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들을 안수해 주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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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8:42 조회3,716회 댓글0건본문
어린 아이들을 안수해주신 예수님
어린 아이들을 안수해주신 예수님
2015년 05월 03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19:13~15
시편 127편 3절에 보면,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에 자녀를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아이를 해산할 때, 여인들이 죽을 고생을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면, 여인들은 해산의 고통을 잊어버리고 아이를 사랑하면서 행복해합니다.
특히 아이를 품에 안고 젖을 먹일 때의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어린 생명을 보기만 해도 좋고, 젖을 먹는 아이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아기가 생긋 웃어주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기쁨과 행복은 경험한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처럼 사랑스럽고 귀중한 자녀들이 평생 건강하게 잘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부모들은 다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자기의 아이에게 안수해주시며 기도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온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예수님께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안수기도를 받고 싶어 했을까요?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성령 충만한 가운데 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아이가 예수님의 축복 기도를 받은 후 지혜롭고 착하고 건강한 아이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시는 어머니들은 기회만 있으면 아이를 안고 와서 “목사님, 기도해주세요.”라고 부탁합니다. 믿음이 좋은 어머니들, 아이가 믿음으로 자랐으면 하는 마음을 가진 어머니들은 기회만 있으면, “목사님, 우리 아이를 위해 머리에 손 얹고 기도해주세요.”라고 부탁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훌륭한 부모구나.’라고 생각하며 감동 받습니다. 이런 모습은 아름답고 귀한 모습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안수기도를 받은 아이의 부모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가 자라는 동안, 아이에게 “네가 어렸을 때 예수님께서 너를 안고 안수기도해주셨단다.”라고 계속해서 이야기할 것입니다.
이것은 이 아이에게 평생 축복이 될 것입니다. 아이가 ‘예수님께서 나를 안아주시고, 예수님께서 나에게 안수기도해주셨다.’라고 생각할 때, 아이의 신앙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겠습니까.
그런데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 아이를 데리고 오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제자들은 꾸짖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와서 예수님이 바쁘신데,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안수기도를 해달라고 하니 예수님을 귀찮게 하는 것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고,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는 데 아이들이 방해가 될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이들이 어려 아무것도 모르니까 아이가 자란 후에 데리고 와도 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제자들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 안에도 많습니다. 자기는 열심히 봉사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데, 아이들은 교회에 보내지 않습니다. ‘어린 것, 철없는 것들은 교회에 가도 알아듣지도 못하고, 장난이나 치고, 예배드리는 데 방해나 된다. 그러니 아이가 자란 후에 교회에 보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아이를 교회에 보내지 않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신통치 않은 부모들은 주일에도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며 “지금은 공부나 해. 대학에 간 후에 교회에 가도 돼.”라고 하며 아이를 교회에 보내지 않습니다.
무슨 이유였는지 모르지만, 제자들은 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오는 사람들을 꾸짖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아이들에게 안수해주셨습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이 이야기가 좀 더 자세히 기록되어있습니다. 마가복음 10장 13~16절에 보면,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을 보고 제자들은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을 매우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 성을 멸하지 않으시니 요나 선지자는 불평했습니다. 요나 4장 10~1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요나 선지자에게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에게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어린 아이가 12만 명이나 있는데, 요나 선지자는 죄 많은 인간들만 생각하고, 왜 그들을 멸하지 않느냐고 하나님께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린 생명들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셨는지, 그들을 아끼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이들을 사랑하시고 귀하게 여기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자기 아이만 귀하게 여기고, 남의 아이는 아주 무시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기 아이만 귀하게 생각하고, 남의 아이는 무시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신비한 비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 하나라도 함부로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이의 천사가 하늘에서 하나님을 뵙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다 보고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이 아이를 돌보고 있는데,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늘 뵙고 있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을 업신여겨서는 안 됩니다.
시편 68편 5절에 보면,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태복음 18장 3~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말씀하시고, 어린 아이들이 천국에서는 큰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린 아이 하나에게 베푸는 것이 예수님께 베푸는 것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 하나 하나를 얼마나 존귀하게 여기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19장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자기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누가 돌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도 없습니다. 누가 때리면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려온다 해도 어린 아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도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첫째, 어린 아이들도 구원 받아야 할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어린 아이도 구원 받아야 할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이가 어릴 때에 아이를 주님께 데리고 나와야 합니다.
요즘 조기교육의 열풍으로 인해 아이가 어렸을 때에 가르치는 것이 좋다 해서 아주 어린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가 세상을 알아가기 전에 먼저 예수님을 알게 해주어야 합니다. 세상 지식을 알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을 가지게 해야 합니다.
안식일이 되면, 유대인들은 어린 아이들과 함께 회당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렸습니다. 그리고 안식일 오후에는 최소 세 시간 이상 아버지와 아이들이 함께 지내며 아버지는 아이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믿음의 조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아이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신앙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이것은 아이들에게 평생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땅은 그냥 내버려두면, 잡초로 무성해집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도 그냥 내버려두면, 잡초 같은 인생이 되어버립니다.
사람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교육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수영로교회를 개척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성도들 중에 제가 생각하는 훌륭한 성도는 한 사람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훌륭한 성도들이 많이 있었지만, 제가 생각하는 기준에 맞는 훌륭한 성도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목회를 실패한 사람입니다. 왜 우리 교회에는 쓸 만한 일꾼이 한 사람도 없습니까?”라고 울며 기도했습니다. 매우 슬펐습니다. 제가 목회를 실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매우 슬펐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람이 저절로 사람이 되는 줄 아니? 사람으로 만들어야 사람 노릇을 한단다. 훌륭한 장로가 저절로 생기는 줄 아니? 훌륭한 장로가 되도록 만들어야 훌륭한 장로가 된단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라고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교육과 훈련을 계속해서 시켜야 훌륭한 일꾼이 만들어진단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께 “어떻게 훈련시킬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제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교단을 초월하여 존경스러운 목사님들을 초청해서 주일 저녁예배 후에 장로, 안수집사, 권사 등 중직자들에게 1시간씩 교육받게 했습니다. 강사 목사님들께는 목회하시면서 기억에 남고 잊을 수 없는 성도들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연초부터 5월말까지 매 주일 저녁 예배 후에 그런 시간을 가졌습니다. 강사 목사님들을 통해 훌륭한 장로, 훌륭한 권사, 훌륭한 집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중직자들이 ‘나도 저렇게 해야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중직자들에게서 변화가 저절로 일어나서 자발적으로, 모범적으로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만들어야 합니다.
훌륭한 신앙을 가졌던 위대한 인물들을 보면, 그 배후에 훌륭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모세의 배후에는 어머니 요게벳이 있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의 배후에는 기도하는 어머니 한나가 있었습니다. 성자 어거스틴의 배후에는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 모니카가 있었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의 배후에는 어머니 수산나가 있었습니다. 수산나는 열한 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수산나는 많은 아이들을 길렀음에도 신앙으로 교육시켜 자녀들 가운데 훌륭한 인물이 많습니다.
신앙교육과 신앙훈련은 빨리 시작할수록 좋습니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아침, 저녁으로 기도하는 것을 아이에게 가르치고, 식사할 때마다 감사 기도하는 것을 가르치고, 주일 성수하는 것과 십일조 헌금, 감사헌금을 드리는 것을 가르치고,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읽게 하고, 성경을 암송하게 하고, 세상 노래를 배우기 전에 찬송을 부르게 하는 등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신앙교육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되도록 빨리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장 효과적인 교육은 부모가 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부모가 경건하게 사는 삶을 보여주면, 아이들은 그것을 보고 배우게 됩니다.
사람의 인격이 형성되는 시기는 1~6세라고 합니다. 이 시기가 인격 형성에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합니다. 이때 인격의 85%가 결정된다고 합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세 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속담도 이것에 근거한 것입니다.
1~6세에 아이의 인격이 형성됩니다. 그러므로 아이가 어릴 때의 모습을 보면, 앞으로 그 아이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있습니다.
잠언 22장 6절에 보면,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렸을 때에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늙었을 때에도 그것을 떠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이는 부모나 어른들이 행하는 것을 눈으로 보고 배웁니다. 그러므로 평소 부모나 어른들의 책임이 매우 큽니다.
부모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아이들도 그것을 닮게 됩니다. 그러나 부모가 밤낮 싸우고 욕한다면, 아이들은 소꿉장난을 해도 싸우고 욕하게 됩니다. 부모가 싸우는 것을 그대로 흉내 냅니다.
부모가 본이 되지 못하고, 아이에게 보여줘서는 안 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는 불행해집니다. 아이들을 실족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큰 죄악입니다.
한 사형수가 사형집행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한 가지 소원을 들어달라고 했습니다. 소원은 죽기 전에 어머니를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아들과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사형수는 어머니를 만나자 마자 어머니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더니 어머니의 혀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난 후 사형이 집행되어 사형수는 죽었습니다.
죽는 자식이 어머니께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사형수가 그렇게 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자신이 어렸을 때, 밖에서 놀다가 다른 아이가 두고 간 물건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너는 장차 부자가 되겠구나. 이렇게 귀한 것을 들고 들어오는 것을 보니 너는 앞으로 잘 살겠구나.”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이야기가 아이의 머릿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는 ‘밖에서 무언가를 가지고 들어오면, 앞으로 부자가 될 것이고, 앞으로 잘 살게 될 것이고, 엄마가 좋아한다.’라고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는 밖에서 남의 물건을 가지고 들어오게 되었고, 그것이 버릇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는 자라서 도둑이 되었고, 강도가 되었고, 살인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어머니의 말 한 마디 때문에 자신의 삶이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여 어머니의 혀를 물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어린 아이를 실족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째, 어린 아이들이 성령의 은혜를 받는 것이 어른들보다 더 쉽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에 있어서도 어린 나이에 예수님을 믿는 것이 유익합니다. 나이 들어 예수님을 믿게 되면, 나이가 들면 머리가 둔해져서 머리에 쉽게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은혜 받은 경우가 아니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설교를 들으면 바로 잊어버립니다. 그러므로 나이가 들어 예수님을 믿게 되면, 은혜 받기가 그만큼 어렵습니다.
예수님과 세례 요한은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받았습니다. 누가복음 2장 40절에 보면, 예수님에 대해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1장 80절에 보면, 세례 요한에 대해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라면서 키만 자란 것이 아닙니다. 심령이 강해졌습니다. 은혜가 충만하여 믿음이 강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제 손자가 만 3세인데, 우리 교회 유아부에 출석합니다. 그렇게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역자들이 어린 아이들에게 복음을 제시하고, 예수님에 대해 가르치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합니다. 교역자가 “예수님을 자기 마음에 모신 사람은 손들어보세요.”라고 말하면, 아이들이 모두 “예”하고 손을 든다고 합니다.
미취학 아동들을 모아놓고 부흥회를 인도하는 목회자가 있습니다. 미취학 아동들을 모아놓고 부흥회를 인도한다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런데 어린 아이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야기하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지, 우리의 죄 때문에 주님이 고난 당하셨다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아이들이 울면서 자신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한다고 합니다.
어린 나이에 은혜 받기가 좋습니다. 세상의 때가 묻기 전에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알게 되면, 그것이 아이들에게 평생 축복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8:3~4).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을수록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납니다만, 그 중에 하나가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은혜가 충만한, 주님의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다고 표현했습니다(고전 15:8).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라고 말했습니다(딤전 1:15). 사도 바울은 입으로만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닙니다.
은혜 받은 자는 은혜를 받을수록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지, 얼마나 부족한가를 알게 되고, 자신을 낮춥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반드시 회개해야 할 것 중 하나가 교만입니다. 자신이 의로운 심판주가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비판하는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엄마의 품을 제일 좋아합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은 엄마 품에 안기기만 하면, 그곳을 천국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어린 아이들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받드는 자가 아니면, 결단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버지의 품을 사모하고,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좋은 나라는 노인과 어린 아이가 대접 받는 나라라고 합니다. 노인들에게 잘 대접하고, 어린 아이들을 귀하게 여기는 나라는 선진국입니다. 좋은 나라, 잘 사는 나라입니다.
어린 아이는 미래의 주인공입니다. 교회학교에 출석하는 어린 아이들은 한국 교회의 미래입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은혜 받아 잘 크면, 한국 교회의 미래가 밝을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 위대한 목사, 위대한 선교사가 배출될 것이고, 이 나라의 위대한 지도자가 배출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린 아이들을 소중히 여기고, 어린 아이들을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어린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어린 아이들을 축복하는 어른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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