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을 구하는 악한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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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1:56 조회3,610회 댓글0건본문
표적을 구하는 악한 세대
제목: 표적을 구하는 악한 세대
2014년 02월 23일(주일예배)
본문: 마태복음 12장 38-45절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에 귀신을 쫓아내어주시고, 나병을 비롯한 모든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맹인의 눈을 뜨게 해주시고, 말 못하는 자의 입을 열어 말할 수 있게 해주시고, 심지어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를 말씀 한 마디로 다시 살려내기도 하셨습니다. 또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시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많은 표적을 행하셨지만, 본문에 보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찾아와서 표적을 보여 달라고 말했습니다. 누가복음 11장 16절에는 “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2:39). 예수님께서는 그동안 많은 표적을 보여주셨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표적을 보여주실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표적을 보면서도 하나님께서 그 표적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그들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표적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σημειον(세미이온)’이고, 영어로 ‘sign’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을 기적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것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인가 말씀하시려는 수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표적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신문과 TV를 통해 세상에 수많은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세상 사람들은 신문과 TV를 보며 ‘또 사건이 일어났구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의 눈이 열린, 믿음의 사람들은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주님께서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실까.’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 하나하나를 통해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성경이 있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설교를 듣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려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은혜를 받지 않고, 환상을 보려한다거나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본문에 나오는 표적을 구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괴롭혔던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니느웨에 가서 앞으로 40일 내에 회개하면 살 것이고,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는 말씀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니느웨가 망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니느웨에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도망갔습니다. 그는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갔습니다.
처음에는 순풍에 돛단 듯 잘 나아갔지만, 바다 깊은 곳에 갔을 때에는 풍랑이 일어나기 시작해서 모든 사람이 죽게 되었습니다. 이 배의 선장은 이 재앙이 도대체 누구 때문에 온 것인지를 알기 위해 배에 탄 사람들로 하여금 제비를 뽑게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배 밑창에서 자고 있던 요나가 뽑혔습니다. 요나는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라고 말했습니다(욘 1:12). 누구보다 요나 자신이 잘 알 것입니다.
요나는 풍랑이 일어난 원인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도망가려고 하는 자신에게 있음을 잘 알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 내가 아노라”라고 말했습니다(욘 1:12).
그러나 선장은 요나를 바다에 던지려고 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견뎌보려고 애썼습니다. 그런데 바다가 점점 더 흉용해지자 선장은 요나를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 순간, 놀랍게도 바다가 고요해졌습니다. 그래서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이 죽지 않게 되었습니다.
요나는 자신 때문에 풍랑이 왔음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이 죽지 않으면 모든 사람이 다 죽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사람들을 살리려면 내가 죽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배에 탄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가 바다에 빠지자마자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켜버렸습니다. 얼마나 답답하고, 캄캄하고, 괴로웠을까요.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물고기 배 속에서 요나는 결사적으로 회개하며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너무 힘드니까 몸부림치며 회개하며 기도했을 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고난을 당할 때,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살 길이 열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해냈습니다. 그래서 요나 선지자는 죽지 않고,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요나가 사흘 동안 물고기 배 속에 있다가 다시 살아난 것처럼,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죽으시고, 장사 지낸 지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실 것이므로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2:39).
본문 마태복음 12장 40~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나는 니느웨 성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지못해 니느웨 성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아마 이때 요나는 니느웨 성 사람들이 다 망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소극적으로 전했을 것입니다. 되도록 작은 목소리로 전했을 것입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만 하면 되니까, 니느웨 성 백성 전체가 구원 받으면 안 되니까, 니느웨 성은 망해야 할 나라니까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적극적으로 외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니느웨 사람들은 임금부터 어린 아이에 이르기까지 전체가 금식하며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큰 죄를 범했어도 금식하고 회개하면, 하나님은 용서해주십니다. 온 백성이 금식하며 회개하는데, 하나님이 그 백성을 살려두시지 않으실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멸망시키려는 뜻을 돌이키시고, 그들을 살려두셔서 니느웨 성이 구원 받게 되었습니다.
니느웨 성 사람들은 신통치 못한 요나의 말을 듣고서도 회개했습니다. 그러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2:41~42).
여기서 ‘남방 여왕’은 스바 여왕을 가리킵니다. 스바 여왕은 에티오피아에서부터 이스라엘까지 와서 솔로몬 왕으로부터 지혜의 말씀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할 필요도 없고, 도리어 예수님이 그들을 찾아오셔서 그들에게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회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이야말로 심판 날에 정죄함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들의 속에 귀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악령이 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속에는 성령이 계시지 않고, 마귀가 들어있기 때문에 그들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12장 43~4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귀신은 우리의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귀신이 우리에게 와서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행동을 보면, 귀신 들린 사람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실수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실수는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 속에 들어있는 귀신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런 짓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화가 나면 화를 참지 못하고, 난동을 부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도 주체하지 못합니다. 그 사람은 귀신들린 사람입니다.
그리고 절대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귀신에게 사로잡힌 사람입니다. 귀신은 절대 회개하지 못하게 합니다.
계속해서 큰 죄를 지으면 망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속에 있는 귀신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절대 회개하지 못하게 합니다.
마태복음 12장 22절 이하에 보면, 사람들이 귀신 들려 눈 멀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서 귀신을 내쫓아주셨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즉시 앞을 보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귀신이 나가므로 이 사람은 깨끗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귀신이 그 사람에게서 나간 후가 더 위험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에게서 나간 귀신이 돌아다니다가 머물 곳을 찾지 못하면, 다시 그 사람에게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귀신이 다시 돌아와서 이전에 있던 집이 깨끗하게 청소된 집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귀신은 다시 그곳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이전보다 더 악한 일곱 귀신을 데려와서 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나중의 형편이 전보다 더 나빠집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악한 세대가 이렇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상숭배를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우상숭배하는 것을 정죄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이렇게 하는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들은 자기들은 어렸을 때부터 살인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명을 잘 지킨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기들처럼 살지 않는 사람들을 멸시하고, 정죄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매우 잘못된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이 무엇입니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 12:29~31). 그리고 예수님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44). 이것이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그렇다면 자기들처럼 살지 않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고, 그들이 돌아오도록 격려하고, 이끌어줘야 할 텐데, 그렇게 하지는 않고 오히려 그들을 멸시하고, 그들을 판단하기만 하고, 정죄하는 것은 얼마나 잘못된 행동입니까.
누가 이런 짓을 하는지 아십니까? 교만한 사람들이 이런 짓을 합니다.
저는 예전에는 이것이 교만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짓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은 잘못된 행동을 하는구나. 저 사람은 망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 생각이 맞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데서 그치면 안 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데서 그치는 것은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교만한 행동입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그들을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고, 그들이 돌이킬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랑 없이 판단하기만 하고, 정죄하기만 하고, 자기들만이 말씀과 계명대로 산다고 자랑하는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이 미워하십니다.
교만한 사람들은 회개하기가 어렵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보세요.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훌륭하게 하는 것 같지만, 그들은 외식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지적하시고 책망하실 때, 그들은 회개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는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되었습니다. 이들이야말로 악한 세대요, 일곱 귀신 들린 사람들입니다.
귀신 들려 눈 멀고 말할 수 없게 되는 것도 무서운 일이지만,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처럼 마음이 완악해서 끝까지 회개하지 않다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되는 것이 더 무서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야말로 일곱 귀신 들린 악한 세대입니다.
우리가 과거에는 죄 가운데 살았지만, 이제는 마음이 깨끗해진 것으로 만족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으로 다 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깨끗해진 마음을 빈 집으로 놔두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도둑질하던 사람이 더 이상 도둑질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도둑질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도둑질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또 다시 도둑질하게 되기 쉽습니다.
에베소서 4장 28절에 보면,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과거에는 도둑질하며 살았지만, 이제는 남을 도와주려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해서 남을 도우며 살아야 합니다.
성도들 중에는 성령 충만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참으로 귀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기도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하는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왜 성령 충만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않아 안타까울 때, “아버지, 내 힘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하게 하셔서 말씀대로 살 수 있게 해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죄와 싸워 이기며 살고 싶은데, 자꾸 넘어지고, 죄를 자꾸 범하여 괴로울 때, “아버지. 제 힘만으로는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성령 충만하게 하여주시옵소서. 저를 도와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담대하게 나아가서 전도하고 싶은데, 용기가 없고 힘이 없을 때, “아버지, 제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사오니 제게 성령 충만함을 허락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은 담대히 나아가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전도하다 보면,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고,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이 함께해주시는 것을 구체적으로 체험하며 살게 됩니다. 그래서 열심히 전도하다 보면, 저절로 은혜 가운데 살게 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기도만 하고, 행함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마음은 깨끗해졌지만, 빈 집으로 있는 것은 위험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가 위험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 받기 위해 교회에 열심히 나와야 합니다. 예배에 열심히 참석해야 합니다. 성경공부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생활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하루 24시간을 이렇게 열심히 살면서 바쁘게 지내다 보면, 한눈팔 새도 없고, 마귀가 틈탈 기회도 없습니다.
한가하게 지내지 마세요. 한가한 시간에 넘어지기 쉽습니다. 다윗은 한가할 때에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범죄했습니다. 한가할 때에 큰 죄를 범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열심히 충성하는 성도들은 일할수록 할 일이 더욱 많아져서 바빠집니다. 그런데 이것은 축복입니다. 일을 잘 하니까 일이 더욱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일을 맡기면, 분명하기 때문에 일이 더욱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이 많아진다고 해서 짜증내지 마세요. 그것이 축복인 줄 믿으세요.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에게는 절대 일을 맡기지 않습니다. 충성된 사람에게 일을 맡깁니다. 이 비밀을 아셔야 합니다.
한가롭게 지내는 사람들은 이것도 하지 않고, 저것도 하지 않다가 결국 병들어서 밤낮 병원 신세를 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시간에 많은 죄를 범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무장하고, 사랑으로 무장하여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귀신을 이기고, 죄악을 이기고, 시험을 이기고, 승리의 삶을 살게 되는 비결인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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