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요한의 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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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3:48 조회3,470회 댓글0건본문
세례 요한의 순교
세례 요한의 순교
2014년 06월 15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14:1~12
마가복음 6장에 보면, 본문 마태복음 14장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마가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모든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셨을 뿐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둘씩 짝을 지어 다니며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전파하게 하셨습니다.
이때 제자들은 많은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쳤습니다. 예수님만 능력을 행하신 것이 아니고,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능력을 행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전국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마가복음 6장 14~16절에 보면,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 왕이 듣고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일어나느니라 하고 어떤 이는 그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그가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 하되 헤롯은 듣고 이르되 내가 목 벤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헤롯 왕이 예수님을 보고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 생각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헤롯이 죄 없는 세례 요한을 죽인 것으로 인해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6장 20절에 보면,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헤롯의 아내 헤로디아는 세례 요한을 죽일 생각만 하고 있었지만, 헤롯은 헤로디아보다는 나았습니다. 그렇게 악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헤롯은 세례 요한을 똑바로 보고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세례 요한을 두려워하고, 그를 보호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으로부터 책망하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크게 번민했지만 달갑게 들었습니다.
헤롯은 세례 요한이 의롭고 거룩한 사람인 줄 알면서도 본의 아니게 세례 요한을 죽이게 되어 그는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양심의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죄를 범하면, 마음에 고통이 생깁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동물에게는 양심이 없습니다. 사자가 소를 잡아먹은 후에 고민하는 것 봤습니까. 동물에게는 양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양심이 있습니다. 로마서 2장 12~15절에 보면,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 율법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양심이 있기 때문에 죄를 범하면 양심이 율법을 대신하여 “너는 나쁜 놈이다. 너는 왜 그 사람을 해치냐?”라고 고발합니다.
그래서 잘못된 것을 깨닫게 합니다. 그래서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됩니다. 심한 경우에는 잠을 잘 수 없습니다. 번민하고 괴로워합니다. 악몽을 꾸기도 합니다. 그래서 죄를 많이 범한 사람은 지옥에 가기 전에 이 세상에 있을 때부터 지옥을 맛보고 살아갑니다. 지옥에 가서만 고통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나쁜 짓을 많이 한 사람의 마음은 항상 지옥입니다.
로마의 네로 황제는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사람입니다. 죽일 만한 이유가 있어서 죽였겠지만, 어떻게 자신의 어머니를 죽일 수 있습니까. 그로 인해 네로 황제가 얼마나 시달렸는지, 미친 사람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네로 황제가 많은 기독교인을 죽였습니다.
시편 32편 3~4절에 보면, 다윗은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았을 때의 마음상태를 보여줍니다.
이것을 통해, 죄를 빨리 회개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고, 품고 있으면, 그것이 고통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자비하신 분이십니다. 아무리 큰 죄를 범한 자라도 회개하면, 하나님은 용서해주실 뿐 아니라, 기억하지도 않으시고, 죄를 도말해주십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죄를 범했습니다.”라고 죄를 자백하면, 주님은 우리의 죄를 사해주실 뿐 아니라, 우리를 깨끗하고 성결하고 거룩하게 만들어주십니다.
이사야 43장 25절에 보면,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을 도말해주시고, 우리가 많은 죄를 범했어도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얼마나 좋은 하나님이십니까. 그러므로 회개하는 자에게는 죄 사함을 받은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고, 죄를 그대로 품고 있는 사람에게는 손해가 많습니다. 이사야 1장 15절에 보면,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지 않고, 죄를 계속 범하면, 기도해도 하나님이 눈을 가리십니다. 아예 보기도 싫어하십니다. 그러면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시편 66편 18절에 보면,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음에 악한 생각을 가지고 있고, 죄악을 품고 있는 사람의 기도는 하나님이 아예 들으시지도 않으십니다.
잠언 28장 13절에 보면,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를 범했으면서도 숨기고, 마치 죄를 범하지 않은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은 형통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축복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죄를 자복하고, 죄를 버리는 사람은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십니다.
시편 7편 11~13절에 보면,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죽일 도구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가 만든 화살은 불화살들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지 않을 때에 얼마나 위험한 상태에 있게 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마치 활시위를 당겨 심장을 겨냥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활시위를 놓으면, 활이 심장에 꽂혀 죽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회개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3장 1~5절에 보면,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말씀입니까.
우리는 다 죽어 마땅한 죄인입니다. 알고 범한 죄, 모르고 범한 죄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의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죄를 범하고도 회개하지 않고 그냥 잠들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회개는 빨리해야 합니다. 빨리 회개는 할수록 좋습니다. 그런데 회개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회개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회개할 수 있습니다.
아무나 회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그냥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회개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것은 성령의 큰 은혜입니다. 성령의 감동 속에서 회개가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주여, 제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짓을 얼마나 많이 행했는지 모릅니다. 아버지, 저는 죄인입니다. 용서해주세요.”라고 회개하는 것은 성령의 은혜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본문 마태복음 14장에 보면, 분봉 왕 헤롯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분봉 왕 헤롯은 많은 죄를 범한 사람이었지만, 특히 자신의 동생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빼앗아서 자신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신앙적으로나 윤리ㆍ도덕적으로나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왕의 권력 앞에서 아무도 말하지 못하고, 머리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달랐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 사실을 알자마자 왕에게 가서 책망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헤롯에게 “당신이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이 옳지 않다”라고 책망했습니다(마 14:4). 죽을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 은혜를 받아 선지자 노릇 하고 싶은 분이 계십니까? 선지자가 가장 어려운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멸망할 수밖에 없는 백성들에게 “그것을 회개하지 않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말해야 하는데, 이렇게 말하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에스겔 3장 18~20절에 보면,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또 의인이 그의 공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의 공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니라 그는 그의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의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에스겔 33장 8절에 보면,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의 길에서 떠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선지자의 사명이 참으로 엄청납니다. 말씀을 전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말씀을 전했을 때에 잘 받아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악한지, 자신에게 바른 말을 해주는 사람을 죽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기에게 바른 소리를 해줄 때, 그것을 받아들이고 회개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바른 소리를 해주는 사람을 미워하고, 그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용기가 없는 사람들은 바르게 말해줘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성경에서는 그런 사람을 가리켜 ‘벙어리 개’라고 말했습니다(사 56:10).
하나님이 요나 선지자에게 니느웨에 가서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고 전하라고 하셨는데, 요나 선지자는 도망가 버렸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계속 침략해서 괴롭힌 원수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봐야 그들이 오히려 두들겨 패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요나는 니느웨에 가기 싫었습니다.
그리고 요나는 니느웨가 망하기를 원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은 망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이 망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다시 부르셔서 니느웨에 말씀을 전하게 하시므로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여 구원 받았습니다.
본문에 보면, 헤롯이 어떻게 세례 요한을 죽이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6장에 보면, 아주 자세하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마가복음 6장 19~29절에 보면,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하지 못한 것은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 마침 기회가 좋은 날이 왔으니 곧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할새 헤로디아의 딸이 친히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그와 함께 앉은 자들을 기쁘게 한지라 왕이 그 소녀에게 이르되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하고 또 맹세하기를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하거늘 그가 나가서 그 어머니에게 말하되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그 어머니가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하니 그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하니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다가 소녀에게 주니 소녀가 이것을 그 어머니에게 주니라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회개할 기회를 놓치고, 세례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던 헤롯은 결국 더 큰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죄가 헤롯을 늘 괴롭혔습니다. 의로운 세례 요한을 죽게 한 것이 헤롯에게는 고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운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헤롯에게는 양심이 남아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헤롯의 일생을 보면, 세례 요한의 일생과 매우 대조적입니다. 세례 요한은 일평생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헤롯은 일평생 죄만 짓고, 불의한 짓만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가장 존경 받는 선지자였습니다. 예수님도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라고 칭찬하셨습니다(눅 7:28).
그러나 헤롯은 수많은 무고한 백성을 죽인 살인자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원한을 품게 하고,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일평생 하나님의 뜻대로 충성하다가 순교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4절에 보면,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라고 순교자의 영광에 대해 기록되어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순교한 사람들의 영광이 얼마나 큰지 아십니까? 그들을 위해 하늘의 보좌가 따로 마련되어있습니다. 하나님과 주님이 심판하시는데, 순교자들이 심판하는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과 함께 심판하게 되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지만, 왕과 같은 존귀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헤롯은 일평생 죄만 짓다가 나중에는 유배되어 고생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도 세례 요한처럼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죄 많은 세상에서 타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거룩하게 사는 성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얼마나 오래 사느냐보다 짧게 살더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더 복된 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들의 충고와 책망을 잘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은 죄를 범한 후에 나단 선지자로부터 책망을 듣고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라고 회개했습니다(삼하 12:13). 그러자 나단 선지자는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사울 왕은 자기에게 충고하는 제사장의 말을 듣고, 제사장과 그의 식구들까지 다 죽여 버렸습니다. 얼마나 악한 사람입니까.
잠언 9장 8~9절에 보면,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워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7장 10절에 보면,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워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29장 1절에 보면,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마음에 가책이 생기고, 마음에 괴로움이 있어도 말씀을 잘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이 충고해줄 때에도 충고를 잘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생각 없이 성급하게 맹세하거나 약속해서는 안 됩니다. 잠언 14장 29절에 보면,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29장 20절에 보면, “네가 말이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말이 조급한 사람을 가리켜 미련한 사람보다 더 미련한 사람이라고 했으니, 말이 조급한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사사기 11장에 보면, 입다가 암몬 자손과 전쟁하러 나아갈 때에 그가 하나님 앞에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라고 어리석은 서원을 했습니다(삿 11:30~31).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런데 그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그의 무남독녀가 소고를 잡고 춤추며 앞장서서 그를 영접했습니다. 입다는 자기의 딸을 본 순간, 자신이 잘못된 서원을 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을 어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밖에 없는 딸을 번제물로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전쟁에서 이긴 슬픔이 다 사라져버리고, 온 백성이 슬픔에 빠졌습니다.
조급하게 말하고, 생각 없이 맹세하고, 함부로 약속하는 사람은 미련한 자보다 더 못한 자입니다. 오히려 미련한 자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회개할 기회를 놓치면 더 큰 죄를 범하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빨리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언제 임할는지 알 수 없습니다. 언제 죽게 될지 모릅니다.
오늘을 살게 된다는 보장이 우리에게 없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것을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빌면, 미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다 용서해주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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