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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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1:50 조회3,721회 댓글0건본문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2014년 02월 09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12:9~21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할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살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을 날마다 체험하며 살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날마다 체험하며 살게 됩니다.
그렇다면 십일조 생활을 철저히 하고,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을 것 같은데,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많이 받았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들의 마음이 진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참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신앙생활을 형식적으로 했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인 것 같지만,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시는 주님의 눈에는 그들은 외식주의자요, 위선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가복음 11장 37절 이하에 보면,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집으로 초청했습니다. 점심 식사 같이 하자고 초청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 사람의 집에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식사하시기 전에 손을 씻지 않으셨습니다. 더러운 것을 만지지 않아서 손을 씻지 않으셨는지 모르지만, 예수님이 손을 씻지 않으시고 식사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 모습을 보며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은 어떻게 손도 씻지 않으시고 식사하실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꿰뚫어보시고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1:39).
물론 손을 깨끗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몸도 깨끗이 하고, 그릇도 깨끗이 하는데, 정작 자신의 마음은 얼마나 악하고 더러운지, 예수님은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장 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한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라고 말하며 예수님께 불만을 털어놓았습니다(눅 11:45).
그때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1:46).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율법에 해석을 붙여서 사람들이 지킬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짐을 지워놓고, 자신들도 지키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얼마나 고약한 사람들입니까.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이 율법대로 살지 않는다고 사람들을 정죄하며 죄인으로 취급합니다.
누가복음 11장 5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도 천국에 들어가지 않을 뿐 아니라, 천국에 들어가려는 사람들까지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짓을 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 13, 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비웃었습니다.
마가복음 12장 4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고, 십일조 생활을 철저히 하고, 하나님을 굉장히 잘 믿는 것 같지만, 그들은 돈을 좋아하고, 과부들을 도와주는 척 하면서 도리어 과부들의 재산을 빼돌렸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두 손 들고 길게 기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받게 될 심판이 더욱 중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 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여기서 ‘뱀’은 마귀를 가리킵니다. 이 말씀은 “너희들은 지옥에서 멸망할 수밖에 없다”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들었으면, 가슴을 치고 울며 회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들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고발할 근거를 찾기 위해 예수님의 뒤를 따라다녔습니다.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 때에도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감시했습니다.
그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 “어떻게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합니까.”라고 항의했습니다. 그들은 배고픈 사람이 이삭 먹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왜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2장 9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가셨을 때에도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회당에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고발하기 위해 예수님께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2:11~12).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손 마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라”라고 말씀하시고, 그가 손을 내미는 순간, 손이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었습니다.
손 마른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가 손을 내밀었더니 손이 깨끗하게 회복되었습니다.
과거 어느 선지자에게서 이런 기적이 일어났습니까? 어떤 선지자도 이런 기적을 일으킬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야말로 우리가 지금까지 기다렸던 메시아가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적어도 ‘과거 어느 때보다 가장 위대한 선지자가 나타났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마 16:16).
그러나 본문 마태복음 12장 14절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예수님을 죽이려는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아시고, 거기를 떠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왜 이렇게 행동하게 되었을까요? 바리새인들은 왜 이렇게 악독하고 타락한 인간이 되었을까요? 근본적인 원인은 이들에게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3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정의를 지키고, 긍휼을 베풀고,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소소한 것까지 십일조를 드리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믿음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를 보면, 그 사람에게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1장 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똑바로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이웃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 회개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죄를 지적하신 예수님을 미워하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생각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바리새인처럼 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우리에게 짐을 지워주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힘들게 하시려고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신명기 10장 1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셔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서는 안 된다.”라는 의미로 주신 것이 율법이요 계명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생겨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매우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행복하게 살도록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을 한 마디로 말하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눅 10:27) 이것이 율법 전체를 요약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서로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창세기 1장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발견하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창세기 1장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얼마나 존귀하게 만드셨는가를 깨닫고,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천지와 만물을 다 창조하시고, 마지막에 사람을 만드시고 난 후, 사람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1:29~30).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실 뿐 아니라, 인간을 아주 많이 사랑하시는구나. 인간을 존귀한 존재로 만드셨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위해 우주 만물을 만드시고, 모든 것을 인간에게 맡겨주시며 “너희들이 정복해라. 취해라. 다스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행복과 기쁨을 느꼈습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율법 가운데 십계명이 중요합니다. 십계명 중 네 번째 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 계명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하신 이유를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안식일 제도를 정하셨습니다.
둘째, 우리의 영육 간에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마가복음 2장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안식일 자체가 우리를 위해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 주시기 위해 안식일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안식일을 기쁨으로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안식일에 매여서 억지로,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안식일을 지킬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안식일을 지키며 알아야 합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율법은 하나님이 우리의 행복을 위해 우리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안식일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뿐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을 기쁘게 해주며 살아야 합니다. 율법은 곧 “사랑하라”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3장 10절에 보면,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안식일에 자신의 유익을 위해 장사하거나 일해서는 안 되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나 다른 사람을 돕고 섬기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구덩이에 빠진 양을 건진다거나 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을 치료해준다거나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새가족을 교회로 데리고 왔는데, 식사 대접을 하지 않고 보낼 수는 없습니다. 되도록 잘 대접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는 돈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 선한 일에는 돈을 써야 합니다. 주일에 자신의 유익을 위해 장사해서는 안 되지만, 사랑을 베푸는 일에는 돈을 써야 합니다.
주일에 예배드리기 위해 차를 타고 교회에 오려면, 연료비를 써야 합니다. 그런데 ‘주일에는 돈을 쓰면 안 된다.’라고 생각하고 10리, 20리의 거리를 걸어서 교회에 온다면, 그것이 율법주의입니다.
그 사람은 안식일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 안식일이 있는 것입니다.
안식일이라고 해서 가만히 있으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가 안식일에 찬양대, 안내위원, 헌금위원 등으로 예배를 돕는 일이나 봉사하고 전도하는 일 등의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본문 마태복음 12장 20~21절에 보면,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42장 3절에 기록된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비유의 말씀입니다.
갈대는 본래 약합니다. 본래 약한데다가 상했으니 오죽 꺾이기 쉽겠습니까. 불이 꺼져가는 심지는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꺼져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 사람들 중에서 가장 미천한 사람들을 비유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리와 같은 사람, 창녀와 같은 사람들을 비유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의 옆에 있는 십자가에 달려있던 강도는 평생 강도짓을 하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지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 강도는 십자가에 매달려있는 동안,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눅 23:42).
평생 강도짓만 하고, 하나님 앞에 한 번도 제대로 예배드리지 못한 그 강도는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인간입니다.
그런데 그 강도가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주님 앞에 부탁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23:43).
주님은 상한 갈대나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죄가 아무리 많아도 예수님께 나아오면, 살 길이 열립니다. 믿음이 아무리 작아도 예수님께 구하면, 예수님은 들어주십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을 멸시하시지 않으십니다. 배척하시지 않으십니다. 이런 사람들이 주님 앞에 찾아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냥 돌려보내시지 않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아오면, 예수님께서는 다 받아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7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겨자씨가 얼마나 작습니까. 그런데 겨자씨 한 알 만큼 작은 믿음이 있어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이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의인이나 완전한 자를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저주를 속량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도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됩니다. 믿음이 아무리 작은 자라도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죄 사함 받고, 구원 받게 됩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영육 간의 복을 주시기 위해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기쁨으로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마음껏 자유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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