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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학교 교육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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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13 10:23 조회3,3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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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학교 교육의 중요성

 

교회학교 교육의 중요성

2009년 05월 17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18:1~10

 

우리 교회가 지난 30여 년 동안 계속 부흥하는 것은 여러 분야에서 봉사하는 일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감사해서 자원하여 기쁨으로 충성하는 봉사자들입니다. 전도하고, 섬기고, 나누는 성도들이 많기에 우리 교회는 항상 은혜가 풍성하고 사랑이 많은 교회입니다.

교회 안에서 봉사하는 것은 모두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그러나 특히 힘들고 어려운 봉사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교회학교 교사로서 봉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학교 교사들은 교역자들을 대신해서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믿음을 가지게 해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이들을 양육해서 주의 일을 하는 일꾼으로 만들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꼭 필요한 인재가 될 수 있도록 키워주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가 대통령으로부터 체신부장관직을 제의받았을 때, 워너메이커는 한 마디로 거절했습니다. “나는 교회학교 교사라는 일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만약 내가 장관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지 못한다면, 이것은 정말 큰일입니다.” 이 말을 들은 대통령은 교회학교 교사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때서야 그는 장관직을 수락했습니다.

그리고 매주 토요일이면 비행기를 타고 고향에 내려가서 어린이들을 가르쳤습니다. 한 번은 기자들이 존 워너메이커에게 물었습니다. “장관직이 교회학교 교사직만 못합니까?” 이 때, 존 워너메이커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교회학교 교사직은 제가 평생 해야 할 본업입니다. 그러나 장관직은 한두 해 하다가 말 부업이지요.”

 

어린 아이들을 믿음으로 키우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이 되면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회당에 나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세 시간 이상 아이들에게 성경에 있는 믿음의 조상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아이들을 양육하고,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우리는 세상일에 바빠서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내지 못합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본문 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을 천국 백성들의 모델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처럼 되어야만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자기를 작게 여기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어렸을 때는 어른들이 크게 보입니다. 반면 자기 자신은 그만큼 작게 보입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은 부모 없이는 못 사는 줄 알고, 부모를 항상 의지합니다. 이런 어린 아이의 마음이 곧 큰 믿음의 사람의 마음과 똑같습니다.

믿음은 겸손한 만큼 커집니다. 겸손한 만큼 은혜 받게 되고, 겸손한 만큼 큰 은혜의 사람이 됩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못 사는 줄 압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하나님을 가까이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어린아이와 같은 자를 천국에서 큰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의 신앙교육은 어려서 시작할수록 성공률이 높고, 늦을수록 실패율이 높습니다. 그 이유는 사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리고 배우지 말아야 할 것을 많이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그만큼 타락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어린 아이들이 타락하기 전에 일찍 신앙교육을 시작해야 합니다.

 

모세는 젖먹이 갓난아이일 때부터 신앙교육을 받았습니다. 요게벳은 어린 모세에게 신앙교육을 시켰는데, 모세는 자기가 유대인이라는 것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애굽의 높은 학문을 배우고, 그 나라의 왕자로 아무리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아도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24~26절에 보면,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모세의 위대한 믿음을 소개하는 말씀입니다. 어린 젖먹이 때의 신앙교육이 이렇게 위대한 사람을 만듭니다.

 

사무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젖을 먹여가며 어린 아이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기도를 가르치며 키웠습니다. 비록 어린 아이지만 제사장 밑에서 훌륭한 하나님의 종으로 자라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어린 시절의 교육이 중요합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 중에는 자녀들을 어렸을 때부터 신앙으로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아이들이 건강하고, 공부를 잘해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만을 바라며 공부만 열심히 시킵니다. 어린 아이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기도를 가르치는 부모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직 교회 안에서만 신앙교육을 받을 뿐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부모를 대신해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을 해주는 교회학교 교사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대학 입학 후에 다녀도 된다고 생각하고, 주일에도 아이를 교회에 보내지 않고, 학원에 보내는 부모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의 자녀들은 세상이 알아주는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는 힘듭니다. 이 아이들이 지옥에 가서 부모를 얼마나 원망할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진심으로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압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을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읽게 하고 기도하는 아이로 키웁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어린 아이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학교에 나오는 아이들을 교인 수에 포함시키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예배에 나오는 사람들만 교인으로 생각합니다.

지금은 어리지만 어린 아이들이 나중에는 교사가 되고, 찬양대원이 됩니다.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됩니다. 선교사가 되고, 목사가 됩니다. 교회학교에 나오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독일의 한 나이 많은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은 아침마다 교실에 들어가서 모자를 벗고, 예의를 갖추어 그들에게 절했습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웃기도 하고, 조롱 섞인 목소리로 흉보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어느 선생님이 그렇게 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아이들 중에 어떤 사람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지요.” 그의 말이 옳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들 중의 한 명이 종교 개혁가인 마틴 루터였습니다.

 

어른들은 세월이 가면 다 없어집니다. 10년, 20년, 30년이 지나면 세상을 떠납니다. 결국에는 어린 아이들이 우리를 대신해 교회를 지킵니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교회학교를 보면, 그 교회의 미래를 미리 내다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학교가 중요한 것입니다.

 

아메리카로 건너간 청교도들은 제일 먼저 교회를 짓고, 후세들의 교육을 위해 성경학교를 세웠다고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하버드대학, 예일대학, 프린스턴대학 등은 모두 성경학교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은 많이 타락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났지만, 그래도 근본 사상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흐르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 때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가르쳤기 때문에 오늘날 미국이라는 나라가 존속할 수 있습니다.

그 대학에서 미국의 지도자를 얼마나 많이 배출했습니까! 2백 여 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은 대통령이 성경책 위에 손을 얹고 선서하는 나라입니다. 미국 지폐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써놓았습니다.

 

우리가 어린 아이들에게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 교육하느냐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늙고 병들었을 때, 제자들로부터 한 가지 부탁을 받았습니다. “선생님, 마지막으로 우리들에게 전해줄 가장 소중한 교훈을 말씀해주십시오.” 소크라테스는 지그시 눈을 감은 채 말했습니다. “아테네 꼭대기에 올라가서 시민들을 향해 간절히 외치고 싶은 말이 있다네” 제자들은 그 말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사람들이여, 재물을 모으는 일에만 충실하지 말라. 그것을 물려받을 어린아이들에게 좀 더 많은 사랑과 정성을 쏟아라. 이것이 내 일생을 통해 얻은 가장 귀한 교훈이다.”

 

마가복음 10장 13~16절을 보면,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아올 때, 사람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이 모습을 본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습니다.

제자들은 왜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것을 꾸짖었을까요? 제자들은 어린 아이들보다 어른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들을 소홀히 여기고 업신여겼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이들이 많이 오면 그 중에는 우는 아이도 있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장난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시끄럽기도 하고, 질서도 잡지 않고, 혼란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오히려 노하시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들을 안아주시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해주셨습니다.

 

본문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린 아이들에게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어린 아이의 천사가 항상 하나님을 뵙고 있습니다.

 

그리고 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을 이렇게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생각할 때, 우리는 교회학교에 나오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예수님을 영접하듯이 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 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연자 맷돌’은 당나귀가 돌리는 큰 맷돌입니다.

그만큼 실족하는 죄가 얼마나 큰 죄인지, 예수님께서는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실족하게 한다’는 것은 잘못된 행실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어 흉내 내게 만든다는 것, 해서는 안 될 일을 해서 아이들을 타락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과 행동을 눈으로 보고 배웁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가장 훌륭한 교육은 말씀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좋은 신앙의 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전도를 받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를 전도한 친구의 형님이 있었는데, 그 형님은 성령 충만한 분이셨습니다. 성품도 좋고, 공부도 잘하고, 은혜도 많이 받은 분이셨습니다.

저는 그 형님을 만난 후에 부흥회도 함께 가고, 산 기도도 함께 가고, 형님이 준 성경책도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형님처럼 예수를 믿어, 성령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를 믿자마자, 신앙의 본을 보여주는 형님을 만나게 해주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좋은 본을 보여주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이 아이들을 지옥으로 보내는 죄악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죄가 되는지, 본문 7~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고, 보여주어서는 안 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큰 죄가 되는지, 실족하게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실족하게 하는 자에게 화가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열심히 다녔기 때문에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며 자랐습니다. 좋은 일도 많지만, 궂은 일도 일어납니다. 그럴 때마다 교회의 젊은이들이 그 교회를 떠납니다. 그런 일을 보면서 어린 저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내가 목사가 되면,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어린 아이들과 젊은이들을 낙심시키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우리 교회도 개척한 뒤 34년 동안 어렵고 힘든 일이 많았습니다. 저를 힘들게 한 분들도 많았지만, 저는 그분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분들을 안아주고, 손을 잡고 끝까지 기도해주었습니다.

교회의 화평을 위해서였습니다. 자라나는 어린 새싹들에게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만을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저의 모습을 기뻐 받으시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우리 교회를 부흥시켜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임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에게 좋은 본을 보여주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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