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된 자로서 먼저될 자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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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8-18 21:29 조회4,490회 댓글0건본문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
2007년 06월 22일(금요철야)
본문 / 마태복음 19:27~30
본문 마태복음 19장 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된 사람은 선배요, 나중 된 사람은 후배입니다. 먼저 태어난 사람들이 선배가 되고, 나중에 태어난 사람들은 후배가 됩니다. 먼저 시작한 사람은 선배, 나중에 시작한 사람은 후배가 됩니다. 먼저 출세한 사람은 선배, 나중에 출세한 사람은 후배가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된 자라고 항상 앞서는 것이 아니고, 나중 된 사람이라고 항상 뒤지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되고 앞서간다고 해서 방심하거나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또 지금 나중 된 자, 후배로 뒤진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먼저 된 자도 나중 된 자가 될 수 있고, 또 나중 된 자가 먼저 된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계속 노력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나중 된 자가 먼저 된 자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작할 때에는 작았지만, 점점 커져서 먼저 된 자보다 더 커지는 인물들이 많습니다.
첫째, 요셉입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열한 번째 아들입니다. 그러니 제일 큰 형님은 자신의 아버지같이 여겨졌을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모든 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집안에서는 열한 번째 아들이었지만, 30세가 되었을 때에는 제일 머리에 있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그 앞에서 쩔쩔 매며 목숨만 살려달라고 할 정도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요셉이 이런 축복을 받았습니까?
1. 요셉에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2. 요셉은 신앙의 지조를 지켰습니다.
요셉은 어렸을 때에도 철없이 굴지 않고 깨끗하게 살았습니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게 거룩하게 살려고 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3. 요셉은 환난 중에도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환난이 오면 많은 사람들은 절망하고 낙심하고 죽으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환난이 오고 큰 고난이 와도 절대로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4. 요셉은 아무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원망할 수밖에 없던 대상을 오히려 다 용서했습니다. 요셉은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 45:5)”라고 고백했습니다.
형님들이 나를 팔아넘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명이 있으므로 나를 이곳에 보내셨다고 고백했습니다. 민족과 세계 만민을 기근에서 구하기 위해 나를 이곳으로 보내셨다고 고백했습니다.
공중의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요셉은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심을 믿었습니다.
그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요셉은 사람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도 형님들도 보디발의 아내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요셉은 형통했습니다.
억울하게 감옥에 갔지만, 전화위복이 되어 총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승리하십시오.
둘째, 다윗입니다.
다윗은 이새의 여덟 아들 중 막내였습니다. 이새는 다윗을 마치 종처럼 일만 시키고 부려먹었습니다. 막내아들을 밤낮 양이나 치게 했습니다.
시편 27편 10절에 보면,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부모가 자신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왜 그렇게 말했을까요? 시편 51편 5절에 보면,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를 낳은 어머니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마음에 큰 상처가 있는 사람입니다. 야곱은 네 명의 여자를 통해 열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언니인 레아, 동생인 라헬, 그리고 첩 빌하와 실바를 통해 열두 명을 낳았습니다.
요셉은 야곱이 제일 사랑하는 라헬의 아들입니다. 야곱은 처음부터 라헬을 사랑해서 결혼했고, 레아는 아버지가 그냥 바꿔치기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레아가 아무리 아들을 많이 낳아도 마음에 사랑한 것은 라헬이었고, 라헬이 낳은 요셉은 아들 중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요셉과 정반대였습니다. 추리해보면, 이새가 자신의 부인을 통해 7명의 아들을 낳고 첩을 통해 다윗을 낳지 않았나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평소에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아서 어느 날 배가 불러오는데 자신의 아이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아이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버림받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새의 부인은 다윗을 여덟 번째 아들로 키웠지만, 별로 사랑하지도 않았고 무관심했던 것 같습니다. 형들도 다윗을 친동생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새의 아들들 중 한 명을 골라 기름을 부어 왕을 세우려 할 때도 사무엘이 집에 왔을 때 준비를 크게 하고 잔치를 벌이고 기분이 좋은 가운데 축복받으려고 했습니다.
어떤 아들을 택할지 알 수 없어 큰 아들부터 하나씩 나오게 했습니다. 그래서 일곱 명의 아들만 나왔습니다. 아예 다윗은 아들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다윗은 들에서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린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삼상 16:1)”고 말씀하셨지만, 이새는 마치 다윗은 아들이 아닌 것처럼 제쳐놓았습니다.
사무엘이 보니 이새의 아들들이 참 잘 생겼습니다. 사무엘은 첫째 엘리압을 보고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삼상 16:6)’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둘째부터 일곱째까지 다 낙방했습니다.
사무엘은 이새에게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삼상 16:11)”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이새는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삼상 16:11)”라고 대답했습니다.
보통 막내아들은 부모에게 사랑도 많이 받고 왕노릇을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종처럼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아마 마음에 상처가 많았을 것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은 악한 마음을 품고 불량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자존감이 없고 자포자기하거나 우울증이 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어떻게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까?
1. 다윗은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시편 3편 4~8절에 보면, “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2. 다윗은 무엇이든 결정하기 전에 하나님께 물어보았습니다.
사무엘상 23장 2절에 보면,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3. 다윗은 말씀을 사모한 사람입니다.
시편 19편 7~14절에 보면,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이렇게 사니 믿음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시편 119편 97~105절에 보면,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주의 계명들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들이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주의 법도들로 말미암아 내가 명철하게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말씀을 사랑하고 묵상하고 말씀대로 살 때, 지혜가 생깁니다. 말씀을 사랑할 때, 지혜가 생깁니다. 원수보다 지혜롭고 스승보다 노인보다 지혜롭다고 했습니다.
기도생활에 힘쓰고 말씀을 사모하니 지혜가 선생님보다 더 나았습니다. 나중 된 자가 앞선 자보다 나은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소원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멋지게 성전을 지어 바치려는 소원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할 수 없지만 성전을 지을 수 있는 준비를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정비례합니다.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금은보화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얼마나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는지 모릅니다.
그 뿐 아니라 다윗의 성품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가리켜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행 13:22)”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그는 착했습니다. 사울이 그를 죽이려고 괴롭혔지만, 다윗은 사울이 죽었을 때에 장사를 잘 치러주었고,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과 늘 함께 밥을 먹었습니다.
의를 행하느냐 행치 않느냐에 따라 마귀의 자식과 하나님의 자식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마귀에게 속한 자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불의를 행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의를 행하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한 번은 실수했지만, 그 외에는 항상 하나님 앞에 정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우리의 믿음이 자랄수록 성품이 변화됩니다. 우리의 성품이 얼마나 변화되었는가를 보면, 믿음이 얼마나 성장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성품이 많이 좋아졌으면, 믿음이 그만큼 성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자랄수록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보면, 믿음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IMF금융위기 때에 헌금을 작정하지도 않고 성전을 지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많아서 스스로 작정하고 헌금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믿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앞으로 교육관도 같은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드리는 것으로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제일 큰 자는 믿음이 제일 큰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보지 않으십니다. 사람의 학벌, 재력, 지위를 보지 않으십니다. 믿음이 얼마나 좋고 큰지를 보십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말씀대로 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리들과 창녀들은 세상에서 손가락질 받는 죄인이었지만 회개했습니다.
회개와 믿음, 이 두 가지가 거듭난 자의 증거, 구원의 증거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절대로 구원 받지 못합니다. 회개가 없는 사람은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회개 없이 예수님만 믿어도 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21장 28~3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누구보다 회개를 잘하고 잘 믿을 것 같지만, 그들은 절대 회개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리와 창녀는 세상에서는 형편없었지만, 이들은 믿고 회개했습니다. 그러므로 나중 된 자가 먼저 됩니다.
탕자의 비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큰 아들은 집을 나간 적도 없었고 성실했습니다. 그러나 작은 아들은 자신에게 주어질 유산을 가지고 허랑방탕하게 살며 다 없애버렸습니다. 나중에는 굶어죽을 것 같아서 뉘우치고 아버지께 돌아왔습니다. 아버지께 와서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눅 15:21)”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회개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신을 신기고 잔치를 벌였습니다.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눅 15:24)”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큰 아들입니다. 자신의 잘못도 모르고, 작은 아들이 돌아왔을 때에는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눅 15:29~30)”라고 하며 화를 냈습니다.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면 함께 기뻐해야 하고,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돌아온 것을 기뻐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와 사마리아 수가 성 여인은 과거가 있었고 불행한 여인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과거에 귀신 일곱이 들었던 여자였습니다. 수가 성 여인은 과거에 남편이 5명이나 있었고 지금 사는 남자도 자기 남편이 아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을 인간쓰레기로 봅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가 얼마나 믿음이 좋은지를 보여줍니다. 수가 성 여인은 그 성의 사람들을 다 구원 받게 하는 공로자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된 이유는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기독교를 핍박했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위대한 사도 바울로 변했습니다. 세상을 배설물로 보고, 자신은 살아도 죽어도 주님의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죽이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난 후 어느 사도보다 큰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마 20:1)”라고 말씀하시며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집 주인이 하루에 한 데나리온씩 주기로 약속하고 품꾼들을 포도원으로 들여보냈습니다. 3~4절에 보면,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3시는 오전 9시입니다.
5~7절에 보면,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6시는 12시, 9시는 오후 3시, 11시는 오후 5시입니다. 대개 6시까지 일하므로 5시에 온 사람들은 한 시간 일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통 생각하면 아침부터 일한 사람에게 삯을 줘야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온 사람부터 돈을 주라고 합니다. 그래서 5시에 온 사람들이 한 데나리온을 받았으니 먼저 온 사람들은 더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주니 먼저 온 사람이 화가 나서 원망했습니다.
왜 주인은 나중에 온 사람부터 품삯을 주었겠습니까? 이유는 한 시간밖에 일하지 못할 사람들은 그미안한 마음이 있었을 것이므로 참 성실했을 것입니다. 아마 먼저 온 사람들이 빈둥댈 때 그들은 빚진 자의 마음으로 감사하며 기쁨으로 일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보시는 것이 그런 자세와 태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지금도 세상에서는 사람과 인물, 인재들을 찾습니다.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 빚진 자의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 정말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쁨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신앙생활 몇 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어떤 태도로 하나님을 섬기느냐가 중요합니다. 자세가 중요합니다. 어떤 자세로 하나님을 섬기느냐가 중요합니다.
목회자는 목회한 지 얼마나 됐느냐보다 어떤 자세로 목회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자세에 따라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기도 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기도 합니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된 자가 되려면,
첫째, 꿈을 가져야 합니다.
은혜 받은 자의 꿈, 믿음을 가진 꿈이 필요합니다. 요셉은 17세에 믿음을 가지고 꿈을 가졌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15세에, 스펄전 목사님은 1세살에 꿈을 꾸었습니다.
위대한 꿈을 성취한 사람들은 20세 전후로 꿈이 구체화돼서 꿈을 이루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저도 꿈을 가진 것은 초등학교, 중학교 전후였습니다. 초등학교 때 장차 하고 싶은 것을 쓰라고 하면, ‘목사’라고 적었습니다. 제가 목사라고 적은 것을 보고 교무실에서 화젯거리가 되었습니다.
저는 대학교에서 공부할 때에도 목회를 위해 공부를 했습니다. 저는 제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했습니다.
꿈이 필요한 이유는 꿈이 있는 사람들은 꿈만큼 노력하고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자세가 다릅니다.
둘째, 좋은 성품을 가져야 합니다.
미국 정경사회 분야에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대인관계에서 남의 잘못이나 실수를 찾기보다는 남이 가진 장점을 발견하고 그 장점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못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디서든 허물을 찾습니다. 그리고 남의 허물을 가지고 협박합니다. 항상 그런 것을 캐고 다니다가 걸리면 협박해서 돈을 뜯어내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을 좋아할 사람이 지구상에 어디 있습니까! 이런 사람들은 아예 만나기도 싫습니다. 다른 사람을 볼 때 단점보다는 장점만 보고 찾아서 나도 저렇게 해야지 하고 노력하십시오.
셋째, 적극성을 가져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 믿음의 담력, 용기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하십시오. 다윗을 보십시오. 골리앗 앞에 당당하게 나아가 물맷돌로 넘어뜨려서 칼로 목을 베었습니다. 믿음이 다윗의 담력이었습니다. 믿음으로 확신을 가진 사람들은 무엇을 해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저는 교역자들에게 담대하라고 합니다. 두려운 마음을 가지면 설교하다가도 설교 내용을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담대하면 여유가 생깁니다.
넷째,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0장 25~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섬기는 정신을 가진 사람이 큰 자가 됩니다. 종과 같은 마음으로 섬기는 사람이 앞서가고 으뜸이 됩다.
열왕기상 12장에 보면, 백성들이 르호보암에게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왕상 12:4)”라고 말했습니다.
르호보암은 “삼 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왕상 12:5)”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르호보암은 솔로몬 왕을 모셨던 노인들과 의논했습니다. 노인들은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왕상 12:7)”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노인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과 같이 자란 젊은이들의 말을 듣고 멍에를 더 무겁게 하니까 다 북쪽으로 가고 유다 지파만 남았습니다.
남보다 앞서는 사람이 되고 대접받는 사람이 되려면 언제나 섬기는 종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어린 아이들 중에 나중에 큰 인물이 될 사람들이 많을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의 교역자 중에도 큰 교역자가 많이 나올 것입니다. 젊은이들 중에도 위대한 선교사가 많이 나올 줄 믿습니다. 지금은 어리다고 해도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될 인물이 많은 줄 믿습니다.
꿈을 가지고, 좋은 성품을 가지고. 장점을 보려고 하고, 믿음의 담력과 적극성을 가지고, 섬기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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