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여인의 믿음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4:15 조회3,453회 댓글0건본문
가나안 여인의 믿음
가나안 여인의 믿음
2014년 11월 16(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15:21~28
본문을 통해 우리는 흉악하게 귀신 들린 딸로 인해 고생하던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것처럼,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무능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기 때문에,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지는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은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계획과 뜻이 있고, 이루시기로 정하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는 그 말씀이 이루어지기로 정해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알지 못하면, 우리는 실수를 많이 하게 되고, 쓸데없이 의심하게 되고, 낙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75세였을 때, 그를 부르시고, 그에게 엄청난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을 봐라. 네가 하늘의 별을 셀 수 있느냐? 네 자손이 저렇게 많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매년 자식을 낳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세 되었을 때, 아브라함은 자식을 낳았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때가 있다는 것을 아브라함이 알았더라면,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아 지금까지 고생하는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믿음을 준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자신에게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며 축복을 받을 믿음의 그릇을 준비해야 할 텐데, 아브라함은 아이를 낳을 생각만 하고, 그렇게 되지 않으니 어리석은 짓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도 400여 년이 지난 후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세를 통해 구원하시고,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게 하시므로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실 때, 가나안 땅으로 바로 인도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광야에서 40년을 머물게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힘들게 인도하셨습니까?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 백성들을 쉬운 길로 인도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 앞에 이르게 하셔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게 하시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생활하게 하신 후에야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직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받게 됩니다.
믿음으로 복을 받게 됩니다. 믿음이 있어야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믿음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고,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도 그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복은 믿음으로 받는 복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믿음으로 무장시키시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 앞으로 인도하시고, 광야로도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믿음으로 무장시키시기 위해 그들에게 십계명을 주시고, 율법도 주시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날마다 체험하게 하시고, 날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셔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산다는 것을 날마다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도 몰랐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동안 밤낮 애굽의 우상들을 섬겼습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 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놓고, 그 앞에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우상을 숭배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가 없는 동안 어리석은 짓을 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하시고,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그들을 무장시키시기 위해 그들로 하여금 광야에서 40년을 보내게 하셨습니다.
민수기 13~14장에 보면,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믿음이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원망 불평하는 말, 믿음 없는 말, 부정적인 말을 했습니다.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애굽 사람들이 열 가지 재앙으로 인해 고생하는데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해주시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며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도 하나님께서 날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렇게 많은 것을 체험했지만,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에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왜 원망 불평만 했을까요? 이들에게는 왜 믿음이 생기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첫째, 날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여주시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반석에서 생수가 나게 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신실하심을 믿으며 나아갔다면,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바라봤습니다. 눈에 보이는 광야만 바라보고, 그 속에서 고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봤습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이 돌아가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신문을 들여다보면, 살맛이 나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어집니다. 실망하고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을 바라보면, 소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믿음이 없어집니다. 사람을 보면,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감사가 없었습니다. 날마다 불기둥이 나타났을 때,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니 감사합니다.”라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주시고, 메추라기를 몰아주실 때, 하나님께 감사해야 했습니다.
출애굽기 15장에 보면, 홍해를 건넌 후 이스라엘 백성들의 찬양한 내용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넌 후에만 찬양할 것이 아니라, 광야에 있었던 40년 동안 날마다 그렇게 찬양했어야 합니다. 날마다 감사하고, 날마다 찬양하며, 살아계신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았다면, 감사하는 것이 생활화되어서 원망 불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민수기 13장 30~33절에 보면, 갈렙은 모세 앞에서 백성들을 조용하게 한 후에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라고 담대하게 믿음으로 말했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열 명의 정탐꾼들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바라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바라보면, 믿음이 없어집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바라보고 말할수록 믿음이 없어집니다. 원망 불평하게 되고, 낙심하게 되고, 절망하게 되고, 부정적인 말과 믿음 없는 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민수기 14장 1~4절에 보면,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끊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말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좋은 말을 하세요. 믿음의 말을 하세요. 축복의 말을 하세요. 세상을 보고 말하지 마세요.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의 말을 하세요. “주님께서 살아계시는데, 내가 무엇을 걱정하겠나.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는데, 내가 무엇을 걱정하겠나.”라고 믿음의 말을 하세요.
“주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 “하나님은 나를 절대 버리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니 뭘 걱정하겠나.”라고 믿음의 말을 하세요.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흔들리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통곡하면서, 해서는 안 될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말한 대로 그들을 광야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이라고 말한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죽게 하시고, 여호수아와 갈렙만 광야에 들어갔습니다.
절대로 원망 불평하거나 믿음 없는 말을 하거나 부정적인 말을 해서 손해 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현상만 바라보며 말하지 마세요.
하나님만 바라보세요. 주님을 바라보세요. 말씀을 붙잡고, 언제나 믿음의 말, 축복의 말,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잘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지신다.”, “걱정할 것 없다.”라고 항상 믿음의 말을 하세요.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는 여리고를 점령하고, 아이 성을 점령한 후, 계속해서 가나안 땅을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다 내쫓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남아있는 사람들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복은 믿음으로 받는 복이기 때문에 믿음만큼 복을 받아 누리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다 주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다 차지하지 못하고, 자신의 믿음만큼 땅을 차지했습니다.
사사기를 자세히 읽어보세요. 믿음이 강한 지파는 믿음으로 땅을 정복해서 땅을 차지했지만, 믿음이 없는 지파는 자기에게 분배된 땅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복은 내 믿음만큼 받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복을 주셨지만, 어리석게도 복을 받아 누리지 못했습니다. 이들에게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믿음만큼 땅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사람들과 함께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가나안 여인은 가나안 땅에 남아있던 이방인의 자손이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이 가나안 여인은 이방 여인이었음에도 큰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똑바로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깊이 알아야 합니다. 체험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주님을 점점 더 깊이 알아가야 합니다.
마태복음 1장 1절에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가리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22절에 보면,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을 향해 “주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불렀습니다. 이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이 바로 메시아이심을 알았고 믿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 가나안 여인은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와 부르짖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기도하려고 생각하지 않고, 말만 합니다.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습니다.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말하고, 눈앞에 벌어지는 현상과 인간들이 하는 것만 보고 말만 합니다. 이것은 마귀만 기쁘게 할 뿐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입을 다물고 기도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며 말해봐야 하나도 해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더 복잡해지고 시끄러워지고 골치만 아픕니다.
하나님만 완전하신 분이시고, 하나님만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하실 수 있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만 바라보고, 입을 다물고 기도합니다.
아람 장군 나아만은 믿음이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나병환자가 많았습니다. 그들 중에 엘리사를 찾아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아람 장군 나아만은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어린 소녀의 말을 듣고 먼 곳에서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엘리사가 사는 동네에도 나병환자가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엘리사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람 장군 나아만은 먼 곳에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나아만은 엘리사를 찾아갔을 뿐 아니라, 아직 나병이 낫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나을 줄 믿고 미리 감사의 예물을 수레에 싣고 같습니다. 대단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믿음에 부족한 점이 있었습니다. 엘리사가 문 밖에 나와 보지도 않고, 하인에게 시켜서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라고 말했습니다.
나병환자는 사람 앞에서 옷 벗는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자신의 더러운 몸을 보여주기 싫은데, 요단 강에서 목욕하라고 하니,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엘리사가 축복기도라도 해주면 좋을 텐데, 축복기도는커녕 문 밖으로 내다보지도 않으니 나아만은 원망 불평하며 화를 냈습니다.
그러나 나아만의 신하들이 지혜로워서 그에게 “병이 낫는다면, 이보다 더 한 일을 하라고 해도 해야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지혜롭습니까.
나아만이 그 말을 듣는 순간, 입을 다물고 요단 강에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물속에 들어갈 때마다 조금씩 낫는다면 좋겠는데, 전혀 낫지 않았습니다. 의심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래도 엘리사가 일곱 번 씻으라고 했으니 나아만은 끝까지 순종했습니다. 요단 강 물에 일곱 번 몸을 담근 순간, 어린 아이의 피부처럼 깨끗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7일 동안 여리고 성 주위를 돌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입을 다물고 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날에 외치는 것 외에는 입을 다물고 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것을 명하시지 않으셨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마어마한 성 주위를 돌면서 별별 이야기를 했을 것입니다. 그들 중에 믿음 없는 사람이 한 사람이 말하기 시작해도 그 말이 퍼지기 시작하면,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입을 벌리고 떠들면서 여리고 성을 돌았다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망했을 것입니다.
여리고 성을 점령하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입을 다물고 돌 때, 기도하기 좋습니다. “주님이 이 여리고 성을 무너지게 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돌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7일 만에 여리고 성이 무너져서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본문에 나오는 가나안 여인처럼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와 부르짖어야 합니다.
이 가나안 여인은 끈질기게 간구했습니다. 본문 22~23절에 보면,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가나안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므로 응답받지 못해도 낙심하지 말고, 더 강하게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24~25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가나안 여인은 아주 적극적이었습니다. 가까이 나아와 예수님께 절까지 하며 부르짖었습니다. 이렇게 끈질긴 기도를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은 누구를 가리킵니까? 이사야 43장 1~4절에 보면,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얼마나 존귀하게 여기시는지, 보배롭게 여기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즉 야곱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가리킵니다. 야곱과 에서 중에 에서는 택함을 받지 못했고, 야곱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아브라함의 육신의 자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어가는, 믿음의 자손 야곱을 가리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받게 되는 축복이 ‘아브라함의 복’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7~9절에 보면,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아브라함과 함께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이 비밀을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모든 이방인이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방인들까지 믿음으로 구원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6절에 보면,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26~29절에 보면,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시원하게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을 우리가 물려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 중에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다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38~4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게 될 것입니다.
이 가나안 여인은 개와 같이 대해지면서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은 이방인을 개와 같이 여겼습니다.
본문 26~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이 가나안 여인은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여자는 쉽게 물러나지 않습니다.
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의 딸이 나았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 가나안 여인처럼 큰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예수 믿고,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이방인이라고 해서 하나님은 천대하시지 않으십니다.
출애굽기 22장 21절에 보면,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하신 분이십니다. 요나서 4장에 보면, 멸망할 수밖에 없는 니느웨가 회개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하시지 않으시니까 요나는 화났습니다.
요나서 4장 10~1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시겠죠? 하나님은 어린 아이도 소중하게 여기시고, 가축도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자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눈에 천하게 보이는 사람, 형편없어 보이는 사람, 철없어 보이는 어린 아이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소중하게 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찾는 자들을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심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이 가나안 여인처럼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오세요. 부르짖으세요. 응답하지 않으셔도 계속 부르짖으세요. 응답될 때까지 끈질기게 부르짖으세요. 물러서지 마세요.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기도하세요.
하나님은 자비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부르짖는 믿음, 하나님 앞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원하는 그 믿음을 하나님은 귀하게 여기십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한 과부가 불의한 재판장에게 달라붙어서 끈질기게 졸랐습니다. 불의한 재판장은 나중에는 귀찮아서 과부의 청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8:7~8).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씀을 듣기만 할 뿐, 말씀대로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떠들고 근심할 뿐, 말씀대로 실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