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인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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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21 17:43 조회3,438회 댓글0건본문
적극적인 믿음
적극적인 믿음
2003년 03월 28일(금요철야)
본문 / 마태복음 14:22~33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에 많은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사람을 살리셨습니다. 나병환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걷지 못하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맹인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중풍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5천 명을 먹이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게 하셨습니다. 이 외에도 예수님께서는 많은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증거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니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많은 표적을 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께 다른 표적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나가 큰 물고기의 배 속에 사흘 동안 있다가 죽지 않고 살아나왔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큰 표적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증거하는 매우 중요한 표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가리켜 ‘요나의 표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표적을 다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많은 표적을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메시아신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 아니요, 마귀의 자녀요, 지옥에 갈 사람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메시아이신 것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습니다.
표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을 갖게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사람을 모으는 데는 최고의 효과가 있습니다.
제가 사람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기만 해도, 나병환자가 낫고, 맹인이 눈을 뜨고, 걷지 못하는 사람이 일어난다면,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몰려올 것입니다. 이처럼 표적은 사람을 모으는 데는 최고의 효과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표적을 행하시자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는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병든 사람은 병을 치료 받기 위해 왔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표적 행하시는 것을 실제로 보려고 온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표적을 보았다고 해서 모두 신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룟 유다를 보세요. 가룟 유다는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예수님께서 표적 행하시는 것을 다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다 들었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신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는 사람들의 편에 섰습니다. 그리고 돈에 눈이 어두워져서 은 30냥에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가룟 유다는 3년 동안 예수님의 설교를 들었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지만, 예수님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를 가리켜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요 6:70)”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다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 믿음이 생기는데, 성령께서 역사하셔야 믿음이 생깁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과 말씀을 듣는 사람에게 성령께서 역사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의 감동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생깁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을 교회에 데리고 와서 말씀을 듣게 해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도 예배에 참석하게 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은혜를 받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므로 일단 교회로 데리고 와야 합니다.
누가복음 14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를 줘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 중에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믿음이 생기고 구원 받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믿음이 가장 좋은 사람은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매사에 적극적이었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14장 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본 베드로는 예수님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오라(마 14:29)”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외에 물 위를 걸은 사람은 베드로 한 사람 뿐입니다.
믿음은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소극적인 태도는 믿음의 태도가 아닙니다. 소극적인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소극적으로 기도합니다.
가나안 여자가 예수님을 찾아와 예수님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마 15:22)”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나안 여자에게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마 15:26)”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가나안 여자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가나안 여자는 예수님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마 15:27)”라고 말했습니다. 가나안 여자는 끈질겼습니다. 적극적이었습니다.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나안 여자에게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마 15:28)”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나안 여자의 적극적인 태도는 그녀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마가복음 2장에 보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메고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 왔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네 사람은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렸습니다. 네 사람은 난관이 있어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 가면 병이 낫는다고 믿었기 때문에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서라도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으로 가게 했습니다.
마가복음 2장 5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믿음이 적극적인 태도로 나타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행동을 통해 그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에게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정쩡하게 행동하는 사람이라도 믿음이 생기면 달라집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미지근한 사람은 믿음이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라오디게아교회를 향해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계 3:15~16)”고 말씀하셨습니다.
맹인 바디매오는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막 10:47)”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그를 꾸짖으며 잠잠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막 10:48)”라고 더욱 크게 소리 질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디매오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막 10:52)”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바디매오는 보게 되었습니다.
적극적인 태도, 끈질긴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태도입니다. 밤낮 소극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믿음이 약한 증거입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은 적극적으로 생각합니다.
누가복음 4장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능력의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 나병환자가 많았습니다. 만약 그들이 ‘어떻게 해서든 나음을 받아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엘리사를 찾아왔더라면, 그들은 나병이 나았을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픈 사람, 장애인 중에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은 예수님께서 그냥 돌려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은 병이 나았습니다.
그런데 소극적인 사람은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포기하고 돌아섰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병을 고침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적극적인 사람은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지붕 위로 올라가 지붕을 뜯었습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행동한 사람은 응답을 받았습니다. 병이 나았습니다.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나병환자가 많았지만, 나아만 외에는 나병을 고침 받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믿음이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매사에 소극적이고 부정적입니다. 쉽게 체념합니다. 체념한다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해보지도 않고 포기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골리앗 앞에 선 다윗은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다윗은 주위에 있는 군인들에게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거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삼상 17:26)”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서도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담대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다윗 외의 다른 사람들은 싸워보지도 않고 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소극적인 사람은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소극적인 사람은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싸워보지도 않고 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싸워보지도 않고 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싸우지 않아도 집니다. 해보지 않고도 실패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소극적으로 생각합니다. 소극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시도해보지도 않고 실패합니다. 패배합니다.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도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믿음 없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적극적으로 행동합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다윗은 믿음으로 담대하게 나아가 골리앗과 싸웠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능력과 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으로 하여금 이기게 하셨습니다. 다윗이 승리함으로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골리앗과 싸우기도 전에 벌벌 떨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소극적으로 행동했습니다. 부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생각하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행동했다면, 누구도 골리앗의 목을 베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을 통해 큰 일을 행하십니다. 믿음의 사람은 적극적입니다. 긍정적입니다.
남들이 다 안 된다고 해도, 믿음의 사람은 된다고 믿고 나아갑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을 통해 기적이 일어납니다.
두려움 때문에 소극적으로 행동합니다. 두려움은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합니다. 열두 명의 정탐꾼이 가나안 땅을 정탐했습니다. 그들 중 열 명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열 명의 정탐꾼은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민 13:28~29)”,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민 13:31)”,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3:32~33)”고 말했습니다.
믿음이 없는 열 명의 정탐꾼에게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그래서 열 명의 정탐꾼은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부정적으로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믿음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민수기 14장 1~3절에 보면,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열 명의 정탐꾼의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부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죽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데, 다 죽을 것처럼 말했습니다. 망할 것처럼 말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분노하게 했습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 보면,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의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행하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부정적으로 말한 대로 되게 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3장 8절에 보면,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음은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역하여 그의 영광의 눈을 범하였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루살렘과 유다가 왜 망했습니까? 그들은 언어와 행위로 하나님을 거역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눈을 찌르는 것처럼 그들이 못된 짓을 했기 때문입니다.
믿음 없는 말, 믿음 없는 행동, 부정적인 말, 부정적인 행동은 우리를 불행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긍정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므로 우리는 승리한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하시는 것을 상상하고, 믿음으로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골리앗 앞에 선 다윗처럼 담대해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8장 1~8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과부는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과부는 끈질기게 매달렸습니다. 재판장이 얼마나 귀찮았겠습니까. 재판장은 귀찮아서 과부의 원한을 풀어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가복음 18장 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부의 믿음이 적극적인 자세로 나타났습니다.
과부는 적극적으로 행동했습니다. 한 번 붙잡은 것은 절대 놓지 않았습니다. 쉽게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생명을 걸고 매달렸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과부와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을 세상에서 볼 수 있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의 믿음이 미지근해질 것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안 될 것도 될 것입니다. 망할 것 같다가도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실패할 것 같다가도 아름답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야곱의 믿음을 좋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인간성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믿음의 조상을 언급할 때에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라고 합니다.
야곱은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얍복 강가에서 기도하는 야곱을 보세요. 형 에서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밤새 기도했습니다. 축복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야곱은 천사와 씨름했습니다. 천사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쳤습니다. 그래도 야곱은 천사를 놓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끈질겼습니다. 적극적이었습니다. 이것이 야곱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왜 우리는 야곱처럼 기도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믿음이 뜨겁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소극적으로 기도합니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성령의 불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기도해도 응답 받지 못합니다. 소극적인 태도 자체가 믿음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손해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적극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기도하는 만큼 믿음이 자랍니다.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성령의 은혜를 구한 120명의 성도들은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끈질기게 적극적으로 따라갔습니다. 엘리야가 여리고로 가면, 엘리사도 여리고로 갔습니다. 엘리야가 요단 강으로 가면, 엘리사도 요단 강으로 갔습니다.
엘리야가 “너는 여기 머물라(왕하 2:2,4)”고 두 번이나 말했지만, 엘리사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왕하 2:2,4)”라고 말했습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능력 있는 종으로서 충성했습니다. 이러한 엘리사의 태도는 믿음의 태도였습니다.
회개할 때에도 적극적으로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범죄함으로 낳은 아이가 아파 죽어갈 때, 다윗은 성전에서 한 주간 금식하며 회개했습니다.
다윗은 처절하게 간절히 회개했습니다. 다윗은 뼈를 깎는 듯한 아픔을 느끼며 철저히 회개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범한 죄를 적당히 회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전도할 때에도 적극적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눅 14:23)”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마리아의 수가 성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신 것을 알게 되자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요 4:29)”라고 말했습니다.
평소 수가 성 사람들은 그 여인을 멸시하고 천대했습니다. 그런데 수가 성 사람들은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에 이틀 더 머무시며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이 매우 많아졌습니다.
아람 왕 벤하닷이 사마리아 성을 포위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다 굶어죽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나병환자 네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만일 우리가 성읍으로 가자고 말한다면 성읍에는 굶주림이 있으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만일 우리가 여기서 머무르면 역시 우리가 죽을 것이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그들이 우리를 살려 두면 살 것이요 우리를 죽이면 죽을 것이라(왕하 7:4)”고 말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굶어죽습니다. 그러나 위험을 무릅쓰고 적에게 나아가 투항하면, 기회가 생깁니다. 왕이 죽일지도 모르지만, 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담대하게 적진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적진에 가니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진영 끝에 이르러 한 장막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거기서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가서 감추고 다시 와서 다른 장막에 들어가 거기서도 가지고 가서 감추었습니다.
굶어 죽어가는 백성들을 생각하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서 “우리가 아람 진에 이르러서 보니 거기에 한 사람도 없고 사람의 소리도 없고 오직 말과 나귀만 매여 있고 장막들이 그대로 있더이다(왕하 7:10)”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마리아 사람들을 모두 살려냈습니다. 이들만큼 적극적이고 담대한 사람이 사마리아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숨을 거는 사람, 담대한 사람, 적극적인 사람을 통해 기적을 행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통해 큰 일을 행하십니다.
아하수에로 왕에게 함부로 나아갔다가는 죽을 수도 있는데, 에스더는 담대하게 왕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6)’라고 생각하고 나아갔습니다. 적극적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유대 민족을 구해냈습니다. 이것은 에스더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목숨 건 사람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들어 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통해 큰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담대하게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사람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오순절에 성령을 충만하게 받은 사도들은 확실하게 달라졌습니다. 믿음이 충만해졌습니다. 담대해졌습니다. 적극적으로 변했습니다.
사도행전 4장 19~20절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행전 5장 29절에 보면,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들은 바리새인, 서기관, 제사장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담대하게 적극적으로 전도했습니다.
사도행전 5장 40~42절에 보면,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은혜 충만, 성령 충만하니 믿음이 충만해졌습니다. 믿음이 충만해지니 담대해졌습니다. 적극적으로 변했습니다. 어떤 방해가 있어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성령 충만, 믿음 충만하여 목숨 걸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고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믿음으로 승리하며 충성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 응답을 받아 성령의 은혜를 충만하게 받거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확실하게 달라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믿음이 충만해지면 담대해집니다. 적극적으로 행동합니다. 믿음의 말을 합니다. 믿음의 행동을 합니다. 믿음의 말을 하고 믿음의 행동을 할 때, 믿음의 능력이 나타나서 말한 대로 행동한 대로 이루어지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믿음이 생기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믿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없습니다. 믿음의 말을 하지 못합니다.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기도해서 응답을 받고 역사가 일어나면 믿음이 생깁니다. 확신이 생깁니다. 믿음의 말을 합니다. 믿음으로 행동합니다. 그래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적극적인 자세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고 말씀하셨습니다.
축복이 이루어질 것을 상상하며 기도하세요. 믿음으로 상상하며 기도하세요. 믿음으로 말하고 생각하세요. 긍정적으로 상상하고 말하고 행동하세요. 그대로 될 것입니다.
적극적인 자세로 찬양하세요. 찬양하는 중에 성령의 불이 임하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적극적인 자세로 말씀을 들으세요. 말씀을 듣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훈을 깨달을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중에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중에 병이 사라질 것입니다. 놀라운 은혜를 경험할 것입니다.
믿음만큼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믿음만큼 긍정적으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을 가진 만큼 적극적으로 행동합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긍정적으로 말합니다. 그래서 긍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매사에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 매사에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믿음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 사람을 통해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소극적인 자세를 용납하지 마세요.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세요.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긍정적으로 말하세요. 어떻게 되는 것이 가장 잘 되는 것인가를 생각하며 말하세요.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우리에게 부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되는 것이 가장 잘 되는 것인가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길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가장 잘 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긍정적으로 말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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