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모독한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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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1:53 조회3,600회 댓글0건본문
성령을 모독한 죄
성령을 모독하는 죄
2014년 02월 16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12:30~37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똑바로 잘 하려면, 무엇보다 예수님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잘 알려면, 성경 중에서 특히 4복음서를 잘 알아야 합니다. 4복음서를 잘 알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예수님이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예수님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4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그들의 죄 가운데서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메시아 그리스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 38~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뜻을 행하려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자 중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처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20장에 보면, 도마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도마는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라고 말했습니다(요 20:25).
예수님은 도마에게 찾아오셔서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20:27).
그때 도마는 주님의 손에 있는 못 자국과 옆구리에 있는 창 자국을 보고 난 후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요 20:28).
도마의 신앙고백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실 뿐만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를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한 마디 말씀하시니까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귀신 들린 사람을 만났을 때에는 귀신을 꾸짖기만 하셔도 귀신이 다 쫓겨났습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모든 병을 다 고쳐주셨고, 못 고치시는 병이 없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22절에 보면, “그 때에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사람들이 예수님께 데리고 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그 사람이 말하기 시작하고,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라고 말했습니다(마 12:23). 이 말은 ‘메시아가 아니냐, 그리스도가 아니냐’라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의 자손 메시아가 온다는 것을 믿고, 항상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로 그 메시아가 오신 것이 아니냐”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정확하게 알아보았습니다.
예수님을 가리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고백한 베드로처럼,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에 대해 똑바로 아는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에게는 이런 지식이 없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기는 것처럼 행세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에게는 믿음이 없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바리새인은 성경도 많이 읽었을 것이고, 기도도 많이 했을 것이고, 거룩하게 살았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하시고, 기적을 베풀어도, 이들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몰랐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직접 보고,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으면서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귀신 들려 눈 멀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을 예수님께서 고쳐주셨을 때, 바리새인들은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말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25~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2:28).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서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7장 20절에 보면,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 48, 52절에 보면,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유대인들이 이르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0절에 보면, “그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그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하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가리켜 귀신 들렸다고 하고, 미쳤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매우 악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향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2:31~32).
그리고 계속해서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2:34~37).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말을 많이 하는데,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심판 받게 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두렵습니까.
마태복음 12장 3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감동을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알게 하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시는데, 성령을 거역하는 사람들은 절대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성령을 거역할까요? 고린도전서 2장 14절에 보면,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육에 속한 사람’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교회 다닌다 하더라도 아직 거듭나지 못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이 역사해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제가 부산에 처음 왔을 때, 목사님이 계시지 않는 교회에서 주일예배, 주일저녁예배, 새벽예배 시간에 설교했습니다. 당시 군목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한 교회를 돌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는 문제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그 교회의 장로님 중에 한 분은 성도들이 밤에 기도하러 교회에 나오면, 오히려 기도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이라는 말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성령을 귀신처럼 생각하는지, 성령이라는 말을 쓰면, 거부감을 느끼는 장로님이 교회를 좌지우지하셨습니다.
그분은 성령을 모르는 분이었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를 모르는 분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분은 장로이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거듭난 사람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아주 악한 사람입니다. 마귀는 악한 영입니다. 거짓말쟁이이고, 거짓의 아비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열매를 보면, 그 나무가 좋은 나무인지 좋지 못한 나무인지 알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인간 됨됨이를 알 수 있습니다.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말은 인격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실수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3장 2절에 보면,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실수하는 것 중에 가장 많은 것이 말에 실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라면, 대단히 훌륭한 사람입니다. 혀를 다스릴 수 있다면, 자신의 몸을 얼마나 거룩하게 관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향해 악한 말을 했습니다. 예수님께 어떻게 악한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그들이 악한 사람이기 때문에 예수님께 악한 말을 한 것입니다.
본문 마태복음 12장 34~3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이 악한지 선한지릉 알 수 있습니다. 평소에 악한 생각을 하고, 악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면, 악한 말이 저절로 튀어나오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12장 36~3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보면, 두려운 마음이 생깁니다. 우리가 말한 것에 대해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19절에 보면, 야고보 사도는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라고 말했습니다.
입이 하나인데, 귀는 두 개인 이유를 아십니까? 듣는 것에 더 많이 관심을 가지고, 말하는 것은 적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실수가 자연히 많아집니다. 그러므로 되도록 말을 적게 해야 합니다.
시편 39편 1절에 보면, 다윗은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악한 사람 앞에서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말하든 저렇게 말하든 트집을 잡아서 해코지하는 악한 사람 앞에서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최고로 좋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라고 말했습니다. 악인이 앞에 있을 때에는 입을 다물고 있겠다는 의미입니다.
시편 141편 3절에 보면, 다윗은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항상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항상 조심해서 말하기 위해, 자기 힘만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셔서 함부로 말하지 않도록 내 입술의 문을 지켜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이렇게 기도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디모데전서 4장 12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아들 같은 디모데에게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다섯 가지 면에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라고 말했습니다.
첫 번째로 말에 본이 되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왜 첫 번째로 말을 언급했을까요? 말에 본이 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말 속에는 그 사람의 신앙과 인격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은혜 받은 사람인지 은혜 받지 못한 사람인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성품이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성격이 급한 사람인지 아닌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말은 사람의 신앙상태와 인격을 보여줍니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듯이, 말을 들어보면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좋은 말만 해야 합니다.
우리는 말에 있어서 정직하고 진실하고 솔직해야 합니다. 평소 말할 때에 진실하지 못하면 안 됩니다.
열왕기상 15장 5절에 보면,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은 평생 여호와 하나님 앞에 정직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정직한 말을 해야 합니다.
칭찬하는 말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속이 좁아서 칭찬하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고, 책망하는 것은 잘 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오히려 한 마디 충고를 하려면, 먼저 열 마디의 칭찬을 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먼저 열 가지를 칭찬해보세요. 매우 좋아합니다. 그 후에 “그런데, 이것 하나는 고쳐야겠다.”라고 말하면, 충고를 쉽게 받아들입니다. 기분 좋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책망하기보다 열 배로 칭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세워주는 말, 격려하는 말, 인정해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한 마디만 해주면, 자존감이 회복되고, 기쁨과 의욕이 생깁니다.
무엇보다 축복해주는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축복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특히 원수에게 축복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그 사람이 축복 받을 사람이 아닌데, 내가 그 사람을 축복했다면, 그 축복이 다 나에게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9절에 보면,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악으로 보복하고 싶은 못된 인간, 욕을 퍼붓고 싶은 못된 인간에게 도리어 복을 빌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복 받을 사람이 아닌데도 그 사람에게 복을 빌라고 했습니다. 그 복이 다 나에게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축복의 말만 하시기 바랍니다.
화목하게 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골로새서 4장 6절에 보면,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음식을 아무리 잘해도 소금을 넣지 않으면, 맛이 없습니다. 음식에는 소금이 들어가야 맛이 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말 한 마디를 해도 모든 사람의 마음에 기쁨이 생기게 하는, 좋은 말을 해야 합니다.
남의 허물을 덮어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남의 허물을 들춰내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말을 통해 자신의 심보가 고약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다들 남의 허물을 이야기하는데, 오히려 남의 허물을 덮어주려고 하는 사람은 얼마나 인자하고 얼마나 좋은 사람입니까.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에 보면,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말하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듣고 은혜를 받게 해야 합니다.
“고맙다”라는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 언제나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부정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믿음의 말은 아주 중요합니다. 열두 명의 정탐꾼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왔는데, 그 중의 열 명은 믿음 없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의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라고 말했습니다(민 13:30).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말했습니다(민 14:9).
믿음의 말은 사람들에게 믿음이 생기게 합니다. 믿음의 말을 들으면, 믿음이 생겨납니다. 그런데 믿음 없는 말을 하면, 믿음이 없어집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맹세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평소에 말하는 것을 하나님이 다 듣고 계시는데, 하나님의 귀에 들리는 그대로 해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말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자신들이 믿음으로 말한 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자신들이 말한 대로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열 명의 정탐꾼과 그들의 말을 따른 백성들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라고 말했습니다(민 13:31,32~33). 그들은 자신들이 말한 대로, 광야에서 다 죽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이 말한 대로 된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비밀입니다. 여러분이 이 시간에 이것을 깨달았다면, 무조건 좋은 말만 하세요. 잘 될 것 같지 않아 보여도, 잘 될 것이라고 말하세요. 믿음의 말만 하세요.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어도 걱정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다 준비해놓으셨다.”라고 선포하세요. “하나님이 다 준비해놓으셨으니 걱정하지 마라.”라고 믿음의 말을 하세요.
이 성전을 지을 때, IMF금융위기가 닥쳐서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말을 했습니다. 성도들에게 돈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고, 하나님이 다 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제 안에 믿음이 얼마나 있었는가 하면, 성전을 지으려면 3백억 원이 필요한데, 마치 제 손에 3백억 원의 수표를 쥐고 있는 것처럼 믿어졌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성도들에게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리고 말한 대로 되었습니다. 헌금이 넘치게 들어왔습니다.
언제나 좋은 말만 하세요. 특별히 겸손한 말을 해야 합니다. 교만한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장 좋은 말은 예수님과 복음을 전하는 말입니다. 주님을 전하고, 복음을 전하는 말, 생명을 살리고, 구원하는 말이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그런데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하는 말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음담패설을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음란한 말을 하는 것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마음 상태가 그만큼 음란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사람의 인격이 더럽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쓸데없는 농담을 하지 마세요. 그 사람의 정신 상태를 보여줍니다.
무례하게 말하면 안 됩니다. 아랫사람에게라도 무례한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예의를 지켜서 말하면, 자신도 그만큼 대접받게 됩니다.
그런데 무례하게 함부로 말하면, 상대방이 가만히 있다 해도 얼마나 화나겠습니까. 그러므로 무례하게 함부로 말하면, 대접받지 못합니다.
상처가 되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고, 상대방의 아픈 상처를 건드리는 말을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칼로 상대방을 찔러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아프게 하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남에 대해 악담하거나 저주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런 말을 절대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원수에게라도 축복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남에 대해 악담하거나 저주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간질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이 사람 저 사람의 말을 옮기며 싸움을 붙이고, 원수 되게 해서 관계를 파괴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잘못했을 때에는 구차하게 변명하기보다는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낫습니다. 자꾸 변명하려고 하는데, 그 변명이 거짓말일 때가 많습니다. 참 어리석은 짓입니다. 우리가 진실하게 솔직하게 말하면, 금방 용서해줄 텐데, 자꾸 변명하고 둘러대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우리가 한두 번 쉽게 거짓말하다 보면, 그것이 버릇이 되어서 거짓말을 하면서도 가책을 느끼지 못하면, 나중에는 그 사람의 말을 믿지 못하게 됩니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의 말을 누가 믿겠습니까.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농담이라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귀신 들려 앞을 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던 사람이 앞을 보게 되고, 말하게 된 것은 큰 축복입니다.
그러나 이제 말할 수 있게 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게 된다면, 차라리 말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9~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리 천하고 작은 사람들에게라도 업신여기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천사가 하늘에서 하나님 앞에 다 고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말씀입니까.
저와 여러분은 모두 이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항상 좋은 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말, 모든 사람에게 복이 되는 말, 믿음의 말만 하심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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