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돌아가실 것 같은 분을 포기하거나 그 앞에서 장례절차를 의논하지 마세요. 귀에 대고 기도해주고, 사랑의 말을 하고, 축복의 말을 하고, 감사의 말을 하세요.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때 전도하세요.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입니까.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그러나 십자가에 매달린 강도처럼 일평생 마음껏 죄를 범하다가 죽기 전에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낙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갑자기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대로 회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회개할 마음이 생겨야 회개할 수 있는데, 회개할 마음이 생기지 않고, 평생 나쁜 짓을 했으니까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 받은 강도처럼, 나쁜 짓을 실컷 하고, 마지막에 회개해야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포도원 주인은 일꾼이 몇 시에 포도원에 들어가 일했든지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주겠다고 약속했고, 약속한 대로 지켰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약속하신 대로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수십 년 동안 예수님을 믿은 사람이든 몇 시간 전에 예수님을 믿은 사람이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나 되었는가보다 어떻게 믿었는가를 중요하게 보십니다.

왜 포도원 주인은 1시간 일한 사람부터 품삯을 주었을까요? 성경에 기록되어있지 않지만, 포도원에서 1시간 일한 사람은 자신이 1시간밖에 일하지 않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놀고 쉬고 있을 때에도 전심으로 일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한 시간은 1시간밖에 되지 않지만, 질을 따지면 다른 사람들과 비교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오랫동안 예수님을 믿었는가보다 비록 짧게 믿었다 해도 어떻게 믿었는가, 신앙생활을 어떻게 했는가를 중요하게 보십니다.

 

평생 교회 다녔다 해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어지지 않아서 믿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평생 교회 다녔어도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 중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은 예수님을 믿어도 그렇지 못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 1~3절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린도교회를 보니 성령 충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너무 없었습니다. 대부분 젖먹이 신자였습니다. 젖먹이 신자를 가리켜 ‘육신에 속한 자’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회개는 하지만, 철저히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변화가 없습니다. 성질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시기하고 분쟁하고 밤낮 시끄럽습니다. 진실한 회개가 없으니까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입니까.

 

그러나 성령 충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다릅니다. 예루살렘교회에 성령의 충만한 은혜가 있을 때에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고(행 2:42),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행 2:46). 은혜 받은 사람일수록 기도를 더 많이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자기의 재물을 가지고 와서 떡을 떼며 교제하고,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습니다(행 2:42, 44~45). 한 마디로 말해, 천국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이것이 신령한 자들의 모습입니다.

 

스데반을 보세요.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으니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담대하게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을 때에도 천사의 모습으로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죽었습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바나바는 자신의 밭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서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과거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핍박하고 죽였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완전히 변화되어서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다가 순교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변화입니까.

 

교회에는 원망 불평이 많고, 성도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와 반대로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고 충성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늘 복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도 있고, 모든 것이 잘되면 좋아하고, 잘되지 않으면 낙심하여 원망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하고,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주님께서 나를 위해 죽어주셨으니 나도 주님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복 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주신 복이 커서 늘 감사합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려고 합니다.

 

교회에는 무엇을 하든지 사람을 보고 사람을 따라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헌금을 해도 하나님 앞에 헌금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앞에 보여주기 위해 헌금합니다.

그러나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찬양할 때에도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찬양합니다. 헌금할 때에도 사람의 눈치를 보며 헌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금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매 시간 은혜를 받게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서 살게 됩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받고 천국에 가서 주님과 함께 살지만,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는 동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서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았는가에 따라 받을 상급과 영광이 다릅니다.

고린도전서 3장 6~8절에 보면,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장차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이 세상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고,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 되셔서 영원토록 다스리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왕이 되셔서 다스리시는 동안, 세상 사람들은 심판 받지만,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은 자기가 일한 대로 각각 자기의 상을 받습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 목숨을 바치며 희생한 사람, 끝까지 그 일을 한 사람에게는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겠다고 하셨고, 천 년 동안 주님과 함께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함께 주님의 보좌에 앉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아무렇게나 믿지 마세요. 특별히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9:30). 이 말씀을 명심하세요.

과거에 충성했던 것을 들먹이지 마세요.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현재가 중요합니다. 과거만 붙잡고 있다가 뒤처지면, 새로 예수님을 믿은 사람이 은혜를 받고 충성하면, 거꾸로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어떻게 골인하는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언제나 현재가 중요합니다. 과거는 묻지 마세요. 누가 끝까지 충성하는가, 누가 마지막까지 충성하는가가 중요합니다.

교회생활을 하실 때, 점점 더 좋아지고, 더 좋아져서 끝까지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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