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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18장

불쌍히 여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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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7 11:33 조회3,3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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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히 여기라

 

불쌍히 여기라

2010년 04월 09일(금요철야)

본문 / 마태복음 18:21~22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다 보면, 우리가 잘못해서 용서를 빌어야 할 때도 있지만,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주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돈을 갚지 못해 빚 독촉을 받으며 살게 될 때도 있고, 반대로 남에게 돈을 빌려줬는데, 받지 못해서 괴로움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예수님의 말씀을 살펴보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가 꾸어주는 자가 되는 것은 축복이고, 꾸러 다니는 것은 저주입니다.

신명기 28장 1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축복하시는 내용이 기록되어있는데,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물질의 축복을 주시면, 꾸어주는 자가 되지, 꾸러 다니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15장 6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게 복을 주시리니 네가 여러 나라에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하겠고 네가 여러 나라를 통치할지라도 너는 통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신명기 28장 44절에 보면, “그는 네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그에게 꾸어주지 못하리니 그는 머리가 되고 너는 꼬리가 될 것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불순종할 때에 받게 되는 저주를 말씀하시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남에게 꾸어주는 일은 하지 못하고, 밤낮 꾸러 다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남에게 돈을 꾸는 일이 생긴다면,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 않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먼저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쟁이가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꾸어줄지라도 꾸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꾸러 다니게 되었다면, 가장 먼저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지는 않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순간, 돈이 우상이 되어버립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앞세우고, 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헌금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말라기 3장 8~9절에 보면,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시며 십일조헌금을 하지 않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주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말라기 3장 10~12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불의한 방법으로 돈을 벌려고 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재산이 많아지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정당한 방법으로, 정직하게, 바르게 번 돈인지, 사기를 쳤다거나 뇌물을 받는 등의 불의한 짓을 해서 재산을 모았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공장에 다니는 여자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장에서 만드는 물건을 하나씩 집에 들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모아서 팔았습니다.

직원들이 퇴근할 때, 공장의 경비실에서 직원들을 살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 청년이 공장의 경비원과 모의했습니다. 그러니 걱정할 것이 없었습니다. 공장의 물건을 마음 놓고 가지고 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많은 돈을 모았습니다. 그 돈으로 큰 집을 샀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돈을 모으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두지 않으십니다.

 

야고보서 5장 1~5절에 보면,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책망 받는 부한 자들은 불의한 방법으로 돈을 모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반드시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사치하느라고 죄 짓고, 방종하며 살고, 자기의 마음만 살찌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레미야 17장 11절에 보면,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불의한 방법으로 모은 돈으로 평생 잘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재산은 다 없어질 날이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공장의 여직원은 불의한 방법으로 돈을 모아 집을 샀습니다. 그런데 그 여직원의 남동생은 바람둥이, 노름꾼이었습니다. 누나의 집문서를 훔쳐가서 노름하다가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삽시간에 집이 없어졌고, 빚 때문에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결국 온 집안이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직장에서나 사업처에서 불의한 방법으로 돈을 모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혹시 교만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교만을 꺾으시기 위해 우리를 가난하게 만드실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방법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아주 미워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잘 살게 해주시면, 오히려 더 교만해집니다. 그래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사람을 무시하고, 자기가 가장 잘난 줄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시려고 가난하게 만드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난해지면, 교만하지는 않았는지, 내가 교만해져서 하나님께서 물질의 고난을 주시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제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교만할 이유가 없는데, 교만해져서 남을 판단하고, 남을 비판했습니다.

오히려 제가 비판받고 판단 받아야 하는데, 제 속에 교만한 마음이 들어오니까 사람을 보면 평가했습니다. 사람을 보면 점수를 매겼습니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우리를 판단할 수 있는 분이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판단할 자격이 없습니다.

제 안에 교만의 뿌리가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저를 누르시려고 가난하게 하셨음을 깨달았습니다. 진작 깨달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말씀을 듣는 가운데 깨달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교만 때문에 하나님이 가난하게 하신 사람은 자신의 교만을 깨닫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축복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문제가 반드시 해결됩니다.

혹시 교만해서 가난해진 것은 아닌가 깨닫기 위해 하나님 앞에 열심히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기분이 나쁠 수 있지만, 기도하다가 주님으로부터 응답 받으면, 은혜 가운데 응답 받게 되고, 기쁨이 넘치기 때문에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습니다. 교만해서 하나님이 물질의 고난을 주시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게 하시려고 가난하게 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질의 어려움이 없으면, 예수님을 믿지 않을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어려움을 당하게 하셔서 항복하게 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것 같은데도 마치 저주 받은 사람처럼 빚으로 인해 괴로움을 당하며 살게 되었다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고, 하나님의 계획이 있을 것입니다.

문제를 똑바로 깨닫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별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전화위복됩니다.

어떤 고난이 있어도 기도하다가 은혜를 받으면, 고난이 축복이 됩니다.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있어도 기도하다가 은혜를 받으면, 그것으로 인한 축복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고, 모든 것이 전화위복됩니다. 마귀에게 속지 마시고, 항상 기도하시므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빚진 자는 빚을 갚아야 합니다.

시편 37편 21절에 보면,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갚으려고 하지만, 형편이 되지 않아 갚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그런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악인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악인’은 의도적으로 그런 짓을 하는 사람, 어떻게 해서든 돈을 꾸어서 갚지 않는 짓을 반복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수영로교회를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30여 년 전의 일입니다. 하루는 한 성도가 돈을 꾸러 우리 집에 왔습니다. 곧 갚겠다 해서 돈을 꾸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한 마디의 말이 없습니다. 갚겠다거나 미안하다거나 한 마디라도 했으면, 제가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꾸어갈 때에는 금방 갚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오죽하면 교역자를 찾아왔을까’라고 생각하고 돈을 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에 등록한 새신자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돈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그분에게 돈을 꾸어달라고 했습니다.

새신자가 은혜를 받고 나니 모든 것이 좋아보였습니다. 교회의 모든 사람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사님을 믿고 돈을 꾸어주었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 갚지 않고, 2년이 지나도 갚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돈을 빌려준 새신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돈을 빌려 가면 안 갚는가.’라고 생각하고, 저를 찾아와서 이야기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파 ‘이분이 낙심하면 어쩌나.’라고 걱정했습니다.

 

이런 경우에 교회를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 믿음이 없는 사람이 이런 시험을 당하면, 시험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오지 않고, “예수쟁이들은 다 도둑놈, 사기꾼이고, 예수쟁이들은 돈을 꾸어 가면 갚지 않는다.”라고 욕합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마태복음 5장 23~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사화하라’는 것은 소송하는 당사자들끼리 화해해서 풀어버리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돈을 꾸었는데 갚지 못하는 자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돈을 꾸었는지 갚지 못하는 사람은 원망을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문제를 법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돈을 다 갚기 전에는 감옥에 나오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급히 가서 사화하라는 것입니다.

 

빚진 사람들 중에는 돈을 꾸고도 악해서 갚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빚이 많아서 갚을 능력이 없어서 갚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열왕기하 4장에 보면, 한 여인이 엘리사를 찾아오는데, 그 여인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열왕기하 4장 1~7절에 보면,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의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하니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 그가 이르되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하니 이르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하니라 여인이 물러가서 그의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그들은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아들이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말하니 그가 이르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선지자의 제자의 아내, 지금으로 말하면 신학생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죽었습니다. 옛날에는 여자들이 나가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옛날에는 과부가 되면, 살아가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빚을 갚지 못해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신명기 15장 11절에 보면,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땅에는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않고, 언제나 가난한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손을 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 세상에는 가난한 과부, 의지할 곳 없는 고아,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나그네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의지할 데 없는 불쌍한 과부와 고아를 업신여기기 쉬운데, 우리는 절대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시편 68편 5절에 보면,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리고 과부의 편에 서계신 재판장이십니다. 그러므로 고아와 과부에게 함부로 했다가는 큰 일 납니다.

시편 146편 9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나그네를 보호하시고, 과부와 고아를 붙들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그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10장 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작은 자 중 하나’는 불쌍한 고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결단코 상을 잃지 않는다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갚아주신다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18장 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쌍한 아이를 보았을 때, 그 아이에게 도움을 주고 대접한 것은 예수님을 대접한 것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비유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시고,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5:40, 45).

사람들이 업신여기기 쉬운 가난한 과부나 고아,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나그네와 같은 사람들을 귀찮게 여기면 안 됩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시면, ‘내게 복 받을 기회가 왔구나.’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만난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사람들에게 손을 펴고 사랑을 베풀면, 하나님으로부터 큰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엡 2:4). 야고보서 5장 11절에 보면,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시고, 긍휼이 풍성하시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잘 살고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보다 못 살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십니다.

 

로마서 9장 15절에 보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남에게 긍휼을 베푸는 사람, 남을 불쌍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십니다.

 

야고보서 2장 13절에 보면,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없이 악독하게 행하면, 하나님이 그를 심판하실 때에 그를 긍휼히 여기지 않으시고, 무섭게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면,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게 됩니다. 심판 날에 오히려 영광을 얻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22절에 보면,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인자하시고, 긍휼이 무궁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남에게 긍휼을 베풀고 살면, 하나님의 마음에 맞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사무엘상 22장 1~2절에 보면,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환난 당한 모든 사람, 많은 빚을 갚지 못해 어려움을 당한 사람, 마음이 원통한 사람이 모두 다윗에게 몰려왔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다윗에게 왔을까요? 소문을 듣고 몰려왔을 것입니다. 그들은 “다윗에게 가면,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다. 다윗은 언제나 사랑을 베풀어준다. 다윗은 우리를 한 가족처럼 받아줄 것이다.”라는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다윗이 환난 당한 사람, 빚진 사람, 마음이 원통한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돌봐주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감동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에게 축복하시고, 다윗을 지켜주시고,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셋째, 꾸어간 사람이 갚지 않을 때에는 너그럽게 용서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8장 23~3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용서해야 하는 이유는

첫째,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의 빚을 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의 빚을 많이 진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지 못하고 있는 빚쟁이입니다. 주인이 일만 달란트 빚진 사람을 탕감해준 것처럼, 우리는 어마어마한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죗값으로 말미암아 목숨을 내어놓아야 하는 죄인이었습니다. 돈 몇 푼으로는 우리의 죗값을 치룰 수 없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우리는 목숨을 내어놓아야 합니다.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독생자인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게 되었고, 죽음을 면하게 되었고,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큰 죄를 용서받았으니,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8:21~22).

베드로는 넉넉하게 생각해서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라고 질문했는데, 예수님은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끝까지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시면, 하나님은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사랑의 빚을 진 자이기 때문에 우리도 마땅히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주님께서 용서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용서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용서하며 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셋째, 우리가 용서해야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6장 14~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 3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용서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지키지 않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다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꼭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싫더라도 용서해야 우리도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넷째, 용서하면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용서하면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원수들을 용서한다면, 억울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마음이 속상하고, 화가 나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에 지옥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용서하면, 우리가 용서하는 순간,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대방을 위해서도 용서해야 하지만, 자신을 위해서도 용서해야 합니다. 지옥의 고통을 경험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용서하면,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우리의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스데반 집사를 생각해보세요. 스데반 집사는 자기를 돌로 쳐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 눈을 감았습니다(행 7:60).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스데반 집사를 본받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도움을 구하는 사람에게 주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도움을 구하는 사람을 그냥 돌려보내지 말고, 액수가 적더라도 주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15장 7~11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않습니다. 없으니 꾸러 올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거절하지 말고, 그들에게 주면서 살아야 합니다. 꾸어줄 수 있으면 꾸어주고, 그냥 줄 수 있으면 그냥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첫째, 우리의 재물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재물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에 따라 신자냐 신자가 아니냐가 결정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진리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도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의 목숨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맡아서 관리하는 청지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입니다. 하나님이 많이 맡기신 사람은 재산이 많고, 조금 맡기신 사람은 재산이 적지만, 재산이 많든 적든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맡아서 관리하고 있을 뿐입니다.

 

셋째, 남에게 꾸어주며 사는 것이 복이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꾸어주며 사는 것 자체가 복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꾸어주고, 긍휼을 베풀며 살아야 합니다.

 

넷째, 우리가 하늘에 보물을 쌓는 자 되기를 주님이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6장 19~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물을 땅에 쌓아두고 사는가, 하늘에 쌓아두고 사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신앙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물질을 가지고 어떻게 사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신앙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다섯째,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은 주님을 대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꾸러 오는 사람을 거절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에게 손을 펴면, 반드시 축복을 받습니다.

 

신명기 14장 29절에 보면,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1장 24~25절에 보면,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약속의 말씀입니다.

 

곽선희 목사님의 할아버지께서 굉장한 부자였다고 합니다. 항상 그분은 동네의 거지들, 가난한 사람들, 불쌍한 사람들을 집에 불러서 먹였다고 합니다. 밥상을 제대로 차려서 그들을 섬겼다고 합니다.

그때 할아버지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심어놓은 것이 자자손손 복이 되어서 곽선희 목사님은 “할아버지 덕분에 제가 이렇게 복을 받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놀라운 것은 옛날에 일본으로 유학 가서 공부하시는 분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곽선희 목사님의 할아버지가 주는 장학금으로 공부했습니다.

곽선희 목사님은 미국의 프린스턴신학교에서도 공부하시고, 세계적인 학교에서 공부하셨는데, 전액장학금을 받으며 돈 걱정하지 않고 공부하셨습니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가 심어놓으신 축복을 받아 누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행하면, 반드시 말씀에 약속하신 대로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지켜도 되고,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대로 살아서 항상 사랑을 베풀고 나누며 살면, 우리는 양 같은 성도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염소 같은 성도가 됩니다. 우리가 형제에게 사랑을 베풀면, 하나님의 자녀요, 사랑을 베풀 줄 모르면, 마귀의 자녀가 됩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보증서지 마세요.

절대 보증서지 마세요. 빚 보증도 서지 말고, 사업 보증도 서지 마세요. 하나님만 보증설 수 있지, 사람은 보증을 서면 안 됩니다.

 

어느 장로님은 잘 사는 분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재산이 없어졌습니다. 보증을 잘못 섰다가 낭패를 본 것입니다. 한 순간에 모든 재산을 잃었습니다. 오갈 데가 없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보증서지 말라고 기록되어있는데(잠 22:26),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친하고,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보증서지 말라고 말씀하셨으니 보증서지 말아야 합니다. 절대 보증서면 안 됩니다.

 

둘째, 돈이 없으면서 남의 돈을 꾸어가면서까지 남에게 꾸어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돈이 없으면 없다고 이야기하면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돈을 꾸어다가 꾸어줄 필요는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있으면, 적게라도 손을 펴서 돕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꾸고자 하는 사람을 그냥 돌려보내지 마시고, 조금이라도 꾸어주며 위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이 갚지 못할 경우에는 그 사람을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물질 문제를 잘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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