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용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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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7:57 조회3,362회 댓글0건본문
끝까지 용서하라
끝까지 용서하라
2015년 04월 12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18:21~35
이 세상에 있는 교회 안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 교회에 나오기는 하지만,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성경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열심히 전도하는 교회일수록 교회 안에 이런 사람이 많습니다.
열심히 전도하여 1년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새로 등록하지만, 처음부터 예수님을 알고 교회에 오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전도해서 데리고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 중에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알게 해주고, 예수님을 믿게 해서 이들을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야 합니다.
둘째, 성령으로 거듭났을 뿐 아니라, 성령의 은혜를 받아 믿음이 좋은 성도가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언제나 자원해서 기쁨으로 합니다.
예배를 드려도 기쁨으로 자원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예배드리고, 봉사할 때에도 자원해서 봉사하고, 자원해서 기쁨으로 정성을 다해 헌금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교회를 사랑합니다.
이렇게 믿음이 좋은 분들은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하고, 원수들을 축복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들은 참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훌륭한 성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알곡 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성도들이 교회에 많을수록 교회에 대한 좋은 소문이 납니다. 훌륭한 성도가 많다는 것이 소문나면, 교회는 그만큼 좋은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셋째, 성령으로 거듭났지만, 아직 큰 은혜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젖이나 먹고 밥을 먹지 못하는, 젖먹이 신자라고 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믿지만, 큰 은혜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 변화가 덜 된 사람입니다.
정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확실한 열매가 나타납니다.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과 예수님을 믿고 난 후가 완전히 다릅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얼마나 변화되었는가를 보면, 그 사람이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 아직 작은 사람들은 덜 변했습니다. 조금 밖에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어떤 때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처럼 말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정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가’라고 의심되게 행동합니다.
문제가 많은 교회에는 교회에 나오기는 하지만, 믿음이 아직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아직 변화되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문제가 많습니다.
교회에서 열심을 내고 신앙이 좋은 것처럼 행동하지만, 성도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굉장히 열심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사실 사기꾼입니다.
시기하고 질투하고 성품이 좋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말이 많고, 이간질을 많이 해서 교회 안에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지만, 우상을 버리지 못하여 여전히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 직분자가 되었지만, 주색에 빠져서 밤낮 술을 마시고, 음란한 죄를 범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단에 넘어가서 잘못된 길로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발견되었을 때, 교회에서는 가만히 보고 있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8장 15~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진심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에 대해서는 찾아가서 권고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권면을 받아들이면 괜찮지만,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그 사람이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을 경우에는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고 하셨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과는 달리,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할 경우에는 몇 번이라도 끝까지 용서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간들에게 살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어떤 죄인이라도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를 무조건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죄를 도말해주시고,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이십니까.
그런데 하나님께 상달되는 올바른 회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마음으로 죄를 뉘우쳐야 합니다.
둘째, 입으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솔직하게 자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셋째, 죄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죄를 끊어버려야 합니다. 죄에서 돌이켜서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삶의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으로 죄를 뉘우치기도 잘하고, 하나님 앞에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기도 잘합니다. 그런데 삶의 변화가 일어나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진심으로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삶의 변화가 있습니다. 도둑질하던 사람이 도둑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구제하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열심히 일합니다.
이렇게 변화되어야 그 사람이 회개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회개하는 자에게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정말 회개한 사람인지 아닌지 알려면, 술을 마시던 사람이 술을 끊고, 음란한 짓을 하던 사람이 음란한 짓을 그만하고, 도둑질하던 사람이 도둑질을 하지 않고 바르게 살아가는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한 자의 증거입니다.
이런 변화가 없다면, 그 사람은 입술로만 회개하고, 형식적으로 회개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죄 사함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은 반복해서 죄를 짓게 됩니다.
에스겔 18장 21~23절에 보면, 에스겔 선지자는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과거보다 현재가 중요합니다. 과거에 어떻게 살았든지 현재 바르게 산다면, 하나님은 과거를 문제 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과거를 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현재 바르게 사는 것만 보시고, 우리를 살려주십니다.
어떤 죄인이라 할지라도 죄로 인해 멸망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모두 회개하고 돌이켜서 살게 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에 보면, 베드로는 예수님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끝까지 용서하라는 의미입니다.
회개하고 난 후에 또 죄를 범하고, 또 회개하고 난 후 또 죄를 범하는 사람은 참으로 회개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따지거나 판단하지 말고, 끝까지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끝까지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첫째, 우리 자신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받은 자이기 때문에 우리도 다른 사람을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용서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을 마땅히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8, 10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랑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빚을 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제를 마땅히 사랑해야 합니다.
둘째, 원수까지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것이 주님의 명령이요, 주님의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계명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44~4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악한 사람에게 보복하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그 사람을 위해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4, 17~21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라고 말했습니다.
골로새서 3장 13~14절에 보면,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서 멀리하지 말고, 오히려 그를 용납해주고 받아주고, 그를 용서해주라는 것입니다. 용서할 뿐 아니라, 사랑해주라는 것입니다.
셋째, 원수까지 용서하고 사랑해야 비로소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형제에게 불의한 짓을 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보면, 그 사람이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자녀인지, 마귀에게 속한 마귀의 자녀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행동을 보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4~15절에 보면,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사람이 형제를 사랑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보면, 그 사람이 정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원수를 미워하고 용서하지 아니하면, 우리도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주인이 1만 달란트 빚진 사람을 탕감해줬습니다. 1만 달란트는 어마어마한 액수입니다. 엄청난 액수의 빚이 없어졌으니 얼마나 기쁘고 좋습니까.
이 사람이 가다가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의 목을 잡고 빚을 갚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이것이 소문났습니다. 그리고 주인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이런 괘씸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인은 엄청난 빚을 탕감해줬는데, 이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 빚을 탕감해주지 않고 못되게 굴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이 종을 다시 끌어와서 옥에 가두었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18장 3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형제를 용서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제를 진심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넷째,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형제를 사랑하고 용서해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고,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는 놀라운 축복을 받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우리가 지키면,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보여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요한일서 3장 22절에 보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계명을 지키고,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하면서 살 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으며 살게 됩니다. 이 말씀대로 살아보세요.
제가 이 말씀대로 살아보니, 주님께서는 제가 구하는 것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생각하기만 해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시고, 이 말씀대로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왜 교회에 문제가 많고 시끄럽습니까? 용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로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남을 미워할 자유가 없습니다. 사랑해야 하는 의무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합니다. 끝까지 용서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서 사는 비결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33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말씀대로 산다면,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존경하고, 칭찬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감동받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고, 구원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말씀대로 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왜 이 말씀대로 살지 않을까요? 아직 거듭나지 못했거나 거듭났다고 해도 믿음이 어린, 젖먹이 신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모두 성령 충만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에게는 확실한 변화가 있습니다. 말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변하고, 행동이 변할 뿐 아니라, 성품이 변화됩니다. 악독했던 사람이 착해지고, 불의한 짓을 하던 사람이 의로워지고, 거짓말을 잘하던 사람이 진실해지고, 교만하던 사람이 겸손해집니다.
무엇보다 사랑이 많아집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뿐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이런 사람은 주님의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용서하므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됩니다.
손양원 목사님을 기억하십니까? 손양원 목사님은 한국 교회의 모델이 되는 목사님이십니다. 그분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신사참배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나병환자들을 위해 살았습니다.
여수반란사건이 일어났을 때, 공산군이 와서 목사님의 두 아들을 죽였습니다. 목사님의 두 아들을 죽인 사람이 잡혔습니다. 재판을 받고, 사형언도를 받았습니다. 그때 손양원 목사님은 그 사람을 용서해달라고 하고, 그 사람을 자신의 양자로 삼았습니다. 원수를 자신의 아들로 삼은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원수를 용서할 뿐 아니라, 원수를 사랑한 분이었습니다. 아마 손양원 목사님은 천국에서 면류관을 쓰시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주님과 함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계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본문의 말씀대로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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