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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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10 10:53 조회4,470회 댓글0건본문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사람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사람
2008년 06월 15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19:4~6
말라기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의 타락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왜 멸망할 수밖에 없은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라기 1장 6절에 보면,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당시의 성직자들이었던 제사장들의 타락상이 보입니다. 제사장들은 가장 거룩하게 살아야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 제사장들이 오히려 타락했습니다.
말라기 1장 7절에 보면,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들은 더러운 떡을 하나님 앞에 드림으로 하나님을 경멸히 여겼습니다.
말라기 1장 8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정성껏 제물을 드린 것이 아니라 눈먼 것, 다리 저는 것, 병든 것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것을 총독에게 드려 보라 총독이 기뻐하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라기 1장 10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기 때문에 헛된 제사를 드리지 않도록 성전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말라기 1장 13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이는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제사장들의 방자한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하며 코웃음을 쳤던 것입니다. ‘훔친 것,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말라기 2장 2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저주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말라기 2장 3절에 보면, “보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까! 성직자들이 이렇게 타락했는데, 백성들은 오죽 했겠습니까.
말라기 2장 10절에 보면,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거짓을 행하여 우리 조상들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가정이 얼마나 타락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라기 2장 11절에 보면, “유다는 거짓을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유다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말라기 2장 16절에 보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를 미워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혼하는 자가 얼마나 많고, 아내를 학대하는 자가 얼마나 많았으면 하나님께서 이런 자를 미워한다고 하셨을까요.
예수님 당시의 삶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 아내와 살기 싫으면 어떤 트집이라도 잡아 이혼증서를 써주고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합니다.
또 이혼한 여자가 이혼증서를 가지고 있으면 다른 남자와 떳떳하게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혼자 살다가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도 유부녀가 아니기에 유죄 판결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깨어지는 가정이 많아지고 남녀관계가 복잡해졌습니다. 점점 더 음란해지고 사회가 성적으로 문란해졌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1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 19:6)”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마 19:7)”라고 반문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마 19:8~9)”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제자들은 “만일 사람들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당시의 남자들은 이같이 비뚤어져 있었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19장 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짝지어주시면서 말씀하셨던 것을 인용하셔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셨기 때문에 사람이 나눌 수 없습니다.
젊은 남녀가 만나 결혼합니다. 서로 좋아 결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 가운데 부부가 됩니다.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가장 적합한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한 몸을 이루어 행복하게 살게 해주십니다.
우리가 결혼 생활에 성공하려면, 이 말씀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이 말씀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믿음 없이 결혼하고, 믿음 없이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결혼생활이 불행해지고 실패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7절에 보면,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생명의 유업을 함께 받을 자임을 알고 귀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이 말의 뜻이 무엇일까요? 아내는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저 천국에 도착할 때까지 남편과 두 손을 잡고 함께 갈 동반자이며, 천국에서도 영원히 함께 살 동반자라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남녀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한 남자에게 한 여자를 붙여주셔서 세상에서 살다가 천국에 가면 천국에도 함께 가서 살 사람이니, 하나님께서 주신 아내는 얼마나 귀한 사람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변함없이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 가운데 만나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부부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나에게 가장 좋은 짝을 주셨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주위를 살펴보면 서로 맞지 않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부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고 신실하신 분이기에 가장 좋은 짝을 주셨는데,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둘째, 결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합니다.
셋째, 인격(성품)이 미숙합니다.
넷째,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저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믿고 신뢰했기 때문에 결혼할 때에도, 제 마음대로 배우자를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세상 조건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기도하며 응답하실 날만을 기다리며 기도했습니다. 많은 여자들을 만났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내와의 결혼을 위해 기도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결혼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기도 응답을 받고 나서 중매하시는 분께 “좋습니다.”라고 말했더니 그 날 바로 답변이 왔습니다. “돌아오는 월요일에 약혼식을 합시다.”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사자와는 만나보지도 않았는데, 약혼날짜가 잡혔습니다.
그래서 토요일 오전 10시에 아내가 될 사람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랬더니 장차 장모님이 되실 집사님이 저에게 3층에 있으니 올라가보라는 것이었습니다. 3층으로 올라갔더니, 방바닥에 닿을 정도로 머리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20~30분이 지나도록 기도하며 기다렸지만, 그 자리에 꿈적도 안하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 뒤 월요일에 약혼식을 했습니다.
약혼식이 끝나자 장인 되실 장로님이 “한 달 안에 결혼식을 하겠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사자들끼리는 얘기해보지 못하고 결혼식을 했습니다.
결혼식을 하고 부부가 되었습니다. 결혼식을 하고 나서 보니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실수해도 크게 한 것 같았습니다.
첫 번째 문제는 제 아내는 사모가 될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버님 같은 훌륭한 장로님을 남편으로 만나 평생 교회에 충성하며 살려고 했지, 교역자의 아내가 될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직 결혼할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혼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금요일에 갑자기 집으로 오라고 해서 갔더니 월요일에 약혼식을 한다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금요일 밤을 지새우면서 밤새도록 울다가 저를 만났으니,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 문제는 아내는 사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목사 사모가 되었으니 어떡하면 좋으냐고 제게 물었습니다.
저는 백지에다가 그림을 그리듯이 아내에게 사모에 대해서 강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모는 두 종류의 사모가 있는데, 하나는 ‘똑똑 사모’이고, 하나는 ‘바보사모’가 있다고 했습니다. ‘똑똑사모’는 말도 잘하고 기도도 잘해서 교인들에게 허물을 잡히지 않는 아주 훌륭한 사모이고, ‘바보사모’란 누구를 만나든지 반갑게 인사만 하고 ‘나는 몰라요. 목사님께 여쭈어 볼게요.’ 이렇게 핑계를 대고 대답하지 않는 사모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둘 중에 어떤 사모가 될 거예요?”하고 물었더니 제 아내는 ‘바보사모’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누구를 만나든지 반갑게 인사한 뒤 말을 걸면 “난 몰라요.”하는 아내는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아내가 음식을 차렸는데, 제 입맛에 전혀 맞지 않았습니다. 저는 예수 믿지 않는 집에서 자랐고, 술을 많이 마시는 어른들 밑에서 자라 얼큰한 찌개를 먹고 자라 매운 음식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차려온 음식을 보니, 고춧가루는 하나도 넣지 않았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먹었던 음식과 영 딴판이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여자는 남자 앞에서 수줍음을 잘 타는 얌전하고 애교가 있는 여자입니다. 그런데 아내는 정반대였습니다.
더군다나 임신을 해서 입덧이 심한데다 저혈압이어서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목사 사모가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니 새벽기도를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혼자 새벽기도를 다녔습니다. 부지런하고 기도 많이 하는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정반대의 여자를 아내로 주셨습습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제게 있었습니다. 결혼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자를 이해할 만한 예비지식도 없고, 마음의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저는 그런 아내와 함께 살아갈만한 남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마음에 불만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날마다 잔소리하면 부부싸움만 할 게 뻔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예 말을 안 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오직 기도만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새벽에 교회에 가서 얼마나 울부짖으며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언제나 기도하고 난 뒤 눈을 떠보면 아무도 없었습니다. 혼자 쓸쓸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아내 역시 기도만 했습니다. 잔소리도 불평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보다 더 많이 기도했습니다.
아내는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3일, 5일은 물론 14일, 17일 이상을 금식한 적도 많았습니다. 아내는 하나님 앞에 목숨 걸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주의 음성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도저히 사모역할을 감당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살아 있으면 오히려 남편의 목회만 가로막을 뿐이라고 생각해서, 자신이 빨리 죽어 다른 여자와 결혼시켜 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랬더니 주님은 다른 말씀은 안 하시고 “네 남편은 주의 종이니 순종하고 살아라.”고 하셨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은 뒤 아내는 오직 순종만 하는 사모로 지금껏 살고 있습니다. 가끔씩 아내는 저에게 말합니다. “당신은 다른 여자와 결혼했으면 목회를 더 잘 했을 텐데… 저와 결혼해서 손해를 많이 보았죠?”
저는 아내가 제게 왜 그렇게 말하는지 몰랐습니다. 그 말의 의미가 ‘제가 빨리 죽으면 다른 여자와 결혼하세요.’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20년이 지난 후에야 알았습니다.
한 번은 아내가 맹장염에 걸린 적이 있습니다. 아내의 맹장이 뒤에 있어 병명을 알 수 없었습니다. 열이 나고 배가 아프다고 해도, 그 원인을 알 수 없었습니다. 큰 병원에 가도 몰랐습니다.
저는 심각하게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결사적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내 아내보다 좋은 여자는 없어.’ 이런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르짖었습니다. “아버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제 아내보다 좋은 여자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제발 아내를 살려주세요.”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아내가 달리 보였습니다. 모든 것이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아내의 성품이 너무 좋아 보였습니다.
아내가 요리한 음식을 보아도 감사했습니다. 저는 매운 것을 좋아하고 아내는 맵지 않은 것을 좋아하니, 음식의 간도 적당하게 맞추어졌습니다. 얼굴도 예뻐 보였습니다. 아내가 얼마나 소중하게 여겨지는지 모릅니다.
결혼 후 임신한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지만, 언제나 제가 설교준비를 할 때면 옆방에 가서 두 시간, 세 시간 이상을 저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저의 설교준비가 다 끝나면 깨끗한 글씨로 공책에 다시 정리해서 가져다주었습니다. 20여년을 한결 같이 그렇게 했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아내는 1등 사모노릇을 해주었습니다. 40년 정도 함께 살아보니, 아내는 저의 부족한 점을 채워 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특별히 보내신 짝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이만큼 목회하게 된 것도 좋은 아내를 주셔서, 내조 잘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우리 부부가 문제가 너무 많았지만, 행복한 부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부부가 싸우지 않고 기도로 해결하려고 했고, 기도하다보니 둘 다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사랑과 지혜로 말미암아 행복한 부부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행복한 부부가 되려고 하면 성령께서 주시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내 힘으로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사랑이 넘치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면 얼마든지 행복한 부부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로 말미암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부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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