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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13장

깨닫는 복(2006년 03월 24일 금요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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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7-31 08:01 조회5,7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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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닫는 복

 

깨닫는 복

2006년 03월 24일(금요철야)

본문 / 마태복음 13:10~16

 

시편 49편 20절에 보면,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상에서 대단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도 깨닫지 못한다면 도살장에 가서 죽을 소와 같다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깨닫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호세아 4장 14절에 보면,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호세아 5장 1절에 보면, “제사장들아 이를 들으라 이스라엘 족속들아 깨달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호세아 7장 9절에 보면, “이방인들이 그의 힘을 삼켰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무성할지라도 알지 못하는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나이를 먹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하는 마음은 완악하고 어두운 마음입니다.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아주 미련하고 대개 마음이 악합니다. 그래서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사야 44장 18절에 보면,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들의 눈이 가려서 보지 못하며 그들의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에 빠질수록 흑암의 권세에 눈이 어두워져서 보지 못하고,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눈을 가리고 마음을 어둡게 합니까? 회개하지 않는 죄입니다. 한 마디로 타락할수록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로마서 3장 10~18절에 보면,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멸망할 사람은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사람은 끝까지 깨닫지 못합니다.

마태복음 24장 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멸망하는 사람들은 죽는 순간까지도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곧 오실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사인을 주시는데도 깨닫지 못합니다.

 

아프리카의 케냐는 여러 해 동안 비가 없어 호수가 바닥을 드러내고 백성들이 농사를 짓지 못할 뿐 아니라 마실 물이 없을 지경입니다. 이것은 사인입니다.

남극, 북극의 얼음들은 녹아내리고, 지구 전체의 기후가 이상기후입니다. 눈이 오면 너무 많이 오고, 비가 오면 너무 오거나 안 올 때에는 너무 안 옵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가 가까워오는 것입니다. 구원받는 성도들은 잘 깨닫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더러운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아버지가 죄를 짓지 말라고 이야기해도, 마음이 완악해서 듣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상 2장 25절에 보면,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이기로 정하셨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책망을 들을 때, 아멘하고 겸손히 받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설교해도 듣지 않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멸하시기로 정하신 사람입니다.

 

신명기 2장 30절에 보면, “헤스본 왕 시혼이 우리가 통과하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네 손에 넘기시려고 그의 성품을 완강하게 하셨고 그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음이 오늘날과 같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과 전쟁해서 완전히 전멸당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완악함이 생기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마음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은 망할 징조입니다.

 

시편 32편 9절에 보면,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몽둥이로 때립니다. 하나님께서 말을 듣게 하시기 위해 때리실 때가 있습니다.

잠언 19장 29절에 보면, “심판은 거만한 자를 위하여 예비된 것이요 채찍은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사야 1장 3~9절에 보면,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 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앗수르와 바벨론을 보내 그렇게 두들겨 맞아 만신창이가 되어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얼마나 속상해하셨겠습니까! 완악하고 깨닫지 못하고 미련하여 도무지 듣지 않습니다.

 

열왕기상 11장 1~3절에 보면,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솔로몬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 천 명을 데리고 살았습니다. 솔로몬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자신이 제일 잘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열욍기상 11장 4~10절에 보면,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따름 같이 따르지 아니하고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그가 또 그의 이방 여인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그들이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솔로몬은 모든 이방 여인을 위해서 각자 우상숭배를 하게 했습니다.

 

원래 솔로몬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이나 나타나 책망하셔도 듣지 않아 사람 채찍을 드십니다.

열왕기상 11장 1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에돔 사람 하닷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이 되게 하시니 그는 왕의 자손으로서 에돔에 거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열왕기상 11장 23절에 보면, “하나님이 또 엘리아다의 아들 르손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자가 되게 하시니 그는 그의 주인 소바 왕 하닷에셀에게서 도망한 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열왕기상 11장 26절에 보면, “솔로몬의 신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또한 손을 들어 왕을 대적하였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나 깨닫지 못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르호보암 때 유다지파만 남고 나라를 다 빼앗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을 때, 르호보암은 노인의 교도를 따르지 않고 소년의 교도를 따라서 나라가 작아졌습니다.

 

열왕기상 12장 15절에 보면,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경고하셔도 깨닫지 않고 돌아오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회개하지 않는 죄에 대해 심판하시고, 심판하시기 위해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습니다.

 

애굽 왕 바로가 모세의 말을 들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그의 마음이 완악하여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출애굽기 7장 3절에 보면,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출애굽기 9장 12절에 보면,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출애굽기 10장 20절에 보면,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출애굽기 10장 27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 보내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출애굽기 11장 10절에 보면, “모세와 아론이 이 모든 기적을 바로 앞에서 행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 나라에서 보내지 아니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출애굽기 14장 8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치기 위해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신 것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인 것입니다. 이것은 보통 저주가 아닙니다.

 

로마서 9장 17~18절에 보면,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부터 말을 잘 들었더라면 열 가지 재앙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자가 죽어도 바로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군사를 보냅니다. 그리고 홍해에 다 빠져죽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 절대주권을 가진 분이라는 것이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바로를 왕이 되게 하시고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예수님을 팔아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실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쓰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마음을 완악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나쁜 마음을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아주 완악했습니다. 그래서 그들 중의 한 명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히브리서 3장 7~13절에 보면,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완악해집니다. 음란한 죄의 유혹에 빠지면, 완악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성도들 중에도 그런 분들이 있어 제가 매일 기도합니다.

한 가지 소망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반드시 회개한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29장 4절에 보면,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멸망할 사람입니다. 그 이유는 회개하지 않은 죄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의 중요한 증거는 회개의 눈물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이외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후손들이 들어갔습니다.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빨리 죽는 것이 후손들을 위해 좋습니다. 그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6장 9~1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사야 63장 17절에 보면, “여호와여 어찌하여 우리로 주의 길에서 떠나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사 주를 경외하지 않게 하시나이까 원하건대 주의 종들 곧 주의 기업인 지파들을 위하사 돌아오시옵소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라도 육신에 속한 사람은 마음의 눈이 멀어 깨닫지 못합니다. 고린도전서 2장 14~15절에 보면,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혈기에 사는 사람은 그만큼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깨닫게 되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1절에 보면,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생각하고 말하고 깨닫는 것을 보면, 얼마나 성숙한 사람인가 알 수 있습니다. 은혜 받을수록 깨닫는 수준이 달라집니다. 깨닫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깨닫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다니엘 1장 17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다른 사람이 깨닫지 못하는 영의 세계를 알게 하셨습니다.

 

다니엘 10장 11절에 보면, “내게 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 다니엘아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깨닫고 일어서라 내가 네게 보내심을 받았느니라 하더라 그가 내게 이 말을 한 후에 내가 떨며 일어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니엘 10장 14절에 보면, “이제 내가 마지막 날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이는 이 환상이 오랜 후의 일임이라 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깨닫는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신명기 10장 16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신명기 30장 6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잘 깨닫는 사람을 가리켜 마음에 할례 받았다고 표현했습니다.

 

마태복음 13장 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사람은 듣는 것으로 끝나고, 깨닫지 못합니다.

마태복음 13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첫째, 죄와 허물을 깨달아야 합니다. 죄와 허물을 깨닫는 만큼 거룩해집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십시오. 깨달을수록 감사하고 기쁨이 있고 행복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할 줄 압니다.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자원해서 충성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셋째, 때를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의 시기를 똑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4장 38~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먹고 사는 것만 걱정하지 마시고, 주님께서 오실 날을 바라보고 사십시오.

 

성도는 하나님께서 치료의 광선을 보내시고 도우시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멸망하는 것을 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목회하다가 주님을 맞이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빨리 오시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넷째,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계 2:11,17,29, 3:6,13,22). 이것은 거듭난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언제나 성령의 말씀을 깨닫고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깨닫습니까?

첫째, 성경을 열심히 보는 사람이 깨닫습니다.

다니엘 9장 2절에 보면,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포로생활이 70년 만에 마치리라는 것을 예레미야가 쓴 것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잠언 2장 1~9절에 보면,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대저 그는 정의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의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 그런즉 네가 공의와 정의와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은 깨닫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면 되는지 깨닫고,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열심히 읽고 묵상하고 연구하여 말씀의 은혜를 받으십시오.

 

둘째, 기도의 사람이 깨닫습니다.

다니엘 10장 2~3절에 보면, “그 때에 나 다니엘이 세 이레 동안을 슬퍼하며 세 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니엘 10장 12절에 보면,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니엘 10장 14절에 보면, “이제 내가 마지막 날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이는 이 환상이 오랜 후의 일임이라 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은혜 받을 기회가 많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깨닫는 축복이 있습니다.

 

시편 119편 27절에 보면, “나에게 주의 법도들의 길을 깨닫게 하여 주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기이한 일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셋째, 말씀을 듣는 사람이 깨닫습니다.

느헤미야 8장 5~10절에 보면,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은 백성이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 그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였는데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 37절에 보면,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죄를 깨달으면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깨닫는 은혜가 있습니다.

 

태국에서 선교사님을 모시고 세미나를 인도했습니다. 선교사님들이 일도 잘하고 열심히 하는데, 자신의 생각이 강해, 하나 되지 못하는 것을 봤습니다. 일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교하려면 희생정신이 필요한데, 왜 서로서로 사랑하지 못하는지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왜 서로 용납하지 못하는가 설교했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 서로 안고 기도하게 했습니다. 첫째 날에는 힘들어했는데 셋째 날에는 서로 안고 울며 기도했습니다. 선교조직도 잘 만들어져서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선교사님 한 분은 은혜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서 안아줬는데, 마치 돌덩어리를 안은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어찌나 완악한지, 선교지에서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 날 밤, 그 선교사를 위해 아내와 함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로 인해 많은 사람이 복을 받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 날 밤, 제가 그 선교사를 위해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제게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제 안에 있는 교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제 안의 교만한 마음이 저로 하여금 사람을 판단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을 보면 점수를 매깁니다. 그런데 좋은 사람을 보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을 보면, 제 안에 있는 교만이 그 사람을 판단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보면, 제가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이 제 얼굴에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제가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 제가 싫어하는 사람을 보면, 제 생각이 제 얼굴에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적을 만들었습니다.

 

그 날 밤, 그 선교사를 위해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제게 그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깨달은 후 제 목회가 달라졌습니다.

그 후, 저는 제가 싫어하는 사람이 보이면,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때까지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가 축복 받는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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