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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17장

오리라고 한 엘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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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7:34 조회3,3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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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라고 한 엘리야

 

오리라고 한 엘리야

2015년 02월 08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17:9~13

 

본문 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에게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기 이전까지는 변화산에서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세 명의 제자가 변화산에서 본 예수님의 모습은 예수님이야말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예수님이야말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대하고 고대하고 고대하던 메시아, 그리스도이심을 확증해주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제자들이 흥분하여 변화산에서 본 것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여 소문이 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람들 중에 베드로와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러니 메시아를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겠느냐고 목숨 걸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누가 기뻐하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제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것을 반대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변화산에서 본 것을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시고 죽으신 이후에 다시 살아나실 때까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일평생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사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의 아픔을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도 전에 미리 아셨습니다. 차라리 모르고 있다가 얼떨결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면, 잠시 고난을 당하는 것일 텐데, 예수님은 미래를 다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 아픔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마 26:39). 이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철저히 따르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3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예수님 자신의 뜻을 행하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행하시려고 오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 아들을 보내셔서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자들이기 때문에 죄가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죄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철저하게 따르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할 때에는 “주여, 주여”라고 기도하면서 제멋대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기에게 좋은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을 믿지만, 자기에게 편한 대로, 자기에게 좋은 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자기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올바른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을까요?

첫째, 하나님의 뜻을 똑바로 알아야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은 성경 속에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성경을 아무리 읽어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이기 때문에, 의미를 깨닫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때에는 기도해야 합니다. “제게 성령이 임하셔서 저를 감동하사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이 말씀을 똑바로 깨닫게 해주세요. 성령이 제게 임하셔서 제게 지혜를 주시고, 영안을 열어주시고,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어 하는 마음,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마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평생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원합니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소원을 가진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리고 능히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없습니다. 성령 충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제가 목회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 제 생각과 욕심과 계획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저는 오직 주님만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살려는 마음을 가지고 전도하다가 ‘목회자가 되어 이 나라 국민들을 모두 예수 믿게 해야겠다.’라고 결심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의 종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주의 종이 되겠다고 결심한 사람은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주의 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어렸을 때부터 중요한 것을 결정할 때나 무슨 일을 시작할 때에는 항상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중요한 것을 결정해야 할 때, 산에 올라가서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이런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게 말씀해주세요.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기도했으면, 하나님께서 빨리 응답해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월요일부터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하나님은 금요일에 제게 응답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똑같은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빨리 응답해주시지 않으셨을까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왜 오랫동안 기도하게 하셨을까요?

제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믿음이 제게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제게 계속해서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성령 충만한 믿음을 갖게 하시려고 계속해서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기도의 분량을 채우게 하신 것입니다.

 

성령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똑바로 알게 해주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능력과 믿음을 주십니다.

요한복음 20장 21~22절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라고 말씀하시고, “성령을 받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4~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예수님의 증인 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능력 있는 믿음을 갖게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본문 마태복음 17장 10절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제자들은 왜 이렇게 질문했을까요?

제자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생각하는데, 구약에 보면,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온다고 예언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엘리야는 누구인지 궁금해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말라기 4장 5~6절에 보면,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가복음 1장에 보면, 제사장 사가랴의 집에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가랴 부부는 아들을 달라고 항상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사가랴가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는 시간에 천사가 사가랴를 찾아와서 사가랴에게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라고 말했습니다(눅 1:13, 15~17).

세례 요한이 태어나기 전에 천사가 와서 오리라고 한 엘리야의 일을 세례 요한이 할 것이라고 사가랴에게 말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세례 요한은 가장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얼마 살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순교했으니, 얼마나 불행합니까.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세례 요한은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세례 요한은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처자식을 먹여 살리느라 고생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았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노동하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은 오직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다하기 위해 충성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9~27절에 보면,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라 또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례 요한이 자신의 사명을 위해 얼마나 충성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굉장히 훌륭하고 존경받는,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자신을 낮추고, 예수님을 높였습니다.

 

요한복음 1장 29~34절에 보면,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처럼 세례 요한은 자신의 사명을 다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 마음대로 세례를 베푼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세례를 베풀라고 말씀하신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야말로 메시아이심을 세례 요한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증언했습니다. 이처럼 세례 요한은 자신의 사명에 충성했습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은 순교했습니다.

 

마태복음 14장 3~11절에 보면,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무리가 그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을 두려워하더니 마침 헤롯의 생일이 되어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약속하거늘 그가 제 어머니의 시킴을 듣고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왕이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 때문에 주라 명하고 사람을 보내어 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서 그 소녀에게 주니 그가 자기 어머니에게로 가져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부모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늙어서 얻은 귀한 아들 세례 요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마태복음 11장 7~14절에 보면,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 대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 대해 아주 확실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지금 하늘나라에서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요? 아주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있을 것입니다. 아주 빛나는 옷을 입고, 면류관을 쓴, 영광스럽고 복된 모습으로 있을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순교하고, 주님을 위해 살았던 사람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받은 복을 저와 여러분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어드리며 살고 싶어 하는 소원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다가 고난 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충성하는 사람들이 이런 복을 받습니다.

 

먹고사느라 바쁘고, 세상 일로 바쁜 중에도 주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살다 보면, 어려움을 당하고, 고난을 당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괴로워하거나 저주라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영광으로 생각하며 기쁨으로 충성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동역자로 천국에서 매우 큰 상을 받게 됩니다.

로마서 8장 17~18절에 보면,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그대로 믿으십니까?

 

사도들은 이 비밀을 알았기 때문에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다가 순교했습니다. 사도 바울을 보세요. 세상의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오직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다가 많은 고통을 당하고,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했습니다. 장차 받을 영광이 크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19~24절에 보면,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이 사셨던 모습을 우리도 본받으라고, 예수님의 자취를 따르라고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들은 모두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의 복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큰 복, 영원한 복, 완전한 복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입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은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택해주신 자가 누리는 복입니다. 영생을 누리며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되는 복입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천국에 가려면, 죄가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의 죄는 2천 년 전에 이미 해결되었습니다. 과거의 죄와 앞으로 범할 죄까지 모두 해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듣게 하시고, 하나님을 믿게 하시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므로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천국 시민이 되게 하셔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죄가 없어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죄 사함을 받고, 예수님 때문에 구원 받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사랑과 십자가의 사랑을 알기 때문에,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회개합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거룩한 마음을 주시고, 죄를 미워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하시고, 변화되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시고, 마침내 천국에 들어가도록 책임져주십니다.

 

우리는 창세 전에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이사야 43장 7절에 보면,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이사야 43장 10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입니까? 어디를 가든지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며 살고,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의 모습이요, 열매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서 살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뿐 아니라, 우리가 구하는 대로 받는 것은 물론이요, 생각하기만 해도 넘치게 해주시는 하나님을 날마다 체험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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