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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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1:40 조회3,747회 댓글0건본문
예수님의 소원
예수님의 소원
2014년 01월 12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11:25~30
여러분은 어떤 소원을 가지고 계십니까? 사람들은 누구나 크고 작은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소원을 가지느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소원을 가지고 있느냐를 통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고, 그 사람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소에 가진 소원과 생각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좋은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좋은 소원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되도록 큰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고 기뻐하실 수 있는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큰 축복이 됩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보면,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의 소원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어드리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있다면, 이것은 수지맞는 일입니다. 100%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사람, 하나님께서 크게 들어 쓰실 사람, 그 사람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려는 계획을 갖고 계신 사람에게 좋은 소원을 가지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가리켜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행 13:22). 다윗은 하나님께 성전을 지어 바치고 싶어 하는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윗 이전에는 아무도 성전을 지어 바치지 못했습니다.
다만 야곱이 하나님 앞에 서원기도를 할 때,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창 28:22)라고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야곱의 서원이 야곱의 후손인 다윗의 대에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성전을 지어 바치고 싶어 하는 소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소원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 대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셔서(대상 22:8~10) 다윗은 평생 성전을 짓기 위한 준비를 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엄청난 복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소원을 가지기만 해도 복을 받습니다. 이렇게 좋은 소원을 왜 가지지 않습니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를 생각하시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소원들을 많이 가지세요. 그래서 큰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도 소원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11장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들의 소원대로’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여기서 ‘아들’은 예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의 계시를 받아서 하나님 아버지를 알기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에는 그런 소원이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계시를 받아서 아버지 하나님을 알게 되기를 원하시는 마음이 예수님에게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5~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베드로의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베드로가 어떻게 똑바로 알 수 있었겠습니까. 계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계시해주셔서 알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이 베드로처럼 계시를 받아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모든 사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든 사람이 구원 받고,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세상에는 계시를 받는 사람과 계시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들이 계시를 받고,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은 계시를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어린 아이’는 겸손하고 마음이 단순하여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는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똑똑하고 지혜롭고 잘났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사람이 안다고 해도 얼마나 알겠습니까. 사람은 1분 후에 일어날 일도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다고 해도 얼마나 할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겸손해야 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기가 지혜롭다고 하고, 자기가 슬기롭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에게는 계시를 숨기시고,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아직 철들지 않은 것 같고, 실수가 많고 부족하여 어린 아이 같은 사람들에게는 계시를 보여주십니다.
고린도전서 1장 26~29절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잘 나서 잘 사는 것이라고 착각하지 마세요. 우리가 똑똑해서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혜로워서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자신을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슬기롭다고 생각하고,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그 사람은 영적으로 어두워져서 그 사람 안에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비한 비밀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잘난 사람을 택하지 않으시고, 미련해보이고 모자라게 보이는 사람들을 택하시는 것은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본문 마태복음 11장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모든 것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3장 35~36절에 보면,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 21~2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장차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예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아버지께서 심판하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에게 모든 권세가 있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만물을 맡기셨고, 예수님에게 심판하는 권세도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죽고 사는 것,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것이 다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손에 있습니다. 이 나라가 예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지, 왜 예수님께 기도해야 하는지, 왜 예수님을 가까이해야 하는지, 왜 예수님을 찾아야 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11장 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예수님께 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수님의 마음대로, 예수님의 뜻대로 행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아주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시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일만 하시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온유함’이란, 훈련을 잘 받아 말을 잘 듣는 개와 같은 모습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가리켜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민 12:3). 모세는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면 가고, 서라고 하시면 서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움직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높이 들어 쓰십니다.
요한복음 8장 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3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만 행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시며 사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겸손한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모든 것을 주셨으니 아버지의 뜻을 묻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끝까지 겸손하고, 아버지께서 명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과 항상 함께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백성을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100% 완전하게 구원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열심히 전도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원 받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는 데 동참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6장 38~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하게 아버지의 뜻을 따라 행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고 예수님과 항상 함께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셨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11장 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의 짐, 죄의 짐, 슬픔의 짐, 고난의 짐, 질병의 짐, 근심의 짐, 죄책감의 짐 등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 무거운 짐으로 인해 수고하고 고생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누구나 주님께 나아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의 모든 짐을 벗겨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이 주님께 나아오면, 편히 쉬게 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아오면, 살 길이 열립니다.
요한복음 6장 3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께 나아오는 사람을 절대 내쫓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 옆의 십자가에 달려있던 강도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고, 사람들에게서 얼마나 많은 재산을 빼앗고, 못된 짓을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 그런 사람은 지옥에서도 제일 뜨거운 곳에 들어가야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님께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용서를 구했습니다(눅 23:42). 염치 불구하고, 체면 불구하고, 자격이 없음에도 주님께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용서를 구했을 때, 주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23:43).
베드로는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지만, 나중에는 통곡하고 회개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너 왜 그렇게 나를 배신했니? 네가 어떻게 나를 모른다고 맹세할 수 있니?”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얼마나 자비하신 주님이십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이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심판하지 마세요.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의 열쇠는 주님께서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구원 받으려면,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이 되시고, 예수님만이 생명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의 허락 없이는 천국의 문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11장 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이 하신 대로 배우라는 의미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멍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짊어지게 되는 멍에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사람이 져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게 되면,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합니다. 원수 마귀와 영적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평생 짊어져야 하는 멍에입니다.
그런데 본문 마태복음 11장 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함께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이 걸어가신 길을 따라갔습니다. 세상의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헐벗고 굶주리고 배고프고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경험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마음은 매우 기쁘고 행복하고 좋아서 항상 기쁨이 넘치는 가운데 살면서 성도들에게도 기뻐하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기뻐하라는 것은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을 말합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한순간에 그칩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넘치는 기쁨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 주님으로 말미암아 얻는 기쁨은 차고 넘칩니다. 우리를 만족하게 하고, 행복하게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사도 바울처럼 날마다 주님과 함께하는 것을 체험하려면, 성령 충만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만,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지 못한 채 신앙생활을 하면, 신앙생활이 힘들어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으면, 신앙생활이 기쁘고 즐겁고 행복합니다.
날지 못하는 새에게는 자신의 날개도 무겁게 느껴지고, 깃털도 무겁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하늘을 높이 날고 있는 새에게는 날개나 깃털이 무겁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훨훨 날아다닙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날지 못하는 새와 같은 신앙생활을 하지 마세요. 밤낮 바닥을 기어 다니며 바닥에 떨어져 먼지와 범벅이 된 먹이만 먹으며 살지 마세요. 은혜를 충만히 받아서 높이 날아오르세요.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고 보니 얼마나 기쁘고 얼마나 좋은지, 비록 먹을 것이 없고 가난해서 판잣집에서 살았지만, 굉장히 기쁘고 좋았습니다.
그 당시는 6ㆍ25전쟁이 끝난 직후여서 먹을 것도 없고, 모두 가난하고 고생해서 얼굴이 시커맸습니다. 그러나 저는 성령 충만하여 얼굴이 환했습니다.
저는 성령의 불을 받고 목회를 하니 얼마나 좋은지, 하나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교회에 와서 앉아있기만 해도 마치 엄마 품에 안겨있는 아기가 느낄 만한 편안함을 느낍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목회하며 힘들다고 하는데, 저는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행복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으세요.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새와 같이 날아오르세요. 그래서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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