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뿌리는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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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2:03 조회5,567회 댓글0건본문
씨 뿌리는 비유
씨 뿌리는 비유
2014년 03월 09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13:1~9
마가복음 4장 1~9절, 누가복음 8장 4절 이하에 보면, 본문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마가복음 4장에 보면, 본문의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닷가에서 무리들을 가르치고 계셨는데, 사람들이 매우 많이 모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시기 곤란하셨는지, 예수님께서는 바닷가에 배가 있는 것을 보시고, 배에 앉으셔서 바닷가에 앉아있는 수많은 무리들에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시면서 사람들 중에는 네 부류가 있다는 것을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 보면, 네 종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시는 것은 씨를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사용하셔서 마음이 길 가와 같은 사람이 있고, 돌밭과 같은 사람도 있고, 가시덤불로 가득한 가시밭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도 있고,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천국 복음을 전하실 때에 사람을 차별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좋은 땅과 같은 사람에게만 말씀을 전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든지, 어떤 사람에게든지 똑같이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이 이렇게 하신 것을 본받아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는 어느 나라 사람을 차별하거나 어느 종족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모든 족속에게 주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말씀을 지키게 해야 합니다. 자신이 사랑하고 원하는 사람에게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4장 2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누구에게나 어떤 사람에게든지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스겔 3장 18절 이하에 보면, 에스겔 선지자는 우리에게 두렵고 떨리는 말씀을 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또 의인이 그의 공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의 공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니라 그는 그의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의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라고 말했습니다(겔 3:18~20).
우리가 악인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가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구원 받는다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우리는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더 이상 책임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악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아서 악인이 회개하지 못하고 죽었을 때에는 그의 피 값을 우리의 손에서 찾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에게 경고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듣든지 말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외쳐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는데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는데도 그들이 회개하지 않고 멸망했어도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다했기 때문에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선교하는 일, 전도하는 일에 얼마나 동참하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무슨 힘이 있고, 시간이 얼마나 있어서 전 세계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주변부터 살펴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람들에게 반드시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전도하지 않아서 그 사람이 멸망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피 값을 우리에게서 찾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다면,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전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전도하기가 힘듭니다. 쉽게 전도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먼저, 전도대상을 정하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선교지 한 곳을 정하고, 그 나라와 그 나라의 백성을 위해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매일 아침 지구 한 바퀴를 돌며 전 세계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렇게 기도하지는 못한다 해도 한 나라를 정하고 그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계속 기도하다 보면, 그 사람을, 그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날마다 그 사람을, 그 나라를 생각하고 기도하면, 그 사람에 대해 관심이 생기게 되고,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선교할 수 있는 믿음이 생깁니다. 자신은 기도만 했을 뿐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전도할 수 있게 되고, 선교할 수 있게 됩니다.
저는 수십 년 동안 매일 아침 지구를 한 바퀴 돌며 기도합니다. 그 나라에 있는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제가 일일이 찾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 속에는 그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제가 그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저를 끌고 가십니다. 주님의 지상명령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도부터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 복음을 전하실 때, 비유를 사용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3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3:3~8).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귀 있는 자는 들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3:9). 주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려는지 귀 있는 자는 깨달으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사용하여 말씀하시니까 제자들이 예수님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3:10~17).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13장 34~35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에는 창세부터 감추인 것을 드러내는, 계시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3장 11~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의 비밀은 아무나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제자들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허락되지 않은 사람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된 사람들에게 천국의 비밀을 잘 알아듣도록 하기 위해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가지고 비유를 들어 천국의 비밀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아이들도 알아듣기 쉽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재미있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깊이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 것을 잊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실천하기에도 쉬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천국의 비밀을 알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장 13~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버림 받은 인간들, 지옥에 갈 인간들은 마음이 완악해서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아도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심판입니다. 망할 자는 예수님을 믿지 않게 됩니다. 말씀을 아무리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 3~4절에 보면,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가려서 혼미하게 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아무리 들어도 알 수 없습니다. 깨닫지 못합니다.
본문에 보면, 우리는 천국 복음을 듣고 복 받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습니다.
천국 복음을 듣고도 복 받지 못하는 사람은
첫째, 길 가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본문 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길’은 굳은 땅을 의미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고, 소도 지나가고, 마차도 지나가서 다져질 대로 다져져서 아스팔트처럼 딱딱해진 땅입니다.
길 가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마음 자체가 굳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완고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마음 문을 닫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고집불통입니다. 자신의 고집만 내세우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복음을 아무리 들어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참 불행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가정에도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열심히 믿고, 은혜 받고 복 받으며 사는데도 이들은 절대 교회에 가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계속 범하고 있는 죄 때문에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아예 복음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주위에서 아무리 좋은 말로 충고해도 듣지 않는 사람, 양심의 소리가 들리는데도 듣지 않으려는 사람, 누구의 말도 듣지 않으려는 사람, 이런 사람이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이 사람은 이미 망한 사람입니다. 얼마나 불행한 사람인지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예수님께서는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3:19). 이런 사람은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사람보다 몇 배나 더 완악해집니다. 그래서 멸망하게 됩니다.
둘째, 돌밭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본문 5~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돌이 햇빛을 계속 받으면 뜨거워집니다. 거기에 씨가 떨어졌으니까 싹이 빨리 나옵니다. 그런데 돌멩이가 많아서 씨가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싹은 빨리 나왔지만, 금방 시들어버리고, 말라죽어버립니다.
마태복음 13장 20~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돌밭과 같은 사람에 대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돌밭과 같은 사람은 돌이 뜨거워서 싹이 금방 나오는 것처럼, 복음을 즉흥적으로 받아들입니다. 매우 감정적입니다. 복음을 듣고 금방 호응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면 마음이 금방 변합니다. 자신이 말한 것에 대해 책임지지 않습니다.
한국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이 많았는지, 옛날에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미국에도 없고 세계 어디에도 없는 제도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학습’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예수님을 믿겠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세례를 줍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6개월 동안 지켜본 후에 ‘학습’을 줍니다. 학습을 준 후에 이 사람에게 세례를 줘야 할지, 줘서는 안 되는지 6개월 동안 지켜보며 이 사람이 정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지 확인하는 기간을 가집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제도입니다.
그래도 한국에 학습 교인 제도가 있기 때문에 교회가 가장 많이 부흥하게 된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회교국가에서는 세례를 받으면 쫓겨납니다. 가문에서도 죽이거나 쫓아내버립니다. 가정에서도 쫓아내버리거나 죽입니다. 그렇게 무서운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회교국가에서 세례를 받는 사람은 순교를 각오한 사람입니다.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세례를 받는다고 해서 내쫓거나 순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가도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을 지불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지키려면, 고생스러운 수고를 많이 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핍박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받도록 허락하시는 이유를 아십니까? 핍박 받는 것은 괴롭지만, 핍박을 견디면 믿음이 쑥쑥 자라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핍박을 받게 되면, 목숨 걸고 기도합니다. 신앙생활을 평안하게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핍박을 있는 곳에 사는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를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모릅니다.
저도 어렸을 때에 핍박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에 예수님을 열심히 믿었는데, 어머니의 힘으로는 저를 말릴 수 없으니 어머니께서 친척 아저씨를 부르셨습니다.
친척 아저씨는 저를 향해 다듬잇돌을 들고 “이놈의 자식, 너 정말 예수 믿을 테냐?”라고 하시며 다듬잇돌로 저를 내리치려고 하셨습니다.
저는 방구석에 처박혀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은 제 마음은 아주 평안했습니다. 제게 다듬잇돌을 던지지 않으실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죽으면 순교자가 되는 것이 좋았습니다. 마음이 평안하여 가만히 있었습니다.
제가 아무 말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더니 아저씨는 다듬잇돌을 내려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바로 교회로 달려가서 울부짖으며 기도했습니다. 후에 그분은 예수님을 잘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 기회를 통해서 제 믿음이 매우 강해졌습니다.
핍박을 견디면, 순교적인 신앙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장차 받을 상급과 영광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핍박을 이기지 못하고, 믿음을 포기해버립니다. 그리고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신앙을 포기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구원 받지 못합니다.
복음을 듣게 되면, 누구든지 깨닫는 기쁨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깨닫는 것은 죄 사함을 받는 기쁨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함 받은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용서 받았다면, 우리도 모든 사람을 용서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을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머릿속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구원 받은 것에 대한 기쁨이 있는데, 실제로는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끝까지 원수로 지냅니다. 이런 사람은 잠시 기쁨을 느낄 뿐, 그 기쁨은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구원 받지 못한 인간이 되고 맙니다.
우리가 모든 저주를 속량 받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된 사실을 알게 된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는 저주를 속량 받았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을 자가 되었으니, 얼마나 기쁩니까.
그런데 축복에는 사명이 따라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축복이 무엇인가에 따라 축복의 분량만큼의 사명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많은 돈을 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많은 돈을 주셔서 재산이 많습니까. 쌓아놓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물질은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십의 일조만 헌금해도 되지만, 쓰고도 남을 정도로 부요한 사람은 그 이상을 헌금해야 합니다. 다 쓰지도 못할 텐데 왜 쌓아놓고 삽니까. 땅에 쌓아놓으면 안 됩니다. 하늘에 쌓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선교하고 전도하는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건강하다면, 밤낮 으스대고 놀러 다니라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건강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건강한 몸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목소리가 좋습니까? 남보다 노래를 잘 합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그 목소리로 세상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쓰라고 좋은 목소리를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높은 지위를 가졌습니까? 자기 영광을 위해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명을 저버리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잠시 동안 좋았을지 모르지만, 진정한 기쁨은 이들에게서 사라집니다.
사명을 저버리고 사는 사람은 은혜를 받지 못하게 되고, 믿음이 떨어지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쓸데없는 것에 자신의 돈과 시간을 쓰면서 많은 죄를 범하게 됩니다.
돈이 많으신 분들은 새벽예배에 절대 나오지 않습니다. 철야기도에는 더더욱 나오지 않습니다. 전도하지도 않습니다. 밤낮 자신의 몸 관리하느라 바쁩니다. 옷도 명품만 찾아다니고, 좋은 약만 먹고, 어떻게 해서든 자기 위주로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들은 천국에 갈 수 있을지 없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오직 주님만이 아십니다.
셋째, 마음이 가시떨기로 가득 찬 사람입니다.
좋은 흙은 있습니다. 그런데 잡초가 아주 많습니다. 잡초가 뿌리를 깊이 내리고 억셉니다. 그래서 모든 영양분을 다 빨아먹습니다. 그래서 자라나야 할 곡식은 자라지 않고, 잡초로 우거져버립니다. 그래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마태복음 13장 2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세상 염려를 하게 됩니까? 누구에게나 염려거리는 있습니다. 그러나 왜 염려거리만 눈에 보이는지 아십니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약해지고, 믿음이 없어지면, 염려가 많아집니다. 눈에 보이는 것마다 염려거리로 보입니다.
이방인들이 많이 염려합니다. 이방인들은 밤낮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염려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무엇이 있어야 할지 다 아십니다.
왜 재물의 유혹을 받게 됩니까?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입니다. ‘돈 벌어야겠다. 부자 되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욕심을 가지는 순간, 재물의 유혹을 받게 됩니다.
야고보서 1장 14절에 보면,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동기를 가지고 교회에 나오느냐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동기를 가지고 교회에 나왔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교회에 나온 동기가 잘못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자칫하면 가룟 유다처럼 되기 쉽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노릇을 해도 예수님을 따르는 동기가 잘못된 사람은 가룟 유다처럼 됩니다.
돈을 벌기 위해, 먹고 살기 위해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노아의 방주를 만든 목수들처럼 되기 쉽습니다. 목수들이 방주를 지었기 때문에 방주에 대해 아주 잘 압니다. 그러나 홍수가 일어났을 때, 목수들은 방주 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목수들이 방주를 다 만들었지만, 그들은 방주 속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교회의 직원들, 간사들, 찬양대 지휘자, 반주자, 관현악단원은 조심해야 합니다. 교회에 나오는 동기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해야 합니다.
교회에 가고, 하나님의 일을 하니 겉으로 보기에는 크리스천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나오는 동기가 돈에 있다면, 그 사람은 노아의 방주를 지은 목수처럼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신앙도 없으면서, 사실은 예수님을 믿지도 않으면서 예수님을 믿는 척 행세합니다.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제 큰 딸은 미국에서도 교회에서 반주를 했습니다. 저는 딸에게 언제나 “사례비를 받아라. 그러나 몽땅 감사헌금으로 드려라. 절대 돈 받고 일하지 마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제 딸은 교회에서 얼마를 받든 그대로 감사헌금을 했습니다. 그렇게 충성했더니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좋은 학교에서 공부하게 하시고, 장학금을 받게 하시고, 백 배의 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동기가 무엇인지 점검해야 합니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교회에 가야 그 친구를 만나기 때문에 친구를 만나러 교회에 옵니다.
명예를 얻기 위해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존경받기 위해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사람들로부터 대접받기 바라는 사람은 오히려 실망을 많이 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열심을 낸 동기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열심이 있어서 신앙이 좋은 줄 알았는데,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구원 받기 위해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기 위해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기도하고 말씀 듣고 은혜 받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마음이 좋은 땅과 같은 사람은 천국 복음을 듣고 복을 받게 됩니다. 본문 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라고 설명하셨습니다(마 13:23).
누가복음 8장 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라고 조금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좋은 땅과 같은 사람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습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지킵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할 때, 힘든 문제가 얼마나 많이 생깁니까. 그러나 잘 참고 견디면서 사는 가운데, 열매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이런 사람은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백부장과 같은 사람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마 8:8~9). 얼마나 겸손하고 착합니까.
주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라고 칭찬하셨습니다(마 8:10).
아브라함도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라고 말씀하시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집을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라고 말씀하셨을 때에도 아브라함은 순종하여 백 세에 낳은 아들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마음이 얼마나 순수하고 착하고 단순한지,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 산 믿음인데, 아브라함이 순종하는 모습을 보면, 그의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구원의 열매가 있고, 성령의 열매가 있고, 축복의 열매가 있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분들은 좋은 땅과 같은 마음 밭을 가지셔서 열매를 많이 맺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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